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enboim c'est vraiment un personnage.
공연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손톱을 다 뜯었다.
네모낳던 내 왼손 엄지 손톱은 거의 삼각형이 되었는데 공연 도중에 왼쪽과 윗면이 "다듬어"지고
집에 오는 길에 공연을 머리 속으로 곱씹는 동안 오른쪽을 또 뜯었다.
방심하다가 크게 한방 먹은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게 만족스러운 공연은 지난번 폴리니와 하겐 쿼텟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파리오케스트라(Orchestre de Paris, 알아보니 시립은 아니라고 함!)와 음악감독 크리스토프 에셴바크(Christoph Eschenbach)의 지휘, 그리고 피아노는 다니엘 바렌보임이 맡았다.
에셴바크 씨는 아주 예쁜 두상을 가졌고, 지휘할 때 양손으로 자꾸 항아리 모양을 그리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쓰니 정말 하나도 진지해보이지 않는구나.

오늘의 프로그램은 베를리오즈 두 곡, 그리고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베를리오즈는 어제도 여기에 썼듯이 한번도 찾아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것이 오히려 오늘 공연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로 작용한 것 같아 매우 기쁘다.
지난번 페라이어 때 느꼈던 브람스의 생소함과는 반대다.
처음 무대를 연 것은 Benvenuto Cellini, ouverture, op.23.
개성있고 힘차고 강렬하면서도 묘하게 듣기 좋은 곡이었다.
공연을 지켜보면서 계속 느꼈지만 파리오케스트라에선 관악기 연주자들이 특히 훌륭한 것 같았다.
아, 그리고 오늘 좌석이 별로 좋지가 않아서 (머리 위가 1층 발코니라서 소리가 전달이 잘 안되는 듯) 현악기 특히 바이올린 소리가 다 먹먹하게 들렸는데 정말 너무 아쉽다.

나를 방심케 한 주역, 쇼팽 피아노 콘체르토 2번이 이어졌다.
바렌보임의 우아하고 열정적인 연주에도 불구하고 곡 자체의 원래 특성인지 조금 지루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왜일까... 사실 아직도 개운치가 않다.
곡이 끝난 후 entreacte때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다들 너무 대단한 연주였다며 입이 마르도록 찬사의 말들을 늘어놓는데 나만 친구한테 전화해서 별로였다고 털어놓았다. 나중에 다시 들어봐야지..

2부의 시작은 또 다시 베를리오즈의 곡으로, Carnaval romain (로마의 사육제!) 서곡 op.9 였는데 다행히 석연찮던 기분이 다시 좋아지고 정신이 맑아졌다.
정말 독특하고 즐거운 곡이다.
탬버린 ? 비슷한 악기를 흔드는 연주자들이 너무 귀여워서 혼자 웃었다.

마지막 곡으로 쇼팽의 피아노 콘체르토 1번이 마련되어 있어 조금 안도했다.
알쏭달쏭했던 2번과 달리 1번은 평소에도 많이 들었었고 또 좋아하는 몇 안되는 협주곡 중 하나이기 때문에. 아니나 다를까.
정말 좋은 연주였다. 달리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바이올린 소리가 너무 죽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3악장을 들으면서 손톱을 뜯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 공연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바렌보임의 앵콜곡들이었다.
내가 들어본 어떤 앵콜곡, 아니 어쩌면 어떤 피아노 독주 보다도 가슴 벅차고 멋진 연주들이었고
내가 기억하는 어떤 콘서트에서의 순간보다 오래 기억에 남을 몇 분이었던 것 같다.
이때 또 손톱을 뜯었다. (물론 이로 뜯지는 않았음.)

그는 오늘 앵콜로 무려 3곡을 연주했다!
그것도 얼마나 재치있게 "연출"을 하던지.
생각보다 쉽게 앵콜 요청을 받아준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어쨌건 마냥 좋기만 했던 첫번째 앵콜곡이 끝나고나자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연주회장을 빠져나기 시작했고 그런 객석을 보더니
갑자기 피아노로 거의 뛰어오다시피(!) 잽싸게 와 앉아 숨돌릴 틈도 없이 다음 연주를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어리둥절한 가운데 두번째 앵콜곡을 (고맙게) 들었다.
다들 "지금 내가 본게 뭔가" "저 사람이 지금 정말 뛰어온게 맞나" 하는 의아함과 웃음이 섞인 술렁거림이 가볍게 일었지만 어쨌든 두번째 곡이 끝났으니 이제 정말 갈 줄 알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까보다 더 많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자
본인도 정말 무대 밖으로 퇴장하는 듯 하더니 갑자기 홱 돌아서 피아노 앞에 또 털썩 앉았다.
사람들도 이번엔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나도 막 웃었다.
이런 유머러스한 모습을 보면서 난 정말 이사람이 "인물이다" 하는 생각을 굳혔다.
에드워드 사이드와 절친한 친구이고 많은 사회 활동을 함께 해왔다는 사실에서 이미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짐작했었지만.
뭐든 저렇게 즐겁게 웃으면서 하는 사람이 좋다. 더욱이 아무리 남에게까지 (긍정적인)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일단 어떤 부분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신뢰를 하고 만다.
결국 마지막 앵콜곡이 끝나고 다시 한번 또 피아노에 앉는 척을 하더니
이번엔 제1바이올린의 솔로주자의 손을 잡고 끌고 나가다시피 해서 다른 단원들도 그 뒤를 따라 퇴장하여 최종적으로 무대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처음 두 곡은 내가 잘 모르는 곡이었는데 세번째 곡은 쇼팽의 왈츠 11번이었다. (아마도)
두번째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 느낌이 좀 났지만 아무래도 음악에 관해선 내 기억력을 믿지 못하겠다. 아니면 브람스나 누구 무곡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한데.
쇼팽의 왈츠를 칠 때는 심지어 즉흥에 가까운 기교마저 선보이는 여유로운 모습에 감탄.
연주가 끝나자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박수를 쳤는데 나도 나의 이런 격한 반응에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보통 남들 눈에 띄는 일은 잘 안함.) 하지만 다들 같은 "상태"였던 것 같다.
마지막 앵콜곡이 끝났을 때는 남아있는 관객 거의 전원이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바렌보임의 연주에는 폴리니에게 (예를 들어) 보이는 정밀함이나 "무게"와는 다른 언어로 읽히는 무언가가 있다. 그닥 좋은 귀는 아니지만 내가 듣기엔 오늘 연주에서는 심지어 인접한 음을 대강 다 누르기도 하는 것 같아서 깜짝 놀랐는데...
물론 나의 대강과 그의 대강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에게는 아주 감각적이고 세련된 구석이 있다. 그것도 아주 독보적인.
상대적이긴하지만 그런 점이 꽤 명확하게 느껴지는 것에 놀랍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흐르는 듯이 자연스러운 와중에도 곡의 특징을 잡아내는 감각이 탁월하다.
앵콜곡에서는 실제로 약간의 변주를 했지만 정식으로 연주를 하는 중에도 뭔가 "재간"을 부리고 있다는 느낌이 아주 잠깐 들 정도로 독특한데. 그런데도 전혀 거슬리질 않으니 이상하다.
마지막 쇼팽의 왈츠는 두고두고 다시 듣고 싶을 정도로 멋졌다.

내년 2월에는 리사이틀이 이틀에 걸쳐 있을 예정인데 그 중 하루 표는 이미 예매해 두었다.
다른 날 것도 가고싶은 욕심을 빨리 어디론가 분산시켜야 될텐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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