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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14 George Orwell - 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
  2. 2010.10.21 읽고 있는 + 읽을 것들
  3. 2010.06.20 푸쉬킨, 고골, 체호프 5
  4. 2010.02.07 Composer's Intent? Get over it
  5. 2010.02.03 르몽드 읽기. 1
  6. 2010.01.31 나흘의 고민 끝에. 5
  7. 2009.07.18 어제 책 보다가
  8. 2009.03.24 Le Monde 1
  9. 2009.02.16 El Amor en los Tiempos del Colera
  10. 2009.01.10 1월10일



조지 오웰의 1984를 읽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년 반 전인데
이 영국인 작가의 글을 "의식적으로" 읽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꽤 어릴 적 동물농장을 읽었지만 내가 기대했던 내용 (이건 요즘 TV동물농장에서 다뤄준다) 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는지 더디게 읽고 내용도 금세 잊어버렸다. 모든 일엔 다 때가 있기 마련인지, 다행히, 머리가 좀 크고 나서 읽은 오웰의 책은 어릴 때 느꼈던 배신감을 전부 잊게 해줄 만큼 강력한 즐거움이자 공포였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내 얕은 문학적 지식과 호기심을 채워주는 몇몇 이름들 가운데 조지 오웰이 잊혀지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표지에 달고 있는 책들은 이내 내 책장에서 제일 먼지 안 쌓이는 자리에 줄을 지어 놓였다.

그래서 지난 시간동안 몇 권의 오웰을 읽었는데,
요즘 푹 빠져있는 것은 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 이라는 두껍지 않은 책으로,
오웰이 찢어지게 가난한 20대를 파리와 런던 이곳 저곳에서 살아낸 이야기들을 짧은 호흡으로 풀어 쓴 일종의 에세이 형태를 한 - 그러나 어쨌거나 - 소설이다.
검색해보면 정말 많은 판본들이 나오는데 내가 구입한 것은 펭귄 클래식스에서 나온 다음과 같은 표지의 책이다. 다른 예쁜 표지들도 많던데 쉽게 구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적어도 파리에선... 영국이나 미국 동네 서점들에선 아마도 좀더 선택의 폭이 넓겠지.



여기에 내용을 다 소개하기는 어렵기도 하고 그닥 유익한 것도 못 될 것인데
무엇보다 스포일러가 될 위험이 있으니 하지 않기로 했다.
오웰의 글이 우선 소설로서 정말 읽는 재미가 있는 것은 아무리 간단하고 평이한 이야기일지라도 순간 순간 긴장과 기대를 하게 만드는 남다른 단어 사용과 독특한 전개 방식 덕분인데
다음 내용을 조금이라도 알아버리면 아마 기운이 쭉 빠질 것 같다.
어쨌든 위에서 쓴 대로 (아직 내가 읽은 부분에선 오웰이 파리에 있다)
파리와 런던에서 가난과 무기력, 배고픔과 싸우며 어렵사리 살아가는 영국인 청년의 이야기이다.
그 생활 터전이 파리인 만큼, 프랑스어가 중간중간 영어 번역이나 주 없이 정말 자주 나오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아는 것이 훨씬 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아니 실제로 훨씬 더 재미가 있다. 호텔 여주인이 투숙객 중 한 사람에게 sacrée salope! 이라고 냅다 외치는 첫 페이지부터 나는 이 책이 한동안 내 손에서 떨어지지 않을 거라 예감했다...... 이 책을 한국에서는 어떻게 번역했을런지 궁금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알고 있는 파리의 길들과 동네들 이름을 발견하고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다.
물론 파리에 rue du coq d'or 라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5구 mouffetard 거리에 면한 rue du pot de fer 라는 작은 길이 실제로 오웰이 지냈던 호텔이 있는 곳이라던데, 실제로 그 길 18번지에는 내 친구 한 명이 살고 있다. 그 길 6번지에 작가의 거처가 있었다고는 하나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날카롭고 위트있는 묘사며, 단어들이며, 문장 하나 하나 버릴 것이 없고 무엇보다 정말로 "재미"가 있어서 도대체 손을 놓을 수가 없다.
내가 겪어본 바는 없으나 그가 묘사하는 절대적인 가난, 도시에서의 가난. 물질적 빈곤 앞에, 그로 인해 떠안은 초라함 앞에 의젓하려 애쓰는 안쓰러운 모습에 어느덧 공감하고 주인공의 상황에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 글의 힘이란 대단하다. 신체적 고통 앞에서 늘 한 구석 양심과 싸우는 한 작은 인간의 그다지 멋지지도 않은 그저 그런 "boring"한 나날들이 이토록 특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대충 마무리하고 빨리 가서 마저 다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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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senna의 l'entreprise des Indes 끝내기
Simon Critchley 의 The Book of Dead Philosophers 재밌다

Jean d'Ormesson - deux chroniques dont L'odeur du temps, La saveur du temps 시작
그리고 무시무시한 Éric Zemmour의 Mélancolie française 읽기
Panofsky의 La Renaissance et ses avant-courriers dans l'art d'Occident 이번 주 반납

Catch 22를 읽을 것이냐 좀 기다릴 것이냐.

진심의 탐닉

그리고 리영희 선생님의 역경.

아 the picture of dorian gray 왠지 잘 안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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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

체호프에 대한 마르지 않는 사랑.
아으.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읽고 또 읽다 지쳐 오늘 책방에서 "3년" 구입.

그러고보니 이 나이에 도스트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제대로 읽지 않은 상태에서 러시아 문학에 대해 말하기는 쑥스럽군.
음.


말하지 않기로 함.
뭐야 이게 ㅋㅋ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러시아어 혹은 영어 혹은 불어 제목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 계신가요.

AND

Composer’s Intent? Get Over It
Published: February 7, 2010
For contemporary works, “definitive” performances probably matter less than the interpretations.

http://www.nytimes.com/2010/02/07/arts/music/07modern.html


아까 newyork times에서 보고 스크랩. 좋은 기사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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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프랑스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
내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나라에 꼭 있어주었으면 하는 모범적 언론 상(像)
르몽드 (Le Monde).


Fichier:Le Monde logo.svg


이 매력적인 일간지에 대해서 쓰자면 글이 끝도 없이 길어질 것 같아서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지면들 중 두가지에 대해서만 간단히 적어보기로 한다.

나는 르몽드를 뒷 면부터 읽는다. 1면을 쓱 한번 보고 대단히 위급한 내용이 있지 않은 한
바로 맨 뒷면으로 가서 다시 천천히 앞으로 온다.
요즘 BASIC(브라질,남아공,인도,중국) 등 개발도상국들의 기온 및 환경보호 제약 완화하자고 떼쓰는 소리도 끔찍하게 싫고 오바마의 애매함도 괴롭고 사르코지 clearstream 얘기가 솔직히.... 약간 골치아플 뿐 더러, 무엇보다 제일 뒷면에 이 것이 있기 때문.

"Billet"라는 지면으로, 작가, 언론인이자 이집트학자인 (본래 이집트 태생) Robert Solé에 의해 채워지고 있다. 그는 이 지면을 근 40년간 맡아오고 있는데, 그 날카로우면서도 공격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위트에는 두손 두발 다 들고 만다.
사회적, 정치적 최신 이슈, 유명 인물들에 대한 유머를 가장한 냉철한 분석. 그런데 정말 웃기다.
특히 프랑스 행정 시스템에 대해 비꼴 때가 제일 통쾌하고 좋다 ㅋㅋ
밑에 사진을 첨부했지만 불행히도 이 날의 꼭지는 내가 이해를 못하는 내용이었다. 흑.. 공부좀하자




두번째로, 정치인과 함께 문화공연을 보러가는 지면이 있다.
정치인과 함께 보러간다고 하면 이상하고 (누구도 사실 같이 보러 가진 않았으니) 아무튼 정치인 누구로 하여금 현재 상연-상영-진행 중인 공연 및 전시회 등을 보러가게하는 내용이다. 보니 일주일에 한번에서 많게는 두세번 정도 실리는 것 같다.
이번 기사에는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인 자크 랑이 나왔다.
자크 랑은 Pavlova 3'23"이라는 발레 공연을 보러 간다.
이 사람은 왜 이 공연을 골랐을까, 이 인물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이벤트인가,
이 정치인이 이 공연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꿍꿍이"가 무엇인가 보여주는 (물론 별 생각 없어보이는 경우도 많지는 않아도 종종 있다) 참신한 기획이다.
무엇보다 예술과 담을 쌓았을 것 같아 보이는 (자크 랑이야 예외지만) 아저씨 아줌마들이 주섬 주섬 저는 이래서 이 공연을 보고 싶습니다 - 아 예술은 위대합니다, 이런 말들을 하는 걸 보는게 흥미롭기도 하다.



이 밖에도 Page Trois(제3면)라 불리는, 전면을 할애해 반드시 넘겨 짚고 가야하는 중요한 개념들을 꼭 꼭 집어 정리해주는 꼼꼼하기 이를 데 없는 기사도 르몽드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또, 중간 쯤에 껴있는 Décryptages, 즉 "암호해독"이라는 이름 하에 소개되는 일련의 기사들도 볼 만하다. 재조명할 만한 가치가 있는, 최근의 이슈들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 등에 초점을 맞추어 찬찬히 분석하는 Enquête, 각계 인사들 및 학자들의 기고를 싣는 Le grand débat, débats (르몽드에서 가장 치열한 말싸움이 벌어지는 페이지), 어떤 사람이건 대상이 될 수 있는, 인터뷰로 이루어지는 Portrait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참고로 Enquête라는 단어는 사실 여론조사 정도의 의미로 (말그대로 앙케이트) 쓰이기도 하지만 보다 집요한, 주로 학술적인 목적에서의 조사, 연구, 혹은 수사 (inquiry, investigation) 등의 뜻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Décryptages 섹션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꼭지인 Horizons 면에서는 특히 골치아픈 ...누구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싶어 하지 않는 현대 프랑스 사회의 어둡고 창피하고, 민감한 문제들을 많이 다뤄준다.
(* 여기서도 정정합니다 ㅠ ㅠ 제가 말하려던 건 enquête아니고 horizons 면이었어요.)
이미 곪아 터진지 오래인 프랑스의 고질병 이민자 문제라든지...
청소년 범죄나 인권 문제라던가 하는 것들.
이런 일들을 계속 상기시켜주고 문제를 제기하여 자고 있는 양심을 흔들어 깨워주는 것이야말로 미디어의 가장 숭고한 의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매주 한번씩 들어있는 부록인 Le Monde des Livres도 좋아해서 모으고 있다.
책들을 소개하고 비평하고 하는 별지다. 무엇보다 기획 아이디어들이 참 좋다.
그리고 자꾸 책을 사게 만든다. 흑..
요일마다 다른 테마들로도 부록이 오는데, 일요일날 오는 Television, Economie와 Argent (돈!)은 그냥..잘 안 읽는다. 대중문화와 경제와 돈에 좀 둔감한 김한결의 단면.......

끝으로 아쉬우니까 내가 집착하는 맨 뒤에서 두번째 면에 있는 스도쿠 사진.




무리해서 정당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만한 영향력을 가진 언론사라면 응당, 더구나 "비판의 나라" 프랑스의 제1언론이라면 더욱이,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비화들은 물론이고 살떨리게 매서운 지적과 비판들을 피해갈 수는 없다. 르몽드가 자랑스럽게 표방하는 "중립성"이라는 가치 조차도 최근(관점에 따라서는 창립 초기부터) 강한 이의 제기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만큼, 1944년 첫 발행한 이래 어렵사리 쌓아온 신뢰를 튼튼하게 유지하기가 영 녹록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 자존심에, 2009년 한 해 프랑스 사회 가장 "진지한" 이슈 중 하나였던 지면 언론의 명백한 위기를 받아들이기도 여간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프랑스 일간지 가운데 자국 내 및 해외 발행부수 1위를 차지하는 등, 프랑스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레퍼런스" 로 사랑받고 있어, 아무리 공격을 당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전부 입에만 쓴 약, 사랑의 매였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방심 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해주세요!!!!!!!!!!!1
참, 2010년들어 70년 역사상 최초로 여성 사장이 르몽드를 이끌게 되었다. 주인공은 55년생으로 동남아시아 담당 기자였던 Sylvie Kauffmann. 축하축하.

프랑스에서 매일 200만 명의 사람들이 르몽드를 읽는다.
그 가운데 저녁마다(르몽드는 석간^_^) 소파에서 뒹굴뒹굴 끅끅 웃으며, 때로는 인상 팍쓰고 정좌한 채로 르몽드를 읽는 여기 머리 까만 유학생도 여기 한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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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제목을 적어놓고 보니 겨우 나흘인가, 싶기도 한데
나흘 내내 매일 서점에 들러 책을 꺼냈다 다시 꽂았다가를 반복하기를 한시간 씩
그 큰 서점 문학 코너 점원들과 한명씩 다 상담 (내지는 잡담)을 해보고 나서 비로소 오늘에야 행동에 옮길 수 있었으니 사실은 꽤나 인텐스한 .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 넘치는 나흘이었다.
그리하여 총 10권의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모두가 보석같은 책들이다.
이 중 6권은 어릴 적에 거의 달달 외듯이 읽어댔던 추억의 명작들이고
나머지 4권은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제목만 익숙한 것들이다.

먼저 빅토르 위고의 2권짜리 레미제라블.
표지가 더 예쁜 Hachette 출판사의 책(le livre de poche)들은 아쉽게도 전부 조금씩 구겨져있어서 Gallimard사에서 나온 문고판으로 구입했다. 게다가 hachette가 조금 더 저렴했는데 약간 아쉽지만.
더 깨끗한 책을 가지고 싶어서. 중고여서 낡은 것은 상관 없는데 새 책을 살 거라면 이왕이면 아무 흠없이 반짝반짝 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에 선택했다.
정말 좋아했던 책인데... 안타깝게도 철들고나서는 손에 다시 쥐어 본 적이 없다.
작가가 직접 고르고 뽑아낸 단어들로 이 책을 또 한번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떨림을 감출 수 없다
(아래 이미지에서 보듯이 표지가 약간 무섭다 ㅋㅋ)



헤르만 헤세의 책을 자그마치 네 권이나 샀다.
문득 드는 생각에 아마도 나는 헤세를 참 좋아하는가보다. 약간 갸우뚱하게 된다.
사실 읽어본 책은 데미안과 환상동화집이 전부인데.
(앗. 정정. 그러고보니 유리알유희랑 수레바퀴밑에서도 읽었구나)
데미안의 인상이 너무 강했던 탓인지.
그리고 그의 환상동화집은 내가 지금까지도 제일 좋아하는 문학작품 중 하나다.
얼마나 열심히 읽었던지. 그래서 꼭 문고판으로 가지고 있고 싶었다. 가지고다니면서 맨날 읽으려고
사실 한국에서 가지고 있던 환상동화집은 누군가에게 빌려줬다가 영영 안녕했기 때문에.
그리고 저 데미안 표지를 보라. 상아색 바탕에 쉴레의 그림.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크눌프도 샀다. 역시 표지가 정말 예쁘다. 정말 책 표지는 내게 너무 중요하다.
하긴 누구에게나 다 그런가?



무엇보다도 가장 기대되는 것은!
헤세가 음악에 대해서 쓴 수필, 시, 편지 등을 엮어 놓은 책, Musique이다.
책 뒷면에 써있는 혹자(아마도 편집자)의 평을 보면 -

헤세에게는 그림보다도 음악이 갖는 의미가 훨씬 컸으며 (여기서 뜨끔하면서도 묘한 안도감을 느끼는 미술사 전공자) 그는 음악을 인류 문화의 가장 순수한 상징이자 가장 고고한 형이상학적 현실성, 세계를 움직이는 진정한 축으로 여겼다. 어린 시절의 친구, 유년기의 열정, 황혼기의 충직한 동반자로 그에게 대변되는 이 "음악"이야말로, 이 책에서 열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자료를 제시하고자 하는 헤세의 또다른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인 것이다.

이어서 헤세 왈,

"음악 없이 우리의 삶이 무엇일 수 있겠는가. 만약 누군가가 나 또는 어떤 다른 음악 애호가에게, 예를 들어 바흐의 합창곡이나 마술피리나 피가로의 아리아들을 듣지 못하게 한다면, 혹은 누군가 우리 기억에서 애써 그 것들을 뽑아내 지워버린다면, 이는 우리에게 있어 한 신체기관, 어떤 감각의 반쪽, 아니 그 전부의 상실이나 다를 바가 없다."


아마도 헤세는 나랑 잘 통할 것 같다.

그리고 바로 어제도 밑에 얘기했던... 스탕달의 적과 흑.
프랑스어 교본에서 발췌되어있는 부분 빼고는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다. 주인공 줄리앙이 우디앨런 영화 주인공처럼 여러가지 방법으로 신분상승을 꾀하는 몇몇 장면들이 내가 아는 전부다.
그런데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라고 했다.
아빠가 좋아하는 책이라면 내가 싫어할 이유가 없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미루어보면 아마 아빠가 좋아한 것보다 더 열광적으로 좋아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뭐든 가능성의 문제가 아닌가. 미칠듯이 좋아할 확률이 더 높은 책은 일단 사고 보는 것이다.
적과 흑은 조금 특별한 포맷인데, 지금까지 책들의 헤세의 musique을 제외하고 전부 문고판인데 비해, 하드커버에 크기도 큼직하다. 사실 다른 문고판 표지들이 너무너무 안 예뻤기도 하고, 아마도 오래 두고 보고 싶을 것 같아서 작년 일간지 피가로에서 특별기획으로 내놓은 프랑스 문학 걸작선에서 골랐다.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Jean d'Ormesson이 선정한 "이상적인 책장(Bibliothèque Idéale)" 컬렉션인데. 겉 커버에 엄청 크게 9.90euros 라고 시퍼런 스티커가! 그것도 잘 안떨어지는 스티커가..! 붙어있어서 몹시 충격적이긴 하지만 일단 별 선택의 여지가 없어, 다른 책방에 가서라도 찾아볼까 하다가 당분간 책방 순례는 쉬고 싶은 마음에, 그냥 집어오고 말았다. 작년 특별기획이라 더이상 새로 주문도 할 수 없다고 하고.



그 밖에, 올해 사망(이 단어 말고는 없을까 아무리 고민해도 잘 모르겠다.) 50주년을 맞아 전국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도 샀다.
이것도 역시 불어 공부하는 친구에게 빌려주었는데 뭐...그 땐 엄청 싼 가격에 중고로 샀었고 하니 굳이 돌려받기보단 선물한 셈 치고 그냥 새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무엇보다 올해 까뮈 책을 한 권이라도 사는 것이 아무래도 뜻깊은 일인 것 같았다.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은 결국 ...결국 ...........문고판으로 결정했다.
어제 밤에 잠들기 전에 얼마나 뒤척이며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비싼 (예쁜) 책 한 권보다 경제적인 문고판 여러 권을 사보는게 이리보나 저리보나 현명한 것 같다. 사실은 귤이라도 한 알 더 사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꽤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마지막 프로스페르 메리메! 이를 바득바득 갈며 횡격막 복식호흡으로 외치고 싶은 이름이다.
19-20세기 고고학사(엄밀히 말하면 중세고고학의 19-20세기 역사) 수업 때 날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던지... 이젠 그 단계를 훌쩍 (사실은 야밤에 몰래 담 기어오르듯 불안불안하게) 넘었으니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유유히, 그래 어디 소설은 어떻게 쓰셨나 한번 보실까, 하는 마음으로 구입했다.

나는 단편집을 굉장히 좋아한다. 11편의 소설이 한 권에 들어있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든다.
단편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글쎄 일단 호흡이 짧아 부담이 덜하다는 점이 솔직히 가장 큰 것 같다. 더욱이 여러가지 책을 동시에 조금씩 읽어나가는 습관이 있는 나로서는 아주 긴 책들은 어째 점점 뒤로 미루게 되기 마련이므로 굳건한 의지와 펄펄 끓는 흥미 없이는 1년이 걸려도 끝까지 다 읽기 쉽지 않다. (물론 대부분은 시간을 들이더라도 끝까지 다 읽지만)
또 한가지, 작가의 스타일에 아주 빨리, 그리고 깊이, 확실히 동화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한 작가의 글 - 특히 도입부와 결말을 여러가지 접하게 되면 그 세계를 더 금방 파악할 수 있으니까. 메리메 너의 세계도 고로 순식간에 파악해 주겠어 프랑스 최초의 문화유산 제네럴 인스펙터같으니..

내일은 일요일!
도서관이 안 여는 이 날을 100% 내 마음대로 즐기기 위해서 주중에 얼마나 놀고 싶은 걸 참았는지
아마도 오늘은 헤세 음악책을 들고 이불 속에 기어 들어가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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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 J. Carruthers가 쓴 "the Craft of Thoughts, Meditation, Rhetoric, and the Making of Images 400-1200" 이란 책(의 불역판) 을 읽다가 인상에 강하게 남아서 따로 적어둔 구절을 여기에 옮겨본다.

이 책은 ... 제목이 말하는 것 처럼, 그리고 내가 부족하나마 이해한 바에 의하면, 중세 시대 사람들이 (일반 lay people) 어떻게 기독교 교리와 exegese들을 받아들이고 이미지화하고 또 과학(Rhetoric 그러니까 수사법 뭐 이런 Arts 의 하나로)으로서 학습했는지에 대해 쓴 책이다. 

거기다 하나 더, 다양한 경로의 학습에 의해 종교에 대해서 갖는 이미지가 당시 사람들에게 "기억Memoria"을 돕는 도구 (Machina Memorialis) 로서 작용했다는 그런 주장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중세 사회 내의 종교 철학의 흐름을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그 뿌리를 찾아서 마침내 중세 개개인의 심리까지 하나하나 짚어나가는 정말 너무 어려운 이 책은  나를 갑자기 빨리 집에 가고 싶어지게 만들었다. 여기에 대해서 너무 자세히 쓰면 왠지 어디선가 능력자가 나타나서 이의를 제기할 것 같다.ㅋ

첫 장부터 아 이건 아예 안 읽거나 정말 시간을 들여서 다 읽지 않으면 안되겠다 (대신 다 읽는 것은 거의 새로운 분야의 논문을 하나 쓰는 것과 맞먹겠다-) 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는데 결국 둘다 안되겠어서 대충 필요하겠다 싶은 부분만 빠르게 스캔했다. 역시 이도 저도 아닌 것이라서 내게 남은 건 인용 몇 구절밖에 없는 것 같다. ㅠ ㅠ

아무튼 너무 얘기가 길어져서 앞뒤 문맥은 일단 생략하고 나중에 다시 쓰던가 해야겠다.

다음 텍스트는 성 베드로의 고린도서 첫번째 책 (III, 10-17)의 인용이다.


Selon la grâce de Dieu qui m’a été accordée, tel un bon architecte, j’ai posé un fondement. Un autre bâtit dessus. Mais que chacun prenne garde à la manière dont il y bâtit. De fondement, en effet, nul n’en peut poser d’autre que celui qui s’y trouve, c'est-à-dire Jésus Christ. Que si sur ce fondement on bâtit avec de l’or, de l’argent, des pierres précieuses, du bois, du foin, de la paille, l’œuvre de chacun deviendra manifeste ; le Jour, en effet, la fera connaître, car il doit se révéler dans le feu, et c’est ce feu qui éprouvera  la qualité de l’œuvre de chacun. Si l’œuvre bâtie sur le fondement subsiste, l’ouvrier recevra une récompense ; si son œuvre est consumée, il en subira la perte ; quant à lui, il sera sauvé, mais comme à travers le feu.

Ne savez-vous pas que vous êtes un temple de Dieu et que l’esprit de Dieu habite en vous ? Si quelqu’un détruit le temple de Dieu, celui-là, Dieu le détruira. Car le temple de Dieu est sacré, et ce temple, c’est vous.


나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은혜(말씀?)에 따라, 훌륭한 "건축가"인 나는, (건물의) 초석을 깔았습니다. 그리고 위에 건물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집을 짓는 그 방식에 각자가 대단히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기초를 다질 때, 사실상, 그 곳에 있는 것  - 예수 그리스도 - 외에는 아무것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이 기초 위에 금, 은, 보석, 나무, 짚, 수숫대로 집을 짓던간에, 모두의 집은 눈에 잘 띌 것입니다. 날이 밝아오면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날은 불 속에서 밝아오고, 이 불이 곧 각자의 집의 수준을 시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초석 위에 지어진 집이 이에 버틸 수 있다면 그 집을 지은자는 보상을 받을 것이요, 만약 그 집이 무너져내린다면, 그 값을 치를 것입니다 - 그는 구원을 받겠지만, 그러나 이는 불(지옥불 이런 뜻인듯)을 건너 지나야 할 것입니다.(이부분은 매끄럽지 않아서 그냥 하얀색으로 했음.)

당신 자체가 하느님의 정신이 살고 있는 하느님의 사원(Temple)이라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만약 누군가가 하느님의 사원을 무너트린다면, 하느님이 그 누군가를 무너트릴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사원은 신성하고, 그 사원은, 바로 당신인 까닭입니다.


나는 전혀 교인도 아니고 어릴 때 성당에서 공부한 것 외에는 특별한 종교적 지식이나 믿음은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인데 중세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오히려 주위 교회 다니는 한국 사람들보다 성인들의 삶이나 기적들 (hagiographie), 특정 종교적 상징과 구체적인 개념들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읽으면서 대단히 종교적으로 고양된다던가 하는 기분은 전혀 모르겠다. 당시 신자들이 대단히 종교적으로 고양되었었겠구나 하고 생각은 한다. 당연하지만..
성경을 자주 들춰봐야 하는 전공 특성상 성경 주요 구절들에도 꽤 친숙한 편인데 나는 성경을 읽을 때, 이렇게 말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마치 장대한 스케일의 대하 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이사이와 제레미아의 propheties 가 특히 흥미롭고 (예수의 탄생과 그 삶에 대한 prefiguration, 암시, 복선들이 재밌다) 그리고 the canticle of canticles도 좋아한다. 위에 인용한 Paul의 말 역시 종교적(기독교적) 인 요소들보다는 다른 의미들이 더 와닿는다. 이렇게 뭔가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와 강렬한 inspiration을 주는 말들이 정말 기독교적 카리스마인 것 같다. 특히 저 말투가 인상적이다. Ne savez-vous pas?
물론 재차 강조하건대 정말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스스로의 마음 안에 집을 짓는다는 생각이 난 정말 마음에 든다. 논문에서도 많이 다룬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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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르몽드를 집으로 배달 받아 보고있다.
지금까지는 문화원에서 매일 르몽드와 피가로를 읽을 수 있었는데 그만두고 나니 허전해서..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 부터 끊임없이 망설이다 결국 이제서야 구독을 했다.
매일 아침 세상과 사람들을,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신문이다.
이런 좋은 기사들이 쓰여지고 읽히고 사랑받는 이 나라를 나 역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 사랑은 얄밉고 안쓰러운 어린아이같은 내 나라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동반하는 것으로.
굳이 말하자면 이루어져서도 안되고 이루어질 수도 없는 애매한 무엇이지 않을까 싶다.



올해 초 프랑스 미디어법 개정안에 관련해서 국가의 언론사 대상 지원 방안들이 선정되었었는데,
그 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침.)
모든 프랑스 국민(청소년이겠지)이 18세가 되는 해, 원하는 일간지 1종을 1년동안 무료로 구독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지원하겠다는 안이었다.
물론 확정된 건 아니고 시범적으로 실시해보겠다 - 정도의 뉘앙스로 발표가 되었었긴 하지만.
부럽다..............

우리나라에선 저런걸 해준다고 해도, 적어도 나라면, 선택의 범위가 필연적으로 너무 한정되어 있어서 그다지 감흥도 없을 것 같을 뿐 더러, 내 몫의 구독비를 정부가 신문사에 제대로 전달해 주고 있는지 믿을 수 없어서 그냥 내 돈으로 하고 말 것 같다.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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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시대의 사랑,
51년 동안 기다린 답장
분명 아직 겪어본 일조차도 없을, 억울함인지 기쁨인지 모를 희한한 감정의 북받침에 나도 모르게 책장을 놓고 말았다. 벅찬 마음을 지탱하기 위해 책상이든 어디든 잠시 손을 짚어야만 했다.
책을 읽는 동안 내 시간도 50년이고 100년이고 함께 지나가 버린 기분이다.
마치 나도 페르미나 다사를 다시 만나기 위해51년을 기다렸고
아몬드 향 가득한 나무 아래와 창문의 거리와
푹한 늪지대와
매너티가 우는 미지의 강변, 동백꽃잎이 수놓은편지들을 함께 지켜본 기분이다.
콜레라처럼 잔인하고 온 곳을 알수 없으며 지겹도록 오래 묵은 길고 긴 사랑. 삶보다도 질긴 사랑.
다 읽고나니 허전함을 견디기 힘들 정도다.
나중에 좀 제대로 느낀 걸 써보고 싶다.
불어나 영어판으로 읽어보려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자 마자 바로 샹젤리제로 달려갔는데,
(파리에선 일요일날 여는 가게가 거의 없다.)
젠장.몰랐는데 샹젤리제 프낙엔 librairie가 없었고
그 옆의 virgin megastore에 가기엔 약속시간에 이미 늦어버려서 시간이 없었다.
파리의 한가로운 일요일을 이렇게 미워해보기는 처음이다.
소비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단 하루 진정한 휴일이라며 칭송해 마지 않았던 이 일요일이
이렇게 야속할 줄이야.

아.
맹세코 나는 동명의 영화를 보지 않겠다.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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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다, 맞는다, 맞지 않더라도 내 잘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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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생각을 하고 싶고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글을 쓰고 싶다 길고 긴 글을
올 겨울엔 그래도 책을 많이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서경식 교수와 노마 필드 교수, 카토 슈이치 교수가 같이 쓴 "교양, 모든 것의 시작"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요즘같은 세상에서는 오히려 낯설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교양"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박관욱 교수님이 강력하게 추천해주신 "르몽드 세계사(L'Atlas du Monde)",
프랑스에서 한국 올 때 가지고 온 "Les aventuriers de la culture"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 그리고 단테의 la divina comedia.(드디어!)
사실 다 동시에 읽고 있어서 완전히 다 끝낸 책은 벤야민 밖에 없긴 한데.
아무튼 방학이라 느긋하게 책 많이 볼 수 있어서 좋다.
막스 베버는 몇페이지 읽긴 했는데, 분명 문장이 무슨 뜻인진 알겠는데 대체 무슨말인지 알 수가 없다.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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