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날들에 대한 보상심리인지 뭔지 책과 음악에 몰두하고 있다.
Borodin의 Polovtsian dances (Prince Igor) 17번에 완전 빠져서 인터넷에서 계속 찾아 듣다가
드디어 주문했던 씨디가 도착해서 무지 기쁘다. 사실 밤중에 갑자기 일어나서 뭔가에 홀린듯 한 네다섯장을 무더기로 주문한 거라서 너무 충동적으로 산 거였으면 어쩌나 내심 초조했는데,
일단 한 장씩 들어보니 다들 대만족이다. 아닐 수가 없긴하지...
같이 주문한 씨디들은.
우선 Sviatoslav Richter가 연주한 Ravel의 피아노 곡 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 jeux d'eau 등등, 그리고 Rachmaninov의 Preludes 가 들어있는 것 한 장이 있는데 곡들과 연주는 정말 너무 아름다운데 라이브 녹음이라 처음 부분에 관객들 기침소리가 좀... 기침은 원래 참을 수 없는 건 잘 알지만........ 공연 중에 들리면 신경쓰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리히터와 보로딘 쿼텟의 Schubert 죽음과 소녀(맞나? Death and the Maiden), Schumann 의 피아노 오중주 음반.
리히터의 Schubert 피아노 소나타 19번과 21번. 전에 harmonia mundi에서 Paul Lewis라는 신인 피아니스트의 앨범을 추천해주길래 사서 들었었는데 음...그때 듣던 느낌과는 아무래도 정말 많이 다른 것 같다.
또 리히터. 라흐마니노프 preludes와 Etudes-Tableaux 앨범. 위에 있는 preludes하고는 다른 해에 녹음된 것이긴 한데 아직 그 차이가 별로 귀에 들어오진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브람스의 Hungarian dances, 드보르작의 Slavonic Dances 피아노 연탄곡. 여러 연주자들이 있었는데 아빠의 추천으로 Michel Beroff와 Jean-Philippe Collard의 연주를 골랐다.
사실 주문할 때 마침 인터넷에서 리히터에 대한 글들을 읽고 있던 중이어서
리히터 앨범을 무지 많이 주문해버렸다.
또 한가지 요즘 라디오클래식에서 피아노 곡 인기투표를 하고 있어서 매일 가장 "사랑받는" 곡들을 반복해서 들려주기에 매일 듣다 보니, 유명한건 알았어도 예전엔 이렇게 좋은지 몰랐는데, 왠지 자꾸 새롭게 들리는 곡들이 있어서 며칠간 갖고싶은 충동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피아노 앨범만 잔뜩 사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브람스 헝가리무곡 1번이나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그랬다.
요즘 또 자주 듣는 음반은 바렌보임이 연주한 멘델스존의 무언가(Lieder ohne Worte)... 정말 들을 수록 더 매력있고 아름다운 곡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Bach의 키보드 협주곡 음반들을 우연히 읍내나갔다가 프로모션으로 아주 괜찮은 가격에 구입했는데 (Perahia와 Gould, 그리고 David Fray라는 81년생 프랑스 피아니스트 연주) 이건 약간 숙제처럼 듣고 있다. 비교하면서. 나는 아직은 바흐 피아노 곡 중에선 평균율이 제일 좋다. 물론 전자는 협주곡이고 평균율은 피아노 독주지만 아무튼.
그리고 Lipatti의 Besançon récital 앨범에 있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8번 1악장이 너무 좋아서 여러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찾아 들어 보았는데, "여러"라고 해봤자 Gilels와 Arrau를 들어본 게 전부지만. 아무튼. 그런데 신기하게도 분명히 같은 곡인데 느낌이 이렇게 다들 다를 수가 있나 놀랍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내겐 리파티의 연주 만큼 좋은 건 없었다.
특히 아라우는... 베토벤 소나타들을 들어봤을 때도 그랬지만 뭔가 피아노 줄 하나하나를 아주 또박또박 탁 탁 당겨서 치는 느낌이었는데, 다만 그런 선명하고 힘 있는 연주법이 이 곡에는 너무 강한 것 같다. 피아노 줄이 아니라 곡이 먼저 끊어질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굉장히 독창적인 박자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길렐스의 것은 다시 들어보아야겠지만 이 묘하게 우울한 곡의 느낌을 가장 풍부하게 살려내는 능력으로는 (비교의 폭이 너무 좁지만... 저 셋 중에선) 리파티를 따라올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친구가 보내준 서프라이즈 선물
조지오웰 평전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또하나의 재즈에세이.
한글로 된 책이 너무 보고싶었던 요즘인데 이렇게 적절한 타이밍에 좋은 책들을 선물받아 행복하다.
더군다나 더 감동적인 것은... 얼마전 조지 오웰의 1984를 아주 인상깊게 읽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곧바로 그 작가에 대한 평전을 챙겨준 친구의 센스와 사려깊음이다. 줄쳐가며 열심히 읽어야지.
좋아하는 사람들과 갖는 어떤 종류의 교감도 사실 유쾌한 일이지만 특히 책과 음악에 대한 감상을 나눌 수 있는 건 더욱 즐겁고 또 감사할 일인 것 같다.
어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서 아빠와 친구들과 수다 떨며 음악 실컷 듣고 싶다.
아 그리고 내일은 드디어! 플레이옐에서 바렌보임의 공연이 있는 날이다.
베를리오즈의 곡들은 아직 딱히 찾아 들어본 적이 없는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