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르도 샤이와 게반트하우스의 베토벤 사이클 첫번째 날이다.
오늘의 프로그램은 2번과 5번, 그리고 가운데 Carlo Boccadoro의 Rittrato di musico (프랑스초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베토벤의 2번 교향곡은 라디오에서 3악장을 다른 일 하면서 뒷배경으로 들은 이후로 처음으로 접한 것이었는데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곡 전체를 관통하는 음의 배열과 공식이 어떻게 변형되고 또 다시 제자리를 찾는 가를 관찰하는 일은 늘 즐겁다. 2, 3악장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보카도로의 리트라토 디 무지코 역시 인상깊게 들었다. 모래시계가 아래쪽으로 중심을 이동해가는 사라락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빛나는 해파리가 바닷속을 가르는 모양이 생각나기도 하고, 어쨌든 표제는 "음악가"의 초상이지만, 바삭하면서도 유연한 오묘한 곡이었다. 요즘 듣는 현대 음악들은 어쩐지 다 좋은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음...혹시 귀가 트이는 걸까? ㅋㅋ 써놓고도 웃기지만 어쨌든간 다행인 일이다.

5번은 지금까지 들은 것 중 가장 좋았다. 나는 역시 샤이의 "멋"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 그의 지휘는 정말 멋이 있고 구조가 탄탄한데, 장인이 빚어내는 훌륭한 도자기같다. 이 도자기는 과한 장식은 없지만 볼 수록 안정감과 무게가 있어 아늑한 맛이 있고 빛깔은 그윽하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일순간 한낮의 빛이 가 닿으면 그 윤곽이 찬란히 빛난다. 삶의 짙은 내음이 깊숙이 파고 드는 5번 교향곡을 여기에 덧입히니 듣는 이는 감격할 뿐이다. (사실은 베토벤에 샤이를 덧입혔다 해야 맞겠지만.)
한달에도 몇번이고 음악을 들으러 가지만,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게 되는 경우는 사실 많지 않다.

다녀오자마자 글을 쓰기 시작은 했지만 벌써 1주일이 지난 오늘에야 마무리 할 수 있었는데. 아직도 다시 생각하면 얼떨떨하다. 오늘 저녁에는 8번과 3번 연주가 있다. 무척 기대된다. 이번엔 합창석 자리라 지휘자를 정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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