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ravel의 Bolero를 직접 공연에서 들었다.
과장 조금 아주 조금 보태 정말 눈물이 날 뻔 했다.
이렇게 간단한 선율을 가지고 이만한 감동을 줄 수 있다니.
정말 놀랍다.
초반에 비올라와 바이올린 주자들이 전부 악기를 기타처럼 눕혀 들고 연주하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더 귀여웠던 건 지휘자 아저씨..(Wolfgang Doerner) 공연 앞부분에 있었던 드뷔시의 La mer라던가 Franck, Messiaen의 곡을 연주할 때는 그렇게 바쁘게 온 몸으로 지휘를 하시더니.
볼레로 때는 지휘 단상에 비스듬하게 기대서 고개를 까닥까닥 하는 것으로 대신하는게 아닌가.
물론 후반부에는 다시 보통 때의 다이나믹한 지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곡이 연주되는 내내 똑같은 리듬을 쳐야 했던 북 연주자 분도 놀랍다.
단순히 똑같은 것만 계속 치는 것 보다 사실은 그 미묘한 강약의 뉘앙스를 내는 것이 관건인데.
연주자의 능력을 극한으로 발휘해야 하는 곡 같다. 관악기들도 정말 멋지다.
피콜로 주자의 감정이 가득 가득 실린 연주 인상깊었다.
비록 후반부엔 파트가 없어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같은 포즈로 인상을 잔뜩 쓰고 계셨지만...
아 정말 bolero 너무 너무 너무 좋다. 공연 보고 와서도 내내 듣고 있음.
저번 글에는 바렌보임의 지휘로 연주한 볼레로 영상을 올렸었는데
이번엔 에셴바흐 선생님 버전으로.
이것도 재밌네. 여기서는 눈빛 만으로 지휘를 하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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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런던에 다녀왔다. 집에 겨우 짐을 던져놓고 폴리니를 보러 다시 플레이옐로 향함.
피에르 불레즈와 폴리니, 그리고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이었다.
바르톡의 곡들로만 구성된 오늘 공연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Béla Bartók
Quatre Pièces op. 12
Concerto pour piano n° 2
Entracte
Le Mandarin merveilleux

불레즈의 지휘를 보면서 저 정도 연륜과 지성이 쌓이면 굳이 힘 빼지 않고도 얼마든지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정말 깊이 깨달았다. 바로 지난번에 보았던 혈기 넘치는 두다멜의 지휘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지휘봉을 잡은 불레즈의 움직임은 아주 작고 가볍고 제한적이었다. 저기에 지휘자가 서있다는 것을 자칫하면 잊을 정도로 정적이었다.
과연 지휘자의 존재감이란 몸을 얼마나 움직이고 얼마나 표현을 하는 가에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보통 오케스트라를 볼 때 지휘자의 손 동작과 등의 움직임을 주의깊게 보아 왔는데,
오늘 본 불레즈의 지휘는 눈으로 무언가를 쫓게 하기 보다는 차라리 귀를 좀 더 열도록 해주는 그런 것이었다.

바르톡의 곡들도 하나하나 다 매력적인데다 폴리니의 변함없는 정확한 연주로 오늘 공연은 더 빛이 났다. 피아노와 관악기들로만 주로 연주되는 피아노 콘체르토 2번 1악장이 특히 좋았다.
아주 상투적이고 손발이 오그라들게 하면서도 폴리니의 피아노를 들을 때 계속 생각나는 것은
별들이 만약 소리를 낸다면 이런 영롱한 소리일까 하는 ........것이다
여름에 부르고뉴 시골에서 보았던 별똥별이 빗방울처럼 떨어지던 밤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면 폴리니의 피아노 소리 같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새삼 든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지구와 목성이 내는 "소리"를 나사에서 무슨 복잡한 기술적 처리를 거쳐서 대중에 공개한 것을 들었는데 물론 그런 아름다운 소리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상상해본다.  새까맣게 어두운 밤하늘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어딘가 편안히 기대 앉아 좋아하는 피아노 곡들을 듣는 그런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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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친구랑 안트베르펜(Antwerpen, Antwerp, 혹은 Anvers) 에 다녀왔다.
맛있는 거 잔뜩 먹고 운좋게 잡은 좋은 호텔에 미술관도 다시 꼼꼼히 보고.
무엇보다 바깥 바람을 쐬고 일과에 대한 부담 없이 쉬다 올 수 있어서 좋았다.
비 때문에 우중충한 안트베르펜의 처음 보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춥긴 좀 추웠지만.
난 정말 이 도시를 좋아하는 것 같다. 싼 물가와 친절한 사람들, 훌륭한 미술관, 맛있는 음식, 맥주에 고풍스럽고 압도적인 대리석 저택들과 전후 모스크바를 떠올리게 하는 (가본적은 없지만) 멋없이 빛바랜 고층 사무실 건물들, 북유럽 가장 특징적인 오밀조밀한 뾰족 지붕의 다닥다닥 붙은 옛 건물들 까지 질리지 않는 다양한 얼굴들을 가진 도시이다.
내년 2월에 또 갈 계획이다. 모리스 베자르(Maurice Béjart) 페스티벌이 있어서.
드디어 그의 볼레로를 보러간다. 두근두근두근 진짜 엄청 기대된다. 으으.



안트베르펜의 시청 건물. 이렇게 흐리고 어두웠다. 아직 점심도 먹기 전 시간의 모습.
하루종일 꾸물꾸물한 날씨더니 결국 비까지 엄청 쏟아져 미술관과 그 옆 북까페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호텔로 잠시 피신할 수 밖에 없었다.



오래된 유명 초콜렛 가게 Burie 쇼윈도우에서 찍은 손바닥 모양 쿠키들과 초콜렛.

안트베르펜의 상징은 꼿꼿이 편 손바닥 모양이다.
왜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역시 도시의 탄생 설화? 와 관련이 있었다.
옛날에 Antigoon이라는 흉폭한 거인이 근처에 살았다. 그는 강을 건너는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통행세를 거두고, 그 돈을 내지 못하면 손으로 그 사람들을 확 밀어서 강으로 빠뜨려 버렸다고 한다.
어느날 길을 지나는 Brabo라는 이름의 소년이 참다못해 그 거인의 손을 잘라 강에 던졌다는데,
이 전설에서 도시의 이름 자체가 비롯되고 있다. Antwerpen 은 네덜란드 어 Hand와 Wearpen 의 합성어인데, 이는 각각 손, 던지다 라는 뜻이다. 고대 영어로는 Hand+Wearpan 이고 여기서 도시의 영어 명명인 Antwerp가 왔다고 한다.
(http://en.wikipedia.org/wiki/Antwerp 참조)

 File:AntwerpenSchild.gif
위키페디아에서 찾은 안트베르펜의 문장.


http://www.kapelleopen.nl/DeKoninck_logo.GIF

안트베르펜에서 가장 흔히 마시는 맥주 중 하나인 De Koninck의 마크에도 빨강색과 손바닥 모양이 활용되었다. 위에 맥주컵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귀엽게 손바닥이 그려져있어서 그걸로 건배 겸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다. ㅋㅋㅋ




역시 Burie의 쇼윈도우에 진열된 A 모양 과자. 귀엽다 ㅋㅋ



안트베르펜 구시가의 중심지, grote markt. (Grand Market)
여기에 서있는 동상이 바로 거인의 손을 던져버리는 Brabo의 모습이다.



Grote Markt와 Cathedral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 pub에서 점심을 먹었다.
저렴하고 맥주 종류가 다양해서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던데 역시 생맥주 25cc가 1.9유로로 정말 놀라운 가격이 아닐 수 없었다. (파리에서는 보통 3.5-4유로)
내가 주문한 것은 가게 이름을 딴 omelette이었는데 버섯, 햄, 치즈, 감자가 다 들어가서 좋긴 했는데 생각보다 치즈가 너무 많아서 좀...느끼해서 먹다가 질려버렸다.
그래도 무엇보다 싸고, 펍 내부의 분위기가 아늑해서 다음에도 또 갈 것 같다.

혹시나 펍 이름은 Paeters Vaetje 이고, 주소는 Blauwmoezelstratt 1 이다.



여행 둘째 날 근처 카페에서 시켰던 우유커피. 꼭 한국에서 먹는 라떼 같아 신기했다.
참 참 이 카페는 신기하게도 정말 신기하게도 실내에서 흡연이 가능했다.
나는 좀 괴로웠지만 ㅋ



대학교 주변으로 추정되는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도서관 앞에서 발견한 바이올리니스트 아저씨.
연주 실력이 정말 수준급이셔서 정신 없이 구경하다가. kreisler에 이어서 갑자기 misty를 연주하시는게 아닌가. 와. 내가 엄청 좋아하는 노랜데 바이올린으로 들으니 또 색다르더라.
다 듣고나서 소심하게 브라보를 외쳤-다기 보다는 중얼거리고 박수를 치다가 괜히 창피해서 도망갔는데. 친구가 옆에서 보고 아저씨가 아주 환하게 웃어주셨다고 해서 기뻤다  ㅋ

사실 바쁜 사람 같으면 하루 정도에 다 둘러볼 수 있는 작은 도시인데 세번째 가니 전보다 훨씬 더 구석구석 구경할 수 있어 좋았다. 아무튼 난 벨기에가 정말 좋다. 겐트랑 안트베르펜 정말 완소.
틈 날 때마다 꼭 꼭 또 가고싶다. 미리 예매하면 기차표도 별로 비싸지 않고. 아. 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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