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딱 이맘때 정명훈 지휘 라디오프랑스필하모닉의 공연을 처음 봤었는데..
지난 365일 동안 열심히 보러다닌 수많은 공연들이 차곡차곡 쌓여
오늘은 왠지 그 결실을 본 느낌이다.
결실을 보았다고 해야하나, 보답을 받았다 해야하나.
차라리 벌을 받았다고 해야하나. 박수를 하도 쳐서 손바닥이 얼얼하고 머리가 아직도 쿵쿵 울린다.
프로그램은 간단명료, 라흐마니노프 피아노콘체르토 3번, 차이코프스키 심포니 4번이었다.
니콜라 앙겔릭...(미국인 피아니스트로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어 이름이 우스꽝스럽게 발음 되는 것을 참아야만 하는 얄궂은 운명.)의 피아노로,
몇번 쿼텟 혹은 트리오 정도 규모의 실내악 프로그램에서 연주를 들어본 적이 있다.
외모와 몹시 어울리지 않게 아주 가볍고 경쾌한 연주를 해내 인상깊었다.
하지만 오늘 rach3은.........
글쎄.정말 글쎄였다.
매우 단정한 피아노에 비해 오케스트라 음량이 압도적이었고.
아니 난 무엇보다 피아니스트씨의 문제였다고 생각하는데...다들 너무 브라보를 외치면서 감동에 감동을 하길래 뭔가 내 귀가 이상한가 싶기도 하다.
피아노가 독주를 하면 소리가 맑고 또랑또랑하긴 한데 그것만으로는 조금 심심하고.
오케스트라와 합주를 하면 묘하게 따로 노는 느낌이 들어 신경에 거슬렸다.
다행히 3악장에서 몇몇 부분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무척 좋아서
아무래도 1,2악장에서는 아직 워밍업이 덜 됐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앙겔릭씨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을 끄득 끄득 받았다.
아무리 쇼팽 탄생 200주년이라지만 그렇다고 라흐마니노프를 쇼팽 프렐류드처럼 연주하고...
앵콜곡이 오히려 꽤 좋았다.
+ 아르떼 라이브웹에서 다시 보고나니 내 자리가 너무 멀어서 피아노 소리가 잘 안들렸었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아쉽다. 정말 좋아하는 곡인데.
정명훈의 차이코프스키 4번은 정말 올해 들어 본 공연 중 최고의 연주와 지휘 중 하나였다.
긴장과 흥분이 가시지를 않네.
집에 와서 므라빈스키의 연주를 비교삼아 다시 꼼꼼히 들어보았는데
이 위대한 러시아 지휘자만큼 속도감이나 견고함에 공을 들이지는 않았지만
마디 간의 자연스러운 연결에 신경쓴 탓에 곡 진행이 무척 매끄러웠고 강약의 대비도 주요부분의 강조도 무척 설득력있는 정말 좋은 연주였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정명훈 지휘에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장점들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리듬을 타고 점차 고조되는 그 힘을 한번에 가뿐하게, 팡 터트리듯이 발산해야하는 그런 부분들을 아주 매력적으로 표현하는 지휘자다. 아 정명훈이 지휘하는 볼레로를 진짜 진짜 한번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위대함에 또 한번 감탄했다.
내일 책방 들르면 차이코프스키 전기 한번 사서 읽고 싶다. 진짜 대단해.
기분 좋은 생일 전날 새벽.
아바처럼 음악에 감사하면서 푹 잘 자야겠다.
아 그리고 엄마아빠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