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1984를 읽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년 반 전인데
이 영국인 작가의 글을 "의식적으로" 읽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꽤 어릴 적 동물농장을 읽었지만 내가 기대했던 내용 (이건 요즘 TV동물농장에서 다뤄준다) 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는지 더디게 읽고 내용도 금세 잊어버렸다. 모든 일엔 다 때가 있기 마련인지, 다행히, 머리가 좀 크고 나서 읽은 오웰의 책은 어릴 때 느꼈던 배신감을 전부 잊게 해줄 만큼 강력한 즐거움이자 공포였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내 얕은 문학적 지식과 호기심을 채워주는 몇몇 이름들 가운데 조지 오웰이 잊혀지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표지에 달고 있는 책들은 이내 내 책장에서 제일 먼지 안 쌓이는 자리에 줄을 지어 놓였다.

그래서 지난 시간동안 몇 권의 오웰을 읽었는데,
요즘 푹 빠져있는 것은 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 이라는 두껍지 않은 책으로,
오웰이 찢어지게 가난한 20대를 파리와 런던 이곳 저곳에서 살아낸 이야기들을 짧은 호흡으로 풀어 쓴 일종의 에세이 형태를 한 - 그러나 어쨌거나 - 소설이다.
검색해보면 정말 많은 판본들이 나오는데 내가 구입한 것은 펭귄 클래식스에서 나온 다음과 같은 표지의 책이다. 다른 예쁜 표지들도 많던데 쉽게 구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적어도 파리에선... 영국이나 미국 동네 서점들에선 아마도 좀더 선택의 폭이 넓겠지.



여기에 내용을 다 소개하기는 어렵기도 하고 그닥 유익한 것도 못 될 것인데
무엇보다 스포일러가 될 위험이 있으니 하지 않기로 했다.
오웰의 글이 우선 소설로서 정말 읽는 재미가 있는 것은 아무리 간단하고 평이한 이야기일지라도 순간 순간 긴장과 기대를 하게 만드는 남다른 단어 사용과 독특한 전개 방식 덕분인데
다음 내용을 조금이라도 알아버리면 아마 기운이 쭉 빠질 것 같다.
어쨌든 위에서 쓴 대로 (아직 내가 읽은 부분에선 오웰이 파리에 있다)
파리와 런던에서 가난과 무기력, 배고픔과 싸우며 어렵사리 살아가는 영국인 청년의 이야기이다.
그 생활 터전이 파리인 만큼, 프랑스어가 중간중간 영어 번역이나 주 없이 정말 자주 나오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아는 것이 훨씬 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아니 실제로 훨씬 더 재미가 있다. 호텔 여주인이 투숙객 중 한 사람에게 sacrée salope! 이라고 냅다 외치는 첫 페이지부터 나는 이 책이 한동안 내 손에서 떨어지지 않을 거라 예감했다...... 이 책을 한국에서는 어떻게 번역했을런지 궁금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알고 있는 파리의 길들과 동네들 이름을 발견하고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다.
물론 파리에 rue du coq d'or 라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5구 mouffetard 거리에 면한 rue du pot de fer 라는 작은 길이 실제로 오웰이 지냈던 호텔이 있는 곳이라던데, 실제로 그 길 18번지에는 내 친구 한 명이 살고 있다. 그 길 6번지에 작가의 거처가 있었다고는 하나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날카롭고 위트있는 묘사며, 단어들이며, 문장 하나 하나 버릴 것이 없고 무엇보다 정말로 "재미"가 있어서 도대체 손을 놓을 수가 없다.
내가 겪어본 바는 없으나 그가 묘사하는 절대적인 가난, 도시에서의 가난. 물질적 빈곤 앞에, 그로 인해 떠안은 초라함 앞에 의젓하려 애쓰는 안쓰러운 모습에 어느덧 공감하고 주인공의 상황에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 글의 힘이란 대단하다. 신체적 고통 앞에서 늘 한 구석 양심과 싸우는 한 작은 인간의 그다지 멋지지도 않은 그저 그런 "boring"한 나날들이 이토록 특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대충 마무리하고 빨리 가서 마저 다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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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 ! 존 엘리엇 가디너와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 라디오 프랑스 합창단의 공연에 왔다.
프로그램은 베를리오즈와 스트라빈스키.
너무 재밌을 것 같은데
파리에선 별로 인기가 없는 프로그램인지 (설마. 베를리오즈에 스트라빈스키가) 그럼 뭣때문인지
사람이 정말 없다.
이상하네

합창석이야 오늘 콰이어가 나오니 그렇다 쳐도
2층 발코니를 아예 닫고 사람들을 오케스트라석에 앉힌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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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2월 5일에 이어 다니엘 바렌보임과 예핌 브론프만,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은 오늘 바르톡 피아노 협주곡 2번 그리고 차이코프스키 6번을 연주했다. 어제는 바르톡 1번과 차이코프스키 5번이었다는데 나는 이틀 다 가지는 못했고 오늘만 다녀왔다. 그것도 겨우. 분명히 예약을 했었는데 시즌 첫 공연 때 한꺼번에 표를 받아가지고 올 때 이 날 것만 누락되어 있었던 것이다. 날짜 순서대로 표들을 정리해 두었는데 다음 공연 날짜는 2월 12일이어서 그냥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문득 예약 내역을 체크해보지 않았더라면 표를 사놓고도 공연을 놓칠 뻔 했다.
못갔었더라면 정말 울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대단한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도, LSO도 게반트하우스도 라디오프랑스도 다들 너무 훌륭한 오케스트라들이지만 드레스덴 오늘 연주는 정말 최고였다. 컨디션이 아주 좋았던 모양이다. 프로그램도 좋았고 지휘도 뭐라 말할 수 없이 훌륭했고 오케스트라의 기량과 매너도 대단했다. 아직도 떨린다.

예핌 브론프만의 피아노 연주도 역시
대단하다는 말 밖엔... 사실 바르톡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그냥 모르고 들어도 무얼 말하려는지 알겠는 , 명징하고 힘찬 살아있는 연주였다.
옆의 아주머니 말로는 어제 협주곡 1번은 정말 그로테스크하고 히치콕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무서운 분위기였다는데 ㅋㅋㅋ 오늘은 아니어서 다행이라시더라.
그리고 음... 바르톡 음악은 차가운 혹은 서늘한 (열대)우림 같다.
좋던데
무엇보다 최근 집중적으로 들었던 베토벤, 슈베르트 곡들에서 그다지 쓰이지 않는 다양한 악기들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하지만 오늘 최고였던 건 역시 차이코프스키 6번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연주였다. 오케스트라의 힘이 엄청났다. 그냥 소리가 크다 정도가 아니라 부피와 질량이 큰 연주였다. 소리가 큰 게 아니라 아우라가 큰 연주였다.
관악이고 현악이고 타악이고 어느 한 파트 뒤쳐지거나 모자라는 일 없이 그냥 거대한 하나의 굉장한 형체였다. 이건 그냥 여담? 이지만 오늘 내 자리가 2층 발코니 앞에서부터 H열이었는데도 3악장에서는 바닥에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무슨 귀가 아프고 시끄럽고 그런게 아니고 그냥 황송한 것이다. 나는 내내 웃는 얼굴로 공연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배실 배실 웃음이 나오더라. 비창인데 이러면 안되는데... 그런데 악기 하나 하나가 튀어나올 때마다 분위기가 변할 때마다 악장이 넘어갈 때마다 탄복을 하는 것이다. 곡도 곡이지만 연주 때문에 공연 내내 순수한 즐거움 그 자체를 느꼈다. 너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막 좋아지고 맛있다는 말을 나도 모르게 연발하게 되듯이 오늘 차이코프스키는 비창은 맞는데 그래도 ......행복한 비창이었다.

나는 바렌보임의 힘차고 강렬한 지휘를 꽤 좋아하는 편인데 오늘은 특히 더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귀기울이지 않을 수 없고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지휘였다. 음...너무 과찬일색인가 그런데 정말 말도 안되게 훌륭한 공연이었기 때문에. 여기다 한 마디를 더 쓰면 칭찬 한마디가 느는 것이고 한 문장을 더 쓰면 칭찬이 한 문장이 늘어날 것이다. 앗 좀 그러니까 그냥 한마디 하자면 1악장에서 좀 두드러진 현상이었는데 너무 네모네모로 가는 느낌을 받았다. 프레이징이 딱딱하다고 해야하나. 네모 네모 네모... 요거 끝나고 요거 요거 다음에 요거 이런 느낌 그런데 정말 잠깐이었고 그때 좀 이상했던 것 빼곤 나머지는 별 다섯개.

그리고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 이어 오늘도 팀파니의 왕 한 분을 뵈었다.
어휴... 진짜 팀파니 대단했다. 아니나 다를까 바렌보임도 공연 끝나고 나서 팀파니 주자를 제일 먼저 일으켜 세워 박수를 받게 하였다. 물론 팀파니스트니까 원래도 일어나 있었기 때문에 별로 티는 안났지만 그래도 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다시 듣고 싶다.

앵콜도 후하게 두 곡이나 해주었는데 어제도 그랬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체력들이다.
첫번째는 시벨리우스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 중... 멜리장드 어쩌구 였는데 잘 못들었고
두번째는... 어떤 서곡인데 꽤 유명한 어떤 서곡인데 나는 잘 모르겠다. 베를리오즈의 벤베누토 첼리니 서곡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요런 비슷한 느낌이었다. 바그너인가 생각도 했는데 내가 가지고있는 바그너 서곡들 중에서는 없었다.
(브론프만과 바렌보임이 함께 연주한 피아노 앵콜곡은 방금 문득 생각났는데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 op46 1번 다장조 였지 않나 싶다. 아니더라도 이런 비슷한 짜임의 연탄곡)

아. 엄마아빠에게 한국에서 바렌보임이 하는 베토벤 교향곡 전곡 싸이클 티켓을 사드리고 싶다
언제나 가능한 일일런지.

차이코프스키 6번 교향곡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오늘도 역시 3악장 끝나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하지만 오늘은 아마도 사람들이 몰라서가 아니라 연주가 너무 대단해서 도저히 뭔가 소리를 지르거나 박수를 치거나 발을 구르거나 뭐든 하지 않으면 다들 견딜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옆에 앉은 그럼피 올드맨 할아버지가 쳇 하고 조소 섞인 불평을 했기 때문에 나는 겁이 나서 박수를 이내 거뒀지만 다들 한참 박수를 치고 환호를 보냈다.

이 할아버지로 말할 것 같으면 원래 내 바로 앞자리에 앉아계셨는데, 2층 좌석은 열 사이 경사가 가팔라 앞좌석 사람이 몸을 앞으로 숙이면 뒷 사람은 무대를 볼 수 없게 되어있어 할아버지가 고개를 앞으로 쑥 내밀고 몸을 굽히고 계시길래 죄송하지만 제가 무대를 거의 못 보니 좀 바로 앉아주실 수 없겠느냐고 부탁을 했더니 .......대꾸도 안하고 또 쳇! 하고 비웃으시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나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한참 나중에야 "노력은 해보겠다" 하시더라.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엄마야...
내 옆에 계셨던 아주머니께서 그 할아버지 옆자리들이 비었으니 우리가 앞으로 가자! 하고 제안하셔서 나는 졸지에 그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옆자리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꽤 많이 나눴는데, 외국 오케스트라들을 훨씬 좋아하신다는 말씀이 웃겨서 기억에 남는다. 외국 오케스트라 특히 독일 오케스트라들은 discipline 이 있다는 것이다. 연주 실력도 훌륭할 뿐 아니라 매너도 좋고 지휘자에 대한 존경심(인지 복종인지)과 착실함이 좋다고 하셨다. 어제 공연 끝나고 드레스덴 연주자들을 연주회장 앞 길에서 보았는데 다들 줄을 딱 딱 맞춰 서있더라며 그게 어찌나 멋있었는지에 대해 한참 이야기 하셨다... ㅋㅋ
그래서 그럼 프랑스 오케스트라들은 싫어하세요? 하니까 걔네들은 너무 arrogant 하다며...
저번에 salle gaveau에서 어떤 (아마도 lamoureux나 pasdeloup?) 프랑스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았는데 지휘자랑 의견차로 다툼이 있었는지 어쨌는지 공연이 끝나고 지휘자가 단원들을 일으켜 인사를 시키려고 하자 대다수가 들은척도 안하고 꿈쩍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도무지 몰상식하며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목청을 높이셨다 ㅋㅋㅋ 이건 아마도 국민성의 문제라며 ㅋㅋㅋ 본인도 프랑스 인이면서... 역시 프랑스인들은 정말 재미있다.


ERRATUM!
실컷 써놓고 한참 뒤
벽에 붙여놓은 티켓들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드레스덴이 아니라 베를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그렇지. 바렌보임이라면 그게 더 말이 되지.
ㅠ 바보같다.
드레스덴 아니고 슈타츠카펠레 베를린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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