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says I love Dudamel!
10월 23일은, 적어도 파리 8구에 위치한 이 콘서트홀 안에서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의 날이었다.
귀여운 곱슬머리에 내 또래 (그래도 내가 좀 어리다고 굳이 말하고싶다) 라는 점 때문에 괜히 친근감이 드는 이 슈퍼스타 지휘자는 그가 몇년간 몸담았던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그리고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을 이끌고 오늘과 내일 이틀간에 걸쳐 플레이옐의 무대에 서게 되었다.
프로필 역시 흥미롭다. 줄리어드 음대를 나와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소위 말하는 "까다로운" 구역에 있는 어떤 음악학교(이름을 까먹음)에서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아이들에게 악기를 연주하는 기쁨을 가르치고 나누는 일에 몸 담았던 훌륭한 청년이다. 이제는 LA필하모닉 directeur musical로 부임해 가면서 정든 베네수엘라와 el sistema를 다시 떠나게 되는데, 작별인사 삼아 그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유럽 투어를 하고 있다. (예술감독으로 계속 남기는 하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이런 귀여운 사진들도 찾았음.

http://desempleadoenguayana.files.wordpress.com/2009/05/dudamel.jpg

http://www.bucaramanga.com/blogs/mirada-latina/wp-content/uploads/2009/05/dudamel.jpg

조금 점잖은 사진 ㅋㅋ

http://www.valladolidwebmusical.org/actualidad/08/orquesta_Simon_Bolivar/gustavo_dudamel.jpg


23일의 콘서트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Maurice Ravel
Daphnis et Chloé (Suite n° 2)
Evencio Castellanos
Santa Cruz de Pacairigua
Entracte
Hector Berlioz
Symphonie fantastique
Rappel:
Leonard Bernstein
Mambo

청중이 공연장 내를 정말이지 가득 메운 가운데 지휘자가 무대에 첫 등장하자 마자 객석에서 "브라보!" 하는 고함이 터져나오는 등. 연주를 듣기 전부터도 그의 인기를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아무래도 베네수엘라에서 팬클럽이 그의 투어를 따라다니면서 응원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관객석의 그 들썩이는 열기란 그야말로 대단했다고 밖엔.
연주가 시작되고 보니, 그의 지휘는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예뻤다".
움직임 자체가 굉장히 가볍고 쾌활한 느낌이었다.
보기에도 기분이 좋았고 곡의 감성과도 잘 어울렸던 것 같다.

두다멜의 지휘에서 무엇보다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은
그의 오케스트라와의 팀웍이었다. 그냥 "손발이 딱딱 맞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한 몸처럼.
어떤 파트에게 지시를 할 때 그는 거의 연주자들 한테로 걸어가 직접 말을 하는 것 처럼 보였는데,
물론 어떻게 보면 오히려 원시적인 형태일 수도 있지만 그런 즉각적인 소통의 시도가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결과적으로 그 효과가 명백했기 때문에 더욱 영리해 보였다.
아마도 그와 시몬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의 각별한 인연과 끈끈한 정 덕분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굳이 그렇게 연결지어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어쨌든.

이러한 인상을 더욱 강하게 심어준 것은 공연 끝의 앵콜로 들려준 번스타인의 Mambo 연주였다.
두다멜은 폴짝 폴짝 뛰기 시작했고 (ㅋㅋ) 피아니스트는 앉아서도 긴 머리를 휘날리며 아주 신나게 리듬을 타고 있었다. 모든 단원들이 사실상 춤추는 것 처럼 보였다. 실제로 꽤 적극적인 춤사위를 선보인 한 바이올리니스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음. ㅋㅋㅋ 볼 것이 너무 많아 눈이 바빴다.
오랜만에 이런 "젊음"이 들끓는 연주를 보니 그 자체로도 기분이 무척 좋았다.
사람들이 너무 너무 신나서 박수와 환호 소리로 마치 락 가수의 공연장 분위기를 방불케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예정보다 훨씬 늦어진 시간에도 아무도 집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고, 모두가 두다멜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한편 르몽드에서는 (10월 27일자) 두다멜이 과연 그의 타이틀이나 소문 만큼 실력이 있는가 문제를 제기하는 리뷰가 실렸다. 곡 해석이 너무 강하고 rough하다는 점을 들며 대체로 혹평에 가까운 글이었는데. 사실 몇몇 부분이 좀 과장된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다.
나야 곡을 어떻게 들어야 할지 아직 별다른 기준도 없고 지식도 없어 전문가의 말이 맞나보다 싶긴 하지만. 그래도 직접 듣고 있을 당시에는 그저 마법처럼 정신없이 빨려드는 기분이었으니.
도통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의 커리어가 앞으로도 많이 다듬어져야 하고 더 많이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리고 하드 락 공연에 다녀온 것 처럼 머리가 띵했다는 것 또한 상당부분 동의) 지금 2009년 파리에서의 두다멜을 볼 수 있었던 것으로 나는 만족하기로 했다.
앞으로 기대할 수 있는 어떤 완숙한 모습 만큼이나 지금의 이 공연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몇십년후의 "거장"을 미리 기대하는 것은 파릇파릇한 청년에게 괜히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싫다.
어쨌든 내가 들었던 가장 박력있고 유쾌하고 기분 좋은 라벨과 베를리오즈였고.
이 날 본 것처럼 흥분하고 떠들썩 한 파리 사람들의 모습은 무척 낯설고도 재밌었다.
보통 파리의 클래식 공연장에서 보는 이들은 다들 근엄하고 어딘가 꿍꿍이가 있어보이고 일없이도 바빠보이는데에 비해, 이렇게 말썽꾸러기 같고 술취한 것 같은 모습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 아르떼에서 23일 공연 실황을 동영상으로 공개했다.
다시 봐도 좋다.
결혼반지는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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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빛이 쨍한 일요일 오후, 플레이옐에 콘서트를 보러 갔다.
오늘의 프로그램은 이번 주말에 걸쳐 열린 브람스 실내악곡 싸이클 중 마지막 공연으로,
현악 오중주 op.111과 피아노 오중주 op.34 가 예정되어 있었다.
연주자는 Quintette Capuçon, 그러니까 카퓌송 퀸텟 + 피아니스트 니콜라 앙겔릭(Nicholas Angelich)이었다. 카퓌송 퀸텟은 형제 바이올리니스트 Renaud Capuçon과 첼리스트 Gauthier Capuçon을 중심으로 바이올린에 Aki Saulière, 비올라에 Béatrice Muthelet 와 Antoine Tamestit - 이름은 처음들어본 - 으로 구성되어 있다. 올해 초 플레이옐 시즌 presentation 공연 때 Renaud와 Nicholas Angelich의 공연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굉장히 좋은 연주를 들려주어서 이번에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표를 예매했다. 게다가 브람스 피아노 오중주 34번은 정말 내가 제일 제일 제일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데. 놓칠 수 없었다.
플러스. 이번엔 친한 친구와 같이 가게 되어서 좀 더 들떴다. 히히..
10유로짜리 가장 꼭대기 안 좋은 클래스 자리를 예매했었는데 운좋게도 이 날 관객이 그다지 많이 들지 않아서 앞에서 두번째 자리에 엉겁결에 앉게 되었다.
물론 무대에 아주 가까운데다 가장자리 쪽이어서 목이 아파 계속 무대를 보기가 힘들긴 했지만.
돌아 앉은 첼리스트 고티에의 얼굴은 보지도 못했고 두번째 바이올리니스트는 거기에 있는지도 공연 시작 한참 후에야 알았다.ㅎㅎ
어쨌든 연주자들과 가까이 있을 수 있어서 좋았다. 피아노 소리도 정말 생생하게 들렸고.
브람스 오중주 34번은 저번에 하겐 쿼텟과 폴리니의 연주로 플레이옐에서 직접 듣고, 문자 그대로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한 후로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루빈스타인/구아네리 쿼텟, 폴리니/콰르테토 이탈리아노 이렇게 두 종류의 씨디를 사서 집에서 아무 생각없이 계속 반복해 들었다. 정말 곡 자체의 흡인력이 대단한 것 같다.
특히 3악장과 4악장에서 느껴지는 나무 악기들의 힘이란 정말...
(정말 나무 울음 소리가 나는 거 같아서 나무 악기라고 꼭 쓰고 싶었다)
오늘 공연에서도 어휴... 르노 카퓌송의 몰아치는 듯 강하면서도 섬세한 바이올린은 정말 대단했다. 다만 내가 들어본 다른 연주들에 비해서 다른 바이올린과 비올라 분들의 백업은 다소 힘이 달리는 느낌이었다. 동생인 고티에 카퓌송은 미소년들만 할 수 있다는 갈색 테리우스 단발머리에 어울리게도 무척 부드러운 첼로를 연주했는데. (그렇다고 또 미소년이라는 뜻은 아님.)
좋긴 한데 너무 비단결같이 부드럽기만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4악장 끝날 때 즈음 첼로 혼자 부분에선 특히 좀 불안할 정도로 빡빡 긁는 맛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왔는데.
그러나 연주가 끝나고 공연장 밖으로 나가니 저 주요 인물들의 사인회가 열리는 것이 아닌가.
아쉬웠던 점이고 뭐고 생각도 안나고 얌전히 줄서서 방글방글 웃으며 사인 다 받아서 나옴.
친구는 심지어 르노와 사진까지 찍었다.
공연 후에 이벤트가 있었던 적은 처음인데 또 이런 재미도 있네.
오랜만에 정말 이상적인 주말을 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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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iatoslav Richter의 연주.
Dmitri Chostakovitch의 Prélude & Fugue No.3 in G major, Op. 87




그리고 진짜 오늘 하루종일 들은 피아노곡은
폴리니가 연주한 Chopin Étude No.11 in A minor, op.25/11 CT 36. "Winter Wind"
유튜브에서 1960년 녹음을 찾았다. 18세의 폴리니.

내일이 개강 첫 수업인데도 불구, 무례를 무릅쓰고 강의실을 좀 일찍 빠져나오기로 고민 끝에 결정한 이유. 수업이 8시에 끝나는데 플레이옐에서 폴리니 공연이 있다.
만약 프로그램이 달랐다면 아마 좀 더 망설였겠지만...
눈물을 삼키며 중간 인터미션 때 들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ㅠ ㅠ
하필이면 첫 파트 곡들이 쇼팽이어서 도무지 어쩔 수 없었다.
prélude op.45, ballade n.2 op.38, scherzo no.1 op.20, 그리고 sonate no.2 op.35.
기대돼서 잠도 안 옴. 아 정말 정말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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