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 옆에 리오넬 브랑기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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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렌보임과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공연에 다녀왔다.
말러의 교향곡 10번 아다지오, 그리고 베토벤 교향곡 3번이 연주되었다.
한국에서 8월에 바렌보임의 지휘로 같은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교향곡 싸이클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맛보기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들었다.
말러는 꽤 듣기 좋았고 색깔이 많은 연주였다.
장점이기도 하고 동시에 단점이기도 한 부분이었다.
수석 주자들의 소리가 많이 튄다는 느낌이 들었고 전체적으로 연주가 굉장히 밝다.
바렌보임은 베토벤 3번의 2악장 marcia funebre 가 자신이 생각하는 "죽음"의 의미를 가장 완전히 보여주는 음악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그 생각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모양이다. 바렌보임이 골라 라디오에서 들려줬던 연주와도, 내가 평소에 들었던 연주들과도 아주 느낌이 달랐다. 뭐 그런 2악장도 있을 수 있겠지만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는 연주였다.
1악장과 3,4악장은 꽤 괜찮았다. 아주 빠르고 음량이 크고 강렬한 부분에서는 멋진 합주를 한다.
하지만 반대로 좀 부드러워야하고 내성적이어야하고 점잖아야하는 부분에서는 그닥...

어쨌든 나는 바렌보임-사이드 재단과 웨스턴-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취지에 무조건 박수를 보내주고 싶고, 오늘의 감동은 무엇보다 그 "생각"에 대한 공감에서 왔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옳아서"가 아니라 "맛있어서" 사먹어 달라던 공정무역 초콜릿 광고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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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프레이레 (프레이르? 뭐라고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여기선 그냥 frère 처럼 읽는데 포르투갈어로는 프레이레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의 리사이틀에 다녀왔다.

슈만의 아라베스크, fantaisie, 그라나도스, 리스트의 메피스토왈츠, 발라드, 프로코피에프 visions fugitives 다 좋았지만

무엇보다 앵콜곡으로 연주해 준 바흐의 jesu, joy of man's desiring 듣고 눈물이 찔끔...
다시 듣고 싶다. 앵콜곡들 정말 좋았다. (드뷔시의 colline d'anacapri, 그리고 내가 모르는 완전 애절한 그러나 많이 들어본 무슨 어떤 곡.)
굉장히 힘있게, 탄력있게 당겨 치는 스타일. 프로코피에프와 리스트 왈츠에서 특히 빛이 났다.

9일날 있었던 프레이레와 라디오프랑스 협연 쇼팽 협주곡 2번과 차이코프스키 5번을 정말 간발의 차로 표를 못구해서 보지 못했는데.
아쉬운 대로 아래에 올렸다. 나도 이제 보기 시작했는데, 르몽드 기사에 따르면 리오넬 브랑기에가 정말 정말 잘했다던데. 기대된다. 작년 1월 쇼스타코비치와 보로딘 연주 정말 좋게 들었는데 역시 꾸준히 ㅋ 잘하고 있나 보다. 괜히 흐뭇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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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코피에프, 스트라빈스키, 하이든과 쇼스타코비치를 전부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게다가 6개월만에 파리 오케스트라로 돌아온 에셴바흐.
그리고 에마뉴엘 엑스와의 피아노 곡이 자그마치 두 곡.
게다가 무척 들어보고 싶었던 쇼스타 5번.
거기다 맨날 놓쳤던 프로코피에프의 교향곡.
심지어 요즘 부쩍 관심가던 하이든 피아노 협주곡.

  • Sergueï Prokofiev
  • Symphonie "classique"
  • Igor Stravinski
  • Capriccio pour piano et orchestre
  • Joseph Haydn
  • Concerto pour piano en ré majeur
  • Dmitri Chostakovitch
  • Symphonie n° 5

그러나 오늘 자리 운은 몹시 안좋았다.
오른쪽에는 최소 20살 이상 나이차에 불구하고 금지된 사랑의 절절함을 굳이 공공장소에서 굳이 콘서트 중에 온몸으로 manifeste하는 한 쌍의 바퀴벌레.
왼쪽에는 콘서트에 책 읽으러 온 (정확히는 책장 넘기러 온) 독서의 여왕.
덕분에 신경이 무척 날카로워 진 상태에서 어렵사리 음악을 들었다.

프로코피에프의 "고전적" 교향곡은 무척 재미있었다.
마요네즈를 바른 약간 서걱서걱한 셀러리 맛이 있다.

오늘 에셴바흐 할아버지의 열정적인 지휘는 관객 입장에서 보기 좋았을 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꽤 훌륭한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스트라빈스키에서 하이든으로 이어지는 그 냉탕 열탕의 느낌.
대단했다. 예르비 주니어가 오고 나서 파리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점점 좋아지고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전임으로서 위엄 ㅎㅎ을 확실히 보여준 오늘이었다. 르몽드에서는 2000년 당시 에셴바흐가 처음 부임했을 때는 정말 다들 기대가 컸고 연주도 아주 좋았는데 1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파리 관객들이 많이 실망했었다고 말했었다. (출처를 다시 찾기가 힘든데 아마 2010년 9월 당시 예르비가 부임해서 시즌 첫 콘서트를 열었을 때의 기사) 하지만 오늘의 에셴바흐를 들었다면 르몽드 기자도 예르비도 마른 침 꿀꺽 삼키며 조금 긴장했을 듯하다.

에마뉴엘 엑스는 이차크 펄만과 너무 닮았다.
그리고 되게 겸손하고 웃는 얼굴에 사람이 무척 좋아보였다. 한 무대에서 스트라빈스키와 하이든을 연달아 들려준 사람. 그런 일을 하고도 그렇게 편안한 얼굴로 웃을 수 있다니 멋지다.

스트라빈스키도 하이든도 나는 조금씩 , 어느 정도씩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하이든의 매력을 정말 몰랐는데 요즘 브렌델의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를 어쩌다가 자꾸 듣다보니. 그리고 쿼텟도 조금씩 아주 천천히 귀에 들어오고 있다. 저번에 쾰른에서 보았던 트럼펫 협주곡도 괜찮았고. 또 씨디를 사야하게 될까봐 좋다 라고 확실히 말을 하지는 않겠다.
(스트라빈스키는 불레즈 때문에 이미 전에 샀으므로 괜찮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러닝타임이 45분이라는데 인터미션 때 시계를 보니 이미 9시 30분.
나는 몰상식의 아이콘 우불륜 좌독서 때문에 있는 대로 신경이 곤두서있는 상태였고 안 그래도 오늘 하루종일 좀 피로감이 있어 이걸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끝까지 남기를 너무 잘했다.
엉엉 쇼스타코비치 너무 좋아요.
1악장 마지막 바이올린 솔로와 피아노(celesta인가?), 3악장 라르고, 4악장의 다채로움과 화려함 그리고 피날레의 단호한 팀파니.
아으ㅏ으아아.
아휴.
입 헤벌리고 봤다.
에셴바흐 할아버지 등에서 신기루가 막 보이는 것 같았다. 정말 소리가 눈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왜 작곡가들이 오케스트라를 필요로 하는지 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번도 여기에 대해 굳이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왜 우리가 오케스트라를 필요로 하는지.

빨리 자야지. 아. 또 듣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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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아마도 내가 플레이옐에서 지금까지 보낸 꽤 많은 시간 중 가장 언짢고 안타까운 몇시간이었을 것이다.

Les grands quintettes 이라는 타이틀과 Piano **** (quatre etoiles) 기획 시리즈로 꽤나 자랑스럽게 선전하던 이틀 간의 실내악 프로그램 중 첫 날이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바이올리니스트 Guy Braunstein (다니엘 슈타브라바, 다이신 키시모토와 함께 현재 악장.....), Christoph Streuli. 비올라의 Amihai Grosz (현재 비올라 수석), 그리고 첼리스트 Ludwig Quandt (첼로 수석....) 와 Olaf Maninger (역시 principal cello)로 구성된 멤버에, 요즘 인기 많은 중국의 피아니스트 Yuja Wang이 출연했다.

슈베르트의 현악오중주 다장조, op.163 D.956이 첫 곡이었고
두번째로는 내가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들은 실내악곡인 브람스의 피아노 오중주 op.34 가 연주되었다. 브람스 때문이라도 이 공연을 놓칠 수 없었고, 개인적으로 유자왕의 공연을 지금까지 세번 예매했으나 앞의 두번을 전부 놓친 데다가*, 작년 이맘 때 베를린 필하모닉 솔리스트들의 공연을 Cite de la musique 에서 무척 좋게 본 기억이 있어, 특별히 뭐 기대를 했다고 하기도 뭐할 정도로, 정말 아무런 의심 없이 보러 갔던 것이다. 친구들에게도 오라고 몇몇 권유를 했었는데, 누구라도 데려왔더라면 조금 미안할 뻔 했다.

처음에 슈베르트 곡을 들을 때 잠깐 나도 모르게 오...합지졸........이라는 단어가 뇌리를 확 스쳤으나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한 단어인 것 같아서 애써 다시 취소하고 구겨 넣었다. 손이 좀 덜 풀린 탓이겠지. 긴장때문이겠지. 하지만 브람스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 네글자 단어가 머리 속에서 떠나지가 않았다. 내가 들은 바로는 오늘 제 실력을 보여준 것은 유자왕과 비올라 뿐인 것 같았다. 유자왕은 심지어 대단했다. 정말 괜찮다. 브람스가 그나마 형태를 유지한 것은 감각적이면서도 탄탄한 피아노가 끈을 계속 잡아준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비올라 분은 정말 정말 열정적이었다. 소리도 좋고. 그런데 너무 혼자 음량이 컸다.

다른 파트들의 문제를 짚어보자면, 일단 악기들의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은 듯 했다. 분명히 그들은 같은 곡을 함께 연주하고 있는데 왜 서로의 음계?가 다른건지. 소리가 정말로 예쁘지 않았다. 제2바이올린과 첼로는 계속 중간 중간 반음 낮은 소리를 냈고 (정말이지 신경에 무척 거슬린다.) 제1바이올린은 마디의 첫 음을 거의 안내고 들어갔다. 의도적이었던걸까? 
몹시 당연하게도 실내악에서는 각각의 악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오케스트라에 비해 큰데, 이들이 전부 산만하게 흩어져 제각기 20퍼센트 씩의 (오중주의 경우) 다른 소리들을 내는 일은. 우선 첫번째로 막아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꽤 신선하고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망망대해의 조각배 같았다.

대체 왜 그랬을까?
아... 브람스의 안단테 악장은 정말 슬펐다.
왜 그랬을까?
보통 지휘자의 지시를 따르는 일에 익숙해있는 분들이라 그랬던 걸까?
하지만 작년 philharmonia quartett berlin 과 자꾸 비교하게 된다.
암튼 아쉽다. 유자왕은 정말 꽤 잘해주었는데. 오늘 베를린필 연주자분들도 사실 정말 다들 엄청 대단한 분들인데. 어딘가 서로 말이 제대로 안 맞았던 건지. 연습이 부족했던 건지...... 그냥 내 자리가 너무너무 나빴던 걸까? 정말 모르겠다. 취향의 문제를 넘어서 너무 실수가 많은데다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중심 잡히지 않은 이상한 공연이었다. 윗 분들의 프로필을 보면 볼 수록 대체 어떻게 이 멤버로 이런 연주가 나올 수가 있었을까, 가히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 첫번째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LFO의 갈라 공연이었는데 아바도의 건강 문제로 취소되었고 두번째는 급 여행가느라 다른 분에게 양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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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아하는 것은 역시 폴리니의 연주인데 유튜브에는 없다.

바렌보임 연주랑 브렌델, 그리고 Fomenko라는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올라와 있던데

브렌델 연주는 역시 아주 좋고 바렌보임의 것은 콘트라스트가 너무너무 강해서, 음 힘차고 역동적이기는 한데 그다지 와닿지는 않는다. Alexander Fomenko라는 분의 연주도 꽤! 생각보다 정말 좋던데 중간 음 두번째 테마라고 해야하나 거기서 너무 심하게 뭉개진다. 그것 빼곤 맘에 들었다.

Alfred Brendel



Daniel Barenboim



Alexander Fomenko



녹음 상태가 너무 안좋아서 귀가 좀 힘들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굴드의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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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보 예르비가 이끄는
파리 오케스트라 그리고 나와 동갑인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라파우 블레하치의 연주회에 와있다.

하이든의 교향곡 88번은 소규모 연주여서 인지 소리가 조금 비어보였으나 주법이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2악장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블레하치가 이어서 들려준 베토벤의 피아노 콘체르토 4번은 음...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정말 좋았다.
블레하치는 곧 없어질 것만 같은 콩알만한 작은 얼굴에, 바람에 날릴 만큼 체구도 조그맣다. 숱많은 다갈색 머리카락에 얼굴이 가려 그나마도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 앳된 겉모습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소년같은. 그야말로 소년같은, 얌전하고 섬세한 연주를 한다. 피아노 건반을 중앙에서 반으로 갈랐을 때 오른쪽 높은 음들을 그만큼 아름답게 연주하는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귀가 번쩍 뜨일 정도...
파리 오케스트라의 조금 작은 듯한 음량도 다감한 피아노 연주에 무척 잘 어울렸다.
더군다나, 4번과 그닥 친숙하지 않은 나 조차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해석이 남달랐다. 여기는 느낌표를 팍 찍어주고 싶다. 현대 피아노 곡을 연상시킬 정도로. 정확히 어떤 부분이었는지 집어서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일단 또래 연주자들보다 훨씬 배짱이 있는 것 같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사실 그가 뭔가 트릭! 을 썼다는 것은 직접 편곡한 듯한 무척 신선한 앵콜 곡들을 듣고 나서 더 확신하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오늘 프로그램 내내 일관된 무언가를 보여주려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3악장에선 특히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호흡이 더 좋아져서인지. 음. 감동적이었다.
왠지 이 블레하치라는 피아니스트는 원숙한 나이가 되면 누구라도 먼저 손에 꼽을 대단한 연주자가 될 것 같다. 이젠 예언까지.

심지어 지금 웃긴 것은 내가 오늘 도서관갔다 집에 오는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으셨던 할머니가 지금 플레이옐에서 내 뒷 열에 앉아계시다는 사실이다. 얼굴도 얼굴이지만 흔히 볼 수없는 독특한 안경에 같은 핸드백에 거기다 같은 수첩을 가지고 계시다. 버스 안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수첩을 (죄송하지만) 눈여겨 보았었기 때문에 틀림없다. 같이 오신 친구분들이 부르시는 걸 들으니 성함은 테레즈라고 한다. 버스에서 우연히 옆에 앉은 할머니에 대해 의도치않게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구나.

여기부턴 집에 돌아와서 쓴다.

프랑크의 d minor 심포니는 그런데 심지어 베토벤 협주곡보다 하이든보다 훨씬 더 대단했다. 무서운 예르비....... 보니까 베토벤도 그렇고 시벨리우스, 오늘 연주한 프랑크, 이런 느낌 곡들을 잘 하는 것 같다. 볼 수록 괜찮다. 볼매야 볼매. 영화음악 같기도 하고 아 너무너무 멋있는 곡이었다. 영화음악 같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는, 굳이 풀이를 하자면 뭔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기승전결이 뚜렷한, 장면 장면이 눈 앞에 그려지는, 적어도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느낌을 갖게 하는 그런 곡들이다. 닥치는대로 듣다보니 유독 그런 곡들이 있더라. 1악장에서 이미 기선제압을 하고. 2악장에서는 클라리넷을 필두로 한 관악기들과 하프로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입이 떡 벌어지지만 뭐라 말을 할  수 없다. 3악장에서는 확인사살. 잉..말이 너무 무섭다. 근데 아무튼 뭐라고 해야하지. 그래. 쐐기를 박는다. 그래도 무섭네. 잠시 mute 한 다음에 이윽고 레퀴엠 같은 분위기로 무겁게 가라앉힐 때. 혼자 박차고 일어나 브라보를 외치고 싶었을 정도. 그랬다면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었겠지.
근데 다시 말하지만 2악장은 최고였다. 클라리넷 신들린 것 같았다. 워낙 곡을 잘 쓴 것 같다.
집에 와서 바로 열심히 다시 듣고 있는 중. 곡 진짜 멋지다.
우리집 바로 옆에 세자르 프랑크가 살았던 길 (rue César Franck) 이 있어서 왠지 더 반갑다.

오늘 공연은 사실 예전에 미리 예약했던 것이 아니고. 별로 생각 없었다가 얼마전에 루브르에서 루브르 carte jeune 회원들에게 할인 혜택을 준다고 지금 빨리 예매하라고 해서. 왠지 이런 혜택은 꼭 챙겨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13유로 주고 뒤늦게 표를 샀었던 것이다. 평소보다 4유로 더 내고 본 거지만 이렇게 좋은 공연이기만 하다면. (요즘 긴축재정이라 4유로 유독 크게 느껴진다.) 28세가 되기 전에 정말 플레이옐에서 하는 공연은 될 수 있으면 다 보고싶다. ㅠ그냥 그 앞에 텐트치고 살아야 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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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북부 지진과 쓰나미와 원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무척 심란한 가운데
오늘은 머레이 페라이어의 리사이틀에 다녀왔다.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 Johann Sebastian Bach
  • Suite française n°5 BWV 816
  • Ludwig van Beethoven
  • Sonate n° 27 Op.90
  • Johannes Brahms
  • Quatre klavierstücke op.119
  • Entracte
  • Robert Schumann
  • Scènes d'enfants (Kinderszenen) op.15
  • Frédéric Chopin
  • Prélude op.28 n°8 en fa dièse mineur
  • Mazurka op.30 n°4
  • Scherzo n° 3 en ut dièse mineur op. 39
오랜만에 바흐를 들어서 기뻤고. 무척 식상한 표현이지만 듣는 것 만으로도 음표를 따라가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청아하고 고색창연한 프랑스 조곡에 이어, 베토벤에서는 분위기를 확 바꾸어 굉장히 강하고 무게 있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사실 페라이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베토벤 소나타 때문이었는데, 출발은 그렇게 했지만 갈수록 그의 베토벤은 거의 듣지 않게 되었다. 페라이어에겐 바흐, 모차르트나 브람스가 훨씬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여기다 2부에서 연주된 슈만도 더할 수 있을 것 같다. 슈만의 어린이 정경 모음곡을 매우 아끼는 나로서는 특히 반갑고 고마운 연주였다. 녹음하고 싶었다 ㅠ ㅠ
정말 정말 좋았다. 꼭 다시 듣고싶다. 앨범으로든 연주로든.
그 다음으로 연주한 쇼팽 3곡은 아마도 내가 들은 것 중 가장 우아하고 또렷하고 정갈한, 기품 넘치는 쇼팽이었을 것이다. 흐트러짐 없이 반듯반듯한, 그러면서도 relief가 확연히 드러나는. 이런 말로밖에 표현을 못해서 창피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뭔가 포스와 내공이 느껴지는 연주였다.
앵콜로 연주한, 2009년 샤틀레에서와 같은, 슈베르트의 너무나도 유명한 impromptus (D.899 No.2) 는 어떤 경지에 오른 듯한, 가히 완벽에 가까운 만듦새가 놀라웠다. 난 여기서 결국 녹음을 하고 말았다. 넋이 나가서 한참 듣다가 갑자기 용기내서 하느라 마지막 조금밖에 못했지만.
단단하고 아름답고 힘차고 여리고 부드럽고, 모든 것이 들어있는 황홀한 연주였다. 정말 너무 좋더군. 오른손 정말 훌륭했다.
어쩐지 잘 쓰지 못하겠다. 날씨가 갑자기 너무 좋아져서인가. 나가 놀고싶다.
일본에 더이상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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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콘서트가 자주 있다보니 며칠만 손을 놓으면 이렇게 밀려버린다.
3월 들어서만 벌써 네번의 콘서트를 보았다. 그나마도 3월 5일에 있었던 페트라 랑과 이반 피셔의 공연은 가지도 못했다 ㅠ 그날은 정말 심각하게 피곤해서 나무토막처럼 집에 뻗어있었다.

3월 4일은 정명훈과 라디오 프랑스, 알렉성드르 바티의 토마시 협주곡과 브루크너 7번,
6일에는 윌리엄 크리스티와 Les Arts Florissants 그리고 choir와 몇몇 성악가들,
어제 9일엔 파보 예르비와 파리 오케스트라, 기돈 크레머의 공연이 있었다.

특별히 기억나는 것들만 간략하게 적자면...
바티와 라디오 프랑스는 토마시의 트럼펫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어쩐지 3악장에서 솔리스트가 약간 불안하다 싶었는데 앵콜로 3악장을 다시 연주했었다는 것. 그리고 다시 한 것이 훨씬! 정말 훨씬 좋았다는 것. 브루크너 7번은 기대를 많이 했는데 3악장 스케르초가 정말 흥미로웠던 것 외에는 머리에 그다지 들어오지가 않았다.

6일 윌리엄 크리스티와 레자르플로리성의 라모 공연은... 18-19세기 음악만 너무 편식한다는 생각에 교육적 ! 차원에서 숙제처럼 보러 갔었는데, 예상보다도 훨씬 재미있었다. 성악가 분들도 다들 훌륭했고... 옛날 악기들 구경도 재밌었고, 17세기 음악도 무척 신선했다. 여자 소프라노 두 분 (Emmanuelle de Negri 그리고 Hanna Bayodi-Hirt) 과 남자 카운터테너 Ed Lyon 의 약간 오그라드는 연기가 백미였다 ㅋㅋ 연주된 곡은 아나크레온과 피그말리온.

9일인 어제는 오랜만에 아들 예르비씨의 독특한 지휘를 다시 보게 되어서 좋았고.
스티브 잡스 옷차림이 아닌 기돈 크레머도 다시 보게 되어 좋았다.
베토벤의 아주 후기 작품인 Ouverture de La Consécration de la maison (집의 봉헌 서곡.!?) 이 첫 곡이었는데, 제목부터 낯선 이 곡은 파리 오케스트라 역사상 단 3번밖에 연주된 적이 없다. 10분 정도의 간결한 화법. 하지만 몇몇 passages만 들어도 베토벤의 곡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베르크의 천사의 기억에 바치는.바이올린 협주곡. 하지만 그의 천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라파엘로의 아기천사들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라디오에서 들었을 때 정말 멋있다! 딱 "멋있다" 고 생각하며 숨죽였었는데. 기돈 크레머의 연주는 정말 훌륭했다. 행간을, 음표와 음표 사이를 읽는 능력. 지난번 차이코프스키보다 훨씬 좋았다. 2악장은 바이올린에 고압전류가 흐르는 것 같이 멋있었다.

그리고 음... 베토벤 4번도 역시 기분좋게 들었다. 오케스트라석에서 보다가 합창석으로 옮겨서 들었는데 지휘자의 얼굴과 동작들을 자세히 볼 수 있다는 것은 역시 엄청난 장점이다. 인상적이었다. 기운차고 건강한 연주.

또 5일 정도 쉬고 14일날은 머레이 페라이어의 독주회가 있다.
16일은 라팔 블레하치와 파리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4번 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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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스존 심포니 4번 Italienne,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2번, 바그너의 Siegfried-Idylle, 그리고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마무리되는 프로그램이었다.
멘델스존과 바그너는 아직 지휘자가 제대로 뽑아낼 재간이 없는 것 같았다. 솔직히 정말 그냥 그랬다. 파리 오케스트라가 이렇게 심드렁하게 들리기는 처음이다. 물론 자리가 무척 안좋았지만 그래도 제2바이올린과 콘트라베이스만은 지나치게 자세히 들을 수 있었는데, 지독한 밋밋함이 연주자들의 탓 만은 아닌 것 같았다.
리스트 협주곡들은 정말 좋았는데 아마도 반 이상은 바렌보임의 피아노 덕분이었을 것이다.
귀가 굉장히 즐거운 연주였다. 특히 협주곡 2번에서 물 위를 찰박찰박 두드리는 듯한 윤기 넘치는 피아노 소리 듣기 좋았다. 내가 그를 본 짧은 기간동안에도 바렌보임의 흰 머리가 늘어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지만 어쩐지 그의 패기와 집중력은 세월에 무뎌지거나 깎여나가지 않는 모양이다. 마지막을 장식한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의 한 음 한 음 곡의 서사에 벗어남 없이 탄탄하게 응집된 매서운 피아노는 정말 등골이 서늘할 정도였다. 바렌보임의 연주회마다 사람들이 백유로 가까이 되는 티켓을 선뜻 사고 홀을 가득 메우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절대로 관객들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볼 때마다, 그를 처음 보았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 2번 콘서트를 보고 와서도 그렇게 적었지만, 대단한 인물은 인물이라는 생각을 거듭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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