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피아노

ouïe/classique 2009. 7. 16. 07:55



늦은 밤 컴퓨터 앞에서 논문과 씨름하고 있다 보면
진짜 피아노가 너무 듣고 싶다.
나의 허약한 집중력으로는 뭔가 하고 있을 때는 두가지 이상의 악기를 감당할 수 없나보다 ㅎㅎ

디누 리파티의 마지막 브장송 리사이틀 앨범은 정말 나의 보물이다.
이런 연주자와 이런 곡들의 존재를 알 수 있었고, 듣고 싶을 때 꺼내 들을 수 있는건
내겐 말로 표현하기도 힘든 어마어마한 행운이다.
유튜브나 인터넷에는 리파티가 연주한 슈베르트 impromptu 2번이 없는거 같은데
진짜.. 최고다 그리고 바흐 partita!
쇼팽 왈츠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사실 이 앨범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곡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8번 a minor
유튜브에서 찾아서 넘 기쁘다. 좋은 곡은 사람들이랑 다 같이 듣고 싶다
지금도 듣고있는데 들을 때마다 새롭다
우아하고 풍부하고 깊고 그러면서도 쨍 하고 뭔가 알 수 없는 거리감도 느껴지고 이상한 곡이다.
무엇보다 너무 아름다운 연주다. 새털처럼 가벼운데 유약하거나 불안정하지 않다.



지금 나는 의사들의 수호성인들인 코시모와 다미아노?....뭐라고 하더라 아무튼 Côme과 Damien의 상징들에 대해서 보충해서 쓰고 있다.  (영어 표기는 Cosmas 와 Damian)
오늘도 새로 발견한 자료가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수정하게 된다.
너무 공부할 것이 많고 불어로 쓰는게 힘들고 그러면서도 정말 앞으로 별 "쓸 데"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오늘 도서관에서 새삼 느낀건데 나중에 돌이켜보면 정말 지금 공부한 것들이 참 자랑스러울 것 같다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의지하던 무언가, 누군가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
아무튼 세계는 참 좁으면서도 넓고 사람들도 다들 똑같은 것 같으면서도 너무 다르고
이렇게 하나 하나 배워가는 것 내 자신의 무지함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
참 사는 보람이 있다
또 디누 리파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만 썼다.
AND


요 며칠 상당한 긴장과 계속 되는 초조함 속에서 살다보니.
잠시 기분 전환을 할 만한 뭔가가 없을까 생각하다가
아. 몸을 움직여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찾아본 국민체조
ㅋㅋㅋ아... 초등학교 운동장 조회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솔직히 동영상 같은거 안봐도 노래만 틀어놓으면 진짜 다 외워서 할 수 있는데,
이 동영상을 굳이 여기다 올리는 이유는
동작 보여주시는 여자분두 처음에 웃긴 거를 참느라고 애쓰시는 모습이 ㅋㅋ너무 정겨워서
따라하는 나도 넘 웃겨서 그냥 웃고 시작했다. ㅋㅋ
하지만 동작을 거듭할 수록 완전 진지해지는 내 자신을 발견
나름 얄미운 모범생이었던 초등학교 때의 모습이 아직 내게 남아있는 것 같아 문득 섬짓했다.
등배운동? 할 때 허리 뒤로 젖히고 하늘 쳐다볼 때 전교생이 다들 "으아~~" 하고 소리질렀었는데.
와 초등학교 때가 너무 옛날인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하다.



그리고 이건 옛날에 사무실에서 계속 앉아있다 보면 잠도 오고..
뭣보다 운동부족으로 가는 급행열차일 것 같아서. 몇번 해봤던 올챙이 체조




사무실에서 인턴이 이런거 노래 틀어놓고 따라하고 있어도 아무도 야단치지 못하시고 않으시고
생각해보면 문화원 분들 너무 이해심 많고 좋은 분들이셨는데.
아니 굳이 지금 돌이켜보지 않아도 그때도 너무 감사하게 생각했었지만
어쨌든 나는 사무실에서 올챙이 율동을 따라하는 철없는 올챙이 사원이었다는 건 맞네.




AND


약 4일간의 벨기에 여행을 끝내고 파리로 돌아온 저녁.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나 벨기에가 너무 좋아졌다.
플랑드르 어를 진짜 배웠으면 좋겠다.
가물가물하지만 언젠가 독일어를 했던 기억이 있긴 있어서. .
단어들이나 문법이 그렇게 낯설진 않았다.
암튼.

벨기에 여행의 고전, 하이라이트라는 브뤼셀, 겐트, 브뤼헤, 안트베르펜 이렇게 네 곳의 도시를 각각 하루씩 둘러보았는데, 역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이들은 벨기에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도시들이기도 하지만, 각각의 색다른 매력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많은 시간적 여유가 없는 여행자들에게도 벨기에의 다양한 면을 종합선물세트처럼 보여주는 장소들이 아닌가 싶다.

저번에도 썼지만 이번 여행의 주 목적은 다름 아닌 자료수집이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찾아가봐야 할 곳은 아주 명확히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막상 도착해서 다른 좋아보이는 것들에 눈길이 가더라도 포기할 것과 아닐 것을 결정하기가 조금은 쉬웠던 것 같다.
다만 이성으로는 포기하는 데 마음 깊숙히 좀 안타까운 것들이 많았다. 어쩔 수 없지.

가장 먼저 방문한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
여기서 꼭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은 우선 벨기에 왕립미술관 (Musées Royaux d'art et d'histoire de Belgique), 브뤼셀 역사박물관(Musée de la ville de Bruxelles),
그리고 생 미셸 생 귀뒬 성당(Cathédrale Saint-Michel-et-Gudule) 이렇게 세군데 정도였기 때문에 사실 시간 여유는 많이 있었다.
그리고 호텔도 정말 시내 정중앙에 있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느긋하게 관광을 할 조건은 충분했다.



이번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준 완소 론리플래닛 벨기에 4개 도시 종합세트.
론리플래닛 가이드들은 지도가 정확하고, 소개된 맛집들이 정말 다들 괜찮아서 아주 좋아한다.
사실 다른 가이드북들은 거의 본 적이 없어서 요새 어떤 또 좋은 것들이 나왔는지 잘 모른다.
그냥 론리플래닛이 있으면 그걸 산다.



브뤼셀에서 만난 고딕성당, 생미셸 에 귀뒬 성당.
Michel은 모두가 잘 아는 대천사이고 Gudule(Gudule de Bruxelles)은 7-8세기 경 브뤼셀에 살았던 성녀로, 벨기에와 브뤼셀의 수호성인이라고 한다.
기존에 있던 생미셸 성당에, 브뤼셀 백작이었던 Lambert II de Louvain이 1047년 성당 내에 귀뒬을 위한 예배당을 짓고 성녀의 유물들을 옮겨와 보관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아마 명칭이 변경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좀 예기치 못한 일이 있어서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내부에 들어가보진 못했다.
나중에 겐트에서 Saint-Bavon 성당에서 가이드 투어를 받음으로써 좀 위안을 얻었다.



브뤼셀과 벨기에에 몇 번 와봤다는 친구가 말하길 벨기에에는 아주 유명한 인명이나 기릴 만한 무언가가 별로 없어서 길 이름들이 다들 .. 좀 일반 명사를 길 이름으로 많이 사용했다고 했다.
과연 벨기에 사람들도 동의할 만한 발언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길 이름들이 재밌는 것은 사실이다.
어쨌거나 대도시인 파리와 비교하면... 길 이름들이 그렇게 다양하지는 않다.
윗 사진에서 보이는 길 이름은 "예수의 이름"
브뤼셀 지도를 들여다 보면 "빵집 길", " 법의 길", "예술의 길", " 왕좌의 길 (ㅋㅋ)",
"룩셈부르크 광장", "르네상스 대로", "50주년 광장", "황제의 대로", "궁전 광장", "목동의 길"
이런 길 이름들이 많다.
쉽고 귀엽긴 한데... ㅎㅎ 암튼 재미있다.



너무 귀여운 보도블럭 그림
강아지 응가를 길에 방치하지 말라 이런 뜻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마드리드의 곰 문장과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귀여운 것 같다.
마드리드 문장이 물론 더 정성을 들여서 만들었을 것 같긴 한데.



여기는 론리플래닛에서 보고 찾아간 단 것을 파는 가게 A.M.SWEET (rue des Chartreux 4)
예쁘긴 예쁜데 둘러보니
다 파리에 있는 거라서 그냥... 아..예쁘다 이러고 나왔다.
사실 (의외로) 단 거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ㅋ
건너편에는 greenwich라는 이름의 brasserie가 있다. 이 집 또한 가이드북에 나온 집으로
꽤 유명하고 전통이 있는 맥주집인 것 같다.
내가 갔던 날은 공사중이었는지 휴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나는 이유로 닫혀있어서 론리플래닛에서 칭찬 하는 맥주 맛을 보지는 못했다. 이것도 좀 (많이) 아쉽다.



브뤼셀의 왕립미술역사박물관 파사드, 를 옆에서 찍은 것.
특별전으로는 벨기에 출신 만화가의 전시랑 또 다른 화가... 의 전시가 있었는데 왠지 플랑드르 작품들 방에서 시간을 많이 뺏길 것 같아서 특별전에는 아예 처음부터 눈을 돌리질 않았다.
물론 "특별전"에 대한 욕심과 아쉬움은 브뤼주에서 풀었다.



새로 만든 르네마그리트 미술관. 왕립미술관 바로 옆에 붙어있다.
하얗고 매끈한 뭔가 새로 만들었다는 티를 팍팍 내는 듯한 건물 외벽이 왠지 Whiteread를 생각나게 했다. 깔끔하긴 한데 좀 더 때가 탔으면 좋겠다. 혼자 새 실내화 신고 학교 처음 간 날 같다.



마그리트 미술관의 창문? 쇼윈도?! vitrine 장식. 너무 잘해놓은 것 같다 ㅋ
그리고 나는 나의 소소한 자랑거리 중 하나인 초소형 분홍색 우산을 쓰고 갔다.


* 충격적인 것 : 브뤼셀에서 밥을 한끼도 안 먹었다. 점심은 exki라는 (파리에도 아주 많이 있는) 벨기에 유기농 음식점 체인이 있는데 거기서 요구르트 하나 먹었다. 저녁은... 좀 이래저래 사건도 있었고 그 때문인지 뭔지 배도 안 고파서 그냥 건너 뛰었다. 사실 혹시나 밤에 배가 고파지면 어떡하나 싶어서 슈퍼에서 milka 초코렛바를 하나 사긴 했는데 한입 먹어보니까 너무 너무 달아서 못먹었다.

* 충격적인 것 두번째 : 26세 미만이라면 벨기에의 거의 모든 박물관 미술관 역사유적들은 1유로에 입장할 수 있다. 정말 놀랍다. 아. 여기까지 써놓고서 생각해보니 프랑스는 26세 미만은 아예 무료구나. 모야..왜 놀랬지?! 그냥 1유로라는게 너무 싸게 느껴져서 그런가보다. 시시하다 ....

* 충격적인 것 세번째 : 이건 진짜 충격. 정말 추웠다! 파리에서 30도에 육박하는 더위에 시달리다가 기차로 2시간 떨어진 벨기에에 갔더니 16-18도를 오가는 초가을 기온이 날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그리고 비바람이 엄청 몰아쳐서 그게 정말 힘들었다. 한겨울 한국에서 바깥에 (특히 버스정류장 같은데) 서있으면 찬 바람을 맞아서 머리가 띵해지는 그런 느낌을 7월 초 벨기에에서 맛보다니.
여름옷만 가지고 갔는데, 돈 아끼려고 정말 참고 참다가 결국 이튿날 오후에 긴바지를 샀다. ㅠ ㅠ

* 묵었던 호텔. Hotel de la Madeleine이라는 이름으로, 별 2개짜리에 가격은 1인실이 45유로 정도 했다. 나쁘지 않은 아침식사가 포함된 가격이고, 샤워실과 개수대는 있는데 화장실은 복도에 있다. 남녀가 같이 써야해서 (그리고 아주 청결하지는 않아서) 복도 화장실은 사용하지 않았다.

침대는 야전침대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군대에 가보진 않았지만) 전체적인 방이나 호텔 내부 인상이 그래서 그런지 시트도 깨끗한지 그다지 신뢰는 가지 않아서 가져온 수건을 깔고 잤다.
다만 위치는 정말 정말 너무 좋고, 직원들이 친절하고 아침식사가 괜찮다는 건 큰 장점인 것 같다.
그리고 위치나 도시의 전체적인 물가에 비하면 가격도 비싸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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