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훈련과 규율에 지나치게 신경쓰느라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모든 관계의 시작은, 바탕은, 전제는 바로 사랑이라는 것.
이러면 안되는데,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에 바싹 긴장하고 혼자 경직되어
보리를 마음껏 만져주지도 이뻐해주지도 놀아주지도 못했다. 마음 속으로는 너무너무 이뻐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오늘 오후 산책 기분 좋게 하고 집에 와서 보리 털 빗어주고 이름도 많이 불러주고 앉아 엎드려 훈련도 시키고 칭찬도 많이 해줬더니 보리 완전 기분 좋아서 온 집안을 쏜살같이 농구공같이 뛰어다니며 개껌을 가지고 놀았다. 이렇게 신나게 뛰어다니는 거 처음 봤다. 자기두 칭찬받으니까, 내가 자꾸 이름 불러주고 이뻐해주니까 좋은가보다. 그렇게 한 오분 신나게 놀더니 금세 피곤해서 자기 집 가서 잔다. ㅋㅋㅋ너무너무 이쁘다. 아이고 ㅋㅋ
음 점점 우리 둘이 많이 친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보리 자고 있을 때 쌕쌕 귀여운 숨소리 듣는 것도 너무 좋고 (심지어 녹음도 했다), 살짝 손 대보면 따뜻한 체온에 조그맣고 힘찬 심장 박동이 전해져 오는데 그 때마다 벅차오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바보 ㅋㅋㅋ


뼈도 뜯고 인형도 놓기 싫고 욕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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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여덟시, 보리와 함께 산책을 나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 두번 산책하면서 두번 다 빵집에 들르기를 속으로 희망했으나 두번 다 실패했다 : 첫째로 avenue de saxe에 있는 빵집 앞엔 구걸...하는 아저씨가 아침에도 저녁에도 앉아계셔서 거기다가 보리를 매어두고 안에 들어가기가 무서웠다. 음... 내가 무서워하면 안되겠지. 그래도 아직은 좀 괜히... 그 분이 무슨 나쁜 짓을 하지는 않겠지만 가끔 우리집 앞에도 앉아계시는 분이라 눈에 띌까봐 싫었다. 두번째로는 avenue garibaldi에 있는 가장 즐겨찾는 빵집에 저녁에 용기를 내어 들렀지만 역시 강아지를 빵집 문에서 너무 먼 곳에 혼자 매어두어야 해서 포기했다.

처음엔 보리 할머니 조언대로 하니스를 매어 산책했는데 그저께부턴 목걸이로 바꾸었다.
처음 산책 입문을 하기에는 보리의 몸에 큰 부담이 없는 하니스가 좋았지만 벌써 열흘 정도가 지나 걷기에 익숙해진 보리에게 하니스는 이미 나를 제 마음대로 끌고 다닐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되어버렸다. 보리가 불독같은 자세로 (불독 미안 비하하는게 아니다) 땅을 두 앞발로 마구 밀쳐대며 나를 사방팔방으로 끌어당기는 것은 보기에 굉장히 흉했고, 이를 제지하며 걷다보면 팔 힘도 달렸다. 어쨌든 그래서 목걸이로 바꾸었더니 보리가 전보다 좀 더 헥헥거리기는 하지만 보조를 맞춰 함께 걷기가 좀 더 수월해지고 내가 보리를 손쉽게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의 즐거움, 나의 멘토 ㅋㅋ 씨저 밀란의 how to raise the perfect dog 그리고 루브르 책을 몇권 책상에 주욱 늘어놓고 읽고 있다. 그 중 씨저 밀란의 책은 어제부터 읽기 시작해 벌써 반 이상을 읽었을 정도. 아무래도 보리와 함께 살기가 나의 가장 중요한 가장 급한 가장 심각한 관심사이기는 한가보다.

방금 라디오 클라식에서 흘러나온 슈베르트 2대의 첼로를 위한 4중주에 번쩍 귀가 뜨였다.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이어 나오는 것은 줄리니와 LA필의 에로이카 1악장.
아이고 ㅋㅋ 보리 신경쓰느라 그동안 참 음악도 못 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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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와 하나하나 맞추어가고 서로를 배워가는 것이 지금 당장은 힘들고 막막하게 느껴지더라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아마 다 재밌는 추억으로 남을 거다. 딱 한가지 보리에게 걱정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분리불안이다. 아빠가 가시고나서 갑자기 하루에 하나씩 꼭 꼭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집을 비울 때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 보리와는 인간의 (나의) 언어를 통해 문제를 풀 수가 없으니 오직 목소리톤과 마음과 바디랭귀지로만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요 어린 강아지와의 소통은 그래서 참 어렵고 까다롭지만 한편으로는 승부욕(!)을 자극하는 재미있는 도전이기도 하다.

오늘은 오후 늦게 산책을 간단히 하고 집에 와서 저녁밥을 준 후 친구랑 라모뜨피케에서 저녁을 먹었다. 보리도 데리고 갔다. 처음엔 이리저리 돌아보고 부산스럽더니 역시 금세 조용해졌다. 하필이면 우리가 움직이던 시간대에 딱 쓰레기 수거차들이 온 골목을 돌아다니고 있어서 보리가 조금 힘들어했다.

할머니가 주셨던 사료가 너무 갓난애기들 용이어서 새 사료를 사 주었다. 사실 보리를 맞이하기 전에 사료를 조금 사놓은 게 있긴 했는데 그건 또 너무 성견용이라 7개월짜리 청소년 강아지에게는 또 맞지 않았다. (사실 그건 잘 모르겠고 보리가 별로 잘 먹지 않았다 ㅠ.ㅠ) 어쨌든 새 사료는 대성공. 그냥 인터넷에서 성분표 비교해가면서 제일 낫겠다 싶은 걸로 일단 1킬로 주문해보았는데 주자마자 보리가 너무 맛있게 먹는 것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흐뭇한 엄마미소를 지으며 애 밥먹는데 눈치없이 한참을 바라봤다.

내일부터는 정말 정해진 시간에 산책하는 버릇을 들이고 정해진 시간에만 밥을 주는 연습을 해야겠다. 물론 크레이트 훈련도 제대로 시켜야지. 보리만 신경써도 하루가 이렇게나 잘 간다. 공부는 언제하나. ㅠㅠ큰일이다. 보리가 댓가 ㅋㅋ로 나한테 공부하는 훈련, 책보는 훈련을 좀 시켜줬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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