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코피에프, 스트라빈스키, 하이든과 쇼스타코비치를 전부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게다가 6개월만에 파리 오케스트라로 돌아온 에셴바흐.
그리고 에마뉴엘 엑스와의 피아노 곡이 자그마치 두 곡.
게다가 무척 들어보고 싶었던 쇼스타 5번.
거기다 맨날 놓쳤던 프로코피에프의 교향곡.
심지어 요즘 부쩍 관심가던 하이든 피아노 협주곡.

  • Sergueï Prokofiev
  • Symphonie "classique"
  • Igor Stravinski
  • Capriccio pour piano et orchestre
  • Joseph Haydn
  • Concerto pour piano en ré majeur
  • Dmitri Chostakovitch
  • Symphonie n° 5

그러나 오늘 자리 운은 몹시 안좋았다.
오른쪽에는 최소 20살 이상 나이차에 불구하고 금지된 사랑의 절절함을 굳이 공공장소에서 굳이 콘서트 중에 온몸으로 manifeste하는 한 쌍의 바퀴벌레.
왼쪽에는 콘서트에 책 읽으러 온 (정확히는 책장 넘기러 온) 독서의 여왕.
덕분에 신경이 무척 날카로워 진 상태에서 어렵사리 음악을 들었다.

프로코피에프의 "고전적" 교향곡은 무척 재미있었다.
마요네즈를 바른 약간 서걱서걱한 셀러리 맛이 있다.

오늘 에셴바흐 할아버지의 열정적인 지휘는 관객 입장에서 보기 좋았을 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꽤 훌륭한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스트라빈스키에서 하이든으로 이어지는 그 냉탕 열탕의 느낌.
대단했다. 예르비 주니어가 오고 나서 파리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점점 좋아지고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전임으로서 위엄 ㅎㅎ을 확실히 보여준 오늘이었다. 르몽드에서는 2000년 당시 에셴바흐가 처음 부임했을 때는 정말 다들 기대가 컸고 연주도 아주 좋았는데 1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파리 관객들이 많이 실망했었다고 말했었다. (출처를 다시 찾기가 힘든데 아마 2010년 9월 당시 예르비가 부임해서 시즌 첫 콘서트를 열었을 때의 기사) 하지만 오늘의 에셴바흐를 들었다면 르몽드 기자도 예르비도 마른 침 꿀꺽 삼키며 조금 긴장했을 듯하다.

에마뉴엘 엑스는 이차크 펄만과 너무 닮았다.
그리고 되게 겸손하고 웃는 얼굴에 사람이 무척 좋아보였다. 한 무대에서 스트라빈스키와 하이든을 연달아 들려준 사람. 그런 일을 하고도 그렇게 편안한 얼굴로 웃을 수 있다니 멋지다.

스트라빈스키도 하이든도 나는 조금씩 , 어느 정도씩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하이든의 매력을 정말 몰랐는데 요즘 브렌델의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를 어쩌다가 자꾸 듣다보니. 그리고 쿼텟도 조금씩 아주 천천히 귀에 들어오고 있다. 저번에 쾰른에서 보았던 트럼펫 협주곡도 괜찮았고. 또 씨디를 사야하게 될까봐 좋다 라고 확실히 말을 하지는 않겠다.
(스트라빈스키는 불레즈 때문에 이미 전에 샀으므로 괜찮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러닝타임이 45분이라는데 인터미션 때 시계를 보니 이미 9시 30분.
나는 몰상식의 아이콘 우불륜 좌독서 때문에 있는 대로 신경이 곤두서있는 상태였고 안 그래도 오늘 하루종일 좀 피로감이 있어 이걸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끝까지 남기를 너무 잘했다.
엉엉 쇼스타코비치 너무 좋아요.
1악장 마지막 바이올린 솔로와 피아노(celesta인가?), 3악장 라르고, 4악장의 다채로움과 화려함 그리고 피날레의 단호한 팀파니.
아으ㅏ으아아.
아휴.
입 헤벌리고 봤다.
에셴바흐 할아버지 등에서 신기루가 막 보이는 것 같았다. 정말 소리가 눈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왜 작곡가들이 오케스트라를 필요로 하는지 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번도 여기에 대해 굳이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왜 우리가 오케스트라를 필요로 하는지.

빨리 자야지. 아. 또 듣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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