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플레이옐 2010/11 시즌 첫 공연으로
(9월 8일 게르기에프의 말러 공연은 귀국?! 스케줄 변경으로 놓치고 말았다)
르네 야콥스와 프라이부르크 바로크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모차르트의 Cosi fan tutte를 들었다.
지난 봄 차이코프스키의 에브게니 오네긴처럼 콘서트 버전이긴 했지만
재밌었다.
말그대로 재밌었다. 극 내용 자체가 무겁지 않고 해피엔딩에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며 대사며 코믹한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어 정말 마음 편하게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감상이라는 말 굉장히 어렵게 고른 단어다. 난 솔직히 보통은 콘서트를 "감상"할 수 없었다.)
앞으로는 그래도 좀 더 공부를 하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크 음악 ㅡ 모차르트를 바로크로 묶을 수 있다면 ㅡ 내지는 "고음악"은 아직 내게 너무 생소해서
들어도 그냥 다 그게 그거 같다.
르네 야콥스와 임선혜씨는 정말 잘 어울린다.
보면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점심을 함께 한 친구와 9구의 어느 가로수가 흐드러진 넓다란 길을 걷다가
그림들을 복원하고 전시하는 어떤 아틀리에 앞에서 발을 멈추고 그림들을 한참 흥미롭게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조금 뜨끔했다. 정작 나는 그림을 그렇게 바라본지가 굉장히 오래되었는데 말이다.
그림들을 전시한 이젤들 발치에 놓인 고양이 강아지 무당벌레 모양의 조악한 조각들을 가리키며
"난 저런게 좋아" 라고 했다.
위고의 노트르담 드 파리와 지드의 좁은 문,
histoire de l'histoire de l'art en France au XIXe siècle 사이에서 그야말로
헤매고
떠돌고 있는 요즘이다.
뭔가 탈출구 - 분출구 라고 까지 하긴 뭐하고... 빠져나갈 곳을 찾고 싶다.
단순히 빠져나가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옳은 곳으로 뚫고 나갈 계기가, 계책이, 계획이 필요하다.
아. 돌파구라고 하면 좋겠다.
며칠째, 적어도 열흘은 족히 되었을 꽤 오랜동안 매일 저녁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들을 듣는 것으로 기운을 내고 있다.
도서관 내지는 외출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고나서 이것 저것 집안을 들쑤시고 돌아다니다가
대충 밤 9시쯤 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책상에 바르게 앉게 된다.
그때가 되어서야 주로 골머리 앓으며 읽어야 할 책들을 손에 쥔다.
파리에 돌아오고 부터, 밤 9시에서 보통 12시 정도까지 내 하루에서 가장 중요하고 치열한 몇시간을
쓸쓸하지도 비참하지도 않도록 빛 밝혀주고
스트레스에 과열되지 않도록 식혀주고 무엇에 경도되어 얼어붙지 않도록 다독여주는
적어도 지난 몇분의 기억이 남아있지 않으면,
지금의 찰나를 잡지 않으면, 다음 마디를 헤아리지 않으면
볼 수도 알아들을 수 없고 형체도 무게도 없는 이
한없이 멀고도 가까운 소리들의 움직임에 그저 온 마음을 의지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은 이것밖에는 없다.
나를 모르는 이 곳에서 혼자 바스락 책장 넘기는 나와, 어느 어디에서 오는 건지 모르는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