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이 곡을 듣노라면 예수를 정말 사랑하고 싶어지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예수 아닌 무엇이 되었건 드넓은 마음으로 사랑하고 싶어지는...
니콜라예바와 리파티의 연주를 가장 좋아하지만 방금 라디오에서 바이센베르크를 틀어주었기에 유튜브에서 그의 실연 동영상을 찾아 왔다.
그는 약 2주전 세상을 떠났는데 오랫동안 파킨슨병을 앓아 슬프게도 그의 피아노 인생은 이미 훨씬 전에 끝이 났었다. 그의 바흐 평균율과 개성적인 라흐마니노프, 드뷔시 연주를 좋아했었는데 내가 클래식을 좋아하기 전에 그는 이미 은퇴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 죄송스럽지만 이미 돌아가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의 영혼이 음악의 순수한 기쁨과 함께 평안을 찾기를 새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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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 간 날씨가 무척 궂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인 지금까지 잦은 비는 물론이고 찬 바람이 정말 쌩쌩 불어서
파리가 자랑하는 최악의 겨울 날씨를 아주 원없이 맛볼 수 있었다.
그나마 방학이 시작되어 집에서 웅크리고 있을 수 있어 다행이지, 계속 학교도 가야하고 도서관도 가야했다면 몸도 마음도 좀 힘들었을 것이다.
어디를 나가도 장갑과 모자 없이는 너무너무 춥다. 보통 때처럼 양말에 부츠를 신어도 발가락이 시려서 평소에는 자각하기 어려운 발가락이라는 신체 부위에 대해서 계속 신경을 집중하게 되는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아....쓰면서도 생각만 해도 추워.

작년 겨울 한국에서 어마어마한 추위를 (프랑스의 그것과는 개성이 또 다른) 겪으면서 열심히. 나름 열심히 연습했던 곡인데. 손끝이 곱아오고 입김은 무슨 액토플라즘같고 코 끝이 빨갛다 못해 아슬아슬 저리는 이 추위를 다시금 맞이하며 - 오늘은 정말 이 곡을 듣고 싶었다.

바흐, 쇼팽,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의 프렐류드와 푸가 (쇼팽과 라흐마니노프는 전주곡만) 가 다 좋지만 내가 듣기에 가장 개성이 강렬하면서도 탄탄한 - 심지어 아주 탄탄한 - 음악적 구조를 잃지 않는 곡이라면 단연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이다. 그리고 하필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갑자기 너무너무 듣고싶어 어쩔 줄 모르게 하는 곡들 역시 쇼스타코비치의 것이다. 정말 오늘 지금 이 순간 이 곡이 안되면 안되겠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끼게 하는 그런 곡.
아빠가 작년에 알려준 타티아나 니콜라예바의 연주는 흠잡을 곳이 없다.
리히터의 연주도 괜찮지만 내가 가진 앨범에는 전곡이 아니고 5곡 밖에 들어있지 않아서 전체를 듣고 판단할 수가 없어 아쉽다.
왠지 작년에도 이 곡을 블로그에 올렸던 것 같은데.
아무튼 작년 겨울이 조금 그리워지기도 한다. 지금 보리와 아빠와 가까운 곳에 함께 있는 것이 작년보다 더 행복하지만, 또 더 많이 그리워질 순간이겠지만, 작년 겨울 피아노 연습하러 다니던 때가 눈앞에 선해서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추억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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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라디오 클라식을 틀었더니
1922년 오늘이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가 세상을 떠난 날이라고 한다.
스완과 오데트 이야기를 하면서 세자르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1악장을 안 가스티넬이 첼로로 연주한 것을 틀어주었는데 하루종일 계속 생각난다. 우습지만 그저 내 집 책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도 왠지 따뜻하고 애틋한 바람이 어디선가 내게 불어 오는 듯한 느낌이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역시 그뤼미오의 연주가 듣기 좋아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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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졸려서 간단히 쓰려고 한다.
거두절미하고
굉장한 공연이었다.
신들린 합주.

Colin Matthews의 Grand Barcarole pour l'orchestre 도 아주 좋았는데 바르카롤레라기보다는 심해의 잠수함을 위한 혹은 거대한 범선의 장엄한 출항을 위한 곡 같았다. 그래서 grand 인가.

8번 1악장 첫부분 시작하자마자 완전히 경도되었다. 게반트하우스랑 샤이 너무 멋있다........
합창석임에도 불구하고 소리의 부피에, 음장에 공기가 밀려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8번은 정확히 7번과 9번 사이에 위치하는 느낌이어서 재미있었다.
강과 약의 대비가 화려하고 기세 좋은 무척 듣기 좋은 곡이다.
팀파니가 진짜... 와 정말 대단했다.
숨을 쉬질 못하겠더라.

3번에서 역시 8번의 기세를 그대로 몰아 엄청나게 강렬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22일 공연에서 샤이의 지휘를 도자기에 비유했었는데. 아니다. 오색찬란한 보석이었다. 샤이를 정면에서 보면서 그의 손과 눈빛을 따라가며 연주를 들으니 뭐 한순간도 끈을 놓을 틈이 없었다. 음악을 저렇게 사랑할까? 정말 저렇게 좋아하는구나. 저렇게 행복하구나. 주제를 모르고 조금 질투까지 났다. 저번에 무엇도 지휘할 수 없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고 썼었는데, 오늘도 그 생각을 했다.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처럼 그만큼 내 일에 집중하고 싶고 그 몰입의 순간에만은 완전히 행복하고 싶다. 마치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 처럼. 샤이 뿐만 아니라 단원들 전부가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인텐스한 연주가 나올 수가 없을 것 같다.
1악장의 완벽한 하모니는 말할 것도 없고 2악장에서는 특히 오보에와 콘트라베이스가 너무나도 잘했다. 그동안 집에 있는 토스카니니의 오래된 녹음으로만 들어서 그 고색창연한 소리가 귀에 익었었는데 그와는 다른 "오늘"의 연주도 듣다보니 금방 좋아졌다. 번쩍 번쩍 윤이 나고 날이 선 관악과 나무 맛이 살아있는 입체적인 현의 소리. 3악장 4악장에서도 정신없이 빠져들어 머리가 아플 정도.
좋구나. 자리 때문에 직접 보지 못해서 너무 아쉽지만 팀파니 정말 잘한 것 같고 오보에 플룻 바이올린 다 좋았다. 2악장 후반부 쯤에서 현악만 파트 별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눈물이 다 날 뻔 했다.

내일모레 아일랜드 가기 전날 9번을 들으러 간다. 1번, 7번 그리고 4, 6번은 예매하지 않았다. 작년에 갔던 틸레만과 빈필의 베토벤 싸이클 때와는 거의 반대의 구성이어서 비교는 못하겠지만 (게다가 둘 다 너무 훌륭한 오케스트라들이라 내 수준에서 하는 비교는 무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샤이와 게반트하우스의 정말 신들린 듯한 연주와 지휘자와 연주자들 간의 호흡 - 거의 서커스!? 와도 같은 느낌을 받았을 정도 - 과 결속력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졸리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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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르도 샤이와 게반트하우스의 베토벤 사이클 첫번째 날이다.
오늘의 프로그램은 2번과 5번, 그리고 가운데 Carlo Boccadoro의 Rittrato di musico (프랑스초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베토벤의 2번 교향곡은 라디오에서 3악장을 다른 일 하면서 뒷배경으로 들은 이후로 처음으로 접한 것이었는데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곡 전체를 관통하는 음의 배열과 공식이 어떻게 변형되고 또 다시 제자리를 찾는 가를 관찰하는 일은 늘 즐겁다. 2, 3악장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보카도로의 리트라토 디 무지코 역시 인상깊게 들었다. 모래시계가 아래쪽으로 중심을 이동해가는 사라락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빛나는 해파리가 바닷속을 가르는 모양이 생각나기도 하고, 어쨌든 표제는 "음악가"의 초상이지만, 바삭하면서도 유연한 오묘한 곡이었다. 요즘 듣는 현대 음악들은 어쩐지 다 좋은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음...혹시 귀가 트이는 걸까? ㅋㅋ 써놓고도 웃기지만 어쨌든간 다행인 일이다.

5번은 지금까지 들은 것 중 가장 좋았다. 나는 역시 샤이의 "멋"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 그의 지휘는 정말 멋이 있고 구조가 탄탄한데, 장인이 빚어내는 훌륭한 도자기같다. 이 도자기는 과한 장식은 없지만 볼 수록 안정감과 무게가 있어 아늑한 맛이 있고 빛깔은 그윽하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일순간 한낮의 빛이 가 닿으면 그 윤곽이 찬란히 빛난다. 삶의 짙은 내음이 깊숙이 파고 드는 5번 교향곡을 여기에 덧입히니 듣는 이는 감격할 뿐이다. (사실은 베토벤에 샤이를 덧입혔다 해야 맞겠지만.)
한달에도 몇번이고 음악을 들으러 가지만,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게 되는 경우는 사실 많지 않다.

다녀오자마자 글을 쓰기 시작은 했지만 벌써 1주일이 지난 오늘에야 마무리 할 수 있었는데. 아직도 다시 생각하면 얼떨떨하다. 오늘 저녁에는 8번과 3번 연주가 있다. 무척 기대된다. 이번엔 합창석 자리라 지휘자를 정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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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는 아이폰이랑 아이패드 ios 업데이트 하느라 ㅋㅋ 글을 못 쓰고 그냥 잠들었다.
처음으로 에두아르 투빈 (Eduard Tubin : 에스토니아 출신의 20세기 작곡가인데 정확한 발음은 모르겠다.) 의 음악을 접했다. 단악장으로 된, 아니 그렇게 되었다기 보다는 미완성으로 남은 교향곡이었는데 번호가 11번이라 놀랐다. 내가 몰랐던 작곡가라고 해서 그가 11편의 교향곡을 남겼다는 것이 놀라울 것은 없는데 말이다.
네메 예르비도 즐겨 연주하던 작곡가인 것 같다. 이날 들은 11번 교향곡이 무척 마음에 들어 아마존을 찾아보니 전집이 하나 있는데 네메 예르비의 것이었다. 무척 세련되고 힘있고 신선한 곡이었다.

내 앞 옆으로 삥 둘러 음악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이 쭉 앉았는데 콘서트마스터인 Roland Daugareil 가 들어오자 마치 아인트호벤 사람들이 위숭빠레 ㅋㅋ 했던 것 처럼 로올렁 로올렁 하고 이상한 딱다구리 같은 소리를 일제히 내서 너무 웃겼다. 아마도 도갸레이의 제자였거나 제자인 모양이다. 웃음을 참느라 조금 힘들었다.

지난 금요일부터 쓰려고 잡고 있던 글인데 몸살 때문에 결국 일요일인 오늘까지 와버렸다.
무슨 말을 쓰려고 했었는지 점점 흐릿해져간다. ㅠ
어쨌든 카바코스의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내가 라이브로 들은 연주 중에 단연 최고였는데 (그리 많지야 않지만), 지난번 스베틀린 루세프도 대단했지만 아무래도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정교함과 간결함, 콘트라스트가 그리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명확한 기승전결은 정말 거장의 그것이라 할 만 했다.
무대 바로 앞 두번째 줄 가운데 자리에 앉아서 바이올린의 독주에 더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잘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매번 자리가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정말 들을 수 있는 최고를 들었다는 실감이 확 났다. 정말 눈물을 글썽일 뻔 했던 것은 이번이 아니라 루세프 때였다.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그런 벅찬 감동 때문에 울컥하는 일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온 몸과 마음으로 집중하며 감사하며 행복하게 들을 수 있었다.

2부에는 26세에 요절한 Hans Rott 라는 작곡가의 교향곡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연주 시간이 60분이라는 것을 보고 고민하다 그냥 귀가했다. 이 날 오전에도 수업이 있어서 보리를 네시간 가까이 집에 혼자 두었었는데 저녁에도 그렇게 오래 떠나있기가 영 마음에 걸려서였다. 조금 아쉬웠지만 대신 Tubin의 11번 교향곡을 알게된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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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lini Perspective 프로젝트 (2011-2013) 가 올해도 돌아왔다.
오늘은 그 첫번째 공연.

폴리니 할아버지의 연주를 들으려면 이제는 응당 통과의례 내지는 수수료 ?! 와도 같은, "초"현대 음악 연주가 오늘도 역시 1부에 짜여져 있었다. 그래서 폴리니가 더 존경스럽고 그래서 팬이기도 한거지만 말이다. Giacomo Manzoni 가 작곡한 Il rumore del tiempo 가 그것으로, "시간의 소음"이라는 제목이다. 소프라노와 클라리넷, 바이올린, 퍼커션 그리고 폴리니의 파브리니 스타인웨이가 함께 하는 곡으로, 재작년이었나 루이지 노노의 성악곡 (이라고 할 수 있나? 그림으로 치면 mixed media 같은 그런) 의 충격 이후 소프라노가 등장하는 현대 곡들은 듣기 전에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성의 높은 목소리가 내는 불협화음과 그 미묘한 반음 톤들이 주는 기괴하거나 침울하거나 불길한 느낌이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렵다.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이 과연 2천명 플레이옐 관객들 중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내 편견일까?

오늘 만조니의 곡 역시 그런 면에서 크게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는데 심지어 러시아어, 독일어 그리고 이탈리아어로 된 시를 끊임없이 고음으로 "노래"하는 소프라노에 사람을 긴장하게 하는 퍼커션과 아슬아슬한 바이올린까지 굉장한 합주였다. 피아노만은 그래도 어느 정도 귀에 익숙한 멜로디 라인을 따라가는 듯 싶었지만 뒤늦게 합류한 클라리넷이 또... 클라리넷 주자 (Alain Damiens) 소개를 보니 "클라리넷의 혁신의 주인공" 이라고 하던데 역시. 그래도 클라리넷 음색 자체가 워낙 곱고 듣기 좋아서 듣다 보니 그렇게 (부정적 의미의) "현대"스럽지만은 않았다. 나중에는 소프라노 목소리와 클라리넷이 헷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멍하니 듣다가 생각해보니 "시간의 소음"이라는 표제가 더없이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비꼬는 것이 아니고 정말. 루체른 페스티벌의 주문으로 폴리니를 위해 만들어진 이 곡은 올해 80세인 작곡가가 지나온 길을 자전적으로 그려낸 것으로 Khlebnikov, Trakl, Blok, Zanzotto 의 시를 가사로 차용하고 있다. (이 중 누구의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다.) 프랑스어 본이 livret에 실려있었는데, 여기 전부 번역해서 싣기는 힘들겠지만, 읽어보니 시들이 워낙 좋다. 내가 그 가사를 알아들을 수만 있었다면 어쩌면 감동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나이가 되면 시간이 삐걱삐걱 지나가는 소음도 듣고 이야기도 듣고, 시로 음악으로 노래로 만들 수 있는걸까. 총 4편의 다른 시로 되어있지만 관통하는 이미지는 이렇다. 나는 그저 차분하게, 혹은 불안한 마음으로 주위를 바라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관찰자의 입장이고 눈 앞은 온통 새까만 밤, 벽도 울타리도 없는 풀밭과 숲과 산 뿐이다. 바람과 물 소리가 들리고 새가 울고 달이 빛나고 있다. 한없이 고요하면서도 또한 온갖 소리와 움직임으로 가득한 그런 새까만 공간이다. 그 곳을, 내 옆을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다.

소프라노 안나 프로하스카의 인사하는 포즈가 무척 독특하고 귀여워서 기억에 남는다.
폴리니 할아버지는 역시 이탈리아 남자 답게 ㅋㅋㅋ 만조니와 이야기 나누며 무심코 앞서 퇴장하다가도 순간 놀라며 소프라노 분을 먼저 가도록 챙기는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ㅋㅋ 악수하고 사인받고 진상부리고 싶다.

아. 중간에 갑자기 고백하자면 나는 오늘 굉장히 찝찝한 기분인데
왜냐하면 내가 ...
내가
아파시오나타를 듣던 중 순간 졸았기 때문이다. .....머리를 팍 꺾으며...
너무나도 치욕스러워서 여기 쓰는 것도 망설였지만
내 스스로가 답답해서 고해를 하지 않으면 오늘 편히 잠을 못 잘것 같다.
어제 거의 밤잠을 이루지 못해서 - 나는 7시간 깨지 않고 자지 않으면 일상 생활이 어려운 사람인데 - 하루종일 졸려서 제정신이 아닌 것은 물론, 얼굴도 푸석푸석 눈 밑 피부가 장승처럼 처지는 그런 ... 힘든 하루였는데 폴리니 공연이기 때문에 또 기를 쓰고 나는 플레이옐에 가야했던 것이다. 변명같지만 정말 내가 베토벤 소나타 들으면서 게다가 폴리니 연주로 들으면서 졸! 수가! 없는데... 공연 보러 다닌 이래로 최악의 사건이다.
고백했으니 이제 또 다시 써야지. 기대만큼 후련하지는 않지만 별 수 있나.

오늘은 발트슈타인과 아파시오나타, 그리고 가운데 낀 피아노 소나타 22번이 연주되었다.
Waldstein은 특히 내가 진심으로 듣기 시작한 첫번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로, 요즘에도 매일 아침에 한번씩은 듣는 것 같다. 낮에도 밤에도 좋지만, 특히 아침을 시작하며 들으면 그 상쾌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쨌든 프로그램은 이랬는데. 연주에 대해서는 참 그러고 보면 뭐라고 써야하나.
나는 음악 평론가가 아니고 그렇게 되고 싶은 사람도 아니다. 몇번 적은 적 있는 것 같은데 폴리니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누군지 모르고 듣다가도, 뭔가 다시 돌려 듣고 싶고 이름을 확인하고 싶은 연주들은 거의 항상 폴리니였기 때문이다. 진짜 특히 베토벤 소나타에서 보여주는 그 완벽한 그림. 의연한 아름다움과 당당함, 기상이 단연 독보적이다. 내가 바라는 그런 요소들을 오늘 폴리니는 유감없이 보여준 것 같다. 중간중간 조금 음이 틀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폴리니임을 생각할 때 무척 놀랍지만)
흐름이 정말 좋다. 도입부에선 뭔가 탁 트인 풍경을 열어주고 곧이어 그 안으로 말을 타고 달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리고 목적지에 다다르는 그 성취감과 흥분, 행복감으로 곡은 끝이 난다.

몰랐는데 22번도 참 좋더군. 2악장의 남다른 구성으로 11분 정도 안에 연주되는 짧은 곡인데, 듣는 것 만으로도 견과류처럼 오독오독 씹는 재미가 있다고 해야하나. 재미있는 곡이었다.

내년 2월 14일에 피아노 소나타 24-27번, 2013년 1월 18일에 28-29번, 그리고 3월 18일에 30-32번이 계획되어 있다. 물론 전부 갈 테지만, 28번이 특히 벌써부터 너무너무 기대된다.
최근에 폴리니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려서 걱정했는데 오늘 보니 아주 좋아보이셨다.
얼굴에서 빛이 나던걸.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제발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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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비록 오늘이지만
하는 수 없이 나는 플레이옐에 꾸역꾸역 왔다.
오늘같은 날 자리가 혼자 동떨어진 곳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아바도와 루체른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모차르트 35번과 브루크너 5번을 연주한다.
둘다 한번도 실연으로 들어본 일이 없는데다 모차르트의 이 Haffner의 경우에는 내가 내 귀로 처음 듣는 모차르트 교향곡이라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좋지 않은 날이다.
모든 음악이 독이 될 것이다.
기왕 그럴 거라면 아주 강력하고 오래가는 그런 독이었으면 좋겠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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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서둘러 돌아와 바로 보리를 크레이트에서 꺼내주고, 물 한잔을 들이키고, 설거지를 하고, 씻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집에 혼자 있을 보리가 안타까워 첫번째 커튼콜에 부리나케 집으로 내달렸는데 이녀석은 내가 와도 한 5초 동안 간략히 신나하다가 이내 자기 할 일 (= 소가죽 개껌 뜯기) 에 몰두한다. 이 배신감... ㅋㅋㅋ 덕분에 나도 편하게 내 할 일을 한다.

2011/12 시즌 처음으로 보게 되는 공연이었다. Orchestre de Paris를 통해 정말 부담없는 가격(5유로)에 구입한 티켓이었지만 나름 기대도 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 콘체르토 중 하나인 쇼팽 2번과 베토벤 교향곡 5번이 편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협연자인 카시아 부냐티쉬빌리에 대해서는 젊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고 사실 뭐 아무래도 좋았다. 예르비의 5번을 꼭 실제로 들어보고 싶기도 했고. 전에 뉴욕필에서였나? 무슨 어디 클래식 라디오 채널에서였나 예르비와 뉴욕필(아마도)의 5번 라이브 음원을 무료로 공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주 인상깊게 들었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러닝타임이 비교적 짧다 : 보리에게 빨리 돌아갈 수 있다. 좋아.

첫 곡인 베를리오즈의 Ouverture du Corsaire 도 절대 나쁘지 않았다. 그냥 왠지 무대를 여는 첫 곡으로는 약간 정신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 내가 방학에서 돌아오지 못한 탓인지, 집중이 좀 안됐다. 어쨌든 나는 베를리오즈를 좋아한다. 독보적인 스타일이다. 이런 곡은 베를리오즈밖에 쓰지 못한다.

고대하던 쇼팽 2번. 피아니스트가 들어오는데 와 깜짝 놀랐다. 그루지야 출신의 87년생 (사실 이젠 그렇게 어린 나이도 아니구나. 나보다 두살이나 어린데.) 여성 피아니스트인데, 외모만 보면 무슨 흑백시절 여배우라고 해도 믿을 고혹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여자인 내가 봐도 입이 딱 벌어졌는데. 남자 관객들은 좀 많이 놀랐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실력에 비해 박수와 환호도 왠지 더 받은 느낌이다. 흉보려는 건 아니고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냥 연주하는 모습만 봐도 포스가 대단했다.
오랜만에 느끼하고 존재감 강한 Steinway & Sons 피아노를 들으니 기분이 좋기도 하고 좀 이상했다. 뭔가 타임머신을 타고 예전으로 돌아온 느낌.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결국 플레이옐 이 자리로 다시 끌어다 앉혀놓은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이제 공연을 보러 다닌 햇수도 꽤 되었고 특히 이 피아노 소리의 마력에 스스로를 무디게하고 길들여 온 노력도 많이 쌓여, 이젠 관객석 불이 꺼지기만 해도 스타인웨이 뚜껑을 젖히기만 해도 내 몸이 최적의 자세를 저절로 찾아가는 것 같다. 뭐 그냥 나의 바람일 수도 있고.
피아노 연주는 정작 그냥 그랬다. 내 귀에 많이 선 느끼한 스타일이었고 특히 1, 3악장 도입부에서 성급하게 윗 노트들을 대충 쳐넘긴 것은 참 별로였다. 2악장은 그냥... 대단한 특징은 없었다. 감정 과잉의 선을 위태위태하게 밟고 타는 연주로 느껴졌는데 듣기 편치 않았다. 기름에 절인 포도알 같은 느낌. 하지만 예쁘긴 참 예쁘더라.
앵콜곡으로 리스트 (올해는 리스트의 해!)의 Rêve d'amour 를 들려주었는데, 이건 정말 너무 심해서 내가 오죽하면 항의의 표시로 박수도 치지 않았다. 이렇게 연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원곡의 깊이도, 생동감도, 처연함도, 달콤함도 온데간데 없다. 하다못해 악보에 대한, 곡의 "형식"마저도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심이 들었다. 파괴적이고, 지루했다.

베토벤 5번은 좋았다. 앗쌀한 도입부가 참 마음에 들었다. 묵직하면서도 날이 선 첼로의 존재감이 대단했다. 파리 오케스트라의 첼로 앞자리 두사람은 예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오늘 (내 귀에) 만족스러운 베토벤 연주에는 첼로 파트의 공이 컸다. 내가 사랑하는 4악장도 훌륭하게 그려내 주었다. 이제와 말하지만 파보 예르비는 (들라노에와 더불어) 파리의 보물같다. 멋진 지휘자다.

오늘 오랜만에, 3개월 만에 플레이옐에 가서 예르비를 보며 새삼스럽게 지휘자의 손에 대해 깊이 생각을 했다. 음악을 만드는 손. 지휘자의 지난 세월들이 다 그 손에 묻어난다. 그 손 끝에 아리도록 깊게 배인 힘과 자신감이 오늘따라 무척 또렷하게 보였다.
내가 과연 무엇의 지휘자가 될 수 있을까? 지휘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무언가를 해야겠다.
지금의 나로 출발해서 저 정도의 지휘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내게 주어진 일을 하고 싶다.
아무것도 지휘할 수 없는, 어떤 음악도 만들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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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석 매진이 너무나도 당연한 날이었다.
드뷔시의 바다, 라벨의 피아노 콘체르토, 그리고 베토벤 7번.
거기다 에사-페카 살로넨, 다비드 프레, 파리 오케스트라.
어떤 프랑스 인이 이 공연을 기대하지 않았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당일 표 판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여섯시 반부터 이미 셀 수 없는데
한시간이 지나도록 취소표는 커녕 암표(?) 하나 나오지 않아 거의 대부분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파리 오케스트라 회원 프로그램을 통해 작년에 표를 구입해두었는데
학생 표라서 역시 자리는 아주 좋지 않았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이 자리에 만족하자고 계속 주문을 외웠으나
결국 공연 시작 직전에 뒤로 달려가서 훨씬 나은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라벨 피아노 손을 꼭 보고싶었기 때문이다 ㅠ ㅠ
어쩄든 무대를 보고 조금 오른쪽 자리라서 손은 못 보았고 가끔 피아노 뚜껑에 비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그런데 살로넨 정말 멋있었다. 약간 홍명보 선수와 이목구비가 비슷했다 (눈썹은 다르지만).
나중에 엄청 아프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팔과 어깨를 무척 힘차게 휘두르더라.
그리고 확실히 파리 오케스트라도 이 날은 정말 온 힘을 다해서 연주하는 듯 소리도 힘차고 굉장히 듣기 좋았다.
드뷔시의 바다 1악장 마지막 부분에선 정말 과장 하나 보태지 않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지막까지 훌륭했지만 1악장의 움트는 새벽, 해돋이, 강력하고 힘찬, 때론 간질이듯 부드러운 파도소리는 정말 최고였다.

라벨 콘체르토도 정말 좋은 반주였다. 그냥 나는 라벨은... 그저 라벨이 나보다 먼저 태어나 살아주었던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피아노도 굉장했다. 내가 피아노에 가까이 있어서 그랬는지 유독 모든 소리가 청명하고 곱고 정확하게 들려서 기분이 좋았다. 물론 피아니스트도 터치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이 느껴졌다. 아주 명료하고 귀에 잘 들어왔다. 다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히 1악장에서, 약간의 광기가 느껴질 정도로 피아니스트의 감각적인 해석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이상하게 무뚝뚝하더라. 그러나 기술적으로 나무랄 곳은 하나도 없었고 정말 모범적 - 라벨 피아노에 모범이라는 말을 붙이기는 이상하지만 - 인 연주였다. 1악장 첫부분을 들으며 직감적으로 아... 2악장 진짜 느끼하겠다... 겁을 먹었는데 또 의외로 2악장에서는 무척 또박또박 예쁜 소리를 들려주었고 2악장 후반부에서는 심지어 눈물이 왈칵 날 뻔했다. 정말로. 인생이 너무나 아름답고 가치있다는 생각을 들게하는 곡이다. 앞에서 말했지만 라벨 이후에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다. 내가 피아노 스타인웨이앤썬즈 글자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울먹울먹 하는 모습을 제1바이올린의 부수석 아저씨가 보고 당황하는 것을 보았다.
사족으로 나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라벨의 이 피아노 협주곡 처럼 2악장에서 3악장이 쉼 없이 넘어가는 곡들이 참 재밌는데 왜냐하면 자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다 깨기 때문이다. 내 대각선 앞에 앉은 아주머니는 거의 용수철 처럼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피아노의 다비드 프레는. 진짜 무슨 ... 웃기지만 캔디캔디에 나오는 테리우스 ㅋㅋㅋㅋ같았다.
옛날에 라디오 클래식 Passion Classique 에 나와서 너무 자신감 넘치는 발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기에 참 ...음 사람이 참 어리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기 때문에 사실 어제 공연의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과연 이 젊은 음악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 ! 였다. 근데 그가 무대에 등장을 딱! 하는데. 연주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참. 어이가 없었다. 리카르도 무티의 사위인데다가. 키도 엄청 크고. 잘생기고. 젊고. 무슨 완전 엄친아... 그의 굉장한 자신감이 어쩐지 조금 납득이 갔다. 왠지 자존심이 상한다. ... 앵콜로 들려준 바흐와 슈만 어린이정경 1번도 참...괜찮았다......

베토벤 7번도 좋았고 난 특히 4악장의 템포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더없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2악장 역시 나쁘지 않았다. 관악 파트에서 조금 더 소리가 곱게 나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전체적으로 모든 악장이 잘 어우러졌다. 도입부가 좋았다. 그리고 비올라 훌륭했다. 

같은 프로그램으로 오늘도 연주가 있는데 또 가고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있다.
표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대략 2-3일 후부터 citedelamusique.tv 와 liveweb.arte.tv (맞나) 에서 실황을 다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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