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이다.
마지막 달...
사실 연도는 그냥 숫자에 불과하고 우리는 그냥 매일 매일 연속을 살아가고 있는 것 뿐인데
사람을 이렇게 조바심나게도 하고 후회에 젖게도 하고 새로운 결심에 설레게도 하고 신기하다.
사실 이런 생각 자체도 매년 이맘때 늘 되풀이하는 똑같은 혼잣말일 뿐이다.

지금 나는 기말평가 기간 한 가운데에 있다.
그저께 월요일날 "서울의 박물관들 - 과거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 이라는 제목으로 30분 짜리 발표를 하나 마쳤다. 가뜩이나 인원이 적은 수업인데 하필 또 네명이나 결석을 하는 바람에. 아주 알콩달콩 정겨운 분위기에서 발표를 하게 되어서 확실히 긴장도 많이 하지 않고 편안하게 말을 할 수 있었지만 ... 그래도 무척 열심히 준비했는데 아쉽기는 하다.

내일 모레는 박물관학사 수업 발표와 과제물 제출날이다.
테이트 리버풀에서 본 "This is Sculpture" 전시를 주제로 삼아 이를 분석해야 한다. 사실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게 술술 써져서 지금 조금 여유를 부리고 있다. 심지어 재미가 있었다. 역시 나는 비평하는 게 재미있다. 내가 만들지는 못하면서... ㅎㅎ 하긴 사실 현재의 내 지식과 경험으로는 할 수 있는게 보고 읽고 분석하는 것 뿐이다. 또 직접 창조를 하기 보다는 평을 정말 "잘" 하기 위해서 지금 이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실 그리 죄책감 내지는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는데. 그리고 그닥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가만 보면. 뭐야 왜 쓴거지. 어쨌든 지금 내가 하는, 해야하는 일이 무척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13일날 아침에 제출해야 하는 지도교수님 수업 과제인데.
이건 정말 잘해야하는데. 사실 지금 9일날 과제를 얼기설기 끝마쳤다고 정신 놓고 놀고 있을게 아니라 어서 13일 과제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터다.
이 싫고 귀찮으면서도 즐거운 마음이라니.
아참. 과제 얘기를 줄줄이 쓰려고 했던 건 아니고.

프루스트의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와 위고의 les miserables 를 이번 겨울엔 다 읽고 싶다.
레미제라블은 어릴 때 정말 정말 좋아하던 소설인데 여기 와서 프랑스어로 다시 읽으려고 작년에 책을 사뒀다가 그동안 제대로 짬을 내지 못해서 흐름을 아직 타지 못하고 있다. 프루스트 역시 아직 제대로 깊숙히 들어가지 못해서 초반 열 몇장 정도만 매번 펼칠 때 마다 반복하고 있는 정도이지만 그래도 요즘 그 순환?이 점점 빨라지고 있어서 스스로 기특해하는 중 ㅋㅋ 아 창피해.
프루스트를 정말 꼭 읽고 싶어야겠다 결심한 것은 바로 오늘 아침인데, 커피 끓이면서, 보리 밥 주면서, 환기시키려고 창문 열면서 나도 모르게 프루스트 식의 표현과 단어들을 되뇌이고 있음을 깨닫고 부터이다. 20세기 프랑스 산문 문학은 프루스트 없이는 성립이 안된다고들 하던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첫 열 몇장만 지치지도 않고 반복하고 있는 불성실한 독자에게도 이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다니 말이다.

그리고 1월 중순에는 아무래도 아빠를 보러 한번 짧게 다녀오고 싶은데... 모르겠다 페리 값이 비싸고 아직 고고학사 시험 일정이 안나와서.
2월 2일날 어차피 다시 런던에 갈 거고 영우랑 아빠랑 그 달 말까지 함께 시간을 보낼 테니 굳이 또 갈 필요는 없나 싶기도 하고. 2월 한 달은 정말 너무 바쁘고 복닥복닥 즐겁겠지만 2월 말이 되어서 아빠와 영우가 한꺼번에 한국으로 돌아가버리면 아무래도 쓸쓸해지지 않을까.
이것봐라. 그새 또 프루스트 책에서처럼 아직 오지도 않은 사람들을 떠날까봐 애달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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