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스존 심포니 4번 Italienne,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2번, 바그너의 Siegfried-Idylle, 그리고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마무리되는 프로그램이었다.
멘델스존과 바그너는 아직 지휘자가 제대로 뽑아낼 재간이 없는 것 같았다. 솔직히 정말 그냥 그랬다. 파리 오케스트라가 이렇게 심드렁하게 들리기는 처음이다. 물론 자리가 무척 안좋았지만 그래도 제2바이올린과 콘트라베이스만은 지나치게 자세히 들을 수 있었는데, 지독한 밋밋함이 연주자들의 탓 만은 아닌 것 같았다.
리스트 협주곡들은 정말 좋았는데 아마도 반 이상은 바렌보임의 피아노 덕분이었을 것이다.
귀가 굉장히 즐거운 연주였다. 특히 협주곡 2번에서 물 위를 찰박찰박 두드리는 듯한 윤기 넘치는 피아노 소리 듣기 좋았다. 내가 그를 본 짧은 기간동안에도 바렌보임의 흰 머리가 늘어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지만 어쩐지 그의 패기와 집중력은 세월에 무뎌지거나 깎여나가지 않는 모양이다. 마지막을 장식한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의 한 음 한 음 곡의 서사에 벗어남 없이 탄탄하게 응집된 매서운 피아노는 정말 등골이 서늘할 정도였다. 바렌보임의 연주회마다 사람들이 백유로 가까이 되는 티켓을 선뜻 사고 홀을 가득 메우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절대로 관객들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볼 때마다, 그를 처음 보았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 2번 콘서트를 보고 와서도 그렇게 적었지만, 대단한 인물은 인물이라는 생각을 거듭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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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볼거리 + 들을거리가 풍부한 공연이었다.
게다가 마무리는 라벨의 볼레로.
마지막 곡으로 정말 훌륭한 선택이었다.

조셉 폰스는 스페인 국립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자 상임지휘자로,
2009년 3월 경 데 파야와 바르톡 등의 레퍼토리로 플레이옐에서 그의 지휘를 본 적이 있다.

(2009/03/28 - 26 Mars 2009 - Orchestre de Paris / Josep Pons / Bartok, Ginastera, de Falla)

조그맣고 유쾌해 보이는 이 지휘자의 음악이 나는 꽤 마음에 든다.
그리고 내가 본 중 가장 춤을 많이 추는 지휘자 중 하나다. (그런 그와 1등을 다투는 바렌보임.)

어쩌다보니 바르톡의 피아노 콘체르토 2번을 금방 또 다시 듣게 되었는데 (지난번 바렌보임과 브론프만의 연주로) 이번에는 베레조프스키가 협연을 했다.
저번에 브론프만 때 보다 훨씬 더 좋은 자리에 앉아서 들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베레조프스키 연주가 더 해상도가 높게 들렸다. 둘 중 누가 더 낫다고는 말 할 수 없을 것 같다.  ㅎㅎ 그냥 다 좋다.
베레조프스키의 박력과 민첩함도 대단하지만 브론프만의 규모있는 연주도 멋있었다. 다만 파리 오케스트라의 퍼커션은 베레조프스키의 속도와 타건을 받쳐주기 조금 모자랐던 것 같고 슈타츠카펠레 베를린은 피아노를 잡아 먹을 듯한 기세였던 점이 전체적으로 듣기엔 비교포인트인 것 같다.
조금 어려운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번 반복해서 들으니 친숙해진 듯도 하다.
현악 없는 1악장 정말 특이하다.

소프라노인 노라 귀비쉬는 솔직히 별로였다. 음... 셰헤라자데 좋아하는데 노래가 기대에 못 미쳐서 집중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옆의 이상한 여자가 또 블랙베리 자판으로 공연 중에 문자를 자꾸 보내서 더 짜증났기도 하고.

어쨌든 2부의 라벨 곡들은 정말 다 훌륭했다. 워낙 조셉 폰스가 이 쪽 전문이기도 하고
파리 오케스트라의 합주도 뒤로 갈 수록 괜찮았다. 콘서트마스터인 Roland Daugareil 의 바이올린은 무척 고풍스럽고 부드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늘함이 간혹 엿보이는, 파리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에 꼭 어울리는 소리를 낸다. 첫 곡인 alborada del gracioso 에서 특히 좋았다.
 
무엇보다 볼레로는 정말 기립박수를 받을 만 했는데. 관악 솔로들 훌륭했다.
오늘의 약점은 팀파니였다. 매 공연마다 팀파니에 지나친 관심을 쏟고 있는 나인데, 너무 기대를 한 탓인지 볼레로에서도 앞서 연주된 Rapsodie espagnole 에서도 팀파니가 제 몫을 다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 때문에 다른 파트들이 바닥없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볼레로는 정말 보석같은 곡이다.
공연에서 라이브로 듣기에 가장 행복한 곡.
황홀하게 겹겹이 쌓여가는 소리들을 관찰하며
시간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좋겠다
이 곡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몇번이나 생각했다.
정말 안 끝났다면 좀 힘들었겠지만 ㅋ 빨간 구두 동화도 아니고


요 며칠 궂은 날씨의 연속으로 기분도 컨디션도 바닥이었는데
볼레로 듣고 좀 좋아진 것 같다.
그러나 내일 모레 오랜만에 정명훈 공연이었는데 건강상의 이유로 다른 지휘자로 급 교체 메일 방금 받음 ㅠ.ㅠ 울고싶다.


위에 잠깐 쓴 김에
Roland Daugareil 씨의 바이올린 같이 들어요. 들어봅시다? 들어볼까요?
ㅋㅋ어색 어색

프로코피에프 바이올린 협주곡을 설명하고 부분적으로 연주하는 영상. (embed가 안됨 ㅠ)

http://youtu.be/1sGgXKqwNqc

David Zinman과 쇼스타코비치 리허설 할 때.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blues. 처음 스타카토 때 너무 휘청거리셔서 좀 무섭지만 ㅋㅋㅋ
가눌 수 없는 주체할 수 없는 자유로운 프랑스 영혼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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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남자친구 대신 지휘자+피아니스트+오케스트라에 하트뿅뿅 눈빛 보내고 온 발렌타인데이.


안스네스

모차르트도
앵콜의 쇼팽도...정말 좋았다
이미 큰 피아니스트라는 느낌 확
자기 색깔이 이미 드러나는

정갈하고 세밀하면서도 (정말 틀리지 않고 친다) 심지어 프랑스 옛 피아니스트들의 에스프리를 가진 듯 보인다 쇼팽을 칠 때 깜짝 놀랐다. 오히려 쇼팽을 앵콜로 골라 신선했다 ㅋ


그리고 소위 세계 정상급이라는 오케스트라들을 보면

elan을 쉽게 찾고
지휘자도 매우 쉽게 하며
아주 예민하게 반응
단원들 사이 호흡이 잘맞는건 당연한 얘기고
아주 깊다
쉽고 빠르게 깊음에 다다른다
그래서 변화무쌍하고 즐거우면서도 훌륭함을 잃지 않는다
베토벤 7번 1악장에서 플룻과 오보에의 이중창 정말 정말 멋졌다.
바이올린들도 감동적

마리스 얀손스의 지휘법은 정말 마음에 든다
깔끔하고 무엇을 어떤 소리를 내고 싶은건지 어떤 리듬을 타고 싶은건지 명확히 말해주는 몸짓
베토벤에서 그 지휘의 진가 ...완전히 꼭대기라는 느낌

앵콜은 피가로의 결혼 서곡!
무지 신났다
즐겁고 산뜻한 마무리
서곡들을 앵콜로 많이들 선택하는데 서곡으로 콘서트의 막을 내리는 것은 어째 우습다 ㅋ



  • Gioacchino Rossini
  • Ouverture de L'Italienne à Alger
  • Wolfgang Amadeus Mozart
  • Concerto pour piano n° 24
  • Entracte
  • Ludwig van Beethoven
  • Symphonie n°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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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2월 5일에 이어 다니엘 바렌보임과 예핌 브론프만,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은 오늘 바르톡 피아노 협주곡 2번 그리고 차이코프스키 6번을 연주했다. 어제는 바르톡 1번과 차이코프스키 5번이었다는데 나는 이틀 다 가지는 못했고 오늘만 다녀왔다. 그것도 겨우. 분명히 예약을 했었는데 시즌 첫 공연 때 한꺼번에 표를 받아가지고 올 때 이 날 것만 누락되어 있었던 것이다. 날짜 순서대로 표들을 정리해 두었는데 다음 공연 날짜는 2월 12일이어서 그냥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문득 예약 내역을 체크해보지 않았더라면 표를 사놓고도 공연을 놓칠 뻔 했다.
못갔었더라면 정말 울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대단한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도, LSO도 게반트하우스도 라디오프랑스도 다들 너무 훌륭한 오케스트라들이지만 드레스덴 오늘 연주는 정말 최고였다. 컨디션이 아주 좋았던 모양이다. 프로그램도 좋았고 지휘도 뭐라 말할 수 없이 훌륭했고 오케스트라의 기량과 매너도 대단했다. 아직도 떨린다.

예핌 브론프만의 피아노 연주도 역시
대단하다는 말 밖엔... 사실 바르톡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그냥 모르고 들어도 무얼 말하려는지 알겠는 , 명징하고 힘찬 살아있는 연주였다.
옆의 아주머니 말로는 어제 협주곡 1번은 정말 그로테스크하고 히치콕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무서운 분위기였다는데 ㅋㅋㅋ 오늘은 아니어서 다행이라시더라.
그리고 음... 바르톡 음악은 차가운 혹은 서늘한 (열대)우림 같다.
좋던데
무엇보다 최근 집중적으로 들었던 베토벤, 슈베르트 곡들에서 그다지 쓰이지 않는 다양한 악기들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하지만 오늘 최고였던 건 역시 차이코프스키 6번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연주였다. 오케스트라의 힘이 엄청났다. 그냥 소리가 크다 정도가 아니라 부피와 질량이 큰 연주였다. 소리가 큰 게 아니라 아우라가 큰 연주였다.
관악이고 현악이고 타악이고 어느 한 파트 뒤쳐지거나 모자라는 일 없이 그냥 거대한 하나의 굉장한 형체였다. 이건 그냥 여담? 이지만 오늘 내 자리가 2층 발코니 앞에서부터 H열이었는데도 3악장에서는 바닥에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무슨 귀가 아프고 시끄럽고 그런게 아니고 그냥 황송한 것이다. 나는 내내 웃는 얼굴로 공연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배실 배실 웃음이 나오더라. 비창인데 이러면 안되는데... 그런데 악기 하나 하나가 튀어나올 때마다 분위기가 변할 때마다 악장이 넘어갈 때마다 탄복을 하는 것이다. 곡도 곡이지만 연주 때문에 공연 내내 순수한 즐거움 그 자체를 느꼈다. 너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막 좋아지고 맛있다는 말을 나도 모르게 연발하게 되듯이 오늘 차이코프스키는 비창은 맞는데 그래도 ......행복한 비창이었다.

나는 바렌보임의 힘차고 강렬한 지휘를 꽤 좋아하는 편인데 오늘은 특히 더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귀기울이지 않을 수 없고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지휘였다. 음...너무 과찬일색인가 그런데 정말 말도 안되게 훌륭한 공연이었기 때문에. 여기다 한 마디를 더 쓰면 칭찬 한마디가 느는 것이고 한 문장을 더 쓰면 칭찬이 한 문장이 늘어날 것이다. 앗 좀 그러니까 그냥 한마디 하자면 1악장에서 좀 두드러진 현상이었는데 너무 네모네모로 가는 느낌을 받았다. 프레이징이 딱딱하다고 해야하나. 네모 네모 네모... 요거 끝나고 요거 요거 다음에 요거 이런 느낌 그런데 정말 잠깐이었고 그때 좀 이상했던 것 빼곤 나머지는 별 다섯개.

그리고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 이어 오늘도 팀파니의 왕 한 분을 뵈었다.
어휴... 진짜 팀파니 대단했다. 아니나 다를까 바렌보임도 공연 끝나고 나서 팀파니 주자를 제일 먼저 일으켜 세워 박수를 받게 하였다. 물론 팀파니스트니까 원래도 일어나 있었기 때문에 별로 티는 안났지만 그래도 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다시 듣고 싶다.

앵콜도 후하게 두 곡이나 해주었는데 어제도 그랬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체력들이다.
첫번째는 시벨리우스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 중... 멜리장드 어쩌구 였는데 잘 못들었고
두번째는... 어떤 서곡인데 꽤 유명한 어떤 서곡인데 나는 잘 모르겠다. 베를리오즈의 벤베누토 첼리니 서곡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요런 비슷한 느낌이었다. 바그너인가 생각도 했는데 내가 가지고있는 바그너 서곡들 중에서는 없었다.
(브론프만과 바렌보임이 함께 연주한 피아노 앵콜곡은 방금 문득 생각났는데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 op46 1번 다장조 였지 않나 싶다. 아니더라도 이런 비슷한 짜임의 연탄곡)

아. 엄마아빠에게 한국에서 바렌보임이 하는 베토벤 교향곡 전곡 싸이클 티켓을 사드리고 싶다
언제나 가능한 일일런지.

차이코프스키 6번 교향곡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오늘도 역시 3악장 끝나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하지만 오늘은 아마도 사람들이 몰라서가 아니라 연주가 너무 대단해서 도저히 뭔가 소리를 지르거나 박수를 치거나 발을 구르거나 뭐든 하지 않으면 다들 견딜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옆에 앉은 그럼피 올드맨 할아버지가 쳇 하고 조소 섞인 불평을 했기 때문에 나는 겁이 나서 박수를 이내 거뒀지만 다들 한참 박수를 치고 환호를 보냈다.

이 할아버지로 말할 것 같으면 원래 내 바로 앞자리에 앉아계셨는데, 2층 좌석은 열 사이 경사가 가팔라 앞좌석 사람이 몸을 앞으로 숙이면 뒷 사람은 무대를 볼 수 없게 되어있어 할아버지가 고개를 앞으로 쑥 내밀고 몸을 굽히고 계시길래 죄송하지만 제가 무대를 거의 못 보니 좀 바로 앉아주실 수 없겠느냐고 부탁을 했더니 .......대꾸도 안하고 또 쳇! 하고 비웃으시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나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한참 나중에야 "노력은 해보겠다" 하시더라.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엄마야...
내 옆에 계셨던 아주머니께서 그 할아버지 옆자리들이 비었으니 우리가 앞으로 가자! 하고 제안하셔서 나는 졸지에 그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옆자리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꽤 많이 나눴는데, 외국 오케스트라들을 훨씬 좋아하신다는 말씀이 웃겨서 기억에 남는다. 외국 오케스트라 특히 독일 오케스트라들은 discipline 이 있다는 것이다. 연주 실력도 훌륭할 뿐 아니라 매너도 좋고 지휘자에 대한 존경심(인지 복종인지)과 착실함이 좋다고 하셨다. 어제 공연 끝나고 드레스덴 연주자들을 연주회장 앞 길에서 보았는데 다들 줄을 딱 딱 맞춰 서있더라며 그게 어찌나 멋있었는지에 대해 한참 이야기 하셨다... ㅋㅋ
그래서 그럼 프랑스 오케스트라들은 싫어하세요? 하니까 걔네들은 너무 arrogant 하다며...
저번에 salle gaveau에서 어떤 (아마도 lamoureux나 pasdeloup?) 프랑스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았는데 지휘자랑 의견차로 다툼이 있었는지 어쨌는지 공연이 끝나고 지휘자가 단원들을 일으켜 인사를 시키려고 하자 대다수가 들은척도 안하고 꿈쩍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도무지 몰상식하며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목청을 높이셨다 ㅋㅋㅋ 이건 아마도 국민성의 문제라며 ㅋㅋㅋ 본인도 프랑스 인이면서... 역시 프랑스인들은 정말 재미있다.


ERRATUM!
실컷 써놓고 한참 뒤
벽에 붙여놓은 티켓들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드레스덴이 아니라 베를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그렇지. 바렌보임이라면 그게 더 말이 되지.
ㅠ 바보같다.
드레스덴 아니고 슈타츠카펠레 베를린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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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공연들

ouïe/classique 2010. 12. 12. 18:01

12월 4일의 바딤 레핀 +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의  프로코피에프, 야나첵, 라벨 소나타.
12월 6일의 차이코프스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페도세예프의 "전쟁과 평화" 프로젝트

둘 다 물론 플레이옐에서 있었고.
어떻다 말하기 입 아플만큼 좋은 공연들이었다. 제 값을 주고 봤어도 돈 아깝지 않았을 것 같다. (이건 너무 당연한가.)

레핀의 바이올린은 들으면 기분이 되게 좋아진다. 정확히 말하면 레핀은 연주할 때 기분이 굉장히 좋아보인다. 그래서 보고 있는 사람도 덩달아 즐거운 것 같다 ㅎㅎ
아무리 심각하고 엄청난 기교가 요구되는 - 심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 어려운 곡이어도
특유의 장난스러운 표정과 큼직 큼직한 동작으로 슥 슥 연주해내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뭐 사람이 저런가 무서우면서도 ㅋㅋ 기분이 좋다.
베레조프스키의 반주도 훌륭했다. 같이 갔던 친구는 특히 그의 연주를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무서운 러시아의 두 거장이 호각을 이루는 긴장감 넘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두 사람이 너무 편안하게 연주를 하기에 그 자체로 음악 외적인 재미마저도 있었다.
다만 아무래도 그들에게 기술적으로 너무 모든게 쉬워서인지 둘이서 약간 기교 잔치를 벌이는 바람에. 바이올린 소나타의 수수하고 질박한 맛은 찾기 힘들었고 (특히 야나첵이나 프로코피에프) 그 곡 자체가 주는 울림보다는 뭔가... 그냥 레핀을 보고 온 느낌이 많이 들었다. 라벨은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저번 조슈아 벨보다 훨씬 더 라벨 같았다.

이 날 앵콜곡은 3곡이나 있었는데 그것도 아주아주 긴 곡들로만.
왜인지 본 프로그램보다 더 느낌이 좋더라. 안타깝게도 무슨 곡들이었는지 모르겠다.
계속 계속 다시 무대로 나오길래 친구랑 음 저사람들 오늘 뭔가 잘되나보다 하고 귓속말을 했다. ㅋ


차이코프스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페도세예프의 6일 공연이 나는 참 마음에 들었는데 이 날 연주된 곡들을 아우르는 주제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였고 지휘자에 의해 기획되고 연출! 된 일종의 프로젝트 물이었다. 러시아의 유명한 배우들이 맡은 (나는 러시아 영화를 잘 몰라서. 처음 본 사람들이었으나) 곡 중간 중간에 극적인 나레이션 역시 이 날 프로그램을 특별하게 한 요소 중 하나였다. 전쟁과 평화라는 키워드가 말해주듯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침공을 러시아 사람들의 관점에서 풀어낸 이야기였는데 프랑스 관객들이 보기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나는 마냥 재밌었다.
첫 곡은 베토벤의 에로이카 1악장. 나는 저번 도흐나니 때 보다도 훨씬 좋았는데 1악장 뿐이어서 좀 아쉬웠다. 그 후에는 프로코피에프의 오페라 전쟁과 평화 서곡과 왈츠, 그리고 마지막으로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이 연주되었다.
1812년 서곡이야말로 이 날의 백미였는데, 정말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을 정도였다. 작곡가의 이름을 걸고 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또 프랑스라서 뭔가 미운 마음을 담아 필사적으로 연주하는 건지 ㅎㅎㅎ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숨쉬는 것을 잊을 정도로 엄청나게 강렬한 순간이었다.
프랑스 사람들마저도 약간 정신을 잃고 미친듯이 환호하더라.
또 듣고싶네. 정말 곡 자체가 너무 멋있다. 공부 좀 해야지. 뭔가 굉장히 이야기가 많이 얽혀있는 곡인 것 같던데 뭐 하나도 모르니 약간 답답하다.
집에 와서 듣는 건 정말 그 느낌이 안난다 ㅠ ㅠ.,,,.으어..다시 듣고싶어

그리고 bis도 두 곡이나 해주었다. 음 ㅠ무슨곡인지 까먹음
그런데 마지막 앵콜곡에서 갑자기 근엄한 타악기 할아버지들이 막 쌈바...악기 같은 요상한 방정맞은 악기들을 막 찰랑찰랑찰랑 흔들어대셔서!!!!
혼자 갔는데 웃음 참느라 힘들었다 ㅠㅠㅠㅠ
진짜 아직도 웃기다. ㅋㅋㅋㅋㅋㅋ
아래 사진 오른쪽 위에 네분이서 쑥덕거리며 웃으시는 분들이 바로 그 정열의 쌈바의 주인공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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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기에프와 마린스키극장오케스트라의 말러 싸이클 중 아마 두번째 날짜.
오늘 들은 곡은 교향곡 제 2번 Résurrection 이었다.
지난 9월 8일인가 교향곡 8번 공연이 있었는데 한국에서 돌아오는 날짜를 미룬 관계로 표도 예매해놓고 가지 못해서 너무 안타까웠는데 그 뒤로 벌써 세달이 넘게 흘렀으니 꽤 오랜 기다림이었다.

말러의 교향곡들은 정말 재미있다.
혼을 빼놓을 듯 웅장하고 이 세상 것이 아닌 듯 고고하고 성스럽다가도
어떤 부분에서는 또 한없이 진부하고 청승맞고 촌스럽고 신파적이다. 그것도 대놓고...
듣다보면 "이 쯤에선 너는 감동에 겨워 울어라." 하고 자막이 따라 나올 것만 같다. 그것도 아마도 뻘건 궁서체로다가.
베토벤이나 다른 진지한 작곡가들의 allure가 느껴지는 담대하고 영웅적인 패시지에 흠뻑 젖어있는 그 때, 아 정말 좋다, 하는 그 때
곧바로
"뻥이야." 하듯 이어지는
satirique 하고 난스러운 음의 뒤섞임이 순진한 청자를 당혹케 한다.
두 상반된 감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어떤 단어로도 정의"되고 싶지 않아보이는" 그런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이지 대단한 매력이다.

팀파니가 두 대에 다른 타악기들도 많이 나와서 처음에 너무 신이 났는데 (분주한 타악기 연주자들를 보는 건 정말 신기하고 즐겁다) 1악장이 겨우 끝나고부터는 귀도 아프고 머리도 멍멍하고 자꾸 깜짝깜짝 놀래느라 체력 소모가 생각보다 컸다.
나중엔 제발 끝내 달라고 애원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찌나들 때려대던지. 어쨌거나 마린스키의 타악기 주자들의 능수능란한 솜씨는 과연 관객들의 박수를 독차지할 만 했다. 정말 "솜씨" 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퍼포먼스였다.
특히 객석을 향해 장풍이라도 쏠 듯 오오라를 마구 뿜어내던 심벌즈 주자와 역시 박력 넘치는 2명의 팀파니 주자들은 정말 이 곡을 위해 태어난 사람들같이, 또 이 곡이 그들의 마지막 무대인 것 처럼 대단한 연주들을 했다. 심벌즈가 그렇게 화려한 악기인지 처음 알았다. 전자렌지가 아니라 무슨 마이크로 웨이브가 꾸불꾸불 장내를 까득 채우는 느낌에 소름이 다 돋았다. 내가 그 바로 앞에 있었다면 그 기에 눌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공연 도중에 몇몇 트럼펫? 주자들과 타악기 주자들이 황급히 무대 밖으로 나갔다가 합창 시작 전에 돌아오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원래 기술적으로 그렇게 하게 되어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번 공연에서만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마지막 악장에서의 합창에서는 ...갑자기 왜 사람을 감동의 도가니에 밀어 넣는지 좀 뻘쭘했다.
그렇지만 그 망설임도 잠시, 어떻게든 거리를 유지하며 비꼬고 싶은 유치한 마음을 망각한 채, 코끝이 시큰해져 울컥하는 결정적인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역시 마무리는 조금 촌스러운 느낌이었다.
1악장은 정말 재미있었는데 말이다.
갑자기 9번이 너무 듣고 싶어진다.

옆 뒤 앞 사람들 너나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브라보를 외쳐댔지만
아직도 머리가 딩 딩 울리고 엄습하는 피로감에 즐거움과 환호마저도 힘들었던 나는 내 몫의 박수를 보낸 후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내일은 1번과 5번 공연이 있다.
5번이 기대된다. 머리가 좀 덜 아팠으면 좋겠다.
어쨌든 말러의 교향곡은 그냥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것 같다.

오는 18일 미하일 플레트네프 (범죄자.ㅠㅠㅠㅠㅠ), 러시아국립오케스트라와 기돈 크레머의 공연으로 올해 스케줄도 마지막이다. 우와. 어쩐지 정말로 방학을 맞이하는 기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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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표를 사 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아니어서 정말 놀랐다. 왜 예매했다고 생각했는지 나도 내 기억을 도대체 모르겠다.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아직 좌석은 충분한 것 같아서 일찍 가면 표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는데 날씨가 너무 궂고 오늘 낮에 여행사 사람과 싸우느라 공부를 많이 못한 관계로.
갈까 말까 조금 고민했지만
아예 이렇게 망친 날은 저녁까지 놀아주는 게 좋다는 생각에.
자알 다녀왔다.

코바세비치의 연주는 한번도 의식하고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아르헤리치의 남편이기도 했고 최근에 누군가가 좋다는 말을 하기에 한번 직접 연주를 보고 싶었다.
진만 역시. 베토벤 트리플 콘체르토 말고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은근히 이쪽 여론에서도 화려한 대스타는 아니어도 속이 알찬 지휘자로 칭찬받고 있기에 궁금했던 차였다.
그리고 또 하나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지휘자에 따라서 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어떻게 달라지는 가 하는 그냥 혼자만의 조그만 .. .궁금증이랄까, 탐구생활...같은 거.
올해 시즌부터 파리 오케스트라 공연을 정말 줄기차게 다녔는데 두번 정도 빼고는 매번 지휘자가 달랐다.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사실 내가 다니는 공연에서 "명 지휘자"가 아닌 이가 포디움에 서는 일은 거의 없고, 그렇다면 정말 뭔가 흥미로운 비교가 될 것 같았다.
일단 오늘 공연까지의 감상으로는, 실제로도 지휘자에 따른 연주의 차이가 아주 선명하지는 않아도 꽤 많은 부분에서 그것도 의외의 부분들에서 드러난다는 느낌을 받아 조금 뿌듯하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정리해서 써볼 만 한 이야기인 것 같다.

아무튼 오늘의 프로그램은
마크-앙드레 달바비(Marc-André Dalbavie) 의 야나첵의 작품에 대한 관현악 변주 (Variations orchestrales sur une oeuvre de Janacek) 프랑스 초연,
그리고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1부를 구성했고
2부는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 La Grande로 마무리하게 되어있었다.

달바비의 작품은 다시 한번쯤 제대로 들어보아야 뭐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다지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저번에 들었던 아르보 페르트나 아주 충격적인 논노 정도 빼고는 현대 작품들은 아직은 귀에 많이 설다.

베토벤 협주곡은 정말 신났다.
늘어짐 없이 아주 귀에 촥 촥 감기는 산뜻하고 정말 즐거운 연주였다.
그리고 나는 데이빗 진만이 이렇게 ... 자꾸 이런 말 좀 그렇지만 이렇게 귀여운 사람인지 몰랐다
동글동글하고 단단한 어쨌든 동그란 할아버지인데 (머리와 수염이 희어서 더 할아버지로 보이는 걸지도) 지휘하다 신나게 막 빨간 볼을 하고 웃으면서 율동을 한다. 나도 모르게 따라서 함박웃음.
내가 볼 때 곡에 집중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지휘자의 움직임과 시선을 눈으로 빈틈없이 좇는 것인데 진만 같은 지휘자는 정말 온몸으로 음악을 다 말해주는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겠다. C. 클라이버나 넬슨스 같은 ㅋㅋ 넬슨스보다는 확실히 좀 얌전하지만. 그냥 오버액션을 한다는 말이 아니라 정말 정확한 동작으로 곡을 읽어준다. 내가 오케스트라 단원이라면 진만을 정말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뭐 직접 겪어본 일은 없으니 어디까지나 그냥 추측이지만.
피아노의 코바세비치와 들어가는 박자를 맞출 때 뿐만 아니라 중간 중간에 어떤 감정을 더 넣어달라던가 (아마도) 이런저런 부탁? 지시를 하는데, 정말 너무 귀여운 동작이어서 내 주변 사람들도 진만을 보고 껄껄껄 웃었다.
코바세비치는 피아노를 "가지고 노는" 종류의 연주자인 것 같았다. 아주 쉽게 친다. 그의 등에서는 어떤 긴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뭔가 전체적으로 호소력이 있다거나 이야기를 걸어오는 연주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virtuose임에는 틀림 없다. 피아노 솔로 부분들은 정말 박수를 치고 싶게 만드는 멋진 연주였다.
1악장의 카덴차를 듣고 거의 뭐 이건 곡 하나를 다 들어버린 만큼의 용량이라고 생각했으나. 3악장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특히 오케스트라 연주가 죽여줬다. 어휴. 필요할 때는 박력있으면서도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아주 해상도 높게 살려낸다. 곡의 정서와 관계없이 들어서 정말 기분이 좋은 연주가 있는데 오늘 베토벤이 그랬던 것 같다.

코바세비치는 앵콜곡으로 베토벤의 바르카롤레(아마도)를 연주했는데
파리 관객들에게는 그다지 공감을 끌어내지 못한듯 하다. 세상에 앵콜 한번 하고 나니 바로 박수를 멈추고 연주자를 고이 들여보내는 일은 처음 본다. 공연이 너무 늦게 끝날까봐 겁나서 그랬나? 설마. 그건 아닌 것 같다.

슈베르트 9번 역시 연주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아직 슈베르트 교향곡과는 그다지 친숙하지 않다. 아니 슈베르트와 그냥 별로 친숙하지 않다고 해야 맞다. 나는 아르페지오 소나타하고 피아노 즉흥곡만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데 워낙 진만의 카리스마가 대단하고 지휘자가 직접 악보를 하나하나 손으로 짚어가며 들려주는 느낌이라 거의 처음 듣는 곡인데도 불구하고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지 않나 싶다. 듣다가 내가 좀 모르겠어서 괜히 프로그램 들여다보고 괜히 천장에 조명은 잘 붙어있나 쳐다보고 이러면 그러지말고 좀 다시 와서 들어봐라, 이런거다, 그런 말을 건네는 것 같이 차근차근 서두르지 않는 연주였다. 마디 마디가 소절이 넘어가는 연결이 아주 좋다. 막 콰과광했다가 밑바닥 없이 휙 떨어져 버리는 그런게 아니라 떨어질 때도 두터운 바닥이 받쳐져 있어서 안심하고 들을 수 있는 그런 연주.
어쨌든 곡 자체는 역시 좀 더 들어봐야 알 것 같다. 확실히 베토벤 교향곡들과는 많이 다르구나. 낭만주의 음악이라는게 이런 건가 ? 정말 새삼스럽게 이제와서 자문해보았다.

오늘의 즐거운 일 하나. 즐거운? 아무튼 재미있는 일
인터미션 때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와 코바세비치와 달바비가 내 자리 근처에 서서 다른 사람들과 (아마도 음악 쪽에 있는 사람들인듯)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ㅎㅎㅎ오랜만에 보는 에셴바흐.
되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인물들을 옆에서 볼 수 있는게 재밌다.
2부가 시작되자 에셴바흐는 사라지고 코바세비치와 달바비 등은 나와 같은 열에서 공연을 관람했다.

내일도 같은 프로그램으로 공연을 한차례 더 하는데
파리에 계신 분들이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꼭 가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진만의 지휘가 워낙 깔끔하고 단단해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보통은 커튼콜 한번 정도 하면 일어나서 집에 가는데, 오늘은 곡들이 좀 길어서 평소보다 훨씬 늦게 끝났는데도 끝까지 앉아서 박수를 쳤다.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
orchestre de paris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david zinman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동영상을 바로 따올 수가 없어서 좀 불편하지만 그래도 짧고 재밌으니까 추천해봅니다.

orchestre de paris

아니면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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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달 들어서만 네번째 공연 관람. 플레이옐에 거의 출근하는 기분으로 다니고 있다.
내가 혼자서 이렇게 맨날 오는 걸 직원들이 알까봐 ... ..매번 다른 옷을 입으려고 신경씀
그러나 아마도 이미 다들 알거다...... 걔가 얘라는 걸
아무튼 오늘은 파보 예르비 + Orchestre de Paris의 콤비에 첼리스트인 스티븐 이설리스의 협연이었다. 원래는 요즘 잘나가는 ! 트룰스 뫼르크가 출연하기로 되어있었는데 건강상의 문제로 취소되어서 조금 아쉬웠지만. 라디오에서 인상깊게 듣고 꼭 실연을 한번 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더군다나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이 프로그램 되어있었기 때문에. 언제부턴가 이 곡은 나에게 있어 첼리스트의 호불호를 결정짓는 중요한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첼로가 어느 만큼이나 인텐스하고 야성ㅋㅋ적이고 날카롭고 예민할 수 있는지 유감없이 보여주는 곡인 것 같다.

어제의 윤디리에 이어 오늘도 락스타 출연...
이설리스는 래틀과 비슷한 은빛 - 내지는 잿빛의 푸들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보잉을 할 때마다 마치 헤드뱅잉을 하듯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댔다. 특히 1악장의 그 악마같은 intensity와 그 음색에 맞추어 강아지같은 머리털을 휙 휙 털어대고 발을 쿵쾅쿵쾅 구르는 첼리스트를 보는 것은 나름 꽤 재미있었다.
올 1월에 같은 곡을 연주했던 고티에 카퓌송은 역시 찰랑이는 테리우스 단발을 흔들긴 했으나 훨씬 얌전했는데 사람마다 이렇게 다르구나. 아무튼 이설리스의 화려한 무대매너(!?)에 적응하는데는 약간 시간이 필요했다.

오케스트라를 같이 놓고 보면 1악장에서 관악이 약간 ...그냥 그런 것이 좀 아쉬웠다. 뭔가 물에 술탄듯 술에 물탄듯 멩--한 소리. 1악장에서는 첼로와 첼로에 대한 관악의 메아리가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말이다.

이설리스의 첼로는 은근하고 나긋나긋한 느낌이 강했다. 따라서 장한나의 날렵한 보잉과 강렬함, 로스트로포비치의 웅장하고 두터운 소리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그래도 속도감이나 그 막 찢어지는 처연함? 애절함의 표현에 있어서는 훌륭한 연주였다고 생각한다. 뫼르크가 궁금하단 말이지. 둘째 카퓌송의 연주도 난 굉장히 좋았다.
이설리스의 흐느끼는 듯한 첼로는 무엇보다 카덴차 부분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소름이 돋을 정도. 그리고 4악장에서도 힘있는 마무리 훌륭했다.
앵콜곡은 카잘스의 song of the birds였다. (확실하지 않은데 아마도 맞는 것 같다) 연주자들이 어떤 앵콜곡을 선택하는 지도 굉장히 흥미로운데 - 보통 본인의 개성을 짧고 강렬하게 피력할 수 있는 곡을 고르니까 - 이설리스의 연주는 뭔가 딱 내가 생각한 그 같았다. 아 - 하고 탄복하게 되는.

그 밖에는 지휘자가 중간중간 첼리스트 눈치를 보며 악보를 넘겨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음.
글쎄 오늘 오케스트라는 아주 아주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제1바이올린과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팀파니는 잘했다고 생각. 팀파니를 제외하고 마지막에 가장 박수를 많이 받은 건 호른과 바순이었는데 그래도 음... 1악장에서 좀 실망한터라.

쇼스타코비치 협주곡 전에는 4일날에 이어서 시벨리우스의 Tapiola가 연주되었는데, 웅장하고 참...... 이상한 곡이었다. 마지막 현악으로 세차게 몰아치는 칼바람 소리를 마구 낼 때는 정말 장관이고 또 압권이었지만. 언젠간 이해할 수 있게 될까? 

2부는 보지 않고 집에 왔다. 오늘은 컨디션도 별로 안 좋고 날도 추워 집에 늦게 오기 싫었다.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6번이었는데... 이상하게 매번 프로코피예프 교향곡은 못 보고 집에 온다. 인연이 아닌가봐. ㅠ

그리고 오늘의 신나는 일. 23,24일 연달아! 샹젤리제에서 크리스티안 틸레만! 과 비엔나 필하모닉!  베토벤 싸이클! 자리 확정됐음 너무너무 기대됨 으으



이런 공연을 5유로에 볼 수 있다니 정말 기가 막히다.
그것도 오케스트라석 F열이었다. 비록 귀퉁이였지만 공연 시작 직전에 자리 좀 비어있어서 거의 중간에서 볼 수 있었다.

아래는 공연 시작 전에 나와서 연습하는 콘트라베이스 주자들. 완전 멋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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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만에 윤디리의 리사이틀에 다녀왔다.
녹턴 중 유명한 넘버 5곡, Andante spianato et grande polonaise brillante op.22 그리고
마주르카 4곡 op.33 과 두번째 소나타, 그리고 op.53 영웅 폴로네즈.
앵콜곡으로는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중국 가락의 화려한 곡 하나,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étude Révolutionnaire.

부클릿(은 사실 안 샀지만)에 적혀있는 대로 윤디리는 정말 피아노계의 락스타가 될 작정인가보다.
박자감이 굉장히 역동적이고 다채로워졌다. 덕분에 곡이 색다르고 재미있게 들린다.
소나타 2번은 상당히 좋았다. 긴장감과 여유로움이 동시에 느껴지게 하는 능숙한 완급 조절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고로 테크닉도 뭐 이 정도면 가히 완벽하다고 불릴 만 하다고 본다.
음색도 정말 정말 예쁘다... 그래 무엇보다 소리가 너무 예쁘다. 어쨌든 훌륭한 피아니스트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부가 끝나자마자 기립 박수가 있었을 정도이니.
좀 아쉬웠던 것은 op.53 폴로네즈에서 드러났는데 ...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강해서 작은 음들은 묻혀버리거나 똑같이 큰 볼륨으로 연주되었고 줄곧 피아노 현이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진 소리가 6분 이상 듣고있기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우선 내가 이 곡에 기대하는 건 그런게 아니니까 더... 중간에 좀 너무 나갔다 싶은 기교가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다.
앵콜 때도 아직도 기운이 남았는지 레볼루셔너리에서는 아주 그냥 대놓고 코아ㅗ카와콰와쾅

아고 피곤하다 ㅋ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폴리니의 héroïque 과 레볼루셔너리를 들으며 고집스러운 얼굴을 하고 느릿느릿 걸어왔다.

아참 그리고 윤디리가 매 공연 앵콜곡으로 중국 곡을 연주하는 것은 참 좋아 보인다.
특히 프랑스에서 그러는 것은 좀 더 좋다. 괜히 내가 우쭐하다.
오늘은 되게 웃겼던게 윤디리가 그 중국 곡 이름을 말했는데 다들 못 알아들어서 객석에서 "께스끄..." "께스끄" "께스끄" (뭐래? 뭐라고? 하는 질문의 첫 마디) 하고 동시에 이곳 저곳에서 웅성웅성했던 것
그리고 연주가 시작되고 그들 귀에 선 동양적인 음색이 드러나자 또 사람들이 엄청 많이 동시에 "아 시누아.." "아 쎄 쉬누아ㅏ.." "아 시누아..." ㅋㅋㅋㅋㅋ  (아 중국꺼... 아 중국..) 바보들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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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일찍 일어나야 되는데... 10분 안에 글을 쓰고 침대로 뛰어가는 것을 목표로.조금 안타깝지만.

오늘 첫 곡으로는 Arvo Pärt의 "Silhouette"라는 곡의 초연이 있었다.
아빠가 얼마전 정명훈의 지휘로 페르트(라고 읽나)의 곡을 듣고 굉장히 좋았다고 하셔서 작곡가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늘 보러가길 참 잘한 거 같다.
프낙에 달려가 더 베리 베스트 오브 아르보 페르트 따위의 음반을 살지도.
왈츠 박자에 (뭐 춤곡이라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지만) 현이 굉장히 아름다운 가볍고 세련된 곡이었다. 이 곳에서 현대 곡들을 상당수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늘 왜 현대음악은 꼭...선율이 없어야 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특히 루이지 논노 ㅠ으악) 페르트의 곡은 정말 좋았다.
잘 모르지만 뭐 고전 음악의 맥을 이어나가면서도 신선하고 시대 감각에 충실한 곡이 아닌가 싶다
귀스타브 에펠과 에펠탑의 이미지로 쓴 곡이라는데, 이번 시즌부터 파리 오케스트라에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파보 예르비와 그의 오케스트라에 헌정되었다.
곡이 끝나자 1935년생의 훤칠하면서도 소탈한 인상을 한 작곡가 본인이 무대로 뛰어 올라와 박수 갈채를 받았다. 저 오늘부터 팬이예요..

레온스카야 아주머니의 피아노는 공연에서는 두번째 듣는다. 라디오에서는 많이 들었지만
son allure d'une "grande dame" contrastée par un visage avenant et tout souriant,
커다란 꽃무늬가 있는 풍성한 스커트를 좋아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피아노는 leonskaja같이...그녀의 피아노에는 사자같은 위엄이 있다.
다채로운 터치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지만 기본적으로 묵직한 톤을 낸다.
저번 실내악 공연에서도 그렇고, 다만, 뭔가 아직 특별한 무언가는 느껴지지 않는다.
리히터와 음악적으로도 실제 친구로서도 가까운 사이였다던데 리히터와는 많이 다르다.
그리그의 콘체르토는 썩 잘 어울렸지만... 역시 뭔가 음 참 잘 연주되었다! 마침표. 라는 느낌
그리그의 곡은 정말 멋지다. 정말 정말 매력적인 음악이다.

그리고 마지막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아 어서 자야하는데
시벨리우스의 곡들을 제대로 들어본 일이 한번도 없는 나는 사실 이 마지막 곡에 굉장히 기대를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들어온 교향곡들과는 짜임새부터가 사뭇 달라 처음부터 집중해서 듣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지루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주로 듣는 베토벤이나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등의 교향곡들, 내면의 어떤 감정의 호소, 분출, 독백의 음악과는 아주 출발부터가 다르다고 나는 생각했는데, 굉장히 외향적이고 선이 굵어, 엄숙하면서도 소박한 독특한 정감이 있었다. 듣는 사람이 쪼그매지는 기분
마지막 악장의 피날레에서는 와 역시 이 맛에 산다 는 느낌 하하
전율 그 자체. 이래야지. 으. 멋지다.
알고보니 아버지 예르비가 시벨리우스 교향곡에 아주 강하시다고.
아드님 예르비는 아무리 봐도 타인의 삶에 나오는 비즐러와 인상이 자꾸 겹친다. 눈썹이 좀더 연한가? 나는 평생 음악따위는 몰라도 사는데 불편함은 없었네 하고 딱잘라 말할 것 같은 뻣뻣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오늘 공연에서 각기춤 같은 우스꽝스러운 동작도 개의치않는 열정적인 지휘와 또 기분 좋아 웃으시는 걸 보니 음 역시 피끓는 음악인이군 싶었다.




+ 아르떼 라이브웹에 올라온 실황 영상. 좋다
아이고 기침들 좀 그만하시라고요 ..



+ 레온스카야가 연주한 앵콜곡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F Major 중 아다지오 악장이었음.
옆자리 사람들이랑 대체 무슨 곡이었는가 궁금해했는데 어떤 아저씨는 슈만이라고 하고 나는 모차르트일거라고 했었다. 왼손이 계속 모차르트 반주여서......프랑스사람들을 이런걸로 이기는게 제일 기분 좋다. ㅋㅋ유치하지만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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