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울고싶다.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장장 한시간 반에 걸쳐서 정말 열심히 썼는데... 한 순간에 다 날라가버렸다.
임시저장이 왜 안된걸까. 대체 왜 ㅠㅠ......

간략하게 써야겠다. 갑자기 피로가 막 몰려온다 흑흑

이틀 연속 바렌보임의 쇼팽 리사이틀을 다녀왔다.
좋았던 점은 훌륭한 연주를 이틀 연속 감상하는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렸다는 것이고,
나빴던 점은 이것이 정말로 분에 아주 넘치는 호사였다는 것이다.
무언가 남겨야만 한다는 괜한 부담감에 집에 오는 길에도 안절부절 못하고.

바렌보임은 어제 15일 콘서트에서는 조금 힘들어보였는데, 그 때문인지 손가락의 실수도 꽤 잦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연의 질이 좋지 않았냐하면, 절대 그렇지 않았다 하겠다.
그 실수들이 안타까웠던 것은 다만 그것이 연습 부족이나 기량의 문제가 아니라 공연 후반부로 갈 수록 떨어진 체력과 집중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런 군데군데 귀에 선 노트들이 그의 곡 전체를 조율하고 아우르는 독창적인 감각을 더욱 눈에 띄게 살려주었고, 곡에 대한 보다 즉각적인 파악과 이해를...어쩌면. 도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예습을 안했기 때문에 처음 듣는 곡들은 즉각적으로 밖에 파악을 못했을 수도 있다.)

첫째 날 녹턴과 소나타 2번에서 바렌보임은 특히 곡의 중후하면서도 단조롭거나 텁텁하지 않은 느낌을 십분 살려내, 어딘지 굉장히 의미심장한 느낌의 쇼팽을 들려주었다. 크게 재주 부리지 않으면서도 마음과 열정을 다 실은 솔직한 피아노였다. 특히 기억에 남는 소나타의 3장 마지막 부분에서는 기술적인 면에서도, 지적인 면에서도 하나 빠지지 않는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더없이 훌륭한 피날레를 만들어냈다.

내게도 바렌보임의 손가락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손이 만드는 소리 처럼 "좋은"....것을 나도 내 안에서 끌어내고 싶다. 욕심쟁이다. 언젠가는 그렇게 하고싶다.

이상하지만, 가장 실수가 눈에 (귀에) 띄었던 곡도, 가장 아름다웠던 곡도 단연 폴로네즈였다.
아슬아슬 힘겹게 치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곡을 꿰뚫는 빛나는 그 감각만은 절대 놓치지 않더라.
어쨌거나 바렌보임은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그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우아하고 힘찬 "영웅적"인 기상을 가득 담은 이 곡은 무척 잘 어울렸다.

16일 프로그램에 있었던 발라드 1번 역시 훌륭했다. 가장 아끼는 쇼팽의 곡 중 하나인데.
자연스럽고 자신있는 연주가 좋았다.
간혹 화려한 기교와 과도한 감정표현으로 부담스러운 연주들도 있는데, 피아니스트 바렌보임의 연주는 늘, 모든 곡들을 다가가기 쉽고 사랑스럽게 만들어 준다.

바렌보임을 공연에서 보면서 인상깊었던 점 하나는, 관객석 구석구석에 하나 하나 찬찬히 눈을 맞추며 무척 성의있게, 시간을 들여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신뢰가 가는 무대매너다.
앵콜도 절대 소홀히 하는 법이 없다. 첫날엔 3곡, 둘쨋날엔 2곡을 들려주었는데 절대로 관객을 과하게 애태우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기꺼이 더 들려준다. 그의 친근한 연주 스타일과도 어쩌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둘째날인 오늘은 연주자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문 발치에 앉아있었는데, 덕분에 바렌보임과 몇번이나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이 마주치니 겁을 먹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
바렌보임은 무척 강인하고 엄격한 눈빛을 가졌다.
열심히 박수치면서 함박 웃음을 지으면서 그를 눈으로 쫓고있자니 막상 닿은 눈빛은 꼭 고등학교 때 무서운 담임선생님같아서...... 몰라 왠지 무서웠다. 이상하다. 이렇게 써놓으니 바보같다 ㅋㅋ
그래도 계속 좋아할꺼야



lundi 15/02 2010 20:00

  • Daniel Barenboim : piano

Programme

  • Frédéric Chopin
  • Variations brillantes sur "Je vends des Scapulaires" de Herold et Halévy op.12
  • Nocturne en ré bémol majeur op.27 n°2
  • Sonate n°2 en si bémol mineur op.35 Marche funèbre
  • Entracte
  • Frédéric Chopin
  • Barcarolle en fa dièse majeur op.60
  • Trois valses
  • Berceuse en ré bémol majeur op.57
  • Polonaise en la bémol majeur op.53


mardi 16/02 2010 20:00

  • Daniel Barenboim : piano

Programme

  • Frédéric Chopin
  • Fantaisie op.49
  • Nocturne en mi majeur op.62
  • Sonate en si mineur op.58
  • Entracte
  • Frédéric Chopin
  • Première Ballade en sol mineur op.23
  • Trois Etudes
  • Trois Mazurkas
  • Scherzo en ut dièse mineur op.39

AND


어제 저녁에는 몽파르나스 프낙에서 열린 alexandre tharaud의 "미니" 리사이틀에 다녀왔다.
쇼팽 피아노 곡 모음집인 "Journal intime"의 발매와 쇼팽의 해를 겸사겸사 기념하여 팬서비스 차원에서 주최한 듯 하다. 표만 있으면 무료였고, 생각보다 표 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사실 연주한 곡은 다해서 네 곡 밖에 되지 않고. 행사를 진행하는 사람이 너무 말이 많았고 인터뷰하는 센스가 참 없었긴 하지만.
사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스타일의 연주자는 아닌데. 사티 앨범은 잘 듣고 있고, 프랑스 작곡가들의 가벼운 소품 종류에는 썩 잘 어울리는 음색을 들려준다. 라벨이나 라모, 드뷔시, 풀렝크 같은. 어쨌든 이 사람이 치는 리스트의 초절기교라던가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이나 베토벤의 아파시오나타는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본인도 알고 있는 것 같다.

연주곡 수가 적어 실망할 겨를도 없이 기대 이상으로 정말 좋았던 것은, 이렇게 소극장 같이 작은 공간에서 너무 가까이 울리는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참 성의없는 질문들이긴 했지만 연주자와 직접 대화를 나누 - 는 것을 경청할 - ㄹ 수도 있었고, 다들 편안하게 웃고 농담하며 나름 화기애애한 자리였다. 그래도 연주를 더 들려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ㅋ
앞에 가리는 사람들 때문에 불행히도 연주하는 타로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만 들어도 나쁘지 않았을 정도.
매끄럽고 상냥하고 부드러운 연주가 기분 좋았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여유가 있다면 피아니스트를 고용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 하하
매일 집에 와서 한시간 씩 피아노 쳐줬으면 좋겠다. 가사도우미 분들 처럼 왜 그런거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얼척없는 몽상에 빠져 어떤 피아노를 가져다 놓아야 할까 그 와중에 잠깐 고민까지 했다. 정신차리게 이사람아..


 
AND

지난 1월 14일에는 나와 동갑내기인 세르게이 하차트리안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와 Orchestre de Paris의 공연에 다녀왔다.
인터넷 클래식음악 사이트에서 마침 그에 대한 질문이 올라와 있길래 간단하게 리뷰를 썼었는데,
블로그에도 감상 적어두고 싶고 해서 가져왔음.

그러고보니 벌써 2주전이구나. 아- 다시보고싶다

바흐 연주도 그렇게 좋다길래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 씨디도 주문했다.
중고이긴 하지만 4유로라니 거의 거저 아닌가.

-

음반은 들어본 적이 없었고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바이올리니스트였는데
neeme jarvi가 지휘를 하기로 되어있었던 공연이라 예매했었어요
결국 막판에 건강상의 문제로 지휘자가 바뀌었지만.각설하고
연주곡은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이었구요
앵콜곡으로 약 5분 정도 되는 솔로곡을 들려주었는데 불행히도 저는 아는 곡일리 없었어요 ^_^;;

차이코프스키 바협을 워낙 좋아해서 여러 연주들을 다양하게 들어봤는데
제가 들어본 해석 중 가장 장식적이랄까 화려한 느낌의 연주였습니다.
집시 바이올린을 연상시킬정도로. (아르메니아 출신이죠..ㅋ)
처음 시작 부분에선 좀 걱정까지 되더라고요 저렇게 꾸밈음을 많이 써도 되는건지
다른 연주자들은 가볍게 지나가는 부분들을
의도적인지는 몰라도 하나하나 살리려고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바이올린 소리가 깊으면서 변화무쌍합니다.
특히 1악장 중간 중간에 솔로 부분에서는 정말 속을 긁어내는 느낌
이런걸 잘 안써봐서 표현이 좀 이상합니다만 굉장히 낙폭이 큰 연주더군요.
소름돋도록 섬세하기도 하고 어디선가는 거칠고 묵직하기도 하고요.
소리 자체가 크거나 박력있는 연주는 아닌데 놀랍도록 풍부한 소리를 낸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그뤼미오나 프란체스카티를 좋아하는데.. 아무튼 제게 익숙한 소리는 아니었지만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독특합니다.
바로 전에 들은 연주는 서울시향과 했던 신현수씨의 것이었는데
하차투리안의 연주를 듣고 비교해보면 참 정갈하고 단정한 연주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연주회장의 차이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아, 그리고 관객들이 너무 감동을 했는지 ㅎㅎㅎ
보통 절대로 실수로 이럴 리가 없는 사람들인데 (참고로 제가 있는 곳은 유럽의 큰 도시입니다)
1악장이 끝나자마자 너도나도 브라보를 외치면서 박수 갈채를 보내는
귀엽고 황당한 사건이 있었답니다.

85년생인데... 나이에 비해 노련미가 느껴지는 연주라는 말씀에 저도 굉장히 동의합니다.
아주 자기만의 스타일이 확고하더군요.
저도 작곡가 하차투리안하고의 관계가 궁금했는데 별 정보는 못찾았고
여동생은 피아니스트인 것 같더라구요.


AND


요즘 완전히 빠져있는 스크리아빈의 연습곡.



사랑하는 호로비츠 할아버지 연주. ♡_♡




키신.



알프레드 코르토. 색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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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과 지휘자 리오넬 브랑기에, 그리고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의 공연이었다.
이날의 레퍼토리는 보로딘의 Polovtsian dances n.17, Shostakovitch의 concerto for violoncello 1번. 그리고 henri dutilleux 의 métaboles 와 scriabin 의 poème de l'extase..였으나
감기와 시차적응 때문에 넘 힘들어서 쇼스타코비치 까지만 보고 entracte때 귀가했다. 스크리아빈이 정말 넘 아쉽다..
폴로베치안 댄스는 원래 choral 이 같이 하는 버전을 더 좋아했는데 그냥 오케스트라로 봐도 악기 하나하나의 맛이 있고 재밌었다. 라벨의 볼레로와 함께 제일 즐겨듣는 오케스트라 곡 중 하나.
플룻과 오보에 주자 분들이 정말 정말 잘하셨다.

지금도 감기 때문에 정신이 없는 관계로 길게는 쓰지 못하는데
아르떼에 공연 실황 동영상이 올라왔길래 일단 블로그에는 올려둬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합창석에 앉았는데 (오케스트라 바로 뒤) 간간히 화면에도 잡힌다. 하하

23분 22초 쯤 부터가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정말 멋진 곡이다. 집에 있는 장한나의 앨범으로 몇번을 다시 듣고 있다.

무대 옆을 지나가는데 받침대에 기대 세워져있는 콘트라베이스들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나뭇결이며 모양이며 정말 sublime했다. 악기 모양 자체가. 거기서 나는 소리도 아름답지만.

AND


드디어 ravel의 Bolero를 직접 공연에서 들었다.
과장 조금 아주 조금 보태 정말 눈물이 날 뻔 했다.
이렇게 간단한 선율을 가지고 이만한 감동을 줄 수 있다니.
정말 놀랍다.
초반에 비올라와 바이올린 주자들이 전부 악기를 기타처럼 눕혀 들고 연주하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더 귀여웠던 건 지휘자 아저씨..(Wolfgang Doerner) 공연 앞부분에 있었던 드뷔시의 La mer라던가 Franck, Messiaen의 곡을 연주할 때는 그렇게 바쁘게 온 몸으로 지휘를 하시더니.
볼레로 때는 지휘 단상에 비스듬하게 기대서 고개를 까닥까닥 하는 것으로 대신하는게 아닌가.
물론 후반부에는 다시 보통 때의 다이나믹한 지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곡이 연주되는 내내 똑같은 리듬을 쳐야 했던 북 연주자 분도 놀랍다.
단순히 똑같은 것만 계속 치는 것 보다 사실은 그 미묘한 강약의 뉘앙스를 내는 것이 관건인데.
연주자의 능력을 극한으로 발휘해야 하는 곡 같다. 관악기들도 정말 멋지다.
피콜로 주자의 감정이 가득 가득 실린 연주 인상깊었다.
비록 후반부엔 파트가 없어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같은 포즈로 인상을 잔뜩 쓰고 계셨지만...
아 정말 bolero 너무 너무 너무 좋다. 공연 보고 와서도 내내 듣고 있음.
저번 글에는 바렌보임의 지휘로 연주한 볼레로 영상을 올렸었는데
이번엔 에셴바흐 선생님 버전으로.
이것도 재밌네. 여기서는 눈빛 만으로 지휘를 하고 계시다.

AND


며칠간 런던에 다녀왔다. 집에 겨우 짐을 던져놓고 폴리니를 보러 다시 플레이옐로 향함.
피에르 불레즈와 폴리니, 그리고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이었다.
바르톡의 곡들로만 구성된 오늘 공연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Béla Bartók
Quatre Pièces op. 12
Concerto pour piano n° 2
Entracte
Le Mandarin merveilleux

불레즈의 지휘를 보면서 저 정도 연륜과 지성이 쌓이면 굳이 힘 빼지 않고도 얼마든지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정말 깊이 깨달았다. 바로 지난번에 보았던 혈기 넘치는 두다멜의 지휘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지휘봉을 잡은 불레즈의 움직임은 아주 작고 가볍고 제한적이었다. 저기에 지휘자가 서있다는 것을 자칫하면 잊을 정도로 정적이었다.
과연 지휘자의 존재감이란 몸을 얼마나 움직이고 얼마나 표현을 하는 가에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보통 오케스트라를 볼 때 지휘자의 손 동작과 등의 움직임을 주의깊게 보아 왔는데,
오늘 본 불레즈의 지휘는 눈으로 무언가를 쫓게 하기 보다는 차라리 귀를 좀 더 열도록 해주는 그런 것이었다.

바르톡의 곡들도 하나하나 다 매력적인데다 폴리니의 변함없는 정확한 연주로 오늘 공연은 더 빛이 났다. 피아노와 관악기들로만 주로 연주되는 피아노 콘체르토 2번 1악장이 특히 좋았다.
아주 상투적이고 손발이 오그라들게 하면서도 폴리니의 피아노를 들을 때 계속 생각나는 것은
별들이 만약 소리를 낸다면 이런 영롱한 소리일까 하는 ........것이다
여름에 부르고뉴 시골에서 보았던 별똥별이 빗방울처럼 떨어지던 밤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면 폴리니의 피아노 소리 같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새삼 든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지구와 목성이 내는 "소리"를 나사에서 무슨 복잡한 기술적 처리를 거쳐서 대중에 공개한 것을 들었는데 물론 그런 아름다운 소리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상상해본다.  새까맣게 어두운 밤하늘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어딘가 편안히 기대 앉아 좋아하는 피아노 곡들을 듣는 그런 어느 날.
AND

Friedrich Gulda

ouïe/classique 2009. 11. 7. 09:15

피아니스트들을 탐구하는 중.
먼저 알게되었던 글렌 굴드와 헷갈려서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는데
그 뒤에 이런 멋쟁이 피아니스트가 숨어있었을 줄이야...
물론 숨어있었던 거라기 보다는 내가 몰랐었던 거라고 해야 맞지만.

내가 좋아하는 아주 균형잡힌 연주와 빛나는 감각.
누군가와 비교를 하기는 아직 좀 조심스럽지만 내가 폴리니를 들으면서 좋아했던 부분들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그런데 거기에 "재미"가 조금 더 있다.
무엇보다 유튜브에서 찾아 들은 모차르트 소나타 8번 1악장은 특히 대단하다.
이렇게 정돈되고 균형잡힌 손가락 힘에 정확한 노트와 아주 맛깔스러운 박자감각까지
정말 어디 하나 흠잡을 구석이 없다.
리파티가 들려준 어딘가 아련하고 위태위태한 느낌을 동반한 우아함과는 또 다른 맛이다.
놀랍다. 정말




그리고 또 베토벤의 waldstein 소나타 1악장도 발견했다.
동영상을 올린 사람의 코멘트에 따르면, 어쩌면 이 곡으로는 남아있는 가장 빠른 템포의 연주가 아닐까 싶단다.
약간 와 정말 되게 빠르다. 이래도 되는걸까 하는 생각이 처음엔 들었지만, 그런 낯섬도 잠시,
역시 대단한 안정감이다. 빨라도 밸런스가 흐트러지지 않고 강약과 감정의 전달이 아주 정확하다.
오랜만에 흥미로운 연주를 들어서 기분 좋다.

AND

Everyone says I love Dudamel!
10월 23일은, 적어도 파리 8구에 위치한 이 콘서트홀 안에서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의 날이었다.
귀여운 곱슬머리에 내 또래 (그래도 내가 좀 어리다고 굳이 말하고싶다) 라는 점 때문에 괜히 친근감이 드는 이 슈퍼스타 지휘자는 그가 몇년간 몸담았던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그리고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을 이끌고 오늘과 내일 이틀간에 걸쳐 플레이옐의 무대에 서게 되었다.
프로필 역시 흥미롭다. 줄리어드 음대를 나와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소위 말하는 "까다로운" 구역에 있는 어떤 음악학교(이름을 까먹음)에서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아이들에게 악기를 연주하는 기쁨을 가르치고 나누는 일에 몸 담았던 훌륭한 청년이다. 이제는 LA필하모닉 directeur musical로 부임해 가면서 정든 베네수엘라와 el sistema를 다시 떠나게 되는데, 작별인사 삼아 그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유럽 투어를 하고 있다. (예술감독으로 계속 남기는 하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이런 귀여운 사진들도 찾았음.

http://desempleadoenguayana.files.wordpress.com/2009/05/dudamel.jpg

http://www.bucaramanga.com/blogs/mirada-latina/wp-content/uploads/2009/05/dudamel.jpg

조금 점잖은 사진 ㅋㅋ

http://www.valladolidwebmusical.org/actualidad/08/orquesta_Simon_Bolivar/gustavo_dudamel.jpg


23일의 콘서트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Maurice Ravel
Daphnis et Chloé (Suite n° 2)
Evencio Castellanos
Santa Cruz de Pacairigua
Entracte
Hector Berlioz
Symphonie fantastique
Rappel:
Leonard Bernstein
Mambo

청중이 공연장 내를 정말이지 가득 메운 가운데 지휘자가 무대에 첫 등장하자 마자 객석에서 "브라보!" 하는 고함이 터져나오는 등. 연주를 듣기 전부터도 그의 인기를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아무래도 베네수엘라에서 팬클럽이 그의 투어를 따라다니면서 응원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관객석의 그 들썩이는 열기란 그야말로 대단했다고 밖엔.
연주가 시작되고 보니, 그의 지휘는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예뻤다".
움직임 자체가 굉장히 가볍고 쾌활한 느낌이었다.
보기에도 기분이 좋았고 곡의 감성과도 잘 어울렸던 것 같다.

두다멜의 지휘에서 무엇보다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은
그의 오케스트라와의 팀웍이었다. 그냥 "손발이 딱딱 맞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한 몸처럼.
어떤 파트에게 지시를 할 때 그는 거의 연주자들 한테로 걸어가 직접 말을 하는 것 처럼 보였는데,
물론 어떻게 보면 오히려 원시적인 형태일 수도 있지만 그런 즉각적인 소통의 시도가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결과적으로 그 효과가 명백했기 때문에 더욱 영리해 보였다.
아마도 그와 시몬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의 각별한 인연과 끈끈한 정 덕분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굳이 그렇게 연결지어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어쨌든.

이러한 인상을 더욱 강하게 심어준 것은 공연 끝의 앵콜로 들려준 번스타인의 Mambo 연주였다.
두다멜은 폴짝 폴짝 뛰기 시작했고 (ㅋㅋ) 피아니스트는 앉아서도 긴 머리를 휘날리며 아주 신나게 리듬을 타고 있었다. 모든 단원들이 사실상 춤추는 것 처럼 보였다. 실제로 꽤 적극적인 춤사위를 선보인 한 바이올리니스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음. ㅋㅋㅋ 볼 것이 너무 많아 눈이 바빴다.
오랜만에 이런 "젊음"이 들끓는 연주를 보니 그 자체로도 기분이 무척 좋았다.
사람들이 너무 너무 신나서 박수와 환호 소리로 마치 락 가수의 공연장 분위기를 방불케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예정보다 훨씬 늦어진 시간에도 아무도 집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고, 모두가 두다멜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한편 르몽드에서는 (10월 27일자) 두다멜이 과연 그의 타이틀이나 소문 만큼 실력이 있는가 문제를 제기하는 리뷰가 실렸다. 곡 해석이 너무 강하고 rough하다는 점을 들며 대체로 혹평에 가까운 글이었는데. 사실 몇몇 부분이 좀 과장된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다.
나야 곡을 어떻게 들어야 할지 아직 별다른 기준도 없고 지식도 없어 전문가의 말이 맞나보다 싶긴 하지만. 그래도 직접 듣고 있을 당시에는 그저 마법처럼 정신없이 빨려드는 기분이었으니.
도통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의 커리어가 앞으로도 많이 다듬어져야 하고 더 많이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리고 하드 락 공연에 다녀온 것 처럼 머리가 띵했다는 것 또한 상당부분 동의) 지금 2009년 파리에서의 두다멜을 볼 수 있었던 것으로 나는 만족하기로 했다.
앞으로 기대할 수 있는 어떤 완숙한 모습 만큼이나 지금의 이 공연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몇십년후의 "거장"을 미리 기대하는 것은 파릇파릇한 청년에게 괜히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싫다.
어쨌든 내가 들었던 가장 박력있고 유쾌하고 기분 좋은 라벨과 베를리오즈였고.
이 날 본 것처럼 흥분하고 떠들썩 한 파리 사람들의 모습은 무척 낯설고도 재밌었다.
보통 파리의 클래식 공연장에서 보는 이들은 다들 근엄하고 어딘가 꿍꿍이가 있어보이고 일없이도 바빠보이는데에 비해, 이렇게 말썽꾸러기 같고 술취한 것 같은 모습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 아르떼에서 23일 공연 실황을 동영상으로 공개했다.
다시 봐도 좋다.
결혼반지는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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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빛이 쨍한 일요일 오후, 플레이옐에 콘서트를 보러 갔다.
오늘의 프로그램은 이번 주말에 걸쳐 열린 브람스 실내악곡 싸이클 중 마지막 공연으로,
현악 오중주 op.111과 피아노 오중주 op.34 가 예정되어 있었다.
연주자는 Quintette Capuçon, 그러니까 카퓌송 퀸텟 + 피아니스트 니콜라 앙겔릭(Nicholas Angelich)이었다. 카퓌송 퀸텟은 형제 바이올리니스트 Renaud Capuçon과 첼리스트 Gauthier Capuçon을 중심으로 바이올린에 Aki Saulière, 비올라에 Béatrice Muthelet 와 Antoine Tamestit - 이름은 처음들어본 - 으로 구성되어 있다. 올해 초 플레이옐 시즌 presentation 공연 때 Renaud와 Nicholas Angelich의 공연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굉장히 좋은 연주를 들려주어서 이번에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표를 예매했다. 게다가 브람스 피아노 오중주 34번은 정말 내가 제일 제일 제일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데. 놓칠 수 없었다.
플러스. 이번엔 친한 친구와 같이 가게 되어서 좀 더 들떴다. 히히..
10유로짜리 가장 꼭대기 안 좋은 클래스 자리를 예매했었는데 운좋게도 이 날 관객이 그다지 많이 들지 않아서 앞에서 두번째 자리에 엉겁결에 앉게 되었다.
물론 무대에 아주 가까운데다 가장자리 쪽이어서 목이 아파 계속 무대를 보기가 힘들긴 했지만.
돌아 앉은 첼리스트 고티에의 얼굴은 보지도 못했고 두번째 바이올리니스트는 거기에 있는지도 공연 시작 한참 후에야 알았다.ㅎㅎ
어쨌든 연주자들과 가까이 있을 수 있어서 좋았다. 피아노 소리도 정말 생생하게 들렸고.
브람스 오중주 34번은 저번에 하겐 쿼텟과 폴리니의 연주로 플레이옐에서 직접 듣고, 문자 그대로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한 후로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루빈스타인/구아네리 쿼텟, 폴리니/콰르테토 이탈리아노 이렇게 두 종류의 씨디를 사서 집에서 아무 생각없이 계속 반복해 들었다. 정말 곡 자체의 흡인력이 대단한 것 같다.
특히 3악장과 4악장에서 느껴지는 나무 악기들의 힘이란 정말...
(정말 나무 울음 소리가 나는 거 같아서 나무 악기라고 꼭 쓰고 싶었다)
오늘 공연에서도 어휴... 르노 카퓌송의 몰아치는 듯 강하면서도 섬세한 바이올린은 정말 대단했다. 다만 내가 들어본 다른 연주들에 비해서 다른 바이올린과 비올라 분들의 백업은 다소 힘이 달리는 느낌이었다. 동생인 고티에 카퓌송은 미소년들만 할 수 있다는 갈색 테리우스 단발머리에 어울리게도 무척 부드러운 첼로를 연주했는데. (그렇다고 또 미소년이라는 뜻은 아님.)
좋긴 한데 너무 비단결같이 부드럽기만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4악장 끝날 때 즈음 첼로 혼자 부분에선 특히 좀 불안할 정도로 빡빡 긁는 맛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왔는데.
그러나 연주가 끝나고 공연장 밖으로 나가니 저 주요 인물들의 사인회가 열리는 것이 아닌가.
아쉬웠던 점이고 뭐고 생각도 안나고 얌전히 줄서서 방글방글 웃으며 사인 다 받아서 나옴.
친구는 심지어 르노와 사진까지 찍었다.
공연 후에 이벤트가 있었던 적은 처음인데 또 이런 재미도 있네.
오랜만에 정말 이상적인 주말을 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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