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기다렸던 정명훈 공연이었는데
지난 글에 썼던 것 처럼 정 선생님 건강상의 문제로 파비앙 갸벨 이라는 라디오프랑스의 chef assistant (아마도) 분이 대신 지휘를 맡게 되었다.
따라서 별 기대를 안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딱히 나무랄 데 없는 깔끔한 연주였다.
오늘 프로그램은 메시앙 - 라벨 - 뒤캬 - 라벨로 이어지는 프랑스 작곡가들 스페셜이었고
전부 재미있는 곡들이었다.
메시앙의 Reveil des oiseaux 인가. 아침을 깨우는 새들 ?
옛날에 Pasdeloup 오케스트라 공연 이후로 메시앙의 곡을 연주회에서 듣는 것은 두번째인데 처음 들었던 곡하고는 느낌이 아주 많이 달랐다. 조금 더 현대적인 느낌이었다고 해야하나. 어쨌든 새 지저귀는 소리가 재미있더라. 그리고 나름 훌륭한 협주곡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던 점이 신기했다.
무엇보다 피에르-로렁 에마르의 놀라운 집중력이 진가를 발휘한 곡이었다. 리옹 출신이라는 점에서 오는 편견인지 몰라도 이 분의 연주는 정말 artisan - 장인 같았다. 그렇다고 그냥 manufacturer 라는 의미는 아니고... 정말 한 땀 한 땀 공들인 철두철미한 연주다.
들리는 느낌이 폴리니 할아버지와 약간 비슷했다. 나만의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식의 연주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콘체르토는 그냥 곡 자체가 벌써 너무 훌륭하기 때문에 뭐라 더 할말이 없다. 으으. 정말 좋다. 라벨의 곡은 모퉁이를 돌때마다 놀라움에 입이 쩍 벌어지고 깨달음에 무릎을 탁 치게 한다.

2부의 뒤캬의 곡은 le Péri - poeme danse (뽀엠 덩세 인데 ...accent 치기 귀찮다)
나름 신선하긴 했으나 딱히 귀가 트이는 구절은 없었다.
다만 약간 영화음악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좀 더 공부를 해야 들릴 듯.

그리고 라벨의 La Valse. 정명훈 선생님이 라디오 프랑스와 같이 연주하는 라 발스를 정말 듣고 싶었는데... ㅠ_ㅠ 너무 아쉽지만. 그래도 오늘 오케스트라 연주 정말 열심히 해주어서 - 지휘자도 물론 괜찮았고 - 연주 자체는 만족스러웠다. 그냥 지휘자 분이 중간 중간에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부분들을 좀 휑 건너뛰어버리고 심드렁하게 넘어가 버렸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 그 불협화음들과 이상한 그로테스크한 느낌들이 별로 제 맛이 나지 않았다는 점이 조금 안타까웠다.
귀가길에 아바도의 연주를 들으며 위안을 삼았다.
이제 3월 1일 피아니스트! 바렌보임의 리스트 피아노 콘체르토들 공연날 까지 며칠간은 또 좀 쉬고.
이제는 1주일만 공연 안 봐도 뭔가가 되게 허전하다. 병이 되었다.



참 그리고 얼마전 파리 마지막 상영관을 기어코 찾아가 Pianomania 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브렌델 할아버지와 피에르-로렁 에마르 아저씨 (외에도 많지만 다 기억이 안 난다.) 가 나오신다.
관객들을 처음엔 웃게 하시고 이내 질리게 하신 그 분 ㅋㅋ
하지만 오늘 연주를 직접 들으니 그 까탈스러움에도 이유가 다 있구나, 하고 탄복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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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볼거리 + 들을거리가 풍부한 공연이었다.
게다가 마무리는 라벨의 볼레로.
마지막 곡으로 정말 훌륭한 선택이었다.

조셉 폰스는 스페인 국립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자 상임지휘자로,
2009년 3월 경 데 파야와 바르톡 등의 레퍼토리로 플레이옐에서 그의 지휘를 본 적이 있다.

(2009/03/28 - 26 Mars 2009 - Orchestre de Paris / Josep Pons / Bartok, Ginastera, de Falla)

조그맣고 유쾌해 보이는 이 지휘자의 음악이 나는 꽤 마음에 든다.
그리고 내가 본 중 가장 춤을 많이 추는 지휘자 중 하나다. (그런 그와 1등을 다투는 바렌보임.)

어쩌다보니 바르톡의 피아노 콘체르토 2번을 금방 또 다시 듣게 되었는데 (지난번 바렌보임과 브론프만의 연주로) 이번에는 베레조프스키가 협연을 했다.
저번에 브론프만 때 보다 훨씬 더 좋은 자리에 앉아서 들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베레조프스키 연주가 더 해상도가 높게 들렸다. 둘 중 누가 더 낫다고는 말 할 수 없을 것 같다.  ㅎㅎ 그냥 다 좋다.
베레조프스키의 박력과 민첩함도 대단하지만 브론프만의 규모있는 연주도 멋있었다. 다만 파리 오케스트라의 퍼커션은 베레조프스키의 속도와 타건을 받쳐주기 조금 모자랐던 것 같고 슈타츠카펠레 베를린은 피아노를 잡아 먹을 듯한 기세였던 점이 전체적으로 듣기엔 비교포인트인 것 같다.
조금 어려운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번 반복해서 들으니 친숙해진 듯도 하다.
현악 없는 1악장 정말 특이하다.

소프라노인 노라 귀비쉬는 솔직히 별로였다. 음... 셰헤라자데 좋아하는데 노래가 기대에 못 미쳐서 집중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옆의 이상한 여자가 또 블랙베리 자판으로 공연 중에 문자를 자꾸 보내서 더 짜증났기도 하고.

어쨌든 2부의 라벨 곡들은 정말 다 훌륭했다. 워낙 조셉 폰스가 이 쪽 전문이기도 하고
파리 오케스트라의 합주도 뒤로 갈 수록 괜찮았다. 콘서트마스터인 Roland Daugareil 의 바이올린은 무척 고풍스럽고 부드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늘함이 간혹 엿보이는, 파리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에 꼭 어울리는 소리를 낸다. 첫 곡인 alborada del gracioso 에서 특히 좋았다.
 
무엇보다 볼레로는 정말 기립박수를 받을 만 했는데. 관악 솔로들 훌륭했다.
오늘의 약점은 팀파니였다. 매 공연마다 팀파니에 지나친 관심을 쏟고 있는 나인데, 너무 기대를 한 탓인지 볼레로에서도 앞서 연주된 Rapsodie espagnole 에서도 팀파니가 제 몫을 다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 때문에 다른 파트들이 바닥없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볼레로는 정말 보석같은 곡이다.
공연에서 라이브로 듣기에 가장 행복한 곡.
황홀하게 겹겹이 쌓여가는 소리들을 관찰하며
시간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좋겠다
이 곡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몇번이나 생각했다.
정말 안 끝났다면 좀 힘들었겠지만 ㅋ 빨간 구두 동화도 아니고


요 며칠 궂은 날씨의 연속으로 기분도 컨디션도 바닥이었는데
볼레로 듣고 좀 좋아진 것 같다.
그러나 내일 모레 오랜만에 정명훈 공연이었는데 건강상의 이유로 다른 지휘자로 급 교체 메일 방금 받음 ㅠ.ㅠ 울고싶다.


위에 잠깐 쓴 김에
Roland Daugareil 씨의 바이올린 같이 들어요. 들어봅시다? 들어볼까요?
ㅋㅋ어색 어색

프로코피에프 바이올린 협주곡을 설명하고 부분적으로 연주하는 영상. (embed가 안됨 ㅠ)

http://youtu.be/1sGgXKqwNqc

David Zinman과 쇼스타코비치 리허설 할 때.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blues. 처음 스타카토 때 너무 휘청거리셔서 좀 무섭지만 ㅋㅋㅋ
가눌 수 없는 주체할 수 없는 자유로운 프랑스 영혼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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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매일 23시에서 00시 까지 francis dresel이 진행하는 discoportrait 를 즐겨 듣게 되었다.
한 사람의 연주를 집중적으로 한시간 동안 들으니
계속 흐름이 있어 듣기도 좋고 공부도 되는 것 같고.
특히 이런 밤 시간에는 별 다른 골치아픈 ㅋ 활동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차분히 하루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음악 듣기 좋은데
여러모로 참 좋은 방송인 것 같다.

오늘은 프리드리히 굴다의 연주들을 들려주고 있다.
베토벤의 6 bagatelles.

한국 시간으로는 아침 7시에서 8시 사이인데 우연히 들르셨다가 시간 맞으시면 들어보세요 :)
물론 라디오 클래식의 다른 방송들도 괜찮지만
진행자의 참견도 거의 없고 한국에서 듣기도 괜찮을 것 같습니당.

사이트는 www.radioclassiqu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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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떼아트르 데 샹젤리제.
아이폰 덕분에 공연장에서 직접 후기 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막 1부가 끝났는데 첫 곡는 드보르작의 스케르초 카프리지오소, 방금 연주된 곡은 로디용 셰드린의 오프렁드 로멍틱 (Offrande romantique 낭만적 제물. ..)이라는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4악장 구성의 콘체르토로 프랑스 초연이었다.

확실히 바로 얼마 전에 들은 슈타츠카펠레 베를린이나 콘서트헤바우에 비하면 오늘의 오케스트라인 루체른 심포니는 조오금 재미가 덜하다. 열심히는 하는데 악단의 소리가 잘 안난다. 통일성있고 유기적인 그런 주고받는 소리 균형잡힌 매끄러움 꽉참 같은 것이 좀 없다.

아버지 예르비는 무척 키가 큰 중후한 신사 ㅋ로 드보르작 때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둥그런 등이 귀여웠다.

아르헤리치의 피아노는 여전히 카리스마가 넘친다. 미샤 마이스키의 연주를 직접 듣는 것은 처음인데 어쩐지 왜 아르헤리치 크레머 마이스키가 함께 어울리는지 납득이 간다. 스타일이 완전 첼로의 아르헤리치요 첼로의 크레머다. 내가 썩 좋아하는 느낌은 아니다. 하지만 결단코 멋은 있다.
2부의 프랑크 첼로 소나타를 들어 보아야 그의 소리에 대해서 더 말할 수 있을테지만 아무튼 재미있었다.

공연은 쇼스타 9번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출연진이 출연진인지라 오늘 유난히 사람이 많은데 셰드린의 콘체르토 때는 내 앞 쪽의 많은 사람들이 졸거나 트랙을 잃었다.







2부 이어서.

여기서부터는 집에 와서 쓴다.

프랑크의 첼로 소나타는 굉장히 듣기 좋았다.
사색적이고 안쪽을 향하는, 조심스럽지만 여리지만은 않은 곡.
브람스가 조금 떠올랐다.
마이스키의 연주는 정말 좋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피아노가 높은 음을 영롱하게 연주할 때 상대적으로 조금 힘이 모자라 묻히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그냥 개인적으로 마이스키의 첼로는 조금 어중간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주 둔탁하거나 힘이 세지도 않고 날카롭고 예민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굉장히 깊이가 있다고 하기도 좀... 공연으로 딱 한번 듣고서 이렇게 판단하기도 좀 웃기지만. 그와 아르헤리치가 연주한 바흐 비올라 다 감바 소나타 녹음은 무척 좋아하는 음반인데 말이다.
물론 빛나는 순간이 분명히 몇번 있기는 했다. 대가라는 것은 알았다.
아 무엇보다 2부에서는 아주 채도가 높은 사파이어같은 파란색 웃옷으로 갈아입고 나오셔서
멋쟁이임도 증명하셨다.





쇼스타코비치의 9번은
음 내가 제대로 들어본 첫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이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듣기 조금 피곤할 때는 있어도 절대 지루한 법이 없다.
9번 교향곡 역시 그랬다. 무척 재미있었다
특히 가스등 뿌옇게 밝힌 밤 골목을 잰 걸음으로 걸어가는 장면이 연상되는 (반드시 약간 비스듬한 각도에서 위에서 내려다 보아야 한다)
2악장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나머지 악장들도 역시 그런 식으로 장면 장면이 상상되어 재밌었다.
1악장에서 바이올린 솔로가 나올 때
예르비 할아버지는 정확히 딱 좌향좌를 하시고 양 손으로 에네르기를 막 보내셨는데
긴 갈색머리를 가진 아주 가냘픈 콘서트마스터는 그 관심 앞에 무척 긴장되어 보였다.
바순과 큰 금관악기들 연주는 굉장히 좋았는데 뭔가 힘이 좀 없는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갈 밤길이 걱정되어 아쉽지만 앵콜은 듣지 않고 나왔는데
홀을 빠져나갈 때 들려오는 앵콜곡 느낌이 무척 좋았다.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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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남자친구 대신 지휘자+피아니스트+오케스트라에 하트뿅뿅 눈빛 보내고 온 발렌타인데이.


안스네스

모차르트도
앵콜의 쇼팽도...정말 좋았다
이미 큰 피아니스트라는 느낌 확
자기 색깔이 이미 드러나는

정갈하고 세밀하면서도 (정말 틀리지 않고 친다) 심지어 프랑스 옛 피아니스트들의 에스프리를 가진 듯 보인다 쇼팽을 칠 때 깜짝 놀랐다. 오히려 쇼팽을 앵콜로 골라 신선했다 ㅋ


그리고 소위 세계 정상급이라는 오케스트라들을 보면

elan을 쉽게 찾고
지휘자도 매우 쉽게 하며
아주 예민하게 반응
단원들 사이 호흡이 잘맞는건 당연한 얘기고
아주 깊다
쉽고 빠르게 깊음에 다다른다
그래서 변화무쌍하고 즐거우면서도 훌륭함을 잃지 않는다
베토벤 7번 1악장에서 플룻과 오보에의 이중창 정말 정말 멋졌다.
바이올린들도 감동적

마리스 얀손스의 지휘법은 정말 마음에 든다
깔끔하고 무엇을 어떤 소리를 내고 싶은건지 어떤 리듬을 타고 싶은건지 명확히 말해주는 몸짓
베토벤에서 그 지휘의 진가 ...완전히 꼭대기라는 느낌

앵콜은 피가로의 결혼 서곡!
무지 신났다
즐겁고 산뜻한 마무리
서곡들을 앵콜로 많이들 선택하는데 서곡으로 콘서트의 막을 내리는 것은 어째 우습다 ㅋ



  • Gioacchino Rossini
  • Ouverture de L'Italienne à Alger
  • Wolfgang Amadeus Mozart
  • Concerto pour piano n° 24
  • Entracte
  • Ludwig van Beethoven
  • Symphonie n°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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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 ! 존 엘리엇 가디너와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 라디오 프랑스 합창단의 공연에 왔다.
프로그램은 베를리오즈와 스트라빈스키.
너무 재밌을 것 같은데
파리에선 별로 인기가 없는 프로그램인지 (설마. 베를리오즈에 스트라빈스키가) 그럼 뭣때문인지
사람이 정말 없다.
이상하네

합창석이야 오늘 콰이어가 나오니 그렇다 쳐도
2층 발코니를 아예 닫고 사람들을 오케스트라석에 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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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2월 5일에 이어 다니엘 바렌보임과 예핌 브론프만,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은 오늘 바르톡 피아노 협주곡 2번 그리고 차이코프스키 6번을 연주했다. 어제는 바르톡 1번과 차이코프스키 5번이었다는데 나는 이틀 다 가지는 못했고 오늘만 다녀왔다. 그것도 겨우. 분명히 예약을 했었는데 시즌 첫 공연 때 한꺼번에 표를 받아가지고 올 때 이 날 것만 누락되어 있었던 것이다. 날짜 순서대로 표들을 정리해 두었는데 다음 공연 날짜는 2월 12일이어서 그냥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문득 예약 내역을 체크해보지 않았더라면 표를 사놓고도 공연을 놓칠 뻔 했다.
못갔었더라면 정말 울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대단한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도, LSO도 게반트하우스도 라디오프랑스도 다들 너무 훌륭한 오케스트라들이지만 드레스덴 오늘 연주는 정말 최고였다. 컨디션이 아주 좋았던 모양이다. 프로그램도 좋았고 지휘도 뭐라 말할 수 없이 훌륭했고 오케스트라의 기량과 매너도 대단했다. 아직도 떨린다.

예핌 브론프만의 피아노 연주도 역시
대단하다는 말 밖엔... 사실 바르톡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그냥 모르고 들어도 무얼 말하려는지 알겠는 , 명징하고 힘찬 살아있는 연주였다.
옆의 아주머니 말로는 어제 협주곡 1번은 정말 그로테스크하고 히치콕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무서운 분위기였다는데 ㅋㅋㅋ 오늘은 아니어서 다행이라시더라.
그리고 음... 바르톡 음악은 차가운 혹은 서늘한 (열대)우림 같다.
좋던데
무엇보다 최근 집중적으로 들었던 베토벤, 슈베르트 곡들에서 그다지 쓰이지 않는 다양한 악기들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하지만 오늘 최고였던 건 역시 차이코프스키 6번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연주였다. 오케스트라의 힘이 엄청났다. 그냥 소리가 크다 정도가 아니라 부피와 질량이 큰 연주였다. 소리가 큰 게 아니라 아우라가 큰 연주였다.
관악이고 현악이고 타악이고 어느 한 파트 뒤쳐지거나 모자라는 일 없이 그냥 거대한 하나의 굉장한 형체였다. 이건 그냥 여담? 이지만 오늘 내 자리가 2층 발코니 앞에서부터 H열이었는데도 3악장에서는 바닥에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무슨 귀가 아프고 시끄럽고 그런게 아니고 그냥 황송한 것이다. 나는 내내 웃는 얼굴로 공연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배실 배실 웃음이 나오더라. 비창인데 이러면 안되는데... 그런데 악기 하나 하나가 튀어나올 때마다 분위기가 변할 때마다 악장이 넘어갈 때마다 탄복을 하는 것이다. 곡도 곡이지만 연주 때문에 공연 내내 순수한 즐거움 그 자체를 느꼈다. 너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막 좋아지고 맛있다는 말을 나도 모르게 연발하게 되듯이 오늘 차이코프스키는 비창은 맞는데 그래도 ......행복한 비창이었다.

나는 바렌보임의 힘차고 강렬한 지휘를 꽤 좋아하는 편인데 오늘은 특히 더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귀기울이지 않을 수 없고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지휘였다. 음...너무 과찬일색인가 그런데 정말 말도 안되게 훌륭한 공연이었기 때문에. 여기다 한 마디를 더 쓰면 칭찬 한마디가 느는 것이고 한 문장을 더 쓰면 칭찬이 한 문장이 늘어날 것이다. 앗 좀 그러니까 그냥 한마디 하자면 1악장에서 좀 두드러진 현상이었는데 너무 네모네모로 가는 느낌을 받았다. 프레이징이 딱딱하다고 해야하나. 네모 네모 네모... 요거 끝나고 요거 요거 다음에 요거 이런 느낌 그런데 정말 잠깐이었고 그때 좀 이상했던 것 빼곤 나머지는 별 다섯개.

그리고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 이어 오늘도 팀파니의 왕 한 분을 뵈었다.
어휴... 진짜 팀파니 대단했다. 아니나 다를까 바렌보임도 공연 끝나고 나서 팀파니 주자를 제일 먼저 일으켜 세워 박수를 받게 하였다. 물론 팀파니스트니까 원래도 일어나 있었기 때문에 별로 티는 안났지만 그래도 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다시 듣고 싶다.

앵콜도 후하게 두 곡이나 해주었는데 어제도 그랬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체력들이다.
첫번째는 시벨리우스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 중... 멜리장드 어쩌구 였는데 잘 못들었고
두번째는... 어떤 서곡인데 꽤 유명한 어떤 서곡인데 나는 잘 모르겠다. 베를리오즈의 벤베누토 첼리니 서곡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요런 비슷한 느낌이었다. 바그너인가 생각도 했는데 내가 가지고있는 바그너 서곡들 중에서는 없었다.
(브론프만과 바렌보임이 함께 연주한 피아노 앵콜곡은 방금 문득 생각났는데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 op46 1번 다장조 였지 않나 싶다. 아니더라도 이런 비슷한 짜임의 연탄곡)

아. 엄마아빠에게 한국에서 바렌보임이 하는 베토벤 교향곡 전곡 싸이클 티켓을 사드리고 싶다
언제나 가능한 일일런지.

차이코프스키 6번 교향곡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오늘도 역시 3악장 끝나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하지만 오늘은 아마도 사람들이 몰라서가 아니라 연주가 너무 대단해서 도저히 뭔가 소리를 지르거나 박수를 치거나 발을 구르거나 뭐든 하지 않으면 다들 견딜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옆에 앉은 그럼피 올드맨 할아버지가 쳇 하고 조소 섞인 불평을 했기 때문에 나는 겁이 나서 박수를 이내 거뒀지만 다들 한참 박수를 치고 환호를 보냈다.

이 할아버지로 말할 것 같으면 원래 내 바로 앞자리에 앉아계셨는데, 2층 좌석은 열 사이 경사가 가팔라 앞좌석 사람이 몸을 앞으로 숙이면 뒷 사람은 무대를 볼 수 없게 되어있어 할아버지가 고개를 앞으로 쑥 내밀고 몸을 굽히고 계시길래 죄송하지만 제가 무대를 거의 못 보니 좀 바로 앉아주실 수 없겠느냐고 부탁을 했더니 .......대꾸도 안하고 또 쳇! 하고 비웃으시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나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한참 나중에야 "노력은 해보겠다" 하시더라.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엄마야...
내 옆에 계셨던 아주머니께서 그 할아버지 옆자리들이 비었으니 우리가 앞으로 가자! 하고 제안하셔서 나는 졸지에 그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옆자리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꽤 많이 나눴는데, 외국 오케스트라들을 훨씬 좋아하신다는 말씀이 웃겨서 기억에 남는다. 외국 오케스트라 특히 독일 오케스트라들은 discipline 이 있다는 것이다. 연주 실력도 훌륭할 뿐 아니라 매너도 좋고 지휘자에 대한 존경심(인지 복종인지)과 착실함이 좋다고 하셨다. 어제 공연 끝나고 드레스덴 연주자들을 연주회장 앞 길에서 보았는데 다들 줄을 딱 딱 맞춰 서있더라며 그게 어찌나 멋있었는지에 대해 한참 이야기 하셨다... ㅋㅋ
그래서 그럼 프랑스 오케스트라들은 싫어하세요? 하니까 걔네들은 너무 arrogant 하다며...
저번에 salle gaveau에서 어떤 (아마도 lamoureux나 pasdeloup?) 프랑스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았는데 지휘자랑 의견차로 다툼이 있었는지 어쨌는지 공연이 끝나고 지휘자가 단원들을 일으켜 인사를 시키려고 하자 대다수가 들은척도 안하고 꿈쩍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도무지 몰상식하며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목청을 높이셨다 ㅋㅋㅋ 이건 아마도 국민성의 문제라며 ㅋㅋㅋ 본인도 프랑스 인이면서... 역시 프랑스인들은 정말 재미있다.


ERRATUM!
실컷 써놓고 한참 뒤
벽에 붙여놓은 티켓들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드레스덴이 아니라 베를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그렇지. 바렌보임이라면 그게 더 말이 되지.
ㅠ 바보같다.
드레스덴 아니고 슈타츠카펠레 베를린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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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9일 토요일,
체코 국립 오케스트라와 Eliahu Inbal, Thomas Hampson 의 Mahler 공연.
죽은 아이들을? 아이를? 그리는 노래, 그리고 교향곡 10번 (Cooke)

1월 30일 일요일,
LA 필하모닉과 Gustavo Dudamel, Kelley O'Connor 의 John Adams, L. Bernstein, 그리고 Beethoven 7th

1월 31일 월요일 오페라 바스티유에서 Francesca da Rimini

2월 1일 화요일 오늘은 Théâtre des Champs-Elysées 에서 Andras Schiff 독주회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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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면서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일은 특히 나처럼 멀티태스킹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정말 고통스럽고 실망스러운 일이다. 오늘 하루종일 집에서 공부를 하(려고 노력하)면서 줄곧 라디오 클래식을 들었는데, 왜냐하면 오늘 Alexandre Tharaud가 점심에 직접 방송 진행을 하고 저녁에는 Olivier Bellamy의 초대 손님으로 Passion classique 에도 출연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야샤 하이페츠의 주요 녹음들을 선정해서 한시간 내내 들려주는 discoportrait 프로그램이 진행중이고. 읽어야 할 글들이 산더미같은데 음악도 놓칠 수 없어서 욕심을 내다보니 음악도 제대로 들은 것이 없고 공부 진도도 많이 나가지 못했다. 타로와 벨라미의 passion classique는 나중에 결국 다시 한번 돌려 들어야 했을 정도. 음.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겠지 아무래도. 음악을 들으면서 뭐든 다 할 수 있는데 공부만은 힘들 것 같다. 음악 들으면서 가장 하기 좋은 일은 설거지인 듯. (물론 물 틀어놓고 헹굴 때는 그것도 무리.) 아니면 산보. 아니면 버스타기. 어쨌든 공부랑 음악은 호환이 안되는 작업들인 것 같다. 푸풒이제는 공부해야지. 하고 결심하는 순간 하이페츠가 연주한 라벨의 valses nobles et sentimentales 이 흘러나온다. 귀신같은 라디오 클래식...

+ 역시 타로의 최최신음반 스카를라티 피아노 소나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적을 것은 두가지
음 전곡을 차분히 들어보지는 못했으나 지금 느낌으로 타로의 스카를라티 연주는 너무너무 심하게 반지르르하다. (다행히도) 번지르르는 아니고 반지르르인데 그래도 너무너무 매끈한 연주라서 좀 겁날 정도. 아마 10유로 이하 가격으로 구할 수 있기 전에는 구입하지 않지 않을까... 그리고 무슨 연주가 3D 4D같이 울림이 넓은데 녹음 면에서 아주 내 취향은 아니다. 연주 자체가 나쁘다는 말이 결코 아니지만.
그리고 또 하나 스카를라티 피아노 연주에서 작곡가가 단 한가지 팁을 준 것이 있다면 "Soyez heureux," 즉 "행복할 것" 이었다. 아주 쉬운 말인데도 자꾸만 까먹어서, 들을 때마다 늘 충격적인 이 말. "행복할 것."



추가로 라디오 클라식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알렉성드르 타로의 연주 영상이다.
행복한 타로 ?
하지만 이 연주는 몇부분을 제외하고는 정말 내 취향과는 거리가 있다.
광고에서 보니 에스파냐 느낌으로 스카를라티를 연주하고싶었다 하던데 과연 그런가 싶기도 하고.
연주를 마치고 손가락을 부챗살처럼 말아 쥐는 모습이 인상적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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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팅크가 지휘하는 챔버 오케스트라 오브 유럽의 공연에 다녀왔다.
프로그램은 베토벤의 피델리오 서곡, 교향곡 8번 그리고 5번이었다.

8번도 아주 딱 떨어지는 단정하고 민첩하고 재치있는 즐거운 연주였고
음 특히 1악장.

5번 역시 마음에 들었다.
엄청나게 신나보였던 오보에 솔로의 프랑수아 를루 (François Leleux) 를 필두로 한 관악 (클라리넷, 오보, 플루트) 의 활약이 돋보였다. 무척 보기 좋았고 듣기 좋았던 것은 물론 두말할 것이 없다. 다만 피콜로는 내가 듣기에는 이질적인 - 삑살...에 가까운 - 소리를 냈고 따라서 꽤나 거슬렸으나 나중에 하이팅크 할아버지는 일으켜세워 박수를 보내주었다. 왜일까.
1악장에서 (내가 기대하는) 무시무시한 박력이랄까 카리스마는 조금 모자랐지만 그 대신 콤팩트하고 정갈한, 지리하지 않고 구차하지 않은 좋은 연주였고
2, 3악장은 정말 훌륭했다. 각 악기의 선율들이 생생하게 살아있으면서도 전체의 합주가 조화로운.
4악장도 전체적으로 좋았으나 도 - 미 - 솔 --- 파 미 레 도 레 도 한다음에 도 도 레 - 레 레 미 - 요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아서 좀 여운이 덜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 부분에서 깊게 호흡을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 빼고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기분이 정말 좋았다.
옆자리에 앉으신 입냄새할아버지의 1분간격기침+재채기 공격을 제외하면 정말 만족스러웠던 공연이다. 전에는 몰랐던 챔버 오케스트라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몸집이 작은 돌격대 같은 느낌

욕심이지만 콘서트헤보우와 하이팅크 선생님의 연주를 듣고 싶어졌다
하이팅크의 음반을 많이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음 아주 좋은 지휘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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