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틸레만과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싸이클.
두번째 공연에 다녀왔다.
오늘은 심포니 6, 7번.
이 정도의 연주를 일생에 몇번이나 더 들을 수 있을까?
단원들이 가끔 실수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만 안났다면 ㅋㅋ.. 그냥 나는 멍한 채로 이게 꿈인지 생신지 분간조차 못하고 멍청하게만 앉아 있었을 것이다.
단원들 한사람 한사람의 얼굴이 다 베토벤으로 보인다.
틸레만은 왕베토벤....
이렇게 자꾸 귀를 호강 시켜서 큰일이다.
내내 시간이 아름답게만 흘러갔다.
막히는 구석 하나도 없이 유유하게, 높은 산 정상에 올라서서 저 멀리 흐르는 강물과 빼곡한 녹음과 아득한 지평선을 눈 앞에 두고 선선한 바람을 그저 벅찬 감정으로 들이마시는 그런 기분으로 시간이 흘렀다. 뭐라 더 할 말도 없다 이젠.

중간중간 느낀 점들을 두서 없이 막 써놓고 빨리 자야겠다. 다른 음악이 생각날까봐 무섭다
오늘 자리는 1층 발코니 무대를 바라보고 왼쪽 모서리 쪽이었는데
역시 간이의자였지만 그래도 이 정도 자리를 얻은 것에 마냥 기뻤다.
어제보다 사람들이 훨씬 많이 왔다. 느지막히 표를 사려 줄을 서는 인파도 엄청났고 계단 통로에 앉거나 기대어서 보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어제는 가깝고 시야가 탁트여 정말 훌륭한 자리였지만 관악기들과 내가 집착하는 팀파니를 제대로 볼 수 없어서 아쉬웠는데 오늘은 그런 걱정이 없었다. 덕분에 팀파니 주자를 마음껏 노려보았다. 팀파니가 왕자리에 있지 않고 오른쪽으로 치우쳐있어서.
지휘자도 뒷모습만 보다가 약간 옆에서 보니 더 이해하기 쉬웠고. 살짝 아쉬웠던 것은 어제 제1바이올린 앞에서 5번째 줄 안쪽에 앉은 연주자 아저씨가 대단한 연기파셔서 얼굴 표정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오늘은 그 분이 무대에 나왔는지 어쨌는지 확인할 길 마저도 없었다는 것이다. 잘 계셨겠지... 오늘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 재미를 양보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뭐야 이게 ㅋ
그리고 제2바이올린의 수석? 부수석? 아주 어려보이는 밝은 금발의 남자 연주자가 있었는데 오늘은 더 잘 보여서 재밌었다. 정말 열정적으로 연주하더군. 지휘자와 서로 활발하게 소통하면서 연주하는 모습이었다.

팀파니와 피콜로 연주가 없는 부분은 너무 괴롭다.
팔짱 딱 끼고 고개 숙인 두 분의 그늘진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
그늘진게 다른게 아니라 스포트라이트 때문에 눈썹 밑으로 그림자가 확 지는데
거기다가 팔짱 끼고 ...뭔가 되게 우울해보인다. 실제로는 뭐 전혀 아니겠지만 괜히 내가 혼자 불안하다. 저기 저 분들 빨리 파트 주라고! 어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속으로 외치고있는 것이다.
7번 할 때 피콜로 분이 아예 안나오셔서 차라리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7번에서 팀파니 파트가 워낙 많아서 역시 이 쓸데없는 걱정을 덜어놓을 수 있었다.

오늘 가장 칭찬 받은 사람들은 클라리넷, 오보, 플룻, 바순 그리고 호른 수석들.
어제도 그랬다 사실 ㅋ
하지만 7번에서는 플룻 약간 불안한 순간들이 있었는데. 바순도 한번 약간 삐끗했다.
하긴 그나마 그런 실수라도 안했으면 립싱큰줄 알았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앵콜 없고 커튼콜 한 세번 하고 다들 후닥닥 일어나서 퇴장했다.
사실 피곤할 법도 하다. 난 어제도 오고 오늘도 오길 잘한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낯익은 얼굴 되게 많이 마주쳤다 ㅋ 다들 어제 오고 오늘도 오고 또 주말에도 오겠지.

알고보니 틸레만은 kurt가 아니라 폰 트라프 대령이었다... 동안 아니잖아...
완전 풍채 좋으시다.
독일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도 십분 이해가 간다. 그냥 외모만 보더라도.
오늘은 정확히 6번 3악장 부터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1악장 2악장에서는 비교적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으나 얼굴이 붉어짐과 함께 어제 5번때와 같은 온 몸으로 몰아치는 지휘를 시작. 멋지더라.

아 정말 그런데 6번 7번 오늘 너무 다 훌륭해서 뭐라고 더 할 말이 없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7번이 연주되는 매 초가 정말 너무너무 소중해서 막 씹어 삼키고 싶었다.
베토벤의 의젓하고 기운찬 교향곡들 비엔나 필하모닉과 틸레만은 그냥 다 알고있는 것 같았다. 어제 5번 4악장은 여전히 이해가 잘 안되지만 그래도 오늘 연주한 곡들은 내가 바라던 그대로 재현되었다. 뭐 역시 각자 취향인거겠지만 아 정말 7번. ..으으으
1, 3, 4 악장의 활기차고 건강한 리듬감 기분 정말 좋았다. 집에 오면서 아마 테이프였으면 벌써 늘어졌을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음반을 다시 들었는데 음 여기에 비교해도 역시 괜찮았다. 
2악장을 들을 때마다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드는데 가사가 없는 그것도 긴 음악을 듣고 이런 감정을 느껴본 것은 아니 뭔가 감정이 움직이는 기분을 느껴본 것은 이 곡을 들은 것이 처음이었다.
설사 처음이 아니었더라도 어쨌든 내가 처음이라고 하면 처음인 거니까. 그렇게 우기고 싶은 것이다. 정말 특별한 곡이다. 그때 이 2악장을 듣지 않았더라면 베토벤이 어떤 사람이건 그 음악이 어떤 것이었건 아마 지금까지도 궁금해하지도 않고 잘 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틸레만의 오늘 연주가 좋았다고 극찬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까닭은 이 2악장을 훌륭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처음의 솔 도 미 라 그 a minor?? 맞나 아무튼 그 화음이 나올 때부터 가장 끝에 그 가볍게 사라지는 듯한 미묘하고 우아한 마무리까지 나무랄 데 없는 연주였다. 흑흑 고맙습니다
그리고 7번 교향곡에서 비올라가 이렇게 중요한지 몰랐다.
비올라 소리가 알고 싶어서 계속 찾아 헤매고 있었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좋은 예가 있었군.

6번도 내가 상상하던 6번 그대로였다. 부드럽고 청량하고 담대한. 기분 너무 좋았다.
악보 보고 공부 좀 해보고 싶다.
새들 지저귀는 소리 너무 훌륭하다. 그 소리들을 만들어낸 베토벤이 존경스럽고 사랑스럽고 귀엽고 그렇다. 귀엽다는게 아이 귀여워 이런게 아니라 막 그... 좀 다른 느낌이다.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ㅠ
베토벤 전기도 사 읽어야겠네 또...

27, 28일날 남은 1, 2, 3번 그리고 8, 9번 공연이 있는데
뒤늦게 8, 9번 공연도 보러 가려 했으나 (당연히) 이미 매진이다.
또 나중에 기회가 있겠지. 지금의 나한테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 하나 더 보게되면 감상문이 감상문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그냥 어떡해 짱이야. 이걸로 요약해버릴 듯. 사실 오늘도 집에 오는 길에는 "정말 좋았다" 는 말 외에 더 무슨 말을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위에 써 놓은 것도 뭐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만.
그냥 정말 좋은 것이다. 그냥 정말 좋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순수한 기쁨과 전율과 희열 그것이 다였다.





떼아트르 데 샹젤리제. 새삼스럽게 한번 찍어봄



오늘 내 자리.



청중의 뜨거운 환호. 내 앞에 대머리..아저씨가 앉으셨는데 저렇게 왜곡되게 나와서 속상하고 죄송스럽다....



짠 오늘 숙련된 솜씨로 한 장 찍어서 완전 잘 건졌다.



아저씨 또...
그냥 사람들 얼마나 왔는지 찍어 보았다.



집에 가는 버스 기다리다가.
정류장 앞에 일반 버스가 이렇게 버젓이 무개념 주차를 해놔서 당황했는데
자세히 보니 빈필 버스라서 급방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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