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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ïe/classique 2010. 5. 29. 07:44
시게티의 연주를 하루종일 (사실은 집에 와서부터지만) 듣다가 더 들을까 어쩔까 고민 끝에 방금 겨우 브렌델의 피아노를 듣기 시작했다. 음.이유는 모른다 - 아니 라벨의 전기를 어제 읽다가 리스트 얘기가 간혹 나오길래 왠지 듣고 싶어졌었는데 어제는 바빠서 못듣고 오늘 듣게 되었다 는 이야기 인 것 같군. 아무튼 이건 중요하지 않고 - 게다가 내가 당시 듣고 싶었던 것은 초절기교 연습곡인데 정작 집어넣은 것은 쌩뚱맞게 années de pèlerinage - 이제서야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정말 아무튼
시게티의 바이올린 중독성이 너무 강하다.
힌데미트 소나타며 ...프로코피에프
시게티 연주 - 특히 소나타 류 - 를 들으면 완전 분위기가 확 바뀐다. 무드라고 해야하나, 그저 내 주변 분위기가 바뀌는 정도가 아니라 내 기분이 바뀌어 버린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는데
내가 작은 돌멩이가 되어 바다 밑에서 작은 물고기들 산호초들의 유영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 같다
비유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내 시간이 멈추어 버리는 느낌이다. 내가 갑자기 되게 오래 된 무엇, 아주 오래 산 거북이가 된 느낌이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주변 사물들이 미세하게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나 혼자서 가만히 관찰하는 느낌, 저속촬영인지 고속촬영인지 맨날 헷갈리는 그런 자연과학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이다. 나전칠기같은 연주
oistrakh 연주는 그래도 뭔가 아 움직이는구나 하는.......쓰다보니까 점점 걷잡을 수 없게 내 말에 내가 빠져드는 것 같아 그만둬야겠다. 무슨 백투더퓨처 기계라도 들어갔다 나왔다는 건지 나중에 이 부분만 다시 보면 나조차도 이게 뭔소리지 이럴 것 같다. 아무튼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어제 르몽드 magazine보다가 급 결정
프랑크 페터 지메르만의 공연을 보러간다
어서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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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 스트레스 받으면서 그러면서 또 은근히 기다려온
학교 가는 날.
종강은 이미 오래 전에 했지만
오늘은 세미나 대신 우리 교수님들 주최로 "문화와 주문자" (culture et commanditaire) 라는 주제로 심포지움 비슷한 것이 열려서 근 2달 만에 다들 강의실에 모였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로마네스크 시대부터 16세기를 아우르는 총 9가지의 다양한 발표를 통해 장식 예술, 가구, 건축물 - 성당에서 부르주아 가택에 이르기 까지 도상의 선택에 있어서 주문자의 역할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알아보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말그대로 공부의 날이었다.
내 지도교수님과 같이 지도를 받는 박사과정 분들의 발표는 너무 많이 접해 온 내용들이라 그닥 대단히 신기한 점은 없었는데.
학부 마지막 학년 때 비잔틴 미술을 강의하셨던 당시 강사님이 이번 심포지움에 참여하셔서 너무 오랜만에 만났는데 무척 놀랍고 반가웠다. 이번에 우리 학교 조교수로 정식으로 취임하셨다고 해서 더 반가웠다. 아마 절대 잊지 못할 정도로 늘 열정적인 수업을 하셨던 분이고, 당시 파리에서의 척박한 대학 생활에 괴로웠던 내게 용기를 북돋아 주시고 관심을 보여주셨던 (갑자기 울컥 ㅋㅋ) 유일한 선생님이셨기 때문. 암튼 반가워서 휴식시간에 쫄래쫄래 쫓아가서 인사 드리고 잠깐 얘기도 나누고 그랬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절대 하지 않을 짓이다.) 당시 학부생이었던 나에게 무리해서 석사과정 이상만 들어갈 수 있는 도서관의 관문을 뚫게 만들었던 추억의 시칠리아 노르만 미술 수업 ㅠㅠ 그 때 배우던 것들이 정말 너무 재밌어서 비잔틴 미술을 전공할 마음마저도 잠시나마 먹은 적이 있을 정도다. 비록 2학기 때 비잔틴 장식미술 배울 때 그 재미가 덜함에 좌절하고 대신 유럽 회화 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지만.

아무튼 이렇게 학구적인 분위기에서 하루를 보내고 - 도서관에서 종일 앉아있는 것과는 또 다르다 강의실에서는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말도 해야하니까 들어오는 경로가 너무 많아서 그 압력도 더욱 거셈 - 학교 문을 나서 사람들이 바삐 오가는 틈사이에 몸을 맡기면 정말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다.
동네에서 덤블링 같은거 30분이고 1시간이고 신나게 막 뛰고 타다가 맨 땅으로 내려와서 못내 아쉬워 다시 콩콩 뛰어보면, 그 짧은 새에 잊고 있었던, 탄력없는 바닥의 뻣뻣하고 우직한 저항에 깜짝 놀라곤 했던 어릴 적의 경험을 떠오르게 한다. 공부가 그저 너무 좋으신 우리 교수님들과 진지한 학생들 사이에서 느끼는, 약간의 소외감을 동반한 공중에 붕 뜬 듯한 아슬아슬한 희열. 그리고는 순간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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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키에서 오랜만에 점심을 먹옸다.
더이상 에스프레소에 아몬드 초코렛을 주지않아 언짢다 대신 그냥 얇은 다크초코렛
그리고 나는 내 아이들에게 절대 다이어트 코크 따위를 권하지도 먹이지도 않겠어 ㅡ 옆자리 아줌마를 보고 든 생각

아이들은 솔직해서 내가 혼자 있으면 호기심을 감추지않고 나를 이주 노골적으로 관찰한다
어떻게하면 그들이 만족할만한 희한한 피관찰물이 될 수 있을지 나도 약간 고민을 해본다



iPod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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