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스존 심포니 4번 Italienne,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2번, 바그너의 Siegfried-Idylle, 그리고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마무리되는 프로그램이었다.
멘델스존과 바그너는 아직 지휘자가 제대로 뽑아낼 재간이 없는 것 같았다. 솔직히 정말 그냥 그랬다. 파리 오케스트라가 이렇게 심드렁하게 들리기는 처음이다. 물론 자리가 무척 안좋았지만 그래도 제2바이올린과 콘트라베이스만은 지나치게 자세히 들을 수 있었는데, 지독한 밋밋함이 연주자들의 탓 만은 아닌 것 같았다.
리스트 협주곡들은 정말 좋았는데 아마도 반 이상은 바렌보임의 피아노 덕분이었을 것이다.
귀가 굉장히 즐거운 연주였다. 특히 협주곡 2번에서 물 위를 찰박찰박 두드리는 듯한 윤기 넘치는 피아노 소리 듣기 좋았다. 내가 그를 본 짧은 기간동안에도 바렌보임의 흰 머리가 늘어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지만 어쩐지 그의 패기와 집중력은 세월에 무뎌지거나 깎여나가지 않는 모양이다. 마지막을 장식한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의 한 음 한 음 곡의 서사에 벗어남 없이 탄탄하게 응집된 매서운 피아노는 정말 등골이 서늘할 정도였다. 바렌보임의 연주회마다 사람들이 백유로 가까이 되는 티켓을 선뜻 사고 홀을 가득 메우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절대로 관객들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볼 때마다, 그를 처음 보았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 2번 콘서트를 보고 와서도 그렇게 적었지만, 대단한 인물은 인물이라는 생각을 거듭 하게 된다.




AND



 어제 2월 5일에 이어 다니엘 바렌보임과 예핌 브론프만,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은 오늘 바르톡 피아노 협주곡 2번 그리고 차이코프스키 6번을 연주했다. 어제는 바르톡 1번과 차이코프스키 5번이었다는데 나는 이틀 다 가지는 못했고 오늘만 다녀왔다. 그것도 겨우. 분명히 예약을 했었는데 시즌 첫 공연 때 한꺼번에 표를 받아가지고 올 때 이 날 것만 누락되어 있었던 것이다. 날짜 순서대로 표들을 정리해 두었는데 다음 공연 날짜는 2월 12일이어서 그냥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문득 예약 내역을 체크해보지 않았더라면 표를 사놓고도 공연을 놓칠 뻔 했다.
못갔었더라면 정말 울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대단한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도, LSO도 게반트하우스도 라디오프랑스도 다들 너무 훌륭한 오케스트라들이지만 드레스덴 오늘 연주는 정말 최고였다. 컨디션이 아주 좋았던 모양이다. 프로그램도 좋았고 지휘도 뭐라 말할 수 없이 훌륭했고 오케스트라의 기량과 매너도 대단했다. 아직도 떨린다.

예핌 브론프만의 피아노 연주도 역시
대단하다는 말 밖엔... 사실 바르톡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그냥 모르고 들어도 무얼 말하려는지 알겠는 , 명징하고 힘찬 살아있는 연주였다.
옆의 아주머니 말로는 어제 협주곡 1번은 정말 그로테스크하고 히치콕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무서운 분위기였다는데 ㅋㅋㅋ 오늘은 아니어서 다행이라시더라.
그리고 음... 바르톡 음악은 차가운 혹은 서늘한 (열대)우림 같다.
좋던데
무엇보다 최근 집중적으로 들었던 베토벤, 슈베르트 곡들에서 그다지 쓰이지 않는 다양한 악기들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하지만 오늘 최고였던 건 역시 차이코프스키 6번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연주였다. 오케스트라의 힘이 엄청났다. 그냥 소리가 크다 정도가 아니라 부피와 질량이 큰 연주였다. 소리가 큰 게 아니라 아우라가 큰 연주였다.
관악이고 현악이고 타악이고 어느 한 파트 뒤쳐지거나 모자라는 일 없이 그냥 거대한 하나의 굉장한 형체였다. 이건 그냥 여담? 이지만 오늘 내 자리가 2층 발코니 앞에서부터 H열이었는데도 3악장에서는 바닥에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무슨 귀가 아프고 시끄럽고 그런게 아니고 그냥 황송한 것이다. 나는 내내 웃는 얼굴로 공연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배실 배실 웃음이 나오더라. 비창인데 이러면 안되는데... 그런데 악기 하나 하나가 튀어나올 때마다 분위기가 변할 때마다 악장이 넘어갈 때마다 탄복을 하는 것이다. 곡도 곡이지만 연주 때문에 공연 내내 순수한 즐거움 그 자체를 느꼈다. 너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막 좋아지고 맛있다는 말을 나도 모르게 연발하게 되듯이 오늘 차이코프스키는 비창은 맞는데 그래도 ......행복한 비창이었다.

나는 바렌보임의 힘차고 강렬한 지휘를 꽤 좋아하는 편인데 오늘은 특히 더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귀기울이지 않을 수 없고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지휘였다. 음...너무 과찬일색인가 그런데 정말 말도 안되게 훌륭한 공연이었기 때문에. 여기다 한 마디를 더 쓰면 칭찬 한마디가 느는 것이고 한 문장을 더 쓰면 칭찬이 한 문장이 늘어날 것이다. 앗 좀 그러니까 그냥 한마디 하자면 1악장에서 좀 두드러진 현상이었는데 너무 네모네모로 가는 느낌을 받았다. 프레이징이 딱딱하다고 해야하나. 네모 네모 네모... 요거 끝나고 요거 요거 다음에 요거 이런 느낌 그런데 정말 잠깐이었고 그때 좀 이상했던 것 빼곤 나머지는 별 다섯개.

그리고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 이어 오늘도 팀파니의 왕 한 분을 뵈었다.
어휴... 진짜 팀파니 대단했다. 아니나 다를까 바렌보임도 공연 끝나고 나서 팀파니 주자를 제일 먼저 일으켜 세워 박수를 받게 하였다. 물론 팀파니스트니까 원래도 일어나 있었기 때문에 별로 티는 안났지만 그래도 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다시 듣고 싶다.

앵콜도 후하게 두 곡이나 해주었는데 어제도 그랬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체력들이다.
첫번째는 시벨리우스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 중... 멜리장드 어쩌구 였는데 잘 못들었고
두번째는... 어떤 서곡인데 꽤 유명한 어떤 서곡인데 나는 잘 모르겠다. 베를리오즈의 벤베누토 첼리니 서곡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요런 비슷한 느낌이었다. 바그너인가 생각도 했는데 내가 가지고있는 바그너 서곡들 중에서는 없었다.
(브론프만과 바렌보임이 함께 연주한 피아노 앵콜곡은 방금 문득 생각났는데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 op46 1번 다장조 였지 않나 싶다. 아니더라도 이런 비슷한 짜임의 연탄곡)

아. 엄마아빠에게 한국에서 바렌보임이 하는 베토벤 교향곡 전곡 싸이클 티켓을 사드리고 싶다
언제나 가능한 일일런지.

차이코프스키 6번 교향곡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오늘도 역시 3악장 끝나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하지만 오늘은 아마도 사람들이 몰라서가 아니라 연주가 너무 대단해서 도저히 뭔가 소리를 지르거나 박수를 치거나 발을 구르거나 뭐든 하지 않으면 다들 견딜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옆에 앉은 그럼피 올드맨 할아버지가 쳇 하고 조소 섞인 불평을 했기 때문에 나는 겁이 나서 박수를 이내 거뒀지만 다들 한참 박수를 치고 환호를 보냈다.

이 할아버지로 말할 것 같으면 원래 내 바로 앞자리에 앉아계셨는데, 2층 좌석은 열 사이 경사가 가팔라 앞좌석 사람이 몸을 앞으로 숙이면 뒷 사람은 무대를 볼 수 없게 되어있어 할아버지가 고개를 앞으로 쑥 내밀고 몸을 굽히고 계시길래 죄송하지만 제가 무대를 거의 못 보니 좀 바로 앉아주실 수 없겠느냐고 부탁을 했더니 .......대꾸도 안하고 또 쳇! 하고 비웃으시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나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한참 나중에야 "노력은 해보겠다" 하시더라.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엄마야...
내 옆에 계셨던 아주머니께서 그 할아버지 옆자리들이 비었으니 우리가 앞으로 가자! 하고 제안하셔서 나는 졸지에 그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옆자리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꽤 많이 나눴는데, 외국 오케스트라들을 훨씬 좋아하신다는 말씀이 웃겨서 기억에 남는다. 외국 오케스트라 특히 독일 오케스트라들은 discipline 이 있다는 것이다. 연주 실력도 훌륭할 뿐 아니라 매너도 좋고 지휘자에 대한 존경심(인지 복종인지)과 착실함이 좋다고 하셨다. 어제 공연 끝나고 드레스덴 연주자들을 연주회장 앞 길에서 보았는데 다들 줄을 딱 딱 맞춰 서있더라며 그게 어찌나 멋있었는지에 대해 한참 이야기 하셨다... ㅋㅋ
그래서 그럼 프랑스 오케스트라들은 싫어하세요? 하니까 걔네들은 너무 arrogant 하다며...
저번에 salle gaveau에서 어떤 (아마도 lamoureux나 pasdeloup?) 프랑스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았는데 지휘자랑 의견차로 다툼이 있었는지 어쨌는지 공연이 끝나고 지휘자가 단원들을 일으켜 인사를 시키려고 하자 대다수가 들은척도 안하고 꿈쩍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도무지 몰상식하며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목청을 높이셨다 ㅋㅋㅋ 이건 아마도 국민성의 문제라며 ㅋㅋㅋ 본인도 프랑스 인이면서... 역시 프랑스인들은 정말 재미있다.


ERRATUM!
실컷 써놓고 한참 뒤
벽에 붙여놓은 티켓들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드레스덴이 아니라 베를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그렇지. 바렌보임이라면 그게 더 말이 되지.
ㅠ 바보같다.
드레스덴 아니고 슈타츠카펠레 베를린이예요.



AND

정말 울고싶다.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장장 한시간 반에 걸쳐서 정말 열심히 썼는데... 한 순간에 다 날라가버렸다.
임시저장이 왜 안된걸까. 대체 왜 ㅠㅠ......

간략하게 써야겠다. 갑자기 피로가 막 몰려온다 흑흑

이틀 연속 바렌보임의 쇼팽 리사이틀을 다녀왔다.
좋았던 점은 훌륭한 연주를 이틀 연속 감상하는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렸다는 것이고,
나빴던 점은 이것이 정말로 분에 아주 넘치는 호사였다는 것이다.
무언가 남겨야만 한다는 괜한 부담감에 집에 오는 길에도 안절부절 못하고.

바렌보임은 어제 15일 콘서트에서는 조금 힘들어보였는데, 그 때문인지 손가락의 실수도 꽤 잦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연의 질이 좋지 않았냐하면, 절대 그렇지 않았다 하겠다.
그 실수들이 안타까웠던 것은 다만 그것이 연습 부족이나 기량의 문제가 아니라 공연 후반부로 갈 수록 떨어진 체력과 집중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런 군데군데 귀에 선 노트들이 그의 곡 전체를 조율하고 아우르는 독창적인 감각을 더욱 눈에 띄게 살려주었고, 곡에 대한 보다 즉각적인 파악과 이해를...어쩌면. 도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예습을 안했기 때문에 처음 듣는 곡들은 즉각적으로 밖에 파악을 못했을 수도 있다.)

첫째 날 녹턴과 소나타 2번에서 바렌보임은 특히 곡의 중후하면서도 단조롭거나 텁텁하지 않은 느낌을 십분 살려내, 어딘지 굉장히 의미심장한 느낌의 쇼팽을 들려주었다. 크게 재주 부리지 않으면서도 마음과 열정을 다 실은 솔직한 피아노였다. 특히 기억에 남는 소나타의 3장 마지막 부분에서는 기술적인 면에서도, 지적인 면에서도 하나 빠지지 않는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더없이 훌륭한 피날레를 만들어냈다.

내게도 바렌보임의 손가락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손이 만드는 소리 처럼 "좋은"....것을 나도 내 안에서 끌어내고 싶다. 욕심쟁이다. 언젠가는 그렇게 하고싶다.

이상하지만, 가장 실수가 눈에 (귀에) 띄었던 곡도, 가장 아름다웠던 곡도 단연 폴로네즈였다.
아슬아슬 힘겹게 치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곡을 꿰뚫는 빛나는 그 감각만은 절대 놓치지 않더라.
어쨌거나 바렌보임은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그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우아하고 힘찬 "영웅적"인 기상을 가득 담은 이 곡은 무척 잘 어울렸다.

16일 프로그램에 있었던 발라드 1번 역시 훌륭했다. 가장 아끼는 쇼팽의 곡 중 하나인데.
자연스럽고 자신있는 연주가 좋았다.
간혹 화려한 기교와 과도한 감정표현으로 부담스러운 연주들도 있는데, 피아니스트 바렌보임의 연주는 늘, 모든 곡들을 다가가기 쉽고 사랑스럽게 만들어 준다.

바렌보임을 공연에서 보면서 인상깊었던 점 하나는, 관객석 구석구석에 하나 하나 찬찬히 눈을 맞추며 무척 성의있게, 시간을 들여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신뢰가 가는 무대매너다.
앵콜도 절대 소홀히 하는 법이 없다. 첫날엔 3곡, 둘쨋날엔 2곡을 들려주었는데 절대로 관객을 과하게 애태우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기꺼이 더 들려준다. 그의 친근한 연주 스타일과도 어쩌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둘째날인 오늘은 연주자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문 발치에 앉아있었는데, 덕분에 바렌보임과 몇번이나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이 마주치니 겁을 먹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
바렌보임은 무척 강인하고 엄격한 눈빛을 가졌다.
열심히 박수치면서 함박 웃음을 지으면서 그를 눈으로 쫓고있자니 막상 닿은 눈빛은 꼭 고등학교 때 무서운 담임선생님같아서...... 몰라 왠지 무서웠다. 이상하다. 이렇게 써놓으니 바보같다 ㅋㅋ
그래도 계속 좋아할꺼야



lundi 15/02 2010 20:00

  • Daniel Barenboim : piano

Programme

  • Frédéric Chopin
  • Variations brillantes sur "Je vends des Scapulaires" de Herold et Halévy op.12
  • Nocturne en ré bémol majeur op.27 n°2
  • Sonate n°2 en si bémol mineur op.35 Marche funèbre
  • Entracte
  • Frédéric Chopin
  • Barcarolle en fa dièse majeur op.60
  • Trois valses
  • Berceuse en ré bémol majeur op.57
  • Polonaise en la bémol majeur op.53


mardi 16/02 2010 20:00

  • Daniel Barenboim : piano

Programme

  • Frédéric Chopin
  • Fantaisie op.49
  • Nocturne en mi majeur op.62
  • Sonate en si mineur op.58
  • Entracte
  • Frédéric Chopin
  • Première Ballade en sol mineur op.23
  • Trois Etudes
  • Trois Mazurkas
  • Scherzo en ut dièse mineur op.39

AND


Barenboim c'est vraiment un personnage.
공연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손톱을 다 뜯었다.
네모낳던 내 왼손 엄지 손톱은 거의 삼각형이 되었는데 공연 도중에 왼쪽과 윗면이 "다듬어"지고
집에 오는 길에 공연을 머리 속으로 곱씹는 동안 오른쪽을 또 뜯었다.
방심하다가 크게 한방 먹은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게 만족스러운 공연은 지난번 폴리니와 하겐 쿼텟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파리오케스트라(Orchestre de Paris, 알아보니 시립은 아니라고 함!)와 음악감독 크리스토프 에셴바크(Christoph Eschenbach)의 지휘, 그리고 피아노는 다니엘 바렌보임이 맡았다.
에셴바크 씨는 아주 예쁜 두상을 가졌고, 지휘할 때 양손으로 자꾸 항아리 모양을 그리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쓰니 정말 하나도 진지해보이지 않는구나.

오늘의 프로그램은 베를리오즈 두 곡, 그리고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베를리오즈는 어제도 여기에 썼듯이 한번도 찾아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것이 오히려 오늘 공연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로 작용한 것 같아 매우 기쁘다.
지난번 페라이어 때 느꼈던 브람스의 생소함과는 반대다.
처음 무대를 연 것은 Benvenuto Cellini, ouverture, op.23.
개성있고 힘차고 강렬하면서도 묘하게 듣기 좋은 곡이었다.
공연을 지켜보면서 계속 느꼈지만 파리오케스트라에선 관악기 연주자들이 특히 훌륭한 것 같았다.
아, 그리고 오늘 좌석이 별로 좋지가 않아서 (머리 위가 1층 발코니라서 소리가 전달이 잘 안되는 듯) 현악기 특히 바이올린 소리가 다 먹먹하게 들렸는데 정말 너무 아쉽다.

나를 방심케 한 주역, 쇼팽 피아노 콘체르토 2번이 이어졌다.
바렌보임의 우아하고 열정적인 연주에도 불구하고 곡 자체의 원래 특성인지 조금 지루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왜일까... 사실 아직도 개운치가 않다.
곡이 끝난 후 entreacte때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다들 너무 대단한 연주였다며 입이 마르도록 찬사의 말들을 늘어놓는데 나만 친구한테 전화해서 별로였다고 털어놓았다. 나중에 다시 들어봐야지..

2부의 시작은 또 다시 베를리오즈의 곡으로, Carnaval romain (로마의 사육제!) 서곡 op.9 였는데 다행히 석연찮던 기분이 다시 좋아지고 정신이 맑아졌다.
정말 독특하고 즐거운 곡이다.
탬버린 ? 비슷한 악기를 흔드는 연주자들이 너무 귀여워서 혼자 웃었다.

마지막 곡으로 쇼팽의 피아노 콘체르토 1번이 마련되어 있어 조금 안도했다.
알쏭달쏭했던 2번과 달리 1번은 평소에도 많이 들었었고 또 좋아하는 몇 안되는 협주곡 중 하나이기 때문에. 아니나 다를까.
정말 좋은 연주였다. 달리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바이올린 소리가 너무 죽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3악장을 들으면서 손톱을 뜯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 공연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바렌보임의 앵콜곡들이었다.
내가 들어본 어떤 앵콜곡, 아니 어쩌면 어떤 피아노 독주 보다도 가슴 벅차고 멋진 연주들이었고
내가 기억하는 어떤 콘서트에서의 순간보다 오래 기억에 남을 몇 분이었던 것 같다.
이때 또 손톱을 뜯었다. (물론 이로 뜯지는 않았음.)

그는 오늘 앵콜로 무려 3곡을 연주했다!
그것도 얼마나 재치있게 "연출"을 하던지.
생각보다 쉽게 앵콜 요청을 받아준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어쨌건 마냥 좋기만 했던 첫번째 앵콜곡이 끝나고나자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연주회장을 빠져나기 시작했고 그런 객석을 보더니
갑자기 피아노로 거의 뛰어오다시피(!) 잽싸게 와 앉아 숨돌릴 틈도 없이 다음 연주를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어리둥절한 가운데 두번째 앵콜곡을 (고맙게) 들었다.
다들 "지금 내가 본게 뭔가" "저 사람이 지금 정말 뛰어온게 맞나" 하는 의아함과 웃음이 섞인 술렁거림이 가볍게 일었지만 어쨌든 두번째 곡이 끝났으니 이제 정말 갈 줄 알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까보다 더 많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자
본인도 정말 무대 밖으로 퇴장하는 듯 하더니 갑자기 홱 돌아서 피아노 앞에 또 털썩 앉았다.
사람들도 이번엔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나도 막 웃었다.
이런 유머러스한 모습을 보면서 난 정말 이사람이 "인물이다" 하는 생각을 굳혔다.
에드워드 사이드와 절친한 친구이고 많은 사회 활동을 함께 해왔다는 사실에서 이미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짐작했었지만.
뭐든 저렇게 즐겁게 웃으면서 하는 사람이 좋다. 더욱이 아무리 남에게까지 (긍정적인)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일단 어떤 부분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신뢰를 하고 만다.
결국 마지막 앵콜곡이 끝나고 다시 한번 또 피아노에 앉는 척을 하더니
이번엔 제1바이올린의 솔로주자의 손을 잡고 끌고 나가다시피 해서 다른 단원들도 그 뒤를 따라 퇴장하여 최종적으로 무대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처음 두 곡은 내가 잘 모르는 곡이었는데 세번째 곡은 쇼팽의 왈츠 11번이었다. (아마도)
두번째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 느낌이 좀 났지만 아무래도 음악에 관해선 내 기억력을 믿지 못하겠다. 아니면 브람스나 누구 무곡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한데.
쇼팽의 왈츠를 칠 때는 심지어 즉흥에 가까운 기교마저 선보이는 여유로운 모습에 감탄.
연주가 끝나자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박수를 쳤는데 나도 나의 이런 격한 반응에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보통 남들 눈에 띄는 일은 잘 안함.) 하지만 다들 같은 "상태"였던 것 같다.
마지막 앵콜곡이 끝났을 때는 남아있는 관객 거의 전원이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바렌보임의 연주에는 폴리니에게 (예를 들어) 보이는 정밀함이나 "무게"와는 다른 언어로 읽히는 무언가가 있다. 그닥 좋은 귀는 아니지만 내가 듣기엔 오늘 연주에서는 심지어 인접한 음을 대강 다 누르기도 하는 것 같아서 깜짝 놀랐는데...
물론 나의 대강과 그의 대강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에게는 아주 감각적이고 세련된 구석이 있다. 그것도 아주 독보적인.
상대적이긴하지만 그런 점이 꽤 명확하게 느껴지는 것에 놀랍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흐르는 듯이 자연스러운 와중에도 곡의 특징을 잡아내는 감각이 탁월하다.
앵콜곡에서는 실제로 약간의 변주를 했지만 정식으로 연주를 하는 중에도 뭔가 "재간"을 부리고 있다는 느낌이 아주 잠깐 들 정도로 독특한데. 그런데도 전혀 거슬리질 않으니 이상하다.
마지막 쇼팽의 왈츠는 두고두고 다시 듣고 싶을 정도로 멋졌다.

내년 2월에는 리사이틀이 이틀에 걸쳐 있을 예정인데 그 중 하루 표는 이미 예매해 두었다.
다른 날 것도 가고싶은 욕심을 빨리 어디론가 분산시켜야 될텐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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