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졸려서 간단히 쓰려고 한다.
거두절미하고
굉장한 공연이었다.
신들린 합주.

Colin Matthews의 Grand Barcarole pour l'orchestre 도 아주 좋았는데 바르카롤레라기보다는 심해의 잠수함을 위한 혹은 거대한 범선의 장엄한 출항을 위한 곡 같았다. 그래서 grand 인가.

8번 1악장 첫부분 시작하자마자 완전히 경도되었다. 게반트하우스랑 샤이 너무 멋있다........
합창석임에도 불구하고 소리의 부피에, 음장에 공기가 밀려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8번은 정확히 7번과 9번 사이에 위치하는 느낌이어서 재미있었다.
강과 약의 대비가 화려하고 기세 좋은 무척 듣기 좋은 곡이다.
팀파니가 진짜... 와 정말 대단했다.
숨을 쉬질 못하겠더라.

3번에서 역시 8번의 기세를 그대로 몰아 엄청나게 강렬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22일 공연에서 샤이의 지휘를 도자기에 비유했었는데. 아니다. 오색찬란한 보석이었다. 샤이를 정면에서 보면서 그의 손과 눈빛을 따라가며 연주를 들으니 뭐 한순간도 끈을 놓을 틈이 없었다. 음악을 저렇게 사랑할까? 정말 저렇게 좋아하는구나. 저렇게 행복하구나. 주제를 모르고 조금 질투까지 났다. 저번에 무엇도 지휘할 수 없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고 썼었는데, 오늘도 그 생각을 했다.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처럼 그만큼 내 일에 집중하고 싶고 그 몰입의 순간에만은 완전히 행복하고 싶다. 마치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 처럼. 샤이 뿐만 아니라 단원들 전부가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인텐스한 연주가 나올 수가 없을 것 같다.
1악장의 완벽한 하모니는 말할 것도 없고 2악장에서는 특히 오보에와 콘트라베이스가 너무나도 잘했다. 그동안 집에 있는 토스카니니의 오래된 녹음으로만 들어서 그 고색창연한 소리가 귀에 익었었는데 그와는 다른 "오늘"의 연주도 듣다보니 금방 좋아졌다. 번쩍 번쩍 윤이 나고 날이 선 관악과 나무 맛이 살아있는 입체적인 현의 소리. 3악장 4악장에서도 정신없이 빠져들어 머리가 아플 정도.
좋구나. 자리 때문에 직접 보지 못해서 너무 아쉽지만 팀파니 정말 잘한 것 같고 오보에 플룻 바이올린 다 좋았다. 2악장 후반부 쯤에서 현악만 파트 별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눈물이 다 날 뻔 했다.

내일모레 아일랜드 가기 전날 9번을 들으러 간다. 1번, 7번 그리고 4, 6번은 예매하지 않았다. 작년에 갔던 틸레만과 빈필의 베토벤 싸이클 때와는 거의 반대의 구성이어서 비교는 못하겠지만 (게다가 둘 다 너무 훌륭한 오케스트라들이라 내 수준에서 하는 비교는 무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샤이와 게반트하우스의 정말 신들린 듯한 연주와 지휘자와 연주자들 간의 호흡 - 거의 서커스!? 와도 같은 느낌을 받았을 정도 - 과 결속력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졸리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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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르도 샤이와 게반트하우스의 베토벤 사이클 첫번째 날이다.
오늘의 프로그램은 2번과 5번, 그리고 가운데 Carlo Boccadoro의 Rittrato di musico (프랑스초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베토벤의 2번 교향곡은 라디오에서 3악장을 다른 일 하면서 뒷배경으로 들은 이후로 처음으로 접한 것이었는데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곡 전체를 관통하는 음의 배열과 공식이 어떻게 변형되고 또 다시 제자리를 찾는 가를 관찰하는 일은 늘 즐겁다. 2, 3악장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보카도로의 리트라토 디 무지코 역시 인상깊게 들었다. 모래시계가 아래쪽으로 중심을 이동해가는 사라락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빛나는 해파리가 바닷속을 가르는 모양이 생각나기도 하고, 어쨌든 표제는 "음악가"의 초상이지만, 바삭하면서도 유연한 오묘한 곡이었다. 요즘 듣는 현대 음악들은 어쩐지 다 좋은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음...혹시 귀가 트이는 걸까? ㅋㅋ 써놓고도 웃기지만 어쨌든간 다행인 일이다.

5번은 지금까지 들은 것 중 가장 좋았다. 나는 역시 샤이의 "멋"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 그의 지휘는 정말 멋이 있고 구조가 탄탄한데, 장인이 빚어내는 훌륭한 도자기같다. 이 도자기는 과한 장식은 없지만 볼 수록 안정감과 무게가 있어 아늑한 맛이 있고 빛깔은 그윽하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일순간 한낮의 빛이 가 닿으면 그 윤곽이 찬란히 빛난다. 삶의 짙은 내음이 깊숙이 파고 드는 5번 교향곡을 여기에 덧입히니 듣는 이는 감격할 뿐이다. (사실은 베토벤에 샤이를 덧입혔다 해야 맞겠지만.)
한달에도 몇번이고 음악을 들으러 가지만,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게 되는 경우는 사실 많지 않다.

다녀오자마자 글을 쓰기 시작은 했지만 벌써 1주일이 지난 오늘에야 마무리 할 수 있었는데. 아직도 다시 생각하면 얼떨떨하다. 오늘 저녁에는 8번과 3번 연주가 있다. 무척 기대된다. 이번엔 합창석 자리라 지휘자를 정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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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wandhausorchester Leipzig
Riccardo Chailly : Gewandhauskapellmeister
Maurizio Pollini : piano
 
PROGRAMME DU CONCERT
Luigi Nono
Composizione n° 1
Felix Mendelssohn
Symphonie n° 4 "Italienne"

Ludwig van Beethoven
Concerto pour piano n° 4


2009/2010 시즌 처음으로 플레이옐에서 콘서트를 보았다.
오랜만이라 무지 기대했다. 왠지 새 시즌의 시작이다보니 복장에도 더 신경쓰게 되더라.
6개월 만에 만나는 폴리니 할아버지... 보고싶었어요 !!!!
이번에 내가 앉은 좌석은 무대 뒷편 (Arrière-scène) 으로
연주 내내 지휘자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꼭 한번 앉아보고 싶었던 구역이었는데 운이 좋았다.

콘서트에 가면 주위에 신경에 거슬리는 (!) 관객들이 간혹 있는데
오늘은 그 영향이 특히 심해서 좀 피곤했다.
나도 참 너무 예민해서 탈이긴 한데. 누가 소리내면 난 그쪽 째려보느라고 집중을 못한다.
옆자리 아주머니들은 마치 동물원 물개쇼 구경 온 초등학생들 같았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까지도 계속 시덥잖은 이야기로 어쩜 그리 목청을 높이는지
온갖 이목을 다 끌더니
아직 공연이 시작되지 않아 의자들만 놓여있는 무대를 바라보며
아니 근데 이게 무슨일이야, 연주자들 왜 안오는거야? 이사람들 어딨는거야?
대체 무슨일이야??
하며 요란스레 패닉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선보여
자포자기의 실소마저 머금게 했다.
연주자들 모습을 보려고 공연 중간에 벌떡 일어나질 않나...
프랑스 사람들의 전반적 공연예절 수준이 높다는 것은 거짓말인 것 같다.
아니면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나혼자서 기대했다 실망한건지.
오늘도 어김없이 첫 곡의 시작과 함께 노키아 핸드폰 벨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난 그저 xylophone 소린 줄 알았다. 저 쇳소리가 핸드폰 소리라는 현실을 직시하기 싫었다.
에이. 정말.
지난번 Ivan Moravec 공연 때는 앞자리 앉은 여자분이 고개를 아주 살짝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귀걸이가 무슨 어린이들 장난감 딸랑이처럼 울려대서 정말 화가 났었는데
콘서트가 끝나갈 때 쯤에야 빼는 시늉만 하더니, 경악스럽게도, 금새 다시 끼웠고 여전한 짤랑짤랑.
내가 너무 예민한건가? 오히려 산만한건 내 쪽인건가? 아... 정말 집중하고 싶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아주 훌륭한 공연이었다.
지난번 하겐 쿼텟과의 브람스만한 심장이 쿵 떨어지는 감동까지는 아니었어도
멘델스존도 너무 좋았고.....
4악장은 특히 오케스트라의 박진감과 전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굉장한 연주였던 것 같다.
갈수록 오케스트라의 매력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된다.
제1바이올린 konzertmeister의 연주는 정말이지 너무 강렬해서 저러다 바이올리니스트의 몸이 사라지는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다.
피아노치는 폴리니의 모습은 정말 로마 médaille 동전? 에 새겨진 측면도? 프로파일 같다.
표정도 굉장히 엄숙해서 찌푸린 미간에 모인 기(!)가 눈에 보인다 싶을 정도.
그의 연주는 늘 제 몫을 다한다. 딱 피아노의 몫. 그 정확함이 정말 좋다.
그런 정량의 연주가 결국은 곡 전체를 사로잡는다.
물론 폴리니 정도의 연주를 "정량"이라고 한다면 다른 피아니스트들은 조금 억울하겠지.
베토벤 콘체르토는 그런데 뭔가 아 이거다 싶을 때 약간 아쉽게 끝났다.
아니 물론 곡이 끝나니 끝난 거긴 하지만.
앵콜도 없어서 뭔가... 아쉬움이 더했다.
어쩔 수 없지.
어쨌든 새학기를 이렇게 훌륭한 연주로 시작할 수 있어서 기쁠 따름이다.
2009년 9월 8일 폴리니의 파리 콘서트 좌중에는 내가 앉아있었고 오늘 그의 피아노는 약 1/2000 정도는 나를 위해 울린 것이 아닌가. 써놓고보니 내 몫이 너무 적네. 그게 아닌데. 나는 분명 백프로 들었는데. 피곤해서 눈이 감기는 중에 그래도 연주회 감상문은 꼭 그날 그날 남겨야겠다는 의지만으로 꾸역꾸역 쓰는 글이라 나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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