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my life/보리 | 13 ARTICLE FOUND

  1. 2012.01.29 보리가 한살이 되었다 2
  2. 2011.10.29 오랜만의 보리 일기 2
  3. 2011.09.18 주말, 3번의 산책
  4. 2011.09.17 뿌듯한 하루.
  5. 2011.09.14 동네에 보리 이름을 아는 사람이 출현하기 시작...
  6. 2011.09.13 우리의 산책 코스. 1
  7. 2011.09.09 all you need is love
  8. 2011.09.07 지금이 가장 소중한 것.
  9. 2011.09.06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1
  10. 2011.09.05 보리와 함께 파리 재발견 2


1월 28일 오늘은 보리의 생일.
(우연찮게도 내 동생의 생일은 27일 어제였다.)
보리가 지금까지 나와 함께한 5개월 동안 탈없이 건강하고 이쁘게 자라줘서 너무 고맙다.
겨우 한살 먹은 요 쪼그만 짐승 ! 이 내게는 얼마나 큰 기쁨이고 소중한 존재인지. 진부하기 이를데 없는 말이지만 그래도 사실인 걸. 보리가 있어 정말 행복하다. 보리가 있으면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
앞으로도 오래오래 서로 의지하고 아끼며 지금처럼 재밌게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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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라기 보다는 그냥 그동안의 이야기를 적어본다.
요즘 보리와의 산책은 더없이 즐겁다. 지난달 초에도 이미 재미가 붙었다고 썼었는데, 그때의 재미라는 것은 지금 내가 (우리가?) 느끼는 데 비하면 조금 안스러울 정도다. 대략 지난 1주일 전부터 보리는 나를 따라 어디든 간다. 여기서 오는 충만한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산책을 나갈 때나 들어올 때, 버팅기는 보리를 번쩍 들고 옮길 필요가 더이상 없게 되었다. 어떤 문 앞에서든 보리는 스스로 앉아서 내가 문을 열고 먼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어두컴컴한 계단도 나를 따라 거침없이 내려온다.

이제는 킥보드나 롤러브레이드를 타는 애들도, 자전거도 오토바이도 전혀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다만 희한하게도 아직 커다란 아저씨들, 또는 노숙자나 구걸하는 사람들을 굉장히, 정말로 굉장히 무서워하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가 있는게 확실하다. 이때도 들어올릴 필요는 없고 조금 우회해서 지나가면 된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아파트 1층이 슈퍼인지라 늘 누군가 종이컵을 들고 앉아있는데, 이 때문에 산책에서 돌아올 때 차분하게 기분 좋게 돌아올 수가 없다는 점이다. 겁이 나서 흥분한 상태로 집에 쫓기듯 들어오게 되면 개는 산책을 좋아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도 아파트 문 앞에서 보리를 앉혀놓고 좀 기다리게 해서 진정을 시키고 나서 집에 들어오는 식으로 뭔가 대안을 찾고 있다. 보리 키에는 조금 높다 싶은 계단도 엄청 잘 올라온다. 스프링으로 퉁기듯이 아주 경쾌하게 온 몸으로 ㅋㅋ계단을 오르는데 어찌나 이쁜지 궁딩이를 퐝퐝 퐝퐈오파퐝 때려주고 싶다.

주말에는 출근 인파가 없기 때문에 알람을 안 하고 그냥 맘대로 일어나는데 오늘은 8시 조금 안된 시각에 눈이 떠졌다. 바로 채비를 하고 보리와 함께 나가서 15분 정도 늘 가던 길로 산책을 하고, 같이 장을 보러 avenue de saxe로 향했다. 아직 조금 이른 시간이라 박스나 행거들을 옮기는 상인들이 많아 보리가 조금 주춤했지만 그래도 내가 가는 대로 곧잘 따라왔다. 유기농 과일,야채상에서 멈추어 감자랑 바나나, 홍시를 샀고 그 반대편에 있는 커피집에서 아빠를 위한 디카페인 원두 한 봉지를 샀다. 그리고 시장길을 따라 내려가 늘 가는 사과/배 전문점 ㅋㅋ에서 내가 좋아하는 buckeye 사과 네개를 구입. (지금까지 왜 bucklee라고 알고 있었을까.) 다음 화요일 런던가는 날까지 매일 하나씩 먹을 요량으로. 이렇게 세번을 멈추는 동안 보리는 내 발치에 얌전히 잘 있었다. 옆에 누가 와서 서면 누군지 보느라 조금 움직이기는 했지만.
그리고 나서 역시 늘 가는 동네 빵집에 가서 크로아상 하나를 샀다.

어제 오후에는, 엄마가 보내주신 백설기 몇 덩어리와 유자차를 들고 문화원에 찾아갔다. 물론 보리도 함께다. 가는 길에는 보리를 새로 장만한 펀들 가방에 넣고 지하철을 탔고, trocadero 역에서 내려서 부터는 줄곧 보리를 걷게 했다. 문화원서부터 집까지는 물론 걸어왔는데, 보리는 그 사람 많은 이에나 다리와 에펠탑 앞을 한번도 멈추지 않고 씩씩하게 잘 따라왔다. 불과 한달 전만 해도 사람들이 무서워 꿈쩍하지 않는 보리를 내가 안고서 지나가야만 했었는데, 정말 기뻤다.
돌아오는 길에 니콜라에 들러 3리터짜리 chinon bag-in-box 와인을 샀는데 여기서도 보리를 가방에 쏙 집어 넣으니까 ㅋㅋ 편했다. 거기서부터 집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는 동안 어딘가 분명 문제가 있는 개 한마리가 보리를 느닷없이 공격하는 바람에 몹시 당황했지만, 보리는 "쟤 뭐야..." 하는 정도 반응이었고 오히려 나만 패닉했다. 그렇게 담담해 보였던 보리가 집에 와서는 토를 하더니 이내 축 늘어져 곯아 떨어지는데, 아마도 속으로는 꽤나 놀랐었나보다. 너무나도 짠했다.

보리랑 나는 어느덧 제일 좋은 친구가 된 것 같다. 원하면 이젠 어디든 함께 갈 수 있다는 자신감에 더욱 든든하다. 내가 공부할 때나 책을 읽을 때는 절대로 놀아달라고 보채거나 방해하지 않고, 내가 자면 같이 자고, 일어나면 같이 일어나고, 나갈 땐 같이 나가고, 내 삶에 어느샌가 깊숙이 자리잡은 이 어리고 조그마한 생명이 한없이 사랑스럽고 기특하다. 보리가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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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라 아침 출근 인파도 없을테고 조금 늦잠을 자도 되지 않을까, 약간 꾀를 부리며 어제는 조금 느지막히 잠이 들었다. 웬걸, 일부러 알람도 꺼놨는데 7시 5분에 정확히 눈이 떠졌다. 눈꺼풀에 잠이 아직 좀 남아 잠시 고민을 했지만 크레이트 안에서 자고 있는 보리가 혹시 답답할까봐 결국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었다. 바로 문을 열어주었더니 역시 기지개를 피며 바로 집 밖으로 나온다.

오늘 아침엔 집 문간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보리는 아직 아파트 건물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산책 나갈때 혼자서 걸어나가기를 힘겨워 한다. 그래서 결국 내가 보리를 안고 "안전한" 장소까지 가서 내려주는 일이 많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는 법. 매일 못해도 5분씩은 집 현관에서 보리가 스스로 걸어나가도록 시간과 여유를 주기로 했다.
여차저차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것 까지는 했는데, 그 밑에서 또 망설여서 결국 내가 들고 나왔다. ㅠ 나도 성질이 급해서 참. 
어쨌뜬 30분동안 간략하게 아침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엔 시장에 들러 과일도 사왔다.
한 열흘 전부터 보리는 집 안에선 전혀 용변을 보지 않는다. 하루에 두번 산책을 나갈 때만, 그것도 매번 거의 같은 장소에서만 해결을 한다. 특별히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참 신통하고 기특할 따름이다. 집 안에서 할 때도 언제나 욕실 안의 배변 패드로 향하곤 했지만 그 패드를 청소하는 것도 사알짝 귀찮고 욕실 안에 냄새가 밸까봐 조금 걱정도 했었는데 어쩜 이렇게 이쁠 수 있을까.

한시 반쯤 또 보리를 데리고 길을 나섰다. 동네 친구를 만나 같이 커피도 한잔 하고 한국 슈퍼에 걸어서 다녀왔다. 보리가 한번도 와본 적 없는 낯선 길을 참 오래도 걸었는데, 더군다나 날이 좋은 토요일이라 쇼핑하는 인파와 자전거, 차도 굉장히 많아 요 어린 것이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꽤 많은 구간을 의젓하게 옆에서 잘 걸어주었다.
4시쯤 집에 돌아왔는데, 보리는 아니나 다를까 바로 쓰러져서 7시까지 곤히 잤다.

8시에 다시 저녁 산책을 나갔다. 좀 천천히 30분쯤 걸을까 하고 나갔는데 빗방울이 뜨문뜨문 떨어지길래 좀 당황했다. 그래도 앞으로 겨울 몇 개월 동안 비가 얼마나 많이 올텐데, 이정도 비에 질 수는 없지. 역시 보리도 시골개 ^_^ 답게 빗줄기는 아랑곳 하지도 않고 할 일 다 하고 ㅋㅋ 전혀 뒤쳐지거나 흐트러지지 않고 내 옆을 곧잘 따라왔다. 집에 들어갈 때 까지 한번도 목줄을 당기지도 않아 너무 예뻤다. 흑흑...... 중증인 것 같다.
비도 맞았고 목욕 시킬 때도 슬슬 되었고 해서 바로 샴푸. 그리고 바로 또 주무시더라.
뽀송뽀송 보리 털에 코를 마구 파묻었다. 오늘 밤까지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마음껏 만끽했다. ㅋㅋ
내일 일요일은 또 무엇을 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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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글의 카테고리를 정하기가 어려워진다. 나에게있어 한동안 오늘이란 즉 보리. 즉 오늘-보리=0 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어려울 것도 없다. 그냥 보리로 분류한다.
왜 뿌듯한 하루이냐, 그것 역시 보리 때문이다.

브라이언 킬커먼스의 "Good Owners, Great Dogs"를 아마존에서 중고로 2유로 남짓한 돈에 구입해 벅벅 줄 그어가며 읽고 있다. 여름에 친구...께서...빌려주신... 3권의 강아지 키우기 책 중 한권이었는데, 나중에 왠걸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촌언니가 처음으로 기획에 참여해 펴낸, 특별히 소중히 생각하는 책이라며 추천해주는 것이 아닌가. 씨저 밀란의 책들을 어느정도 다 읽고도 약간 디테일에서 확실히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어 이 "훌륭한 주인이 명견을 만든다 (한국 제목)" 가 생각나기에 아마존에서 찾아보니 역시 있었다. 영국에서 배송되어 심지어 아주 빨리 도착했다.
그에 의하면 개를 훈련시키는 방법은 딱 두가지다. Praise, 그리고 Correction. Punishment 란 없다. 내겐 너무 완벽한 보리이지만 한가지 걱정스러웠던 점은 요 며칠 또 산책 나가기를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한가지가 아니군) 걷다가 중간중간 자전거나 킥보드 등에 말그대로 freak out 한다는 것이었는데 ( = 통제불능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 몇몇 정신없는 사람들이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면 보리는 간혹 차도로 도망치는데 이때 차라도 달려오면 정말 큰일이 날 것같다) 오늘 이 책을 꼼꼼히 읽고 많이 배웠다.
어쨌든 보리의 기운을 북돋아주고 격려하고 이뻐해주며 걸으니 오늘 산책은 한결 편안하고 또 즐거웠다. 그렇게 보리에게 칭찬을 하고 예쁜 말을 해주면서 나 역시도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니 금상첨화인 것 같다.

음. 점심때 친구를 만났는데 강아지 얘기를 듣더니 내가 꽤나 애정결핍인 것 같다고 한다.
단지 나는 보리가 내 발치에 와서 앉을 때 너무 행복하고 코고는 소리 들으면 너무 사랑스럽다고 했을 뿐인데 그런 "사소"한 일에 즐거워 하는 것이 좀 이상해보였나 보다. 가끔 스스로도 내가 애정결핍이 아닐까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변명을 하자면 나는 그냥 누군가에게 줄 마음이 너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그러고보면 처음 강아지를 데려오겠다 결심했던 것도 누군가를 가까이서 챙겨주고 애정을 주는 것이 그립고 절실하다는 생각에서 였다. 보리가 나의 그런 바람을, 허전한 마음을 얼마나 채워주고 있는지. 신기한 일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것이 또한 나의 마음을 채우는 것이라니. 참으로 오묘한 조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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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7시 쯤 그리고 오후 6시 50분 쯤 산책을 나갔다. 어제와 거의 똑같은 시간.
저녁 산책을 나갈 때였다. 집 앞 avenue de suffren에서 어떤 사람이 보리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이건 또 뭔가.... 꽤나 정확한 발음으로 (B와 R을 우리나라식 발음으로 하기가 힘든데) "어! 보리 요즘 잘지내요???" 라고 묻는 것이 아닌가. 쳐다보니 9월 3-4일 경에 길에서 만났던 아주머니였다.
이름을 기억을 하다니......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길에서 만난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보리를 소개하고 다녔던가 되새겨 보았고.
솔직히 산책 시간 겹치는 사람들 벌써 얼굴 다 외웠는데 앞으로는 나갈 때 옷 좀 바꿔입고 나가고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
아주머니 기억력이 참...진짜 비상하시다는 생각.
암튼 매일 매일 재밌는 일이 생기는 것 같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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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 잊고 화살표를 그리지 않았는데 일단 코스는 저렇다.

처음에는 이곳 저곳 새로운 코스를 개척해보려고 애를 썼는데, 아무래도 산책 코스를 머리 속에 그려놓고 나오는 것은 내가 아니라 보리인 것 같다.

보리는 자기가 가기 싫은 길로는 절대 절대 절대로 가지 않는다.

그 조그만 발로 어쩌면 그렇게 버티는지. 무슨 짐짝처럼 내가 질질 끌고가거나 안아 들고 가지 않는 한 움직이지 않는데, 끌고가면 보기에도 안 좋고 보리도 목 아프고, 들고가면 무거울 뿐 아니라 산책의 의미가 없으니 하기 싫다. 고집이 정말 이렇게 셀 수가 없다.

그래서 얼마전부터는 웬만하면 보리가 가자는 쪽으로 나도 가는데, 대충 이런 코스로 합의를 보게 된 셈이다.

현재 위치로 표시되어있는 파란색 점에서 빨간 길을 따라 출발하여 노랑과 파랑으로 나눠지는 지점에서 보리가 어디로 갈지 선택을 한다. ㅋㅋㅋㅋㅋ여기서는 그나마 두가지의 옵션이 있는 것이다.

요새는 부쩍 노랑색 1번 코스로 많이 가는데, 이 경우 꼭 place Joffre 중간에서 내가 조금 들고 걸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요즘 샹드막스에서 La Parisienne 마라톤 행사를 며칠간 하는 바람에 확성기에 인파에 너무 복잡하고 시끄러워 보리가 겁을 먹고 나아가려 하지 않기 때문인데, 오늘 아침 끝나서 정리하는 것을 보니 이제 괜찮을 것 같다. 오늘은 1번 코스로 다녀왔는데 보리를 들쳐 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2번 길을 나는 사실 선호하는데 조금 짧기는 하지만 무척 조용하고 걷기에 좋다. 1번 쪽으로 가면 너무 사람이 많아서 번잡스럽다. 산책할 때는 개만큼이나 주인의 집중력도 요구된다.

음 지금 passion classique 에서 dowland 의 flow my tears 라는 노래가 나오는데 구슬프고 좋다.


어쨌든 1번 길로 가는 게 여러모로 운동도 되고 보리에게 더욱 다양한 시각 청각 후각적 자극을 줄 수 있으니 유익한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 역시 보리 맘대로라는 거.


우리집에서 1,2번 코스가 갈리는 avenue Lowendal 중간 지점까지 대충 900미터 정도 되는 것 같다.

대충 매일 아침저녁으로 2km 정도 걷나보다. 1번 코스로 멈추지 않고 걸으면 약 45분 정도 걸린다. 중간에 방해물이 좀 있으면 1시간에서 1시간 반도 훌쩍 지나버린다.


파리에서 강아지와 함께 있어서 좋은 점은 정말 같이 갈 곳이 많다는 것이다.
사람이 걷기 좋은 도시이니 개와 걷기에도 당연히 편안하다.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을 매번 최소한 5-6명은 보는 것 같다. 보리와 함께 걸으면서 몰랐던 동네 구석구석 (그래봤자 두가지 길밖에 아직 옵션이 없지만...ㅋㅋ) 을 발견하고 또 다른 개 주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하는 일이 이제는 무척 즐거운 일상이 되었다. 동도 채 뜨지 않은 7시에 서늘하고 이슬맺힌 파리를 맞이하는 것, 유난히 일찍 떨어진 나뭇잎들을 바삭이며 보리와 함께 아침을 헤치고 걸어나가는 것, 그리고 저녁에는 분홍빛 보랏빛으로 물들어가는 에펠탑과 황금색 앵발리드 지붕을 보는 것. 보리가 없었다면 이렇게 매일 이 기쁨을 누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덕분에 아침과 저녁이 이전과는 다른 빛으로 반짝인다.

또 하나의 멍멍이 주인으로서의 무시할 수 없는 즐거움은 ...우리 개가 너무 귀엽다는 칭찬을 매일 서너번 듣는 것이다. 아줌마 팬들이 참 많다. 그들이 내게 하트 뿅뿅 눈을 하고 다가와서 (그것도 굳이 저 멀리에서 걸어와서) "어머 얘 아직 애기죠. 무슨 종류예요. 어쨌든 너무 귀엽다." 딱 요 말들을 꼭 하는데 ㅋㅋ참. 기분 좋고 으쓱하다. 사실 묘하게 더 내 기분을 좋게 하는 사실은, 세상에 보리가 귀엽지 않았다면 이 콧대 높은 빠리 7구 아줌마들이 동양 여자애에게 이렇게 친절한 눈빛을 어디 한번 보내주었겠냐는 것이다. 더군다나 보리가 그들과 그들의 개들에게 관심 1g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유치하게도 나를 약간 더 우쭐하게 만든다.
아참 어제는 집 바로 앞길에서 다른 보더테리어를 마주쳤다. 미국인 모녀가 데리고 다니는 8살난 (벌써 눈썹이 희어졌다) 수컷인데, 보리보다 어깨 높이 기준 10cm는 족히 커보였다. 난 사실 있는지도 몰랐는데 주인 아이가 "There's another Border Terrier!!!" 라고 소리를 쳐서 보니 있더라.

요즘 보리는 아주 잘 걷는다. 킥보드 타거나 우다다다 뛰어다니는 애들이나 확성기 시끄러운 음악만 없으면 씨저 밀란이 말하는 ㅋㅋ 완벽한 산책 파트너에 그간 훨씬 가까워졌다. 다만 보리는 나에게 종종 무단횡단을 종용하는데 이것은 좀 고쳐야할 것 같다. 빨리 또 나가서 걷고싶구나. 하지만 해가 조금 더 저물 때를 기다릴테다.


어제는 낮에 비가 많이 와서 저녁 산책을 대비해 우비 겸 털옷을 입혀보았다.
다행히 오후 5시경 비가 멎어 입고 나갈 일은 없었다.

+ 8시 20분, 산책에서 돌아와서 오늘의 루트를 올려본다.
관광객들이 너무너무너무 많은 에펠탑 앞 quai branly 에서는 잠깐 보리를 안고 가야만 했지만 전체적으로 꽤 고무적이었다. 내가 보리랑 걷고 있다는 사실을 잠깐 잠깐 잊을 정도로 편하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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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훈련과 규율에 지나치게 신경쓰느라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모든 관계의 시작은, 바탕은, 전제는 바로 사랑이라는 것.
이러면 안되는데,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에 바싹 긴장하고 혼자 경직되어
보리를 마음껏 만져주지도 이뻐해주지도 놀아주지도 못했다. 마음 속으로는 너무너무 이뻐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오늘 오후 산책 기분 좋게 하고 집에 와서 보리 털 빗어주고 이름도 많이 불러주고 앉아 엎드려 훈련도 시키고 칭찬도 많이 해줬더니 보리 완전 기분 좋아서 온 집안을 쏜살같이 농구공같이 뛰어다니며 개껌을 가지고 놀았다. 이렇게 신나게 뛰어다니는 거 처음 봤다. 자기두 칭찬받으니까, 내가 자꾸 이름 불러주고 이뻐해주니까 좋은가보다. 그렇게 한 오분 신나게 놀더니 금세 피곤해서 자기 집 가서 잔다. ㅋㅋㅋ너무너무 이쁘다. 아이고 ㅋㅋ
음 점점 우리 둘이 많이 친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보리 자고 있을 때 쌕쌕 귀여운 숨소리 듣는 것도 너무 좋고 (심지어 녹음도 했다), 살짝 손 대보면 따뜻한 체온에 조그맣고 힘찬 심장 박동이 전해져 오는데 그 때마다 벅차오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바보 ㅋㅋㅋ


뼈도 뜯고 인형도 놓기 싫고 욕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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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와 하나하나 맞추어가고 서로를 배워가는 것이 지금 당장은 힘들고 막막하게 느껴지더라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아마 다 재밌는 추억으로 남을 거다. 딱 한가지 보리에게 걱정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분리불안이다. 아빠가 가시고나서 갑자기 하루에 하나씩 꼭 꼭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집을 비울 때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 보리와는 인간의 (나의) 언어를 통해 문제를 풀 수가 없으니 오직 목소리톤과 마음과 바디랭귀지로만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요 어린 강아지와의 소통은 그래서 참 어렵고 까다롭지만 한편으로는 승부욕(!)을 자극하는 재미있는 도전이기도 하다.

오늘은 오후 늦게 산책을 간단히 하고 집에 와서 저녁밥을 준 후 친구랑 라모뜨피케에서 저녁을 먹었다. 보리도 데리고 갔다. 처음엔 이리저리 돌아보고 부산스럽더니 역시 금세 조용해졌다. 하필이면 우리가 움직이던 시간대에 딱 쓰레기 수거차들이 온 골목을 돌아다니고 있어서 보리가 조금 힘들어했다.

할머니가 주셨던 사료가 너무 갓난애기들 용이어서 새 사료를 사 주었다. 사실 보리를 맞이하기 전에 사료를 조금 사놓은 게 있긴 했는데 그건 또 너무 성견용이라 7개월짜리 청소년 강아지에게는 또 맞지 않았다. (사실 그건 잘 모르겠고 보리가 별로 잘 먹지 않았다 ㅠ.ㅠ) 어쨌든 새 사료는 대성공. 그냥 인터넷에서 성분표 비교해가면서 제일 낫겠다 싶은 걸로 일단 1킬로 주문해보았는데 주자마자 보리가 너무 맛있게 먹는 것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흐뭇한 엄마미소를 지으며 애 밥먹는데 눈치없이 한참을 바라봤다.

내일부터는 정말 정해진 시간에 산책하는 버릇을 들이고 정해진 시간에만 밥을 주는 연습을 해야겠다. 물론 크레이트 훈련도 제대로 시켜야지. 보리만 신경써도 하루가 이렇게나 잘 간다. 공부는 언제하나. ㅠㅠ큰일이다. 보리가 댓가 ㅋㅋ로 나한테 공부하는 훈련, 책보는 훈련을 좀 시켜줬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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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이야기만 나흘째.

오늘 보리 때문에 이것저것 한 일이 많아 이상하게 일찍부터 피곤하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가 처음으로 수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왔다는 것.
일민언니가 소개해 준 곳으로 갔는데 역시 듣던 대로 굉장히 진지하고 친절하고 믿음이 가는 분이었다. 보리 정말 자알 생겼다며 나중에 쇼에 나가도 될 것 같다고 하셨다. ㅋㅋ 꼭 줄 매서 다니라고... 동네에서 부러워 하는 사람들 많겠다며. 안정되고 침착하고 좋은 개라고 칭찬을 들었다.
아쉽게도 혈청검사를 하고 6개월이 지나야 영국에 갈 수 있기 때문에 이번에 아빠가 계신 동안에는 보리와 런던에 가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도 한국에는 무사히 갈 수 있을 듯 하다.
모든게 다 정상인데 딱 한가지 "souffle-coeur" 라는 증상이 보인다고 하셨다. 이는 어린 개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불규칙? anormal 한 심장 박동을 말하는데 보통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진다고 한다. 하지만 만일을 대비하여 한달 쯤 후에 다시 검진을 받아보기로 했다.
그동안 물어보고 싶었던 것, 불안했던 것들 모조리 다- 여쭤보고 나니 기분도 한결 나아졌고 보리와의 생활에 조금 더 자신이 생겼다. 말롱고에 가서 떼 프라페를 마시고 동네를 크게 한바퀴 돌아 저녁 7시 쯤 집에 돌아왔다.

전에 주문했던 Cesar Millan의 책 두 권이 오늘 도착했는데 침대에서 읽으며 잠을 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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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와 산책하는 것에 제법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꼭 해야한다는 부담감 내지는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정말 즐거워서 보리와 함께 길을 나선다.
일요일인 오늘은 조금 멀리까지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모처럼 주변 상점들도 조용할 것이고 출퇴근 하는 직장인들도, 시끄럽게 킥보드나 롤러브레이드 타는 초딩들도 없으니 둘이 걷기엔 딱 좋을 것 같았다.

avenue de suffren과 avenue de segur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보리는 빙빙 돌거나 네발로 완강하게 버티며 15분 동안이나 나를 꼼짝 못하게 했다. 한참 후에야 깨달았지만 이럴 때는 보리가 특히 정말로 가고 싶어하지 않는 길을 피해 살짝 돌아서 가면 결국 내 목적지에 갈 수 있게 된다. 개는 참 알 수 없는 동물이기도 하지만 또 참 단순하기도 하다. 어쨌든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리랑 둘이서 꽤 진지하게 기싸움을 하고 있다보면 대체 내가 지금 뭐하는 건지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오늘의 목적지는 invalides 였는데 가는 도중에 소나기가 마구 쏟아져 근처 열려있는 까페 테라스로 무조건 피신했다. 어제 보리 목욕시켰는데 ㅠㅠ흑흑...

잠시 앉아 비를 멍하니 바라보다, 보리가 계속 헥헥거리고 있길래 물을 주려고 종업원에게 혹시 종이컵 같은 것이 있으면 좀 달라고 부탁을 했다. 한참을 안 오길래 까먹었나 했는데, 웬걸 커다란 플라스틱 통? 에 물을 가득 담고 빨대 두개에 레몬 슬라이스까지 끼워서 대령하는 것이 아닌가. 보리를 위한 칵테일이라며.
세상에... ㅋㅋㅋㅋㅋㅋㅋ정말 파리 사람들이 밉지만 미워할 수가 없다. 이런 살아있는 애교와 위트.
보리는 애초에 별로 목이 말랐던 게 아니었는지 거들떠도 보지 않았지만 덕분에 나는 즐거웠다.
나중에는 웨이터에다가 매니저까지 나와서, 강아지가 칵테일 잘 마시나요? 빨대로 마시나요?? 하고 자꾸 물어보는데 보리는 빨대는 고사하고 ㅋㅋ 물도 거의 안 마셔서 좀 미안했다.
비가 심해지고 테라스 천막 안 테이블까지 영향권에 들게 되어 하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갔는데, 종업원들 모두가 강아지를 좋아해서 무척 친절하게 보리를 맞아 주었다. 옆자리 혼자 오신 할머니는 연신 보리에게 뽀뽀를 날리시며 당신이 옛날에 키우셨다는 저먼 포인터들 이야기를 두런두런 해주셨는데 사실 잘 알아듣지는 못했다. 안에 들어오자 보리는 특제 칵테일을 조금 마셨다.


그래서 결국 parc des invalides 에 도착했다. 꽃이랑 정원수를 너무 예쁘게 가꿔 놓았길래 빨리 들어가고 싶어서 걸음을 신나게 재촉했는데 개는 출입할 수 없단다. 김빠져서 그 앞 난간에 보리랑 둘이 걸터 앉아 시간을 좀 보냈다. 집념어린 셀카도 찍었다.



그렇게 앵발리드를 뒤로 하고 집에 오니 이미 3시간이 흘러 있었다.

집에 와서 늦은 점심을 먹고 보리도 좀 쉬게 하고, 저녁밥도 주었다.

아직 해가 좀 남았길래 8시 반쯤 보리랑 다시 산책을 나갔다.



묘한 푸른색이 층층이 어우러진 하늘과 에펠탑과 선선한 바람과 (사실 좀 추웠다) 나뭇잎 바삭이는 소리, 정말 좋았다. 집 앞에서 보리가 앞으로 나가고 싶어하지 않아서 좀 실랑이를 했다.



유네스코 담벼락에는 늘 세계 이곳 저곳의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는데 보리랑 산책하면서 이것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또 쏠쏠하다. 또 보고 또 보고...


오늘은 처음으로 보리가 아파트 건물 계단을 자기 힘으로 오르내리는 법을 배운 날이고
처음으로 산책나가서 응가를 한 날이다. ㅋㅋ이런 것 하나도 너무 기쁘다.

너무 많이 걷고 뛰어서인지 보리는 집에 오자마자 뻗어버렸다.
음... 이러다 몸살 나는 건 아닌지 살짝 걱정도 된다.
가서 한번 쓰다듬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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