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3년 동안을 계속 알고 지내온 친구와 오랜만에 한시간 가까이 통화를 했다.
아직도 초밥을 먹을 때면 내 생각을 하게 된다며
지난 여름 식중독에 걸리던 날에도 슈퍼에서 파는 포장 초밥을 먹으면서
내 생각도 조금 하고 했다는 말에.
아 태어나서 다행이다, 내 의지도 아니었던 일에 괜히 보람을 느꼈다.
(아팠다니 걱정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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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때문인지 유독 까마득하게 느껴졌던 2012년이 핸드폰 화면에 달력 한 귀퉁이에 자리를 차지한지 벌써 22일이나 지났다. 친구들과 통화하거나 만났을 때 가장 중요한 이야깃거리는 단연, 이 나이 먹을 동안 대체 뭘 했냐는 자문 내지는 푸념이다. 2년 전 내가 26살이 되었을 때 엄마가 내가 스물 일곱인 줄 알고 징그럽다며 깜짝 놀라시던 기억이 정말이지 생생한데. 이제 스물여덟이나 먹은 딸에게는 도리어 아직 젊다 위로하느라 애쓰시는 걸 보니 푸드득 웃음이 난다.
그동안 뭘 했느냐는 한탄이란 뭔가를 하지 "못했"다는 후회에서 나오는 것인데
그렇게 넋두리를 주절주절하고 돌아온 저녁은 어쩐지 스스로에게 창피한 기분이었다.
내가 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창피함이 아니다.
내가 하지 못했던 일들을, 어떤 대단한 것들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창피함이다.
보들레르처럼 글을 쓰고 싶었던 23살, 마냥 정신이 없었던 24살, 일은 재밌고 공부는 힘들어 갈팡질팡했던 25살, 그저 다 그만두고만 싶었던 26살, 새옹지마 전화위복을 온 몸으로 실감했던 지난 해, 나는 내 그릇에 맞는, 나의 자격에 맞는, 내 시간의 흐름에 맞는 일들을 해왔을 뿐이었다.
그 무엇도 쓸데 없는 일은 없었다. 당장 자축하는 화환을 내걸고 대리석 기념비를 세울 꿈 꿀 것 없다. 더 갈고 닦자. 나의 날들은 내가 준비했던 만큼만 채워져왔다.
올해도 행복하게 건강하게 그리고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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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 간 날씨가 무척 궂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인 지금까지 잦은 비는 물론이고 찬 바람이 정말 쌩쌩 불어서
파리가 자랑하는 최악의 겨울 날씨를 아주 원없이 맛볼 수 있었다.
그나마 방학이 시작되어 집에서 웅크리고 있을 수 있어 다행이지, 계속 학교도 가야하고 도서관도 가야했다면 몸도 마음도 좀 힘들었을 것이다.
어디를 나가도 장갑과 모자 없이는 너무너무 춥다. 보통 때처럼 양말에 부츠를 신어도 발가락이 시려서 평소에는 자각하기 어려운 발가락이라는 신체 부위에 대해서 계속 신경을 집중하게 되는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아....쓰면서도 생각만 해도 추워.

작년 겨울 한국에서 어마어마한 추위를 (프랑스의 그것과는 개성이 또 다른) 겪으면서 열심히. 나름 열심히 연습했던 곡인데. 손끝이 곱아오고 입김은 무슨 액토플라즘같고 코 끝이 빨갛다 못해 아슬아슬 저리는 이 추위를 다시금 맞이하며 - 오늘은 정말 이 곡을 듣고 싶었다.

바흐, 쇼팽,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의 프렐류드와 푸가 (쇼팽과 라흐마니노프는 전주곡만) 가 다 좋지만 내가 듣기에 가장 개성이 강렬하면서도 탄탄한 - 심지어 아주 탄탄한 - 음악적 구조를 잃지 않는 곡이라면 단연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이다. 그리고 하필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갑자기 너무너무 듣고싶어 어쩔 줄 모르게 하는 곡들 역시 쇼스타코비치의 것이다. 정말 오늘 지금 이 순간 이 곡이 안되면 안되겠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끼게 하는 그런 곡.
아빠가 작년에 알려준 타티아나 니콜라예바의 연주는 흠잡을 곳이 없다.
리히터의 연주도 괜찮지만 내가 가진 앨범에는 전곡이 아니고 5곡 밖에 들어있지 않아서 전체를 듣고 판단할 수가 없어 아쉽다.
왠지 작년에도 이 곡을 블로그에 올렸던 것 같은데.
아무튼 작년 겨울이 조금 그리워지기도 한다. 지금 보리와 아빠와 가까운 곳에 함께 있는 것이 작년보다 더 행복하지만, 또 더 많이 그리워질 순간이겠지만, 작년 겨울 피아노 연습하러 다니던 때가 눈앞에 선해서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추억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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