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내용이 어떻든 간에) 보다 본격적인 의미의 방학이 점점 가까이 다가옴과 함께.
정말 모든 것이 다 귀찮아지고 있다. 금방 지나가겠지만...
아무튼 그래서 - 그나마도 짧게 끄적이는 수준이지만 - 글 쓰는 것도 전혀 엄두도 내지 않고 있었다.

어제 18일에는 정명훈과 Orchestre philharmonique de la Radio France,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 Vadim Repin의 콘서트에 갔었다. 오랜만에 정말 마음에 드는 연주를 들었는데 이렇게 뿌듯한 날은 집에 돌아오는 그 익숙하고 별다를 것 없는 길이 살아 움직이는 무엇과 같아 그 숨소리가 들리고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것만 같다. 마치 허공을 무게 없이 걷는 듯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공연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은 경직된 어깨로 지팡이만 없을 뿐인 좀머씨처럼 무섭게 걷고 주로 말도 안되는 팝송들을 귓 속에 구겨넣으며 돌아온다.

신뢰. 이제는 정명훈과 OPRF의 연주는 프로그램이 어떤 것이라 할 지라도 무조건 가서 보고 싶다. 사실 그 레퍼토리가 보통 대단히 모험적인 것은 아니고 이 곳 사람들이 좋아하는 감성적이고 세련되고 재기넘치는 프랑스-러시아 작곡가들의 "클래식"들을 비교적 온순하게 훑는 경우가 많아, 어떤 날짜를 선택하더라도 일반적 취향의 사람 (아마도 나도 포함)에게 그 권장분량을 초과하는 일탈을 요구하는 일은 거의 없으므로, 이는 어쩌면 파리에서 고를 수 있는 가장 무난하고 점잖은 악단과 지휘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OPRF의 예술감독인 정명훈의 곡 선택은 적어도 나에게는, 그리고 공연날 마다 관객석을 빈틈없이 가득 메우는 2천여명의 파리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원하는 것이 단순한 클래식 명곡 산책의 수준이 아님을 점점 더 확신하게 하는 수준 높은 전략이다. 프랑스 작곡가들이야 그렇다 치고, 올해는 러시아 문화의 해이므로 러시아 레퍼토리를 꾸준히 연주하는 것은 정책적인 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정명훈과 그의 오케스트라는 그들이 선택한 곡들을 너무나도 빼어나게 연주해내고 있다. 이 사실에는 음악 외의 어떠한 설명이나 이유도 가져다 붙일 필요가 없다.

최근 정명훈 연주에서는 특히 긴장과 집중이 흩어질 새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강렬하고 꽉 찬 느낌이 대단히 압도적인데, 매번 그럴 것이라는 기대에 배반당한 적이 없다. 바딤 레핀도 오케스트라와 어울려 대가 다운 훌륭한 바이올린을 들려주었는데, 본 프로그램인 랄로 스페인 교향곡도, 재치넘치는 앵콜곡도, 공연 보러다니는 보람을 백배 천배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앵콜곡 다시 듣고 싶어 죽겠다. 빨리 아르떼에 올라왔으면 좋겠다. 아. 얼마전 크레모나의 스트라디바리우스 박물관에 다녀왔는데. 그 예술 작품이 만드는 또 다른 차원의 예술을, 그 떨림을 지금 내가 바로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 감격했다. 형체도 없는 선율을 만드는 예술.

차이코프스키 6번이야 워낙 곡이 대단하기 때문에...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다. 정명훈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은 무엇보다 그 생동감이 놀랍다. 아주 맛깔스러운 연주다.
합창석에 앉아서 팀파니와 관악기들 큰 소리를 너무 너무 가까이서 들어서 좀 아쉽긴 했다.

아직도 뿌듯하군.
솔직히 마음같아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우와우ㅏ아ㅗㅇ앙 너무좋아 이렇게 써버리고 싶기도 하고
사실 전화로 말할 때는 우ㅏ와우ㅏ오우ㅏ와앙 짱이야 짱이야 이랬지만..
글로 쓰려니 힘들군.
연습이다 연습.
아이고 ㅋ

+
아르떼에 올라온 동영상을 다시 보며.
무시무시한 기교와 강철같은 집중력이 필요한 파트에서도 그저 음악이 즐겁고 기분 좋아 아이같이 입가에 떠오르는 웃음을 숨기지 못하는 이 연주자, 스스로도 모르게 입으로 딴 딴!하는 지휘자.
앵콜곡 연주할 때 단원들 모두가 웃는 얼굴인 것이 왠지 뭉클하다.
노력하는 이가 즐기는 이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이와 더불어 12세기에 허물어졌다 다시 지어진 시골 교회의 벽돌이 어느 지방에서 어느 경로를 통해 운반되어 온 돌인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며 더없이 즐겁게, 말도 안되는 농담을 나누는 우리 교수님들의 아우라가 생각나 갑자기 등골이 서늘하다....




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

Myung-Whun Chung - Vadim Repin

vendredi 18/06 2010 20:00

  • 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
  • Myung-Whun Chung : direction
  • Vadim Repin : violon

Programme

  • Modeste Moussorgski
  • La Foire de Sorotchiniski "ouverture" et "Gopak"
  • Edouard Lalo
  • Symphonie espagnole
  • Entracte
  • Piotr Ilitch Tchaïkovski
  • Symphonie n° 6 "Pathétique"


+ bis
Variations sur 'il Carnevale di Venezia' de Pagan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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