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방학이 신나게 느껴지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지난 몇년동안 방학이고 주말이고 평일이고 학기중이고 거의 다를 게 없는 생활을 하다 보니. 새삼 방학이 무척 반갑다.
오늘은 정말 아쉬운 풀로 선생님의 학기 마지막 강의가 있었다.
아침부터 비바람이 몰아치고 어두컴컴한데다 8분이나 기다려 겨우 탄 버스는 중간에 완전히 길이 막혀버려 20분을 한 곳에 그냥 서있었다. 그래서 결국 수업에 15분인가 20분이나 지각. ㅠㅠ 첫 부분을 놓쳐서 너무 아쉬웠다. 오늘 수업 주제는 Musée d'histoire de France, 프랑스 역사박물관의 tentatives de "définition" (si possible), histoire, typologie, 그리고 결국 프랑스의 역사를 다루는 박물관이란 오늘날 "어떤 곳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
교수님은 정말 내가 아는 , 아마 내가 직접 본 사람들 중 가장 아마도 가장! 박학다식한 분인 것 같다. 박물관과 서유럽근대사에 대한 지식이 정말 깊고 넓기 이를데가 없다. 정말 매번 깜짝 놀란다. 박물관과 근대사 - 딱 두 단어일 뿐이지만 박물관? 근대사? 어마어마하게 넓은 분야다. 게다가 유머감각도 있고 말씀도 정확한 용어들을 사용해서 딱 부러지게 하시기 때문에 수업 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지루한 줄을 모른다.
이런 분에게서 지도를 받는다는 것이 큰 행운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여기저기서 부르는 곳도 많고 찾아오는 학생, 연구자들도 너무 많아 교수님한테 내가 누군지 알게 하려면 아마도 더욱 큰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어제 새벽 세시까지 과제를 했는데... 5일과 9일날 둘다 발표도 하고 레포트도 제출해야 했고 13일까지 이 과제 제출이라 너무 시간이 없어서 진짜 눈물을 흘리고 머리를 꽁꽁 때려가면서 겨우 했더니....... 못한 사람들은 이번 주말까지 내라고......ㅋ 나보다 불어도 (당연히) 잘하고 시간도 더 있는 프랑스 애들 과제에 비교돼서 내 과제물이 너무 처절하게 잊혀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아 그리고 수업 끝나고 inha 객원연구원이고 다음학기 우리 전공필수 수업을 맡은 passini씨와 논문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많은 조언을 들었다. 아담한 체구에 무척 상냥하고 또 젊은 (나보다 5살이나 많으려나?) 이탈리아 여자분인데 곧 출판될 그녀의 논문 주제는 "국가주의와 미술사 (nationalism in art history)"다. 내가 공부할 주제와 공통점이 많다.
이번 학기들어 벌써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자극도 많이 되고 또 반대로 자신감도 생기고. 어쨌든 예전과 달리 주눅들지 않고 사람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좋다.

내일모레 오전에 역시 고고학사 마지막 수업이 있고 이제 정말 끝! 물론 1월달에 고고학사 기말시험을 봐야 하긴 하지만... 아직 한달 남았으니 ^^  ^^
막스의 1844년 수고를 비롯한 초기 저작들과 프루스트, 위고를 읽고 카르나발레 19세기 파리 민중사 전시와 유대역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발터 벤야민 archives 전시에 꼭 가볼 생각이다. 내일모레 금요일엔 친구랑 오르세에 가서 oscar wilde의 영국 romantisme 전을 관람하기로 했다.
그리구 한번은 보리랑 기차타고 근교에 나가서 산책을 하고 올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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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이다.
마지막 달...
사실 연도는 그냥 숫자에 불과하고 우리는 그냥 매일 매일 연속을 살아가고 있는 것 뿐인데
사람을 이렇게 조바심나게도 하고 후회에 젖게도 하고 새로운 결심에 설레게도 하고 신기하다.
사실 이런 생각 자체도 매년 이맘때 늘 되풀이하는 똑같은 혼잣말일 뿐이다.

지금 나는 기말평가 기간 한 가운데에 있다.
그저께 월요일날 "서울의 박물관들 - 과거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 이라는 제목으로 30분 짜리 발표를 하나 마쳤다. 가뜩이나 인원이 적은 수업인데 하필 또 네명이나 결석을 하는 바람에. 아주 알콩달콩 정겨운 분위기에서 발표를 하게 되어서 확실히 긴장도 많이 하지 않고 편안하게 말을 할 수 있었지만 ... 그래도 무척 열심히 준비했는데 아쉽기는 하다.

내일 모레는 박물관학사 수업 발표와 과제물 제출날이다.
테이트 리버풀에서 본 "This is Sculpture" 전시를 주제로 삼아 이를 분석해야 한다. 사실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게 술술 써져서 지금 조금 여유를 부리고 있다. 심지어 재미가 있었다. 역시 나는 비평하는 게 재미있다. 내가 만들지는 못하면서... ㅎㅎ 하긴 사실 현재의 내 지식과 경험으로는 할 수 있는게 보고 읽고 분석하는 것 뿐이다. 또 직접 창조를 하기 보다는 평을 정말 "잘" 하기 위해서 지금 이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실 그리 죄책감 내지는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는데. 그리고 그닥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가만 보면. 뭐야 왜 쓴거지. 어쨌든 지금 내가 하는, 해야하는 일이 무척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13일날 아침에 제출해야 하는 지도교수님 수업 과제인데.
이건 정말 잘해야하는데. 사실 지금 9일날 과제를 얼기설기 끝마쳤다고 정신 놓고 놀고 있을게 아니라 어서 13일 과제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터다.
이 싫고 귀찮으면서도 즐거운 마음이라니.
아참. 과제 얘기를 줄줄이 쓰려고 했던 건 아니고.

프루스트의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와 위고의 les miserables 를 이번 겨울엔 다 읽고 싶다.
레미제라블은 어릴 때 정말 정말 좋아하던 소설인데 여기 와서 프랑스어로 다시 읽으려고 작년에 책을 사뒀다가 그동안 제대로 짬을 내지 못해서 흐름을 아직 타지 못하고 있다. 프루스트 역시 아직 제대로 깊숙히 들어가지 못해서 초반 열 몇장 정도만 매번 펼칠 때 마다 반복하고 있는 정도이지만 그래도 요즘 그 순환?이 점점 빨라지고 있어서 스스로 기특해하는 중 ㅋㅋ 아 창피해.
프루스트를 정말 꼭 읽고 싶어야겠다 결심한 것은 바로 오늘 아침인데, 커피 끓이면서, 보리 밥 주면서, 환기시키려고 창문 열면서 나도 모르게 프루스트 식의 표현과 단어들을 되뇌이고 있음을 깨닫고 부터이다. 20세기 프랑스 산문 문학은 프루스트 없이는 성립이 안된다고들 하던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첫 열 몇장만 지치지도 않고 반복하고 있는 불성실한 독자에게도 이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다니 말이다.

그리고 1월 중순에는 아무래도 아빠를 보러 한번 짧게 다녀오고 싶은데... 모르겠다 페리 값이 비싸고 아직 고고학사 시험 일정이 안나와서.
2월 2일날 어차피 다시 런던에 갈 거고 영우랑 아빠랑 그 달 말까지 함께 시간을 보낼 테니 굳이 또 갈 필요는 없나 싶기도 하고. 2월 한 달은 정말 너무 바쁘고 복닥복닥 즐겁겠지만 2월 말이 되어서 아빠와 영우가 한꺼번에 한국으로 돌아가버리면 아무래도 쓸쓸해지지 않을까.
이것봐라. 그새 또 프루스트 책에서처럼 아직 오지도 않은 사람들을 떠날까봐 애달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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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라디오 클라식을 틀었더니
1922년 오늘이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가 세상을 떠난 날이라고 한다.
스완과 오데트 이야기를 하면서 세자르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1악장을 안 가스티넬이 첼로로 연주한 것을 틀어주었는데 하루종일 계속 생각난다. 우습지만 그저 내 집 책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도 왠지 따뜻하고 애틋한 바람이 어디선가 내게 불어 오는 듯한 느낌이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역시 그뤼미오의 연주가 듣기 좋아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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