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바렌보임이 얼마전 라디오 클래식의 Passion Classique 코너에 출연, 올리비에 벨라미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늦어서 전부는 듣지 못하고 거의 마지막 10분 정도만 겨우 들었다.
그것도 재방송이어서 이미 시간은 새벽 1시를 조금 넘은 깜깜한 밤이었고.
삶, 죽음, 사랑을 주제로 한 곡 씩을 선택해서 들려주는 시간이었는데
바렌보임이 생각한 "죽음" 은 베토벤의 에로이카 2악장 marche funèbre,
"사랑"은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의 2악장이었다.
베토벤이 흘러나올 때부터 이미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밤바다 물결같은 현악기 소리로 조용히 시작되는 쇼팽에 나도 모르게 울고 말았다.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곡은 바렌보임이 예전에 직접 연주한 것이었고
곡이 어둠에 스미듯 fade out 되고 그는 조금 어눌하지만 차분한 프랑스어로 사랑과 음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방금 전 피아노로 이미 다 말한 내용의 되풀이에 지나지 않았다.
4월 12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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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스탄 게츠와 호앙 길베르투가 연주한 corcovado 앓이를 하고 있다.
아스트루드 길베르투의 노래도 좋지만 여기선 호앙 길베르투의 목소리가 특히 아름답게 들린다.
마음이 무척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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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드레스덴에서 아빠와 함께 탄호이저를 보았다.
슈타츠카펠레의 연주도 미국에서 온 슈퍼사이즈 가수분들의 노래도 정말 멋졌다.
의상은 정말 좀 혼내주고 싶었지만... 무슨 charity 숍에서 주워입고 와도 저럴 순 없을 텐데.심했다.
단호하고 우아하면서도 유려한 연주였다. 아 반주 정말... 짱.........
암튼 그 이후로 계속 탄호이저 서곡을 듣고 있다.
아빠랑 바이올린 파트의 cascade 부분을 말도 안되게 입으로 따라하느라고 독일 여행은 다했다.
아, 바그너 음악은 chevauchée de walkure 하고 (apocalypse now때문에)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서곡 말고는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탄호이저를 듣고 나니 왜 그렇게 좋다는지 알 것 같았다. 발퀴레만으로도 대단하다는 건 이미 충분히 알았지만.
테마 부분이 극 전체에서 알게 모르게 계속 되풀이 되는 것이 특히 훌륭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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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완전히 데려오기 전 까지는 말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8월 말부터 파리 집에서 보더 테리어 한 마리와 함께 살게 될 것 같다.
아직 4개월이나 남았지만 그동안 프랑스 보더 테리어 포럼을 샅샅이 뒤져 이미 이론은 꽤 익혔다.
목걸이를 무슨 색으로 해줘야 하나, 사료는 뭘 먹여야 하나, 산책은 어디로 나가야 하나,
하루종일 멍멍이 생각 뿐이다.
에휴.
여느때처럼 설거지하다가도 뒤를 쓱 돌아보고 요쯤 어디 앉아서 날 지켜 보고 있을 멍멍이를 생각하며 혼자 흐뭇하게 웃음짓기도. ㅋㅋㅋㅋ
아빠 말씀으로 "우리"같은 사람들은 늘 "자칫하면", 조금만 정신을 팔면 어느샌가 강아지를 키우고 만다고... 왜 진작 키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이 곳에서의 나의 삶과 반려동물은 꽤 훌륭한 조합인 것 같은데 말이다.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서 열심히 "멍멍이 키우기의 변"을 열심히 노트에 쓰기도 하고 엄청 고민했었는데 아빠가 생각보다 흔쾌히 동의해주시고 내 생각에 공감 해주셔서 정말 팔짝 팔짝 뛸 정도로 기뻤다. 합의가 된 이후로는 둘이서 계속 멍멍이 얘기만 하고 인터넷에서 계속 보더 테리어 사진 찾아서 보고 동영상도 찾아보고 ㅋㅋ 부녀가 아주 잘 만났다. 엄마 설득은 아빠에게 일임했다.
아빠가 벌써 ㅋㅋ이름도 지어주셨다.
심지어 아빠와 드레스덴 Frauenkirche 앞에서 주인들과 함께 산책 중인 보더 테리어 한 마리를 발견하고 너무너무 반가웠었다. 아이고 이쁜 것
다다음주쯤 농장에 방문해서 처음으로 인사를 할 예정인데.
그때까지 기다리기는 너무나도 길고 괴로운 시간이 될 것 같다.
한번 만나고 와서 8월 말까지 또 기다려야 하는데 그건 아마 더 힘들겠지.
그래도 내 욕심만으로 5월에 당장 데려오고 또 금세 6월 말에 비행기로 한국에 같이 다녀오고 하려면 그게 멍멍이한텐 더 힘든 일일 것 같아서 꾹 참아야 한다. ㅠ
아. 정말 어떻게 기다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