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스존 심포니 4번 Italienne,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2번, 바그너의 Siegfried-Idylle, 그리고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마무리되는 프로그램이었다.
멘델스존과 바그너는 아직 지휘자가 제대로 뽑아낼 재간이 없는 것 같았다. 솔직히 정말 그냥 그랬다. 파리 오케스트라가 이렇게 심드렁하게 들리기는 처음이다. 물론 자리가 무척 안좋았지만 그래도 제2바이올린과 콘트라베이스만은 지나치게 자세히 들을 수 있었는데, 지독한 밋밋함이 연주자들의 탓 만은 아닌 것 같았다.
리스트 협주곡들은 정말 좋았는데 아마도 반 이상은 바렌보임의 피아노 덕분이었을 것이다.
귀가 굉장히 즐거운 연주였다. 특히 협주곡 2번에서 물 위를 찰박찰박 두드리는 듯한 윤기 넘치는 피아노 소리 듣기 좋았다. 내가 그를 본 짧은 기간동안에도 바렌보임의 흰 머리가 늘어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지만 어쩐지 그의 패기와 집중력은 세월에 무뎌지거나 깎여나가지 않는 모양이다. 마지막을 장식한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의 한 음 한 음 곡의 서사에 벗어남 없이 탄탄하게 응집된 매서운 피아노는 정말 등골이 서늘할 정도였다. 바렌보임의 연주회마다 사람들이 백유로 가까이 되는 티켓을 선뜻 사고 홀을 가득 메우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절대로 관객들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볼 때마다, 그를 처음 보았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 2번 콘서트를 보고 와서도 그렇게 적었지만, 대단한 인물은 인물이라는 생각을 거듭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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