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도 이렇게 지나간다.
이렇게?
다른 달들에 비해서 딱히 부족한 것은 없는 달이었다.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고 (내 생각에)
책도 많이 읽었다. 특히 집에 쌓아두었던 몇권의 고골리를 단숨에 읽어버린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푹 찌던 여름에 잘 어울리는 소설들이었다.
반면에 신문은 아주 열심히 보진 못했다. 조금 후회가 남지만
어제 우편함을 보니 르몽드에서 지난 7-8월간 연재되었던 여러가지 특별기획 기사들만 따로 묶어서
단행본? 처럼 만들어 보내주었길래 안심했다.
대신 기타를 약간 칠 수 있게 돼서 좋다. 물론...아주 약간......

9월 4일에는 lou reed와 laurie anderson 콘서트가 있다. 비싸서 (50유로) 표를 못 구했는데 당일날 저녁에 무턱대고 가서 줄을 서 볼 의향도 충분히 있다.
9월 8일엔 폴리니의 공연을 보러 간다. 한 해의 시작을 폴리니의 피아노로.! 너무 좋다.
11월에 루브르에 정말 움베르토 에코가 오는 걸까?
아니면 움베르토 에코가 선정한 음악들로 콘서트를 한다는 걸까? 빨리 다시 찾아봐야겠다.

내겐 1년 중 8월 말이 가장 행복한 것 같다. 물론 매일 매일이 소중하지만 당연히...
8월 말은 달력을 보지 않고도 코끝에 닿는 바람의 냄새만으로 왔음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때이다.
나는 가을이 너무 좋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지금이 좋다.

두리뭉실한 무거운 바람, 따뜻하고 전혀 달지는 않지만 단 것 같은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불어오던 여름의 바람과 달리
8월 28일 아침의 바람은, 예를 들면, 그런 무게가 완전히 사라져 가볍고 청량한
어쩌면 풀향기마저도 담고 있는 그런 것이었다.
매년, 정말 단 한 해도 빼놓지 않고 매년 8월 31일 즈음에는
눈을 떠 이불 속에서 코끝만 내놓고 뭔가 공기가 달라졌음을 느끼고
왠지 모를 설레임에 심장마저도 어제와 다르게 새롭게 뛰는 듯한 아침이 늘 있었다.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다.

그게 바로 어제와 오늘. 어제보단 오늘 바람이 조금 더 찼다.
문득 사계절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생각해 본다.
자연과 소통하는 법이라고는 도무지 소비 밖에 모르는 나에게도 가을은 새 것을 가져다 주는구나.
더군다나 나같이 쉽게 질리고 지겨워하는 성격인데다 매일 매일 날씨의 영향으로 하루 컨디션이 좌우되는 사람에겐 계절의 변화가 너무나도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가을이 그립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가을을 맞아본 게 벌써 5년전이구나.
서울의 엄마 아빠도, 더 추운 곳에 있을 동생도
친구들도 다들 선선한 바람에 우울했던 기억들일랑 씻어버리고 가을을 맞이하고 있기를.
아무리 바빠도 가을이 다가오는 길에 반가운 웃음 한번 지어주고 싶다
그래야 내년 이맘때도 잊지않고 인사하러 와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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