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그리스 채무불이행 시나리오의 기정사실화, 2011년과 2012년에 우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 여러가지 자연재해 예측들에 대한 기사들을 보고 있자니 심장이 떨리고 힘이 빠진다. 세상엔 너무 많은 나라가 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고 또 너무 많은 "사실"들이 있다. 나는 이것들을 원하건 원치 않건 알게 되는 것이 가끔 싫고, 어쨌건 사실 그 상당수가 은폐되어 있고 나는 영영 모를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유쾌하지 않다.
무서워서 자고 있던 보리를 억지로 품에 안고 컴퓨터 앞에 와서 나머지를 읽었다.
살아 움직이는 것이 내 옆에 있어 안심이 된다. 나와 같은 시공간을 살고 있는 따라서 나와 같은 처지인 동맹군이 있다는 것. 더구나 이 친구는 나에게 무언가를 묻지도, 말을 시키지도, 겁을 주지도, 화를 내지도 않는다. 그냥 옆에 있어 줄 뿐이다. 같이 살아갈 뿐이다.
보리의 꾸미지 않은 - 개이므로 당연한 - 무신경함, 순진함, 무지함이 이런 밤 나에게 크나큰 위안이 된다.
그저 나에게 닿아있는 것이 좋아 내 의자에 몸을 찰싹 붙이고 엎드려 곤히 자는 조그만 짐승.

내일은 플레이옐 2011/12 시즌 첫 공연이 있다. 파보 예르비 지휘의 orchestre de paris의 공연으로, 베를리오즈의 ouverture du Corsaire,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협연 Khatia Buniatishvili), 그리고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이 예정되어 있다. 아마도 보리 때문에 1부만 보고 집에 오지 않을까 싶다. 보리가 걱정되어서라기 보다는 보리가 보고 싶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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