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my life/오늘 | 57 ARTICLE F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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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10.07.11 7월 11일..
  7. 2010.06.23 이것저것
  8. 2010.06.05 아바도 유자왕 공연 취소.
  9. 2010.05.29 journee d'etude.
  10. 2010.05.22 5월 21일 (벌써!)


가끔 매우 익숙했던 것들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그리고 도대체 왜 그런건지, 나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게 된다. 거기에 내가 화가 난다는 사실마저도 언짢다. 내가 나에게 언짢고 화가 난다. 왜 눈치 채지 못했는지, 아니면 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는지.

받아서 (고맙지만) 손도 안 대고 유통기한이 약간 지나버린 과자를 어찌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먹지 않을 것 같아 아깝지만 버리기로 하고 건물 밖으로 들고 나갔다.
우리집 건물 아래층에는 슈퍼가 있고 그 슈퍼 입구에는 늘 구걸하는 집시...(로 보이는) 사람이 한명 쯤은 꼭 앉아있다. 오늘은 사르코지와 프랑스 이민부 장관이 내쫓으려한다는 Rom 사람으로 추정되는 내 또래 여자분이 있었다. 버리려던 과자를 그녀에게 주면 어떨까 한참 그 앞을 서성이면서 고민했다. 직접 주기는 좀 그랬다 조금이지만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이고 그 사람이 돈을 원하는 건지 먹을 것이 없는 건지 몰라서... 그리고 솔직히 어떤 반응일지 좀 겁이 나기도 하고
그래서 쓰레기통과 그 사람을 몇번씩 번갈아 쳐다보다 결국 그 둘 사이, 건물 입구 턱에, 물론 통행에 방해가 되진 않게 살짝 올려놓고 갔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니 과자는 누가 쓰레기통에 버렸는지, 필요한 사람이 가져갔는지 없었다.

사실 오늘도 플레이옐에 공연을 보러갔었는데 귀가길에 친구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싶은지에 대해서 조금 구체적으로 꽤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아마도 내가 가장 속으로 원하는 것들이었던 것 같다) 두서없이 몇가지 털어 놓았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그러지" 않아야 하는 건데, 어딘가 모순적인 나의 꿈은 어쩌면 위선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겠구나 싶더라.

저녁을 만들다가 문득 옛날 어떤 노래가 생각났다. (가수분께 전혀 악의는 없음. 죄송합니다.)
예쁘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 만큼 행복한 건 없겠지
그리고 결론은
우리 사랑은 영원할 뿐이야
갑자기 밥맛이 뚝...

노래 가사를 이런 뜻으로 쓴 건 아니겠지만
나는 내가 예쁘게 살아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다른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한지
그런걸 모르고, 등 돌린 채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모른척 하기는 너무 쉽다......사실 정말 쉽다

예쁘게 보다는 제발 점잖게 살고 싶다.
의젓하게 살고 싶다.
스트레스는 받지 않되
절실하게 고민하며 살고 싶다

나와 가까운 (아마도) 누군가가 해 준 제법 진지했던 말이 생각나서 약간 우습다
나는 모순을 사랑하는 사람 같다고

쉽게 눈에 뜨이고 싶지 않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가 아니니까. 다가 아닌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trompeur 일 때가 더 많지 않은가. 그런 것들은 의미가 없다.
그런 것들을 위해서 살고싶지 않다.

지겹다 지겨워
잘 지내다가도 갑자기
예쁘고 깔끔하고 싹싹하고 이런거 신물이 난다.


으아
사춘기같군.
오늘 좀 스트레스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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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이라고!

방심한 사이 꼼짝없이 몸살에 걸리는 바람에 10월 1,2,3일에는 실눈을 뜨고 바라본 해가 뜨고 지는 광경 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거의 없게 되어버렸다. 안타깝다. 10월의 첫 날들에는 밖에서 공기를 좀 많이 마시고 싶었는데... 가을이 어느새 깊어져 진하게 우려져 나온 서걱서걱한 나뭇잎사귀 냄새, 캄캄한 밤에도 높게 느껴지는 하늘, 잘 보이지도 않는 별들마저도 더 신선하고 푸르렀던 것 같다.
3일 밤에는 그래도 용기 내서 창문을 활짝 열고 그 공기를 한참 맛보았지. 그러고보니 어제부터인가 난방이 나오기 시작했다.

9월 30일에는 Christoph von Dohnanyi 크리스토프 폰 도나니 (도흐나니라고 보통 쓰던데), orchestre de paris 그리고 피아니스트 martin helmchen의 공연을 보러 pleyel에 다녀왔다.
이때부터 사실 몸이 좀 안 좋았지만 공연 보기 전엔 신나서 몸에 상태에 귀기울일 여유가 없다.
오랜만에 보는 독일인의 지휘. 평소 음반에서의 인상때문인지, 지긋한 연세에 어울리는 고운 백발 때문인지, 단단한 지휘 동작 때문인지, 그의 음악은 무게 있고 뒤가 쉽게 연상되는, 짜임새 있는, 바닥이 두터운 것이었다. 나는 꽤 마음에 들었다. 다만 파리오케스트라는 조금 안 어울린다.

드보르작 피아노 콘체르토는 잘 연주되지 않는 곡이라고 하는데 그러고보니 별로 음반에서도 다뤄지는 것을 보지못한 것 같다. 드보르작은 피아노보다는 현악에 훨씬 더 친숙했던 작곡가였고 따라서 이 곡에서는 피아니스트에게 낯설거나 혹은 거의 불가능한 손의 움직임을 요구하는 부분이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루돌프 피르쿠스니, 또 누구더라? 에 의해 조금 "둥글게" 각색된 버전이 통상적으로 연주되었고 이후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가 드보르작의 원전 그대로 재현해낸 바 있다. 82년생의 젊은 연주자인 마르틴 헬름헨 (발음이 어렵다.) 은 리히터처럼 조금 어려운 길을 택했다.
직접 (들어)보니, 잘 모르는 사람이 딱 보기에도 정말 어휴 너무 심했다 싶은 정도.
1악장에서는 피아니스트가 오케스트라에 일단 속도 면에서 자주 뒤쳐졌고, 많이 힘에 부치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그래도 후반으로 갈 수록 조금씩 페이스를 되찾는 것 같았다.
만질만질한 조약돌들이 와르르르 구르는 듯한 조밀조밀한 피아노가 듣기 좋은 ...곡이었는데 아무튼 치기엔 꽤 어려울 듯 싶었다. 곡보다는 해석 내지는 연주자 기량의 문제인 듯 한데, 피아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울림, 그 끝없는 파장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류의 연주는 아니었다.
차라리 앵콜곡은 본인에게 보다 어울리는 좋은 연주를 했다고 생각했다. 이틀에 걸친 공연이었는데 첫날엔 바흐의 곡을 쳤다고 한다. (타르코프스키가 영화에 매번 삽입했다는 곡이라는데...뭔지 잘 모르겠다. 찾아보니 코랄곡이 나온다.) 내가 간 둘쨋날에는 아마도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 중 하나를 치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는데 또 어떻게 생각하면 전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쇼팽이었나?

그러고보니 오늘 저녁나절엔 집에서 바르샤바 쇼팽 피아노 콩쿨을 보았다.
세상 참 좋아졌다.
오늘 마지막 주자인 Yaron ...무슨 berg 인가 하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친 곡은
내가 아끼는 쇼팽의 에튀드 25/11 winter wind였다.
젊은이 답게 피아노를 부술 듯한 힘이었지만 고백하건대 나름 곡에 어울려 꽤 멋졌다.
그러나 늘 불만 많고 궁시렁대길 좋아하는 나는 어줍잖다는 듯이 아이튠즈를 켜고 폴리니의 연주를 다시 듣는다. 할아버지가 더 잘쳐...이러면서...

자기 전에 침대에선 컴퓨터 절대 안하기로 했는데 자꾸 노트북을 껴안고 잠자리로 향하게 된다.
이러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브람스 첼로 소나타 2번을 하루 종일 듣고 있다. 정말 아침부터 지금 새벽까지 계속이다.
브람스의 곡들은 정말 들을 수록 좋다.
향이 강해 처음부터 확 잡아끄는 그런 음악이라기 보단... 오래 씹을 수록 단 밥알 같다.
내가 좋아하는 녹말의 호화 작용
AND


어제는 플레이옐 2010/11 시즌 첫 공연으로
(9월 8일 게르기에프의 말러 공연은 귀국?! 스케줄 변경으로 놓치고 말았다)
르네 야콥스와 프라이부르크 바로크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모차르트의 Cosi fan tutte를 들었다.
지난 봄 차이코프스키의 에브게니 오네긴처럼 콘서트 버전이긴 했지만
재밌었다.
말그대로 재밌었다. 극 내용 자체가 무겁지 않고 해피엔딩에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며 대사며 코믹한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어 정말 마음 편하게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감상이라는 말 굉장히 어렵게 고른 단어다. 난 솔직히 보통은 콘서트를 "감상"할 수 없었다.)
앞으로는 그래도 좀 더 공부를 하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크 음악 ㅡ 모차르트를 바로크로 묶을 수 있다면 ㅡ 내지는 "고음악"은 아직 내게 너무 생소해서
들어도 그냥 다 그게 그거 같다.
르네 야콥스와 임선혜씨는 정말 잘 어울린다.
보면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점심을 함께 한 친구와 9구의 어느 가로수가 흐드러진 넓다란 길을 걷다가
그림들을 복원하고 전시하는 어떤 아틀리에 앞에서 발을 멈추고 그림들을 한참 흥미롭게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조금 뜨끔했다. 정작 나는 그림을 그렇게 바라본지가 굉장히 오래되었는데 말이다.
그림들을 전시한 이젤들 발치에 놓인 고양이 강아지 무당벌레 모양의 조악한 조각들을 가리키며
"난 저런게 좋아" 라고 했다.

위고의 노트르담 드 파리와 지드의 좁은 문,
histoire de l'histoire de l'art en France au XIXe siècle 사이에서 그야말로
헤매고
떠돌고 있는 요즘이다.
뭔가 탈출구 - 분출구 라고 까지 하긴 뭐하고... 빠져나갈 곳을 찾고 싶다.
단순히 빠져나가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옳은 곳으로 뚫고 나갈 계기가, 계책이, 계획이 필요하다.
아. 돌파구라고 하면 좋겠다.

며칠째, 적어도 열흘은 족히 되었을 꽤 오랜동안 매일 저녁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들을 듣는 것으로 기운을 내고 있다.
도서관 내지는 외출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고나서 이것 저것 집안을 들쑤시고 돌아다니다가
대충 밤 9시쯤 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책상에 바르게 앉게 된다.
그때가 되어서야 주로 골머리 앓으며 읽어야 할 책들을 손에 쥔다.
파리에 돌아오고 부터, 밤 9시에서 보통 12시 정도까지 내 하루에서 가장 중요하고 치열한 몇시간을
쓸쓸하지도 비참하지도 않도록 빛 밝혀주고
스트레스에 과열되지 않도록 식혀주고 무엇에 경도되어 얼어붙지 않도록 다독여주는
적어도 지난 몇분의 기억이 남아있지 않으면,
지금의 찰나를 잡지 않으면, 다음 마디를 헤아리지 않으면
볼 수도 알아들을 수 없고 형체도 무게도 없는 이
한없이 멀고도 가까운 소리들의 움직임에 그저 온 마음을 의지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은 이것밖에는 없다.
나를 모르는 이 곳에서 혼자 바스락 책장 넘기는 나와, 어느 어디에서 오는 건지 모르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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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해야지, 언젠가 꼭 해야지, 어서 끝내야지,
이런 생각들은 다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지금, 오늘, 해야하는 것이었다.

오늘 하지 않으면 내일 된다는 보장이 없다.
24시간, 잠자는 시간 빼고 17시간, 밥먹고 뭐하고.
하루는 사실 너무 짧다.
의미없는 연약한 다짐들을 반복 반복만 하고,
대체 오늘이라는 것은 언제 오는 건가?
사람에게 무언가를 이루는 "날"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

사실 "그 날"이라는 카타르시스는 단지 그 날짜만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늘 하지 않으면, 지금 하지 않으면 내일도, 다음 주에도 내년에도 영영 없을 날인 것이다.
당연하고 진부한 사실이다.
지난 몇년을 몇달을 헤메어 결국 오늘 이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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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나는 아무래도 미술사를 하고 싶은데
그림을 보고 싶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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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마음 먹는 것 만큼 쉽고 또 그만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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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어제)의 교훈:
교수님께 질문을 할 때는 이게 바보같은 건지 아닌지 백번 생각하고 하자.
교수님 말씀에 이의 제기하려면 공부 5년만 더 하고 나서.


폴리니 할아버지의 아주 깊은 복식호흡과 허밍이 계속 떠오른다
작년만 해도 이렇게 노래를 따라 부르시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리고 브람스 협주곡에서 1악장 관현악 부분 들어갈 때 오케스트라를 향한 할아버지의 관통하는 듯한 시선과 박자를 맞추던 모습 음악을 머리로 다 흡수하고 손 끝에서 다시 끌어내는
경이로움!
폴리니의 연주를 들으면 비로소 아 이게 이런 곡이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연주이기 때문이겠지.
왜 좋아하느냐고 하면, 이유를 논리적으로 남에게 설명하기는 아무래도 힘든 것 같다.
그저 나한테 가장 강하게 와닿고, 제일 많이 집중하게 하고, 다른 연주보다 귀에 더 잘 들린다고 밖에는.
어제 공연을 보면서 나에게 어떤 "소리"에 이렇게나 귀기울이게 하고 관심을 가지게 해주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놓치고 싶지 않은 소리를, 위대한 음악을 접하자 비로소 내 귀는 귀가 되었다.
귀 귀 자꾸 이러니까 이상하다.

여름을 맞아 파리를 잠시 떠나는 오늘, 점심으로 벼르고 벼르던 동네 빵집 샌드위치를 사먹었다.
도서관에 가야하는데 교통카드를 놓고 나가서 다시 집에 돌아갈까 어쩔까 고민하다가
에이 이렇게 된거 샌드위치나 사먹자 하고 ㅋㅋ 맨날 오후 늦게 갔더니 없어서 못 먹었는데
아무튼 그렇다
교수님의 때아닌 정신공격이 몹시 괴롭지만 뭐 이제부터라도 또 열심히 하면 되지.
빨리 도서관 다녀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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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옐에서 온 메일을 아까 읽고
슬프다 -
아바도 지휘 못보고 가는구나. 건강상의 문제라니 너무 걱정된다. ㅠㅠ걱정걱정.......
10월 20일날 루체른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의 공연마저 취소되는 건 아닐지 조마조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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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 스트레스 받으면서 그러면서 또 은근히 기다려온
학교 가는 날.
종강은 이미 오래 전에 했지만
오늘은 세미나 대신 우리 교수님들 주최로 "문화와 주문자" (culture et commanditaire) 라는 주제로 심포지움 비슷한 것이 열려서 근 2달 만에 다들 강의실에 모였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로마네스크 시대부터 16세기를 아우르는 총 9가지의 다양한 발표를 통해 장식 예술, 가구, 건축물 - 성당에서 부르주아 가택에 이르기 까지 도상의 선택에 있어서 주문자의 역할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알아보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말그대로 공부의 날이었다.
내 지도교수님과 같이 지도를 받는 박사과정 분들의 발표는 너무 많이 접해 온 내용들이라 그닥 대단히 신기한 점은 없었는데.
학부 마지막 학년 때 비잔틴 미술을 강의하셨던 당시 강사님이 이번 심포지움에 참여하셔서 너무 오랜만에 만났는데 무척 놀랍고 반가웠다. 이번에 우리 학교 조교수로 정식으로 취임하셨다고 해서 더 반가웠다. 아마 절대 잊지 못할 정도로 늘 열정적인 수업을 하셨던 분이고, 당시 파리에서의 척박한 대학 생활에 괴로웠던 내게 용기를 북돋아 주시고 관심을 보여주셨던 (갑자기 울컥 ㅋㅋ) 유일한 선생님이셨기 때문. 암튼 반가워서 휴식시간에 쫄래쫄래 쫓아가서 인사 드리고 잠깐 얘기도 나누고 그랬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절대 하지 않을 짓이다.) 당시 학부생이었던 나에게 무리해서 석사과정 이상만 들어갈 수 있는 도서관의 관문을 뚫게 만들었던 추억의 시칠리아 노르만 미술 수업 ㅠㅠ 그 때 배우던 것들이 정말 너무 재밌어서 비잔틴 미술을 전공할 마음마저도 잠시나마 먹은 적이 있을 정도다. 비록 2학기 때 비잔틴 장식미술 배울 때 그 재미가 덜함에 좌절하고 대신 유럽 회화 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지만.

아무튼 이렇게 학구적인 분위기에서 하루를 보내고 - 도서관에서 종일 앉아있는 것과는 또 다르다 강의실에서는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말도 해야하니까 들어오는 경로가 너무 많아서 그 압력도 더욱 거셈 - 학교 문을 나서 사람들이 바삐 오가는 틈사이에 몸을 맡기면 정말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다.
동네에서 덤블링 같은거 30분이고 1시간이고 신나게 막 뛰고 타다가 맨 땅으로 내려와서 못내 아쉬워 다시 콩콩 뛰어보면, 그 짧은 새에 잊고 있었던, 탄력없는 바닥의 뻣뻣하고 우직한 저항에 깜짝 놀라곤 했던 어릴 적의 경험을 떠오르게 한다. 공부가 그저 너무 좋으신 우리 교수님들과 진지한 학생들 사이에서 느끼는, 약간의 소외감을 동반한 공중에 붕 뜬 듯한 아슬아슬한 희열. 그리고는 순간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모르는 것이다.

AND


역시 단편적인 이야기들. 일기도 무엇도 아니다.

오늘은 L'art d'Occident au moyen âge roman et gothique (서양 중세 로마네스크,고딕 미술)의 서론 부분과 제 2장 (Sluter et Van Eyck) 의 대부분을 읽었다. 앙리 포시용(Henri Focillon)의 재발견. 대학교 2학년 때 멋도 모르고, 한국에서 그의 대표 저서로 소개되어있는 형태의 삶(La vie des formes) 을 읽고 그의 감수성 그득한 만연체에 질려버려 다시는 포시용이라면 손도 대고 싶지 않았으나. 그동안 아무래도 시간을 아주 헛되이 보내지만은 않았는지 내용을 좀 알고 나니 새롭게 다가오는 그의 통찰력과 명민한 분석, 무엇보다 정말 아름다운 문장들에 무척 놀랐다. 형태의 삶에서와는 달리 조금은 더 "일반적"인 학술서에 어울리는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인데도 불구하고 예의 프루스트같은 시적 표현들로 그득한 글에서처럼, 아니 그보다 더 마음에 깊숙히 와닿는다. 하긴 내가 놀라고 말고 할 것 없이 이미 프랑스 미술사에서는 너무 중요한 인물이니, 이 책에서든 저 책에서든 포시용은 같은 포시용이되 내 눈이 변했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
우습게도 프랑스 사람들조차도 이렇게까지는 관심없을 그네들 중세 미술 이야기에 이렇게 감동받고 있다. 우리나라 미술도 시간 많이 들여서 공부 열심히 하고 싶다.

해가 나고 날이 선선해지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걷기도 좋고 나무 밑 벤치에 늘어져 하늘 보기도 좋고 무슨 음악을 들어도 꿀맛
아 그렇다 이 와중에도 pierre monteux와 london symphony orchestra의 bolero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이렇게 밋밋할 수가. 왜 이런거지 대체..



오늘 친구가 말해준 파리의 엄마손 식당이라는... au coin du malte를 찾아가서 정말 싼 값에 맛있게 저녁 먹었다. 매일 저녁 8시부터 9시30분까지만 운영하고 메뉴는 전식, 본식, 디저트에 11.5유로. 각각 3가지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와인도 꽤 저렴하다. 맛도 가격치고 괜찮다.
근 1주일 넘게 매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기를 반복했더니 다크써클 폭탄을 맞았다. 이를 치료하기 위한 연어 한접시.....그리고 그냥 먹어본 레몬맛 필레미뇽. 이름만 필레미뇽이고 그냥 음...짜지 않은 장조림 느낌 ^^ 과연 파리 엄마의 손맛...



Erik Orsenna의 아주 따끈따끈한 신작 L'entreprise des Indes 를 읽기 시작했다. 역사이야기 흥미진진하다. 어릴적 읽던 소년소녀문학전집에서 내가 특별히 아끼던 몇몇 이야기들이 다시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십오소년표류기라던가 집없는 아이 같은 것들. 물론 전혀 내용은 관계 없다. 섬이 배경이라는 것 (십오소년표류기), 그리고 책의 첫부분에서 주인공이 어린이들이라고 오해해서 ㅋㅋ
쓰고나니 그래서 뭐 어떻다는건지 ...

어제는 장식미술박물관 (Le musée des arts décoratifs)에서 특별전 Les Lalanne 을 보았다. 동물들에서 영감을 받아 아주 직설적인, 아주 직설적인, 아예 동물 그 자체인 가구와 소품들을 만들었던 François-Xavier Lalanne과 그의 부인 Claude Lalanne의 작품들을 모아놓았다. 사람을 웃게하는 것, 편안하게 하는 것은 아무래도 많은 부분이 자연에서 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익살스러운 동물들 모형 앞에서 살짝이나마 웃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실제 큰 동물들 앞에 있으면 조금 무서울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절대 싫어서는 아니다.
오랜만에 본 유료전시 돈이 아깝지 않았다. 7월 4일까지.


개구리 의자에 앉은 프랑수아-그자비에 랄란, 클로드 랄란 부부.
© ADAGP. Photo : DR

"Rhinocéros", Francois-Xavier Lalanne.
© ADAGP. Photo : DR


"Grand chat polymorphe", Francois-Xavier Lalanne.
© ADAGP. Photo : DR
(이상 모든 사진 출처 http://www.lesartsdecoratifs.fr/francais/arts-decoratifs/expositions-23/actuellement-501/dans-la-nef/les-lala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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