너무 졸려서 간단히 쓰려고 한다.
거두절미하고
굉장한 공연이었다.
신들린 합주.

Colin Matthews의 Grand Barcarole pour l'orchestre 도 아주 좋았는데 바르카롤레라기보다는 심해의 잠수함을 위한 혹은 거대한 범선의 장엄한 출항을 위한 곡 같았다. 그래서 grand 인가.

8번 1악장 첫부분 시작하자마자 완전히 경도되었다. 게반트하우스랑 샤이 너무 멋있다........
합창석임에도 불구하고 소리의 부피에, 음장에 공기가 밀려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8번은 정확히 7번과 9번 사이에 위치하는 느낌이어서 재미있었다.
강과 약의 대비가 화려하고 기세 좋은 무척 듣기 좋은 곡이다.
팀파니가 진짜... 와 정말 대단했다.
숨을 쉬질 못하겠더라.

3번에서 역시 8번의 기세를 그대로 몰아 엄청나게 강렬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22일 공연에서 샤이의 지휘를 도자기에 비유했었는데. 아니다. 오색찬란한 보석이었다. 샤이를 정면에서 보면서 그의 손과 눈빛을 따라가며 연주를 들으니 뭐 한순간도 끈을 놓을 틈이 없었다. 음악을 저렇게 사랑할까? 정말 저렇게 좋아하는구나. 저렇게 행복하구나. 주제를 모르고 조금 질투까지 났다. 저번에 무엇도 지휘할 수 없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고 썼었는데, 오늘도 그 생각을 했다.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처럼 그만큼 내 일에 집중하고 싶고 그 몰입의 순간에만은 완전히 행복하고 싶다. 마치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 처럼. 샤이 뿐만 아니라 단원들 전부가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인텐스한 연주가 나올 수가 없을 것 같다.
1악장의 완벽한 하모니는 말할 것도 없고 2악장에서는 특히 오보에와 콘트라베이스가 너무나도 잘했다. 그동안 집에 있는 토스카니니의 오래된 녹음으로만 들어서 그 고색창연한 소리가 귀에 익었었는데 그와는 다른 "오늘"의 연주도 듣다보니 금방 좋아졌다. 번쩍 번쩍 윤이 나고 날이 선 관악과 나무 맛이 살아있는 입체적인 현의 소리. 3악장 4악장에서도 정신없이 빠져들어 머리가 아플 정도.
좋구나. 자리 때문에 직접 보지 못해서 너무 아쉽지만 팀파니 정말 잘한 것 같고 오보에 플룻 바이올린 다 좋았다. 2악장 후반부 쯤에서 현악만 파트 별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눈물이 다 날 뻔 했다.

내일모레 아일랜드 가기 전날 9번을 들으러 간다. 1번, 7번 그리고 4, 6번은 예매하지 않았다. 작년에 갔던 틸레만과 빈필의 베토벤 싸이클 때와는 거의 반대의 구성이어서 비교는 못하겠지만 (게다가 둘 다 너무 훌륭한 오케스트라들이라 내 수준에서 하는 비교는 무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샤이와 게반트하우스의 정말 신들린 듯한 연주와 지휘자와 연주자들 간의 호흡 - 거의 서커스!? 와도 같은 느낌을 받았을 정도 - 과 결속력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졸리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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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르도 샤이와 게반트하우스의 베토벤 사이클 첫번째 날이다.
오늘의 프로그램은 2번과 5번, 그리고 가운데 Carlo Boccadoro의 Rittrato di musico (프랑스초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베토벤의 2번 교향곡은 라디오에서 3악장을 다른 일 하면서 뒷배경으로 들은 이후로 처음으로 접한 것이었는데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곡 전체를 관통하는 음의 배열과 공식이 어떻게 변형되고 또 다시 제자리를 찾는 가를 관찰하는 일은 늘 즐겁다. 2, 3악장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보카도로의 리트라토 디 무지코 역시 인상깊게 들었다. 모래시계가 아래쪽으로 중심을 이동해가는 사라락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빛나는 해파리가 바닷속을 가르는 모양이 생각나기도 하고, 어쨌든 표제는 "음악가"의 초상이지만, 바삭하면서도 유연한 오묘한 곡이었다. 요즘 듣는 현대 음악들은 어쩐지 다 좋은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음...혹시 귀가 트이는 걸까? ㅋㅋ 써놓고도 웃기지만 어쨌든간 다행인 일이다.

5번은 지금까지 들은 것 중 가장 좋았다. 나는 역시 샤이의 "멋"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 그의 지휘는 정말 멋이 있고 구조가 탄탄한데, 장인이 빚어내는 훌륭한 도자기같다. 이 도자기는 과한 장식은 없지만 볼 수록 안정감과 무게가 있어 아늑한 맛이 있고 빛깔은 그윽하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일순간 한낮의 빛이 가 닿으면 그 윤곽이 찬란히 빛난다. 삶의 짙은 내음이 깊숙이 파고 드는 5번 교향곡을 여기에 덧입히니 듣는 이는 감격할 뿐이다. (사실은 베토벤에 샤이를 덧입혔다 해야 맞겠지만.)
한달에도 몇번이고 음악을 들으러 가지만,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게 되는 경우는 사실 많지 않다.

다녀오자마자 글을 쓰기 시작은 했지만 벌써 1주일이 지난 오늘에야 마무리 할 수 있었는데. 아직도 다시 생각하면 얼떨떨하다. 오늘 저녁에는 8번과 3번 연주가 있다. 무척 기대된다. 이번엔 합창석 자리라 지휘자를 정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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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는 아이폰이랑 아이패드 ios 업데이트 하느라 ㅋㅋ 글을 못 쓰고 그냥 잠들었다.
처음으로 에두아르 투빈 (Eduard Tubin : 에스토니아 출신의 20세기 작곡가인데 정확한 발음은 모르겠다.) 의 음악을 접했다. 단악장으로 된, 아니 그렇게 되었다기 보다는 미완성으로 남은 교향곡이었는데 번호가 11번이라 놀랐다. 내가 몰랐던 작곡가라고 해서 그가 11편의 교향곡을 남겼다는 것이 놀라울 것은 없는데 말이다.
네메 예르비도 즐겨 연주하던 작곡가인 것 같다. 이날 들은 11번 교향곡이 무척 마음에 들어 아마존을 찾아보니 전집이 하나 있는데 네메 예르비의 것이었다. 무척 세련되고 힘있고 신선한 곡이었다.

내 앞 옆으로 삥 둘러 음악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이 쭉 앉았는데 콘서트마스터인 Roland Daugareil 가 들어오자 마치 아인트호벤 사람들이 위숭빠레 ㅋㅋ 했던 것 처럼 로올렁 로올렁 하고 이상한 딱다구리 같은 소리를 일제히 내서 너무 웃겼다. 아마도 도갸레이의 제자였거나 제자인 모양이다. 웃음을 참느라 조금 힘들었다.

지난 금요일부터 쓰려고 잡고 있던 글인데 몸살 때문에 결국 일요일인 오늘까지 와버렸다.
무슨 말을 쓰려고 했었는지 점점 흐릿해져간다. ㅠ
어쨌든 카바코스의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내가 라이브로 들은 연주 중에 단연 최고였는데 (그리 많지야 않지만), 지난번 스베틀린 루세프도 대단했지만 아무래도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정교함과 간결함, 콘트라스트가 그리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명확한 기승전결은 정말 거장의 그것이라 할 만 했다.
무대 바로 앞 두번째 줄 가운데 자리에 앉아서 바이올린의 독주에 더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잘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매번 자리가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정말 들을 수 있는 최고를 들었다는 실감이 확 났다. 정말 눈물을 글썽일 뻔 했던 것은 이번이 아니라 루세프 때였다.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그런 벅찬 감동 때문에 울컥하는 일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온 몸과 마음으로 집중하며 감사하며 행복하게 들을 수 있었다.

2부에는 26세에 요절한 Hans Rott 라는 작곡가의 교향곡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연주 시간이 60분이라는 것을 보고 고민하다 그냥 귀가했다. 이 날 오전에도 수업이 있어서 보리를 네시간 가까이 집에 혼자 두었었는데 저녁에도 그렇게 오래 떠나있기가 영 마음에 걸려서였다. 조금 아쉬웠지만 대신 Tubin의 11번 교향곡을 알게된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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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lini Perspective 프로젝트 (2011-2013) 가 올해도 돌아왔다.
오늘은 그 첫번째 공연.

폴리니 할아버지의 연주를 들으려면 이제는 응당 통과의례 내지는 수수료 ?! 와도 같은, "초"현대 음악 연주가 오늘도 역시 1부에 짜여져 있었다. 그래서 폴리니가 더 존경스럽고 그래서 팬이기도 한거지만 말이다. Giacomo Manzoni 가 작곡한 Il rumore del tiempo 가 그것으로, "시간의 소음"이라는 제목이다. 소프라노와 클라리넷, 바이올린, 퍼커션 그리고 폴리니의 파브리니 스타인웨이가 함께 하는 곡으로, 재작년이었나 루이지 노노의 성악곡 (이라고 할 수 있나? 그림으로 치면 mixed media 같은 그런) 의 충격 이후 소프라노가 등장하는 현대 곡들은 듣기 전에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성의 높은 목소리가 내는 불협화음과 그 미묘한 반음 톤들이 주는 기괴하거나 침울하거나 불길한 느낌이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렵다.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이 과연 2천명 플레이옐 관객들 중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내 편견일까?

오늘 만조니의 곡 역시 그런 면에서 크게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는데 심지어 러시아어, 독일어 그리고 이탈리아어로 된 시를 끊임없이 고음으로 "노래"하는 소프라노에 사람을 긴장하게 하는 퍼커션과 아슬아슬한 바이올린까지 굉장한 합주였다. 피아노만은 그래도 어느 정도 귀에 익숙한 멜로디 라인을 따라가는 듯 싶었지만 뒤늦게 합류한 클라리넷이 또... 클라리넷 주자 (Alain Damiens) 소개를 보니 "클라리넷의 혁신의 주인공" 이라고 하던데 역시. 그래도 클라리넷 음색 자체가 워낙 곱고 듣기 좋아서 듣다 보니 그렇게 (부정적 의미의) "현대"스럽지만은 않았다. 나중에는 소프라노 목소리와 클라리넷이 헷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멍하니 듣다가 생각해보니 "시간의 소음"이라는 표제가 더없이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비꼬는 것이 아니고 정말. 루체른 페스티벌의 주문으로 폴리니를 위해 만들어진 이 곡은 올해 80세인 작곡가가 지나온 길을 자전적으로 그려낸 것으로 Khlebnikov, Trakl, Blok, Zanzotto 의 시를 가사로 차용하고 있다. (이 중 누구의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다.) 프랑스어 본이 livret에 실려있었는데, 여기 전부 번역해서 싣기는 힘들겠지만, 읽어보니 시들이 워낙 좋다. 내가 그 가사를 알아들을 수만 있었다면 어쩌면 감동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나이가 되면 시간이 삐걱삐걱 지나가는 소음도 듣고 이야기도 듣고, 시로 음악으로 노래로 만들 수 있는걸까. 총 4편의 다른 시로 되어있지만 관통하는 이미지는 이렇다. 나는 그저 차분하게, 혹은 불안한 마음으로 주위를 바라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관찰자의 입장이고 눈 앞은 온통 새까만 밤, 벽도 울타리도 없는 풀밭과 숲과 산 뿐이다. 바람과 물 소리가 들리고 새가 울고 달이 빛나고 있다. 한없이 고요하면서도 또한 온갖 소리와 움직임으로 가득한 그런 새까만 공간이다. 그 곳을, 내 옆을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다.

소프라노 안나 프로하스카의 인사하는 포즈가 무척 독특하고 귀여워서 기억에 남는다.
폴리니 할아버지는 역시 이탈리아 남자 답게 ㅋㅋㅋ 만조니와 이야기 나누며 무심코 앞서 퇴장하다가도 순간 놀라며 소프라노 분을 먼저 가도록 챙기는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ㅋㅋ 악수하고 사인받고 진상부리고 싶다.

아. 중간에 갑자기 고백하자면 나는 오늘 굉장히 찝찝한 기분인데
왜냐하면 내가 ...
내가
아파시오나타를 듣던 중 순간 졸았기 때문이다. .....머리를 팍 꺾으며...
너무나도 치욕스러워서 여기 쓰는 것도 망설였지만
내 스스로가 답답해서 고해를 하지 않으면 오늘 편히 잠을 못 잘것 같다.
어제 거의 밤잠을 이루지 못해서 - 나는 7시간 깨지 않고 자지 않으면 일상 생활이 어려운 사람인데 - 하루종일 졸려서 제정신이 아닌 것은 물론, 얼굴도 푸석푸석 눈 밑 피부가 장승처럼 처지는 그런 ... 힘든 하루였는데 폴리니 공연이기 때문에 또 기를 쓰고 나는 플레이옐에 가야했던 것이다. 변명같지만 정말 내가 베토벤 소나타 들으면서 게다가 폴리니 연주로 들으면서 졸! 수가! 없는데... 공연 보러 다닌 이래로 최악의 사건이다.
고백했으니 이제 또 다시 써야지. 기대만큼 후련하지는 않지만 별 수 있나.

오늘은 발트슈타인과 아파시오나타, 그리고 가운데 낀 피아노 소나타 22번이 연주되었다.
Waldstein은 특히 내가 진심으로 듣기 시작한 첫번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로, 요즘에도 매일 아침에 한번씩은 듣는 것 같다. 낮에도 밤에도 좋지만, 특히 아침을 시작하며 들으면 그 상쾌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쨌든 프로그램은 이랬는데. 연주에 대해서는 참 그러고 보면 뭐라고 써야하나.
나는 음악 평론가가 아니고 그렇게 되고 싶은 사람도 아니다. 몇번 적은 적 있는 것 같은데 폴리니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누군지 모르고 듣다가도, 뭔가 다시 돌려 듣고 싶고 이름을 확인하고 싶은 연주들은 거의 항상 폴리니였기 때문이다. 진짜 특히 베토벤 소나타에서 보여주는 그 완벽한 그림. 의연한 아름다움과 당당함, 기상이 단연 독보적이다. 내가 바라는 그런 요소들을 오늘 폴리니는 유감없이 보여준 것 같다. 중간중간 조금 음이 틀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폴리니임을 생각할 때 무척 놀랍지만)
흐름이 정말 좋다. 도입부에선 뭔가 탁 트인 풍경을 열어주고 곧이어 그 안으로 말을 타고 달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리고 목적지에 다다르는 그 성취감과 흥분, 행복감으로 곡은 끝이 난다.

몰랐는데 22번도 참 좋더군. 2악장의 남다른 구성으로 11분 정도 안에 연주되는 짧은 곡인데, 듣는 것 만으로도 견과류처럼 오독오독 씹는 재미가 있다고 해야하나. 재미있는 곡이었다.

내년 2월 14일에 피아노 소나타 24-27번, 2013년 1월 18일에 28-29번, 그리고 3월 18일에 30-32번이 계획되어 있다. 물론 전부 갈 테지만, 28번이 특히 벌써부터 너무너무 기대된다.
최근에 폴리니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려서 걱정했는데 오늘 보니 아주 좋아보이셨다.
얼굴에서 빛이 나던걸.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제발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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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서둘러 돌아와 바로 보리를 크레이트에서 꺼내주고, 물 한잔을 들이키고, 설거지를 하고, 씻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집에 혼자 있을 보리가 안타까워 첫번째 커튼콜에 부리나케 집으로 내달렸는데 이녀석은 내가 와도 한 5초 동안 간략히 신나하다가 이내 자기 할 일 (= 소가죽 개껌 뜯기) 에 몰두한다. 이 배신감... ㅋㅋㅋ 덕분에 나도 편하게 내 할 일을 한다.

2011/12 시즌 처음으로 보게 되는 공연이었다. Orchestre de Paris를 통해 정말 부담없는 가격(5유로)에 구입한 티켓이었지만 나름 기대도 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 콘체르토 중 하나인 쇼팽 2번과 베토벤 교향곡 5번이 편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협연자인 카시아 부냐티쉬빌리에 대해서는 젊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고 사실 뭐 아무래도 좋았다. 예르비의 5번을 꼭 실제로 들어보고 싶기도 했고. 전에 뉴욕필에서였나? 무슨 어디 클래식 라디오 채널에서였나 예르비와 뉴욕필(아마도)의 5번 라이브 음원을 무료로 공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주 인상깊게 들었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러닝타임이 비교적 짧다 : 보리에게 빨리 돌아갈 수 있다. 좋아.

첫 곡인 베를리오즈의 Ouverture du Corsaire 도 절대 나쁘지 않았다. 그냥 왠지 무대를 여는 첫 곡으로는 약간 정신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 내가 방학에서 돌아오지 못한 탓인지, 집중이 좀 안됐다. 어쨌든 나는 베를리오즈를 좋아한다. 독보적인 스타일이다. 이런 곡은 베를리오즈밖에 쓰지 못한다.

고대하던 쇼팽 2번. 피아니스트가 들어오는데 와 깜짝 놀랐다. 그루지야 출신의 87년생 (사실 이젠 그렇게 어린 나이도 아니구나. 나보다 두살이나 어린데.) 여성 피아니스트인데, 외모만 보면 무슨 흑백시절 여배우라고 해도 믿을 고혹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여자인 내가 봐도 입이 딱 벌어졌는데. 남자 관객들은 좀 많이 놀랐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실력에 비해 박수와 환호도 왠지 더 받은 느낌이다. 흉보려는 건 아니고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냥 연주하는 모습만 봐도 포스가 대단했다.
오랜만에 느끼하고 존재감 강한 Steinway & Sons 피아노를 들으니 기분이 좋기도 하고 좀 이상했다. 뭔가 타임머신을 타고 예전으로 돌아온 느낌.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결국 플레이옐 이 자리로 다시 끌어다 앉혀놓은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이제 공연을 보러 다닌 햇수도 꽤 되었고 특히 이 피아노 소리의 마력에 스스로를 무디게하고 길들여 온 노력도 많이 쌓여, 이젠 관객석 불이 꺼지기만 해도 스타인웨이 뚜껑을 젖히기만 해도 내 몸이 최적의 자세를 저절로 찾아가는 것 같다. 뭐 그냥 나의 바람일 수도 있고.
피아노 연주는 정작 그냥 그랬다. 내 귀에 많이 선 느끼한 스타일이었고 특히 1, 3악장 도입부에서 성급하게 윗 노트들을 대충 쳐넘긴 것은 참 별로였다. 2악장은 그냥... 대단한 특징은 없었다. 감정 과잉의 선을 위태위태하게 밟고 타는 연주로 느껴졌는데 듣기 편치 않았다. 기름에 절인 포도알 같은 느낌. 하지만 예쁘긴 참 예쁘더라.
앵콜곡으로 리스트 (올해는 리스트의 해!)의 Rêve d'amour 를 들려주었는데, 이건 정말 너무 심해서 내가 오죽하면 항의의 표시로 박수도 치지 않았다. 이렇게 연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원곡의 깊이도, 생동감도, 처연함도, 달콤함도 온데간데 없다. 하다못해 악보에 대한, 곡의 "형식"마저도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심이 들었다. 파괴적이고, 지루했다.

베토벤 5번은 좋았다. 앗쌀한 도입부가 참 마음에 들었다. 묵직하면서도 날이 선 첼로의 존재감이 대단했다. 파리 오케스트라의 첼로 앞자리 두사람은 예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오늘 (내 귀에) 만족스러운 베토벤 연주에는 첼로 파트의 공이 컸다. 내가 사랑하는 4악장도 훌륭하게 그려내 주었다. 이제와 말하지만 파보 예르비는 (들라노에와 더불어) 파리의 보물같다. 멋진 지휘자다.

오늘 오랜만에, 3개월 만에 플레이옐에 가서 예르비를 보며 새삼스럽게 지휘자의 손에 대해 깊이 생각을 했다. 음악을 만드는 손. 지휘자의 지난 세월들이 다 그 손에 묻어난다. 그 손 끝에 아리도록 깊게 배인 힘과 자신감이 오늘따라 무척 또렷하게 보였다.
내가 과연 무엇의 지휘자가 될 수 있을까? 지휘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무언가를 해야겠다.
지금의 나로 출발해서 저 정도의 지휘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내게 주어진 일을 하고 싶다.
아무것도 지휘할 수 없는, 어떤 음악도 만들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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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렌보임과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공연에 다녀왔다.
말러의 교향곡 10번 아다지오, 그리고 베토벤 교향곡 3번이 연주되었다.
한국에서 8월에 바렌보임의 지휘로 같은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교향곡 싸이클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맛보기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들었다.
말러는 꽤 듣기 좋았고 색깔이 많은 연주였다.
장점이기도 하고 동시에 단점이기도 한 부분이었다.
수석 주자들의 소리가 많이 튄다는 느낌이 들었고 전체적으로 연주가 굉장히 밝다.
바렌보임은 베토벤 3번의 2악장 marcia funebre 가 자신이 생각하는 "죽음"의 의미를 가장 완전히 보여주는 음악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그 생각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모양이다. 바렌보임이 골라 라디오에서 들려줬던 연주와도, 내가 평소에 들었던 연주들과도 아주 느낌이 달랐다. 뭐 그런 2악장도 있을 수 있겠지만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는 연주였다.
1악장과 3,4악장은 꽤 괜찮았다. 아주 빠르고 음량이 크고 강렬한 부분에서는 멋진 합주를 한다.
하지만 반대로 좀 부드러워야하고 내성적이어야하고 점잖아야하는 부분에서는 그닥...

어쨌든 나는 바렌보임-사이드 재단과 웨스턴-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취지에 무조건 박수를 보내주고 싶고, 오늘의 감동은 무엇보다 그 "생각"에 대한 공감에서 왔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옳아서"가 아니라 "맛있어서" 사먹어 달라던 공정무역 초콜릿 광고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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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코피에프, 스트라빈스키, 하이든과 쇼스타코비치를 전부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게다가 6개월만에 파리 오케스트라로 돌아온 에셴바흐.
그리고 에마뉴엘 엑스와의 피아노 곡이 자그마치 두 곡.
게다가 무척 들어보고 싶었던 쇼스타 5번.
거기다 맨날 놓쳤던 프로코피에프의 교향곡.
심지어 요즘 부쩍 관심가던 하이든 피아노 협주곡.

  • Sergueï Prokofiev
  • Symphonie "classique"
  • Igor Stravinski
  • Capriccio pour piano et orchestre
  • Joseph Haydn
  • Concerto pour piano en ré majeur
  • Dmitri Chostakovitch
  • Symphonie n° 5

그러나 오늘 자리 운은 몹시 안좋았다.
오른쪽에는 최소 20살 이상 나이차에 불구하고 금지된 사랑의 절절함을 굳이 공공장소에서 굳이 콘서트 중에 온몸으로 manifeste하는 한 쌍의 바퀴벌레.
왼쪽에는 콘서트에 책 읽으러 온 (정확히는 책장 넘기러 온) 독서의 여왕.
덕분에 신경이 무척 날카로워 진 상태에서 어렵사리 음악을 들었다.

프로코피에프의 "고전적" 교향곡은 무척 재미있었다.
마요네즈를 바른 약간 서걱서걱한 셀러리 맛이 있다.

오늘 에셴바흐 할아버지의 열정적인 지휘는 관객 입장에서 보기 좋았을 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꽤 훌륭한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스트라빈스키에서 하이든으로 이어지는 그 냉탕 열탕의 느낌.
대단했다. 예르비 주니어가 오고 나서 파리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점점 좋아지고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전임으로서 위엄 ㅎㅎ을 확실히 보여준 오늘이었다. 르몽드에서는 2000년 당시 에셴바흐가 처음 부임했을 때는 정말 다들 기대가 컸고 연주도 아주 좋았는데 1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파리 관객들이 많이 실망했었다고 말했었다. (출처를 다시 찾기가 힘든데 아마 2010년 9월 당시 예르비가 부임해서 시즌 첫 콘서트를 열었을 때의 기사) 하지만 오늘의 에셴바흐를 들었다면 르몽드 기자도 예르비도 마른 침 꿀꺽 삼키며 조금 긴장했을 듯하다.

에마뉴엘 엑스는 이차크 펄만과 너무 닮았다.
그리고 되게 겸손하고 웃는 얼굴에 사람이 무척 좋아보였다. 한 무대에서 스트라빈스키와 하이든을 연달아 들려준 사람. 그런 일을 하고도 그렇게 편안한 얼굴로 웃을 수 있다니 멋지다.

스트라빈스키도 하이든도 나는 조금씩 , 어느 정도씩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하이든의 매력을 정말 몰랐는데 요즘 브렌델의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를 어쩌다가 자꾸 듣다보니. 그리고 쿼텟도 조금씩 아주 천천히 귀에 들어오고 있다. 저번에 쾰른에서 보았던 트럼펫 협주곡도 괜찮았고. 또 씨디를 사야하게 될까봐 좋다 라고 확실히 말을 하지는 않겠다.
(스트라빈스키는 불레즈 때문에 이미 전에 샀으므로 괜찮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러닝타임이 45분이라는데 인터미션 때 시계를 보니 이미 9시 30분.
나는 몰상식의 아이콘 우불륜 좌독서 때문에 있는 대로 신경이 곤두서있는 상태였고 안 그래도 오늘 하루종일 좀 피로감이 있어 이걸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끝까지 남기를 너무 잘했다.
엉엉 쇼스타코비치 너무 좋아요.
1악장 마지막 바이올린 솔로와 피아노(celesta인가?), 3악장 라르고, 4악장의 다채로움과 화려함 그리고 피날레의 단호한 팀파니.
아으ㅏ으아아.
아휴.
입 헤벌리고 봤다.
에셴바흐 할아버지 등에서 신기루가 막 보이는 것 같았다. 정말 소리가 눈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왜 작곡가들이 오케스트라를 필요로 하는지 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번도 여기에 대해 굳이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왜 우리가 오케스트라를 필요로 하는지.

빨리 자야지. 아. 또 듣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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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보 예르비가 이끄는
파리 오케스트라 그리고 나와 동갑인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라파우 블레하치의 연주회에 와있다.

하이든의 교향곡 88번은 소규모 연주여서 인지 소리가 조금 비어보였으나 주법이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2악장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블레하치가 이어서 들려준 베토벤의 피아노 콘체르토 4번은 음...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정말 좋았다.
블레하치는 곧 없어질 것만 같은 콩알만한 작은 얼굴에, 바람에 날릴 만큼 체구도 조그맣다. 숱많은 다갈색 머리카락에 얼굴이 가려 그나마도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 앳된 겉모습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소년같은. 그야말로 소년같은, 얌전하고 섬세한 연주를 한다. 피아노 건반을 중앙에서 반으로 갈랐을 때 오른쪽 높은 음들을 그만큼 아름답게 연주하는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귀가 번쩍 뜨일 정도...
파리 오케스트라의 조금 작은 듯한 음량도 다감한 피아노 연주에 무척 잘 어울렸다.
더군다나, 4번과 그닥 친숙하지 않은 나 조차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해석이 남달랐다. 여기는 느낌표를 팍 찍어주고 싶다. 현대 피아노 곡을 연상시킬 정도로. 정확히 어떤 부분이었는지 집어서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일단 또래 연주자들보다 훨씬 배짱이 있는 것 같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사실 그가 뭔가 트릭! 을 썼다는 것은 직접 편곡한 듯한 무척 신선한 앵콜 곡들을 듣고 나서 더 확신하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오늘 프로그램 내내 일관된 무언가를 보여주려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3악장에선 특히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호흡이 더 좋아져서인지. 음. 감동적이었다.
왠지 이 블레하치라는 피아니스트는 원숙한 나이가 되면 누구라도 먼저 손에 꼽을 대단한 연주자가 될 것 같다. 이젠 예언까지.

심지어 지금 웃긴 것은 내가 오늘 도서관갔다 집에 오는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으셨던 할머니가 지금 플레이옐에서 내 뒷 열에 앉아계시다는 사실이다. 얼굴도 얼굴이지만 흔히 볼 수없는 독특한 안경에 같은 핸드백에 거기다 같은 수첩을 가지고 계시다. 버스 안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수첩을 (죄송하지만) 눈여겨 보았었기 때문에 틀림없다. 같이 오신 친구분들이 부르시는 걸 들으니 성함은 테레즈라고 한다. 버스에서 우연히 옆에 앉은 할머니에 대해 의도치않게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구나.

여기부턴 집에 돌아와서 쓴다.

프랑크의 d minor 심포니는 그런데 심지어 베토벤 협주곡보다 하이든보다 훨씬 더 대단했다. 무서운 예르비....... 보니까 베토벤도 그렇고 시벨리우스, 오늘 연주한 프랑크, 이런 느낌 곡들을 잘 하는 것 같다. 볼 수록 괜찮다. 볼매야 볼매. 영화음악 같기도 하고 아 너무너무 멋있는 곡이었다. 영화음악 같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는, 굳이 풀이를 하자면 뭔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기승전결이 뚜렷한, 장면 장면이 눈 앞에 그려지는, 적어도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느낌을 갖게 하는 그런 곡들이다. 닥치는대로 듣다보니 유독 그런 곡들이 있더라. 1악장에서 이미 기선제압을 하고. 2악장에서는 클라리넷을 필두로 한 관악기들과 하프로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입이 떡 벌어지지만 뭐라 말을 할  수 없다. 3악장에서는 확인사살. 잉..말이 너무 무섭다. 근데 아무튼 뭐라고 해야하지. 그래. 쐐기를 박는다. 그래도 무섭네. 잠시 mute 한 다음에 이윽고 레퀴엠 같은 분위기로 무겁게 가라앉힐 때. 혼자 박차고 일어나 브라보를 외치고 싶었을 정도. 그랬다면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었겠지.
근데 다시 말하지만 2악장은 최고였다. 클라리넷 신들린 것 같았다. 워낙 곡을 잘 쓴 것 같다.
집에 와서 바로 열심히 다시 듣고 있는 중. 곡 진짜 멋지다.
우리집 바로 옆에 세자르 프랑크가 살았던 길 (rue César Franck) 이 있어서 왠지 더 반갑다.

오늘 공연은 사실 예전에 미리 예약했던 것이 아니고. 별로 생각 없었다가 얼마전에 루브르에서 루브르 carte jeune 회원들에게 할인 혜택을 준다고 지금 빨리 예매하라고 해서. 왠지 이런 혜택은 꼭 챙겨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13유로 주고 뒤늦게 표를 샀었던 것이다. 평소보다 4유로 더 내고 본 거지만 이렇게 좋은 공연이기만 하다면. (요즘 긴축재정이라 4유로 유독 크게 느껴진다.) 28세가 되기 전에 정말 플레이옐에서 하는 공연은 될 수 있으면 다 보고싶다. ㅠ그냥 그 앞에 텐트치고 살아야 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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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북부 지진과 쓰나미와 원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무척 심란한 가운데
오늘은 머레이 페라이어의 리사이틀에 다녀왔다.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 Johann Sebastian Bach
  • Suite française n°5 BWV 816
  • Ludwig van Beethoven
  • Sonate n° 27 Op.90
  • Johannes Brahms
  • Quatre klavierstücke op.119
  • Entracte
  • Robert Schumann
  • Scènes d'enfants (Kinderszenen) op.15
  • Frédéric Chopin
  • Prélude op.28 n°8 en fa dièse mineur
  • Mazurka op.30 n°4
  • Scherzo n° 3 en ut dièse mineur op. 39
오랜만에 바흐를 들어서 기뻤고. 무척 식상한 표현이지만 듣는 것 만으로도 음표를 따라가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청아하고 고색창연한 프랑스 조곡에 이어, 베토벤에서는 분위기를 확 바꾸어 굉장히 강하고 무게 있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사실 페라이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베토벤 소나타 때문이었는데, 출발은 그렇게 했지만 갈수록 그의 베토벤은 거의 듣지 않게 되었다. 페라이어에겐 바흐, 모차르트나 브람스가 훨씬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여기다 2부에서 연주된 슈만도 더할 수 있을 것 같다. 슈만의 어린이 정경 모음곡을 매우 아끼는 나로서는 특히 반갑고 고마운 연주였다. 녹음하고 싶었다 ㅠ ㅠ
정말 정말 좋았다. 꼭 다시 듣고싶다. 앨범으로든 연주로든.
그 다음으로 연주한 쇼팽 3곡은 아마도 내가 들은 것 중 가장 우아하고 또렷하고 정갈한, 기품 넘치는 쇼팽이었을 것이다. 흐트러짐 없이 반듯반듯한, 그러면서도 relief가 확연히 드러나는. 이런 말로밖에 표현을 못해서 창피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뭔가 포스와 내공이 느껴지는 연주였다.
앵콜로 연주한, 2009년 샤틀레에서와 같은, 슈베르트의 너무나도 유명한 impromptus (D.899 No.2) 는 어떤 경지에 오른 듯한, 가히 완벽에 가까운 만듦새가 놀라웠다. 난 여기서 결국 녹음을 하고 말았다. 넋이 나가서 한참 듣다가 갑자기 용기내서 하느라 마지막 조금밖에 못했지만.
단단하고 아름답고 힘차고 여리고 부드럽고, 모든 것이 들어있는 황홀한 연주였다. 정말 너무 좋더군. 오른손 정말 훌륭했다.
어쩐지 잘 쓰지 못하겠다. 날씨가 갑자기 너무 좋아져서인가. 나가 놀고싶다.
일본에 더이상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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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콘서트가 자주 있다보니 며칠만 손을 놓으면 이렇게 밀려버린다.
3월 들어서만 벌써 네번의 콘서트를 보았다. 그나마도 3월 5일에 있었던 페트라 랑과 이반 피셔의 공연은 가지도 못했다 ㅠ 그날은 정말 심각하게 피곤해서 나무토막처럼 집에 뻗어있었다.

3월 4일은 정명훈과 라디오 프랑스, 알렉성드르 바티의 토마시 협주곡과 브루크너 7번,
6일에는 윌리엄 크리스티와 Les Arts Florissants 그리고 choir와 몇몇 성악가들,
어제 9일엔 파보 예르비와 파리 오케스트라, 기돈 크레머의 공연이 있었다.

특별히 기억나는 것들만 간략하게 적자면...
바티와 라디오 프랑스는 토마시의 트럼펫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어쩐지 3악장에서 솔리스트가 약간 불안하다 싶었는데 앵콜로 3악장을 다시 연주했었다는 것. 그리고 다시 한 것이 훨씬! 정말 훨씬 좋았다는 것. 브루크너 7번은 기대를 많이 했는데 3악장 스케르초가 정말 흥미로웠던 것 외에는 머리에 그다지 들어오지가 않았다.

6일 윌리엄 크리스티와 레자르플로리성의 라모 공연은... 18-19세기 음악만 너무 편식한다는 생각에 교육적 ! 차원에서 숙제처럼 보러 갔었는데, 예상보다도 훨씬 재미있었다. 성악가 분들도 다들 훌륭했고... 옛날 악기들 구경도 재밌었고, 17세기 음악도 무척 신선했다. 여자 소프라노 두 분 (Emmanuelle de Negri 그리고 Hanna Bayodi-Hirt) 과 남자 카운터테너 Ed Lyon 의 약간 오그라드는 연기가 백미였다 ㅋㅋ 연주된 곡은 아나크레온과 피그말리온.

9일인 어제는 오랜만에 아들 예르비씨의 독특한 지휘를 다시 보게 되어서 좋았고.
스티브 잡스 옷차림이 아닌 기돈 크레머도 다시 보게 되어 좋았다.
베토벤의 아주 후기 작품인 Ouverture de La Consécration de la maison (집의 봉헌 서곡.!?) 이 첫 곡이었는데, 제목부터 낯선 이 곡은 파리 오케스트라 역사상 단 3번밖에 연주된 적이 없다. 10분 정도의 간결한 화법. 하지만 몇몇 passages만 들어도 베토벤의 곡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베르크의 천사의 기억에 바치는.바이올린 협주곡. 하지만 그의 천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라파엘로의 아기천사들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라디오에서 들었을 때 정말 멋있다! 딱 "멋있다" 고 생각하며 숨죽였었는데. 기돈 크레머의 연주는 정말 훌륭했다. 행간을, 음표와 음표 사이를 읽는 능력. 지난번 차이코프스키보다 훨씬 좋았다. 2악장은 바이올린에 고압전류가 흐르는 것 같이 멋있었다.

그리고 음... 베토벤 4번도 역시 기분좋게 들었다. 오케스트라석에서 보다가 합창석으로 옮겨서 들었는데 지휘자의 얼굴과 동작들을 자세히 볼 수 있다는 것은 역시 엄청난 장점이다. 인상적이었다. 기운차고 건강한 연주.

또 5일 정도 쉬고 14일날은 머레이 페라이어의 독주회가 있다.
16일은 라팔 블레하치와 파리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4번 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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