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lini Perspective 프로젝트 (2011-2013) 가 올해도 돌아왔다.
오늘은 그 첫번째 공연.

폴리니 할아버지의 연주를 들으려면 이제는 응당 통과의례 내지는 수수료 ?! 와도 같은, "초"현대 음악 연주가 오늘도 역시 1부에 짜여져 있었다. 그래서 폴리니가 더 존경스럽고 그래서 팬이기도 한거지만 말이다. Giacomo Manzoni 가 작곡한 Il rumore del tiempo 가 그것으로, "시간의 소음"이라는 제목이다. 소프라노와 클라리넷, 바이올린, 퍼커션 그리고 폴리니의 파브리니 스타인웨이가 함께 하는 곡으로, 재작년이었나 루이지 노노의 성악곡 (이라고 할 수 있나? 그림으로 치면 mixed media 같은 그런) 의 충격 이후 소프라노가 등장하는 현대 곡들은 듣기 전에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성의 높은 목소리가 내는 불협화음과 그 미묘한 반음 톤들이 주는 기괴하거나 침울하거나 불길한 느낌이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렵다.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이 과연 2천명 플레이옐 관객들 중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내 편견일까?

오늘 만조니의 곡 역시 그런 면에서 크게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는데 심지어 러시아어, 독일어 그리고 이탈리아어로 된 시를 끊임없이 고음으로 "노래"하는 소프라노에 사람을 긴장하게 하는 퍼커션과 아슬아슬한 바이올린까지 굉장한 합주였다. 피아노만은 그래도 어느 정도 귀에 익숙한 멜로디 라인을 따라가는 듯 싶었지만 뒤늦게 합류한 클라리넷이 또... 클라리넷 주자 (Alain Damiens) 소개를 보니 "클라리넷의 혁신의 주인공" 이라고 하던데 역시. 그래도 클라리넷 음색 자체가 워낙 곱고 듣기 좋아서 듣다 보니 그렇게 (부정적 의미의) "현대"스럽지만은 않았다. 나중에는 소프라노 목소리와 클라리넷이 헷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멍하니 듣다가 생각해보니 "시간의 소음"이라는 표제가 더없이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비꼬는 것이 아니고 정말. 루체른 페스티벌의 주문으로 폴리니를 위해 만들어진 이 곡은 올해 80세인 작곡가가 지나온 길을 자전적으로 그려낸 것으로 Khlebnikov, Trakl, Blok, Zanzotto 의 시를 가사로 차용하고 있다. (이 중 누구의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다.) 프랑스어 본이 livret에 실려있었는데, 여기 전부 번역해서 싣기는 힘들겠지만, 읽어보니 시들이 워낙 좋다. 내가 그 가사를 알아들을 수만 있었다면 어쩌면 감동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나이가 되면 시간이 삐걱삐걱 지나가는 소음도 듣고 이야기도 듣고, 시로 음악으로 노래로 만들 수 있는걸까. 총 4편의 다른 시로 되어있지만 관통하는 이미지는 이렇다. 나는 그저 차분하게, 혹은 불안한 마음으로 주위를 바라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관찰자의 입장이고 눈 앞은 온통 새까만 밤, 벽도 울타리도 없는 풀밭과 숲과 산 뿐이다. 바람과 물 소리가 들리고 새가 울고 달이 빛나고 있다. 한없이 고요하면서도 또한 온갖 소리와 움직임으로 가득한 그런 새까만 공간이다. 그 곳을, 내 옆을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다.

소프라노 안나 프로하스카의 인사하는 포즈가 무척 독특하고 귀여워서 기억에 남는다.
폴리니 할아버지는 역시 이탈리아 남자 답게 ㅋㅋㅋ 만조니와 이야기 나누며 무심코 앞서 퇴장하다가도 순간 놀라며 소프라노 분을 먼저 가도록 챙기는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ㅋㅋ 악수하고 사인받고 진상부리고 싶다.

아. 중간에 갑자기 고백하자면 나는 오늘 굉장히 찝찝한 기분인데
왜냐하면 내가 ...
내가
아파시오나타를 듣던 중 순간 졸았기 때문이다. .....머리를 팍 꺾으며...
너무나도 치욕스러워서 여기 쓰는 것도 망설였지만
내 스스로가 답답해서 고해를 하지 않으면 오늘 편히 잠을 못 잘것 같다.
어제 거의 밤잠을 이루지 못해서 - 나는 7시간 깨지 않고 자지 않으면 일상 생활이 어려운 사람인데 - 하루종일 졸려서 제정신이 아닌 것은 물론, 얼굴도 푸석푸석 눈 밑 피부가 장승처럼 처지는 그런 ... 힘든 하루였는데 폴리니 공연이기 때문에 또 기를 쓰고 나는 플레이옐에 가야했던 것이다. 변명같지만 정말 내가 베토벤 소나타 들으면서 게다가 폴리니 연주로 들으면서 졸! 수가! 없는데... 공연 보러 다닌 이래로 최악의 사건이다.
고백했으니 이제 또 다시 써야지. 기대만큼 후련하지는 않지만 별 수 있나.

오늘은 발트슈타인과 아파시오나타, 그리고 가운데 낀 피아노 소나타 22번이 연주되었다.
Waldstein은 특히 내가 진심으로 듣기 시작한 첫번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로, 요즘에도 매일 아침에 한번씩은 듣는 것 같다. 낮에도 밤에도 좋지만, 특히 아침을 시작하며 들으면 그 상쾌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쨌든 프로그램은 이랬는데. 연주에 대해서는 참 그러고 보면 뭐라고 써야하나.
나는 음악 평론가가 아니고 그렇게 되고 싶은 사람도 아니다. 몇번 적은 적 있는 것 같은데 폴리니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누군지 모르고 듣다가도, 뭔가 다시 돌려 듣고 싶고 이름을 확인하고 싶은 연주들은 거의 항상 폴리니였기 때문이다. 진짜 특히 베토벤 소나타에서 보여주는 그 완벽한 그림. 의연한 아름다움과 당당함, 기상이 단연 독보적이다. 내가 바라는 그런 요소들을 오늘 폴리니는 유감없이 보여준 것 같다. 중간중간 조금 음이 틀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폴리니임을 생각할 때 무척 놀랍지만)
흐름이 정말 좋다. 도입부에선 뭔가 탁 트인 풍경을 열어주고 곧이어 그 안으로 말을 타고 달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리고 목적지에 다다르는 그 성취감과 흥분, 행복감으로 곡은 끝이 난다.

몰랐는데 22번도 참 좋더군. 2악장의 남다른 구성으로 11분 정도 안에 연주되는 짧은 곡인데, 듣는 것 만으로도 견과류처럼 오독오독 씹는 재미가 있다고 해야하나. 재미있는 곡이었다.

내년 2월 14일에 피아노 소나타 24-27번, 2013년 1월 18일에 28-29번, 그리고 3월 18일에 30-32번이 계획되어 있다. 물론 전부 갈 테지만, 28번이 특히 벌써부터 너무너무 기대된다.
최근에 폴리니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려서 걱정했는데 오늘 보니 아주 좋아보이셨다.
얼굴에서 빛이 나던걸.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제발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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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꼭 다시 써야지
내일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기차를 타러 가야하기 때문에 길게 쓸 수 없다.
사실 길게 쓰고 싶으나 그러면 안될 것 같다.

쇼팽
24곡의 프렐류드
녹턴 2곡
스케르초 no.1
그리고 에튀드 op.25 중 12곡

그리고 앵콜 4곡 ㅠ
말도안돼
정말 믿기지 않는 행운이었다.


앵콜로는
에튀드 revolutionary
ballade no.1
그리고 앗 뭐였지 음 생각 잘 안나는 아마도 etude 중 하나 조금 귀여운 곡
그리고 마지막에는 역시 etude op.10 no.4.


폴리니의 연주는 내가 정말로 "심취"하는 몇 안되는...... 무엇
모르던 감정들을 깨우고 지어본 적 없는 표정을 짓게 하는
그리고 소리가 오는 곳이 다르다. 소리가 나는 곳이 뭔가 다르다 참 신기하다.
그의 피아노를 듣고 있으면 눈을 감아도 다른 연주자의 모습을 생각할 수 없다
전에도 썼지만 정말 새카만 하늘 별을 보고 있는 기분

모든 건반의 울림과 목소리를 알고 있고
곡을 스쳐가는 시간과
소리가 만들어내는 "공간"을 다룰 줄 아는
그런 피아니스트
울림으로 파장으로 어떤 영역을 만드는 그런
분명한 형체가 있는 연주다.

확실히 폴리니 본인의 예전 녹음들이나 최근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작품들에 비해서 등골이 서늘한 박력은 좀 수그러든 듯한 연주다. 그러나 박력만으로 힘만으로 해낼 수 없는
모래알같고 파도같고 바위같은 연주다.

다 뭐라 말할 수 없이 좋지만
그래도 프렐류드 op.28 9번부터 15번까지 그리고 마지막 세곡 정말 최고였고
에튀드는 모두 대단했다
발라드 1번 좀 속도가 빠르긴 했는데 아 마지막엔 정말
무슨... 영화에서처럼 눈 앞의 장면이 조각 조각 깨져버리는 그런 착각이 들었다
피아노 소리만으로도 그런 헛것이 눈에 보이더라

근 6개월 만에 만나는 폴리니 할아버지 오늘 꽤 즐거워 보이셨다
사람들 반응도 뜨거웠고



다만 내 옆자리 왠 이상한 남자가 자꾸 다리를 떨어서 미칠 것 같았다
하도 다리를 떨어서 (그럼 내 의자가 같이 흔들린다) 한번 얼굴 쳐다보면서 죄송하지만 이거 그만하시라고 말했는데 전혀 미안한 표정도 아니고 들은 척도 안하더라 ㅋ...
자리를 굉장히 넓게 쓰던데 공연 중에 네번이나 내 발을 자기 발로 쳐서 진짜 짜증났다.
그리고 자꾸 자기 수염을 벅벅 긁어대서 미치는 줄 알았음. 발코니 아래로 번쩍 들어서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좋은 시간 보내고 와서 이런 말 쓰기 싫지만 정말 너무 싫어서 어디다 말할데도 없고 임금님귀는 당나귀귀
하긴 이런 싫은 일이라도, 이런 너무나 현실적인 terrestre한 사건이라도 없었다면 정말 그냥 비현실적인 시간이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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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의 하루는 24시간하고도 11분이 더 길었다.

바보같지만 절실하게, 시간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마음 졸이며 들었던 브람스 피아노 콘체르토 1번 3악장을 폴리니와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는
기꺼이 다시 한번 연주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하루는 꿈꾸듯이 11분을 더 갔다.

지금 어떤 말을 해도 내 기분을 다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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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런던에 다녀왔다. 집에 겨우 짐을 던져놓고 폴리니를 보러 다시 플레이옐로 향함.
피에르 불레즈와 폴리니, 그리고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이었다.
바르톡의 곡들로만 구성된 오늘 공연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Béla Bartók
Quatre Pièces op. 12
Concerto pour piano n° 2
Entracte
Le Mandarin merveilleux

불레즈의 지휘를 보면서 저 정도 연륜과 지성이 쌓이면 굳이 힘 빼지 않고도 얼마든지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정말 깊이 깨달았다. 바로 지난번에 보았던 혈기 넘치는 두다멜의 지휘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지휘봉을 잡은 불레즈의 움직임은 아주 작고 가볍고 제한적이었다. 저기에 지휘자가 서있다는 것을 자칫하면 잊을 정도로 정적이었다.
과연 지휘자의 존재감이란 몸을 얼마나 움직이고 얼마나 표현을 하는 가에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보통 오케스트라를 볼 때 지휘자의 손 동작과 등의 움직임을 주의깊게 보아 왔는데,
오늘 본 불레즈의 지휘는 눈으로 무언가를 쫓게 하기 보다는 차라리 귀를 좀 더 열도록 해주는 그런 것이었다.

바르톡의 곡들도 하나하나 다 매력적인데다 폴리니의 변함없는 정확한 연주로 오늘 공연은 더 빛이 났다. 피아노와 관악기들로만 주로 연주되는 피아노 콘체르토 2번 1악장이 특히 좋았다.
아주 상투적이고 손발이 오그라들게 하면서도 폴리니의 피아노를 들을 때 계속 생각나는 것은
별들이 만약 소리를 낸다면 이런 영롱한 소리일까 하는 ........것이다
여름에 부르고뉴 시골에서 보았던 별똥별이 빗방울처럼 떨어지던 밤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면 폴리니의 피아노 소리 같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새삼 든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지구와 목성이 내는 "소리"를 나사에서 무슨 복잡한 기술적 처리를 거쳐서 대중에 공개한 것을 들었는데 물론 그런 아름다운 소리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상상해본다.  새까맣게 어두운 밤하늘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어딘가 편안히 기대 앉아 좋아하는 피아노 곡들을 듣는 그런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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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iatoslav Richter의 연주.
Dmitri Chostakovitch의 Prélude & Fugue No.3 in G major, Op. 87




그리고 진짜 오늘 하루종일 들은 피아노곡은
폴리니가 연주한 Chopin Étude No.11 in A minor, op.25/11 CT 36. "Winter Wind"
유튜브에서 1960년 녹음을 찾았다. 18세의 폴리니.

내일이 개강 첫 수업인데도 불구, 무례를 무릅쓰고 강의실을 좀 일찍 빠져나오기로 고민 끝에 결정한 이유. 수업이 8시에 끝나는데 플레이옐에서 폴리니 공연이 있다.
만약 프로그램이 달랐다면 아마 좀 더 망설였겠지만...
눈물을 삼키며 중간 인터미션 때 들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ㅠ ㅠ
하필이면 첫 파트 곡들이 쇼팽이어서 도무지 어쩔 수 없었다.
prélude op.45, ballade n.2 op.38, scherzo no.1 op.20, 그리고 sonate no.2 op.35.
기대돼서 잠도 안 옴. 아 정말 정말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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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wandhausorchester Leipzig
Riccardo Chailly : Gewandhauskapellmeister
Maurizio Pollini : piano
 
PROGRAMME DU CONCERT
Luigi Nono
Composizione n° 1
Felix Mendelssohn
Symphonie n° 4 "Italienne"

Ludwig van Beethoven
Concerto pour piano n° 4


2009/2010 시즌 처음으로 플레이옐에서 콘서트를 보았다.
오랜만이라 무지 기대했다. 왠지 새 시즌의 시작이다보니 복장에도 더 신경쓰게 되더라.
6개월 만에 만나는 폴리니 할아버지... 보고싶었어요 !!!!
이번에 내가 앉은 좌석은 무대 뒷편 (Arrière-scène) 으로
연주 내내 지휘자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꼭 한번 앉아보고 싶었던 구역이었는데 운이 좋았다.

콘서트에 가면 주위에 신경에 거슬리는 (!) 관객들이 간혹 있는데
오늘은 그 영향이 특히 심해서 좀 피곤했다.
나도 참 너무 예민해서 탈이긴 한데. 누가 소리내면 난 그쪽 째려보느라고 집중을 못한다.
옆자리 아주머니들은 마치 동물원 물개쇼 구경 온 초등학생들 같았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까지도 계속 시덥잖은 이야기로 어쩜 그리 목청을 높이는지
온갖 이목을 다 끌더니
아직 공연이 시작되지 않아 의자들만 놓여있는 무대를 바라보며
아니 근데 이게 무슨일이야, 연주자들 왜 안오는거야? 이사람들 어딨는거야?
대체 무슨일이야??
하며 요란스레 패닉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선보여
자포자기의 실소마저 머금게 했다.
연주자들 모습을 보려고 공연 중간에 벌떡 일어나질 않나...
프랑스 사람들의 전반적 공연예절 수준이 높다는 것은 거짓말인 것 같다.
아니면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나혼자서 기대했다 실망한건지.
오늘도 어김없이 첫 곡의 시작과 함께 노키아 핸드폰 벨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난 그저 xylophone 소린 줄 알았다. 저 쇳소리가 핸드폰 소리라는 현실을 직시하기 싫었다.
에이. 정말.
지난번 Ivan Moravec 공연 때는 앞자리 앉은 여자분이 고개를 아주 살짝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귀걸이가 무슨 어린이들 장난감 딸랑이처럼 울려대서 정말 화가 났었는데
콘서트가 끝나갈 때 쯤에야 빼는 시늉만 하더니, 경악스럽게도, 금새 다시 끼웠고 여전한 짤랑짤랑.
내가 너무 예민한건가? 오히려 산만한건 내 쪽인건가? 아... 정말 집중하고 싶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아주 훌륭한 공연이었다.
지난번 하겐 쿼텟과의 브람스만한 심장이 쿵 떨어지는 감동까지는 아니었어도
멘델스존도 너무 좋았고.....
4악장은 특히 오케스트라의 박진감과 전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굉장한 연주였던 것 같다.
갈수록 오케스트라의 매력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된다.
제1바이올린 konzertmeister의 연주는 정말이지 너무 강렬해서 저러다 바이올리니스트의 몸이 사라지는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다.
피아노치는 폴리니의 모습은 정말 로마 médaille 동전? 에 새겨진 측면도? 프로파일 같다.
표정도 굉장히 엄숙해서 찌푸린 미간에 모인 기(!)가 눈에 보인다 싶을 정도.
그의 연주는 늘 제 몫을 다한다. 딱 피아노의 몫. 그 정확함이 정말 좋다.
그런 정량의 연주가 결국은 곡 전체를 사로잡는다.
물론 폴리니 정도의 연주를 "정량"이라고 한다면 다른 피아니스트들은 조금 억울하겠지.
베토벤 콘체르토는 그런데 뭔가 아 이거다 싶을 때 약간 아쉽게 끝났다.
아니 물론 곡이 끝나니 끝난 거긴 하지만.
앵콜도 없어서 뭔가... 아쉬움이 더했다.
어쩔 수 없지.
어쨌든 새학기를 이렇게 훌륭한 연주로 시작할 수 있어서 기쁠 따름이다.
2009년 9월 8일 폴리니의 파리 콘서트 좌중에는 내가 앉아있었고 오늘 그의 피아노는 약 1/2000 정도는 나를 위해 울린 것이 아닌가. 써놓고보니 내 몫이 너무 적네. 그게 아닌데. 나는 분명 백프로 들었는데. 피곤해서 눈이 감기는 중에 그래도 연주회 감상문은 꼭 그날 그날 남겨야겠다는 의지만으로 꾸역꾸역 쓰는 글이라 나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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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헤리치와 폴리니의 연주를 같은 주에 연달아 들을 수 있었던건 정말 큰 행운이다.
이 기회가 더 특별한 것은 이것이 몇달전에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고 그 정도를 짐작도 할 수 없었던 무엇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그들의 이름을 알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토요일인 오늘도 또 늦을세라 바삐 걸어 salle pleyel 에 갔다.
오늘은 지난 월요일보다는 눈에 띄게 한산했는데, 폴리니같은 거장이 연주하는 날인 것을 생각하면 참 이상한 일이었지만. 레퍼토리를 보아하니 사실 그럴 법도 한 것이.
슈톡하우젠에 쇤베르크. 조금 힘들다..
그래도 마지막 곡인 브람스의 피아노 현악 5중주를 포기할 수 없어서.

오늘 본 공연은 Salle Pleyel이 기획한 "Pollini Perspectives", 즉 폴리니를 회고하는 일련의 콘서트 중 하나였다. 2008년부터 2010년에 이르는 기간을 아우르는 대형 프로젝트인데, 여기서 폴리니는 67세라는 나이에도 지치지 않는 창작열과 발전의 가능성을 유감없이 보여줄 놀라운 레퍼토리들을 준비했다. 여기에 대해서 Le Figaro에 실린 기사를 인용하자면 "현존하는 2-3명의 거장 중 한명이 되고 나면, 보수적인 관객들을 위해 쇼팽 리사이틀을 반복하며 지금까지 쌓아온 영광과 성공을 유지하는데 만족하는 쉬운 길을 택할 법도 한데 말이다. 하지만 "쉬운 길"이란 폴리니가 알지 못하는 단어인 것 같다[각주:1]." 
그렇게 그는, 위대한 고전들을 소홀히 여기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의 연주에서 현대성을 끌어내고, 접목하고, 나아가 음악 세계를 넓히는 데 끊임없이 열중하고 있다.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양식들 사이에 다리를 놓고, 대중의 귀를 교육시켜 그가 익숙한 것에 안주하며 간과해왔던 모든 음악사의 단면들을 알게하는[각주:2]" 것이다.  (좀 찔림.)
이러한 말들에 걸맞게도, "Pollini Perspectives"의 프로그램은 베토벤의 소나타나 브람스, 바흐, 멘델스존 뿐만이 아니라 오늘 내가 들은 슈톡하우젠과 쇤베르크, Pierre Boulez, Alban Berg, Anton Webern, Luigi Nono, Luciano Berio 등 온갖 "어려운" 작곡가들로 가득하다.

뭐랄까 슈톡하우젠의 곡을 들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는데
우선 그건 첫째로 곡에 "여백"이 너무 많아서 집중하기가 솔직히 조금 힘들었기 때문인 것도 같고
두번째는 음...너무 익숙하지 않아서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서.
커다란 콘서트 홀에 그랜드 피아노 앞 연주자가 앉아있는데도 곡 중간에 몇초간이나 정적이 흐르는 그 낯섦이라니.



피아노 독주(Klavierstücke VII, VIII & IX) 후 클랑포럼 비엔의 연주도..
화음이란 화음은 최대한 모조리 다 피해가기로 결심하고 만든 곡 같았다.
그러니까 익숙함이라는게 얼마나 무서운가 새삼 느낀다.
내게 음악이란 약간 변칙이 있긴 하지만 대개 노트들의 완벽한 조화와 끊임없는 선율만이 존재하던 어쨌거나 "아름다운" 그 무엇이었는데.
미술에서 Jean Dubuffet나 Marcel Duchamp이 안겨줬던 충격도 이런 것이었을까?
게다가 지휘자는 지금 저 곡을 다 이해하고 연주자들을 이끌고 있다는 말인가.
저 공백을 어떻게 계산을 하고 연주를 하고 지휘를 하는 건지.
오선지의 비어있는 부분도 저 노장에게는 손에 만져지고 눈에 보이는 무엇인건지.
그래도 공부라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나를 진땀흘리게 하고 온갖 형이상학적 고뇌에 몰아넣었던 슈톡하우젠에 비해 쇤베르크는 오히려 듣기가 수월했다. 누가 프로그램을 짠건지 정말 영리하기 이를 데 없다.

그리고 고대하던 브람스.
오늘의 마지막 곡은 내가 아는 최고의 브람스였다.
사실 브람스 많이 들어 버릇하지 않아서 내가 생각해도 별 설득력이 없지만
아마 홀 안에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역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Virtuoso Pollini. 정말 빛나는 피아노.
그리고 Quatour Hagen의 다른 4명의 연주자들이 워낙 잘했다.
다이애나비를 연상시키는 (멀리서 봤을때) 은금발의 비올리니스트의 열정적인 연주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1악장 allegro non troppo 에서는 저 사람들이 아까 저 띄엄띄엄 불협화음만 연주하던 사람들이 맞는지 좀 믿겨지지가 않아서 확인하려고 엄청 집중했고.
부드러운 2악장에서는 긴장이 살살 풀리더니 3악장 scherzo 에서는 사람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끄덕 손가락을 까닥까닥 수트 안에 점잖게 꼿꼿이 세운 등만 빼고는 전부 춤을 췄다.
마지막 4악장에서는 심장이 쿵쾅쿵쾅. 장중한 첼로소리와 반복적으로 죄어오는 피아노에 바닥으로 훅 떨어지는 듯 하다가도 다시 빠르게 앞으로 이끄는 비올라를 타고 밤하늘 위로 불꽃놀이 파편이 튀듯 쏘아올려진다. 황홀한 긴장감.

연주가 끝나자마자 정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우레와 같은.
나도 정말 열심히 박수를 쳤다.
이렇게 좋은 연주에 어떻게 답례를 해야할지 몰라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박수를 쳤다.
계속된 연주에 힘이 부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만 앵콜곡은 따로 없어서 좀 아쉽긴 했다.
끊이지 않는 박수에 폴리니를 비롯한 연주자들은 인사하러 무대에 4번이나 다시 나왔다.

이건 작곡가가 원래 대단한 건지 연주를 특히 잘 한건지 나로선 분간할 수가 없다.
그저 양 쪽 다 대단하다고 밖엔.
반면 슈톡하우젠의 곡들과 같은 경우에는 조금 다른 이유로 연주자의 실력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워낙 음표가 별로 없어서....역시 어려워.



이런 행복한 토요일 밤을 내게 허락해준 모든 것에 새삼스레 감사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인생에서 좋았던 추억을 간직하면서 그 덕분으로 힘든 순간도 이겨낼 수 있는 거라면
오늘 내가 느꼈던 낯섦과 경외와 행복감이 언젠가 날 기다리고 있을 괴로운 어떤 하루를 또 살아낼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 아닌가.
정말 힘겨운 날에는 미처 세상에까지 감사할 여유가 없을 지 모르니까 오늘 미리 해두어야겠다.
행복하다 오늘은 정말 :)


Salle Pleyel
Samedi 7 Mars 2009, 20H

Karlheinz Stockhausen
Klavierstücke VII, VIII, et IX
Kreuwspiel
Zeitmasze
Kontra-Punkte

Arnold Schönberg
Trois Pièces pour piano op.11
Mässig
Mässig
Bewegt

Johannes Brahms
Quintette pour piano et cordes en fa mineur op. 34
Allegro non troppo
Andante, un poco adagio
Scherzo, allegro
Finale, Poso sostenuto - Allegro non troppo

Klangforum Wien
Quatuor Hagen
Peter Eötvös, direction
Maurizio Pollini, piano



  1. Le Figaro, 2009년 1월 13일자. http://www.lefigaro.fr/musique/2009/01/23/03006-20090123ARTFIG00380-la-lecon-de-piano-de-maurizio-pollini-.php [본문으로]
  2. ibid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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