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 스트레스 받으면서 그러면서 또 은근히 기다려온
학교 가는 날.
종강은 이미 오래 전에 했지만
오늘은 세미나 대신 우리 교수님들 주최로 "문화와 주문자" (culture et commanditaire) 라는 주제로 심포지움 비슷한 것이 열려서 근 2달 만에 다들 강의실에 모였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로마네스크 시대부터 16세기를 아우르는 총 9가지의 다양한 발표를 통해 장식 예술, 가구, 건축물 - 성당에서 부르주아 가택에 이르기 까지 도상의 선택에 있어서 주문자의 역할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알아보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말그대로 공부의 날이었다.
내 지도교수님과 같이 지도를 받는 박사과정 분들의 발표는 너무 많이 접해 온 내용들이라 그닥 대단히 신기한 점은 없었는데.
학부 마지막 학년 때 비잔틴 미술을 강의하셨던 당시 강사님이 이번 심포지움에 참여하셔서 너무 오랜만에 만났는데 무척 놀랍고 반가웠다. 이번에 우리 학교 조교수로 정식으로 취임하셨다고 해서 더 반가웠다. 아마 절대 잊지 못할 정도로 늘 열정적인 수업을 하셨던 분이고, 당시 파리에서의 척박한 대학 생활에 괴로웠던 내게 용기를 북돋아 주시고 관심을 보여주셨던 (갑자기 울컥 ㅋㅋ) 유일한 선생님이셨기 때문. 암튼 반가워서 휴식시간에 쫄래쫄래 쫓아가서 인사 드리고 잠깐 얘기도 나누고 그랬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절대 하지 않을 짓이다.) 당시 학부생이었던 나에게 무리해서 석사과정 이상만 들어갈 수 있는 도서관의 관문을 뚫게 만들었던 추억의 시칠리아 노르만 미술 수업 ㅠㅠ 그 때 배우던 것들이 정말 너무 재밌어서 비잔틴 미술을 전공할 마음마저도 잠시나마 먹은 적이 있을 정도다. 비록 2학기 때 비잔틴 장식미술 배울 때 그 재미가 덜함에 좌절하고 대신 유럽 회화 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지만.
아무튼 이렇게 학구적인 분위기에서 하루를 보내고 - 도서관에서 종일 앉아있는 것과는 또 다르다 강의실에서는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말도 해야하니까 들어오는 경로가 너무 많아서 그 압력도 더욱 거셈 - 학교 문을 나서 사람들이 바삐 오가는 틈사이에 몸을 맡기면 정말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다.
동네에서 덤블링 같은거 30분이고 1시간이고 신나게 막 뛰고 타다가 맨 땅으로 내려와서 못내 아쉬워 다시 콩콩 뛰어보면, 그 짧은 새에 잊고 있었던, 탄력없는 바닥의 뻣뻣하고 우직한 저항에 깜짝 놀라곤 했던 어릴 적의 경험을 떠오르게 한다. 공부가 그저 너무 좋으신 우리 교수님들과 진지한 학생들 사이에서 느끼는, 약간의 소외감을 동반한 공중에 붕 뜬 듯한 아슬아슬한 희열. 그리고는 순간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모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