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단편적인 이야기들. 일기도 무엇도 아니다.

오늘은 L'art d'Occident au moyen âge roman et gothique (서양 중세 로마네스크,고딕 미술)의 서론 부분과 제 2장 (Sluter et Van Eyck) 의 대부분을 읽었다. 앙리 포시용(Henri Focillon)의 재발견. 대학교 2학년 때 멋도 모르고, 한국에서 그의 대표 저서로 소개되어있는 형태의 삶(La vie des formes) 을 읽고 그의 감수성 그득한 만연체에 질려버려 다시는 포시용이라면 손도 대고 싶지 않았으나. 그동안 아무래도 시간을 아주 헛되이 보내지만은 않았는지 내용을 좀 알고 나니 새롭게 다가오는 그의 통찰력과 명민한 분석, 무엇보다 정말 아름다운 문장들에 무척 놀랐다. 형태의 삶에서와는 달리 조금은 더 "일반적"인 학술서에 어울리는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인데도 불구하고 예의 프루스트같은 시적 표현들로 그득한 글에서처럼, 아니 그보다 더 마음에 깊숙히 와닿는다. 하긴 내가 놀라고 말고 할 것 없이 이미 프랑스 미술사에서는 너무 중요한 인물이니, 이 책에서든 저 책에서든 포시용은 같은 포시용이되 내 눈이 변했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
우습게도 프랑스 사람들조차도 이렇게까지는 관심없을 그네들 중세 미술 이야기에 이렇게 감동받고 있다. 우리나라 미술도 시간 많이 들여서 공부 열심히 하고 싶다.

해가 나고 날이 선선해지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걷기도 좋고 나무 밑 벤치에 늘어져 하늘 보기도 좋고 무슨 음악을 들어도 꿀맛
아 그렇다 이 와중에도 pierre monteux와 london symphony orchestra의 bolero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이렇게 밋밋할 수가. 왜 이런거지 대체..



오늘 친구가 말해준 파리의 엄마손 식당이라는... au coin du malte를 찾아가서 정말 싼 값에 맛있게 저녁 먹었다. 매일 저녁 8시부터 9시30분까지만 운영하고 메뉴는 전식, 본식, 디저트에 11.5유로. 각각 3가지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와인도 꽤 저렴하다. 맛도 가격치고 괜찮다.
근 1주일 넘게 매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기를 반복했더니 다크써클 폭탄을 맞았다. 이를 치료하기 위한 연어 한접시.....그리고 그냥 먹어본 레몬맛 필레미뇽. 이름만 필레미뇽이고 그냥 음...짜지 않은 장조림 느낌 ^^ 과연 파리 엄마의 손맛...



Erik Orsenna의 아주 따끈따끈한 신작 L'entreprise des Indes 를 읽기 시작했다. 역사이야기 흥미진진하다. 어릴적 읽던 소년소녀문학전집에서 내가 특별히 아끼던 몇몇 이야기들이 다시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십오소년표류기라던가 집없는 아이 같은 것들. 물론 전혀 내용은 관계 없다. 섬이 배경이라는 것 (십오소년표류기), 그리고 책의 첫부분에서 주인공이 어린이들이라고 오해해서 ㅋㅋ
쓰고나니 그래서 뭐 어떻다는건지 ...

어제는 장식미술박물관 (Le musée des arts décoratifs)에서 특별전 Les Lalanne 을 보았다. 동물들에서 영감을 받아 아주 직설적인, 아주 직설적인, 아예 동물 그 자체인 가구와 소품들을 만들었던 François-Xavier Lalanne과 그의 부인 Claude Lalanne의 작품들을 모아놓았다. 사람을 웃게하는 것, 편안하게 하는 것은 아무래도 많은 부분이 자연에서 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익살스러운 동물들 모형 앞에서 살짝이나마 웃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실제 큰 동물들 앞에 있으면 조금 무서울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절대 싫어서는 아니다.
오랜만에 본 유료전시 돈이 아깝지 않았다. 7월 4일까지.


개구리 의자에 앉은 프랑수아-그자비에 랄란, 클로드 랄란 부부.
© ADAGP. Photo : DR

"Rhinocéros", Francois-Xavier Lalanne.
© ADAGP. Photo : DR


"Grand chat polymorphe", Francois-Xavier Lalanne.
© ADAGP. Photo : DR
(이상 모든 사진 출처 http://www.lesartsdecoratifs.fr/francais/arts-decoratifs/expositions-23/actuellement-501/dans-la-nef/les-lala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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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livier près de l’Estaque (에스타크 근처의 올리브 나무. 조르주 브라크)


Pastorale (전원, 앙리 마티스)


파리시립근대미술관(Musée de l'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에서 피카소, 마티스, 브라크, 레제, 모딜리아니 등 주요 소장품 5점이 지난 수요일 - 목요일 아침 개장 전에 확인되었으니 아마도 - 도난 당했다. 폐쇄회로에도 범인의 모습이 찍혔는데, 그가 유유히 그림들을 들고 달아나는 동안 알람조차 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파리 시장 들라노에의 공식 성명에 따르면, 3월 30일 미술관 측에서 경보 장치의 고장을 신고했고, 곧 수리에 착수했으나, 장비와 부품이 부족해서....(너무나 프랑스스러워 할 말이 없다.) 공급사 측에 주문을 했으나, (역시) 아직 충분히 작동이 재개되지 않은 상태로 근 2달간 방치되었었다고.

퐁피두 어디서 주워와서 내 방 벽에 붙여놓은 종이쪼가리에 쓰인, 이럴 때만 - 혹은 이럴 때 특히 - 동의하게 되는 말.
"명작은 그것을 그린 이와 함께 사라져야 한다. 예술에 있어서 불멸성이란 질병과도 같다."
(F. T. M. and R. W. Nevinson, Manfesto against the English art,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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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니 간단하게.
진지하고 중후하고 울림이 큰 피아노. 영롱하고 또랑또랑한 포레, 쇼팽과는 거리가 멀다.
첫 곡 토카타와 푸가를 알프레드 코르토가 revise한 것을 본인이 직접 다시 한번 편곡한 것이었는데 유명한 그 첫 소절은 정말 별로였고 - 호흡이 고르지 않고 음 하나하나의 마무리가 굉장히 귀에 설게 들렸다 - 나머지 부분은 리스트나 스크리아빈이나 뭔가 극에 달한 낭만주의 곡 처럼 연주했다. 나쁘지 않았다. 울림이 무척 좋았음. 바흐라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음
그리고 포레의 야상곡과 즉흥곡, 그리고 또 하나 생각이 안나는 소품을 연주했는데 음... 내가 생각하는 포레와는 거리가 많이 멀었다. 즉흥곡은 그래도 파장이 크고 스케일이 커서 듣는 맛이 있었다.
이어서 프랑크의 전주곡 (?). 사실 대단한 감흥은 없었다. 모르는 곡이었는데다가, 포레에서 프랑크로 계속 같은 allure로 같은 느낌으로 연달아 쳐내서.
프랑스 레퍼토리보다는 러시아 작곡가들의 곡이 더 어울릴 것 같다.
2부의 쇼팽은 훌륭했다. 야상곡 op.62/2. 그리고 소나타3번
특히 소나타의 2악장,4악장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인물은 인물이구나 하는 생각. 그 박력 하며. 굉장히 두꺼운 연주였다. 
허프의 연주를 들으며 내가 느낀 점은 무엇보다, 흔히 피아노 곡들에서 기대할 수 있는 즐거움, 낭만(낭만주의의 낭만 말고), 달콤함 등을 맛보도록 두지 않는다는 느낌. 몹시 힘들게, 차곡차곡 쌓아서 마음을 갈고 닦고 다잡아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높은 산을 올라가 마침내 정상에서 눈 앞에 펼쳐진 절경을 욕심 없이 바라보는 뭔가 그런........하하 말이 웃기네 그렇지만 정말 어딘가 그렇게 홀로 먼 길을 가는 수도승 같기도 하고 엄격한 군인같기도 한 그런 인상을 받았다 내가 올해 들었던 수많다면 많다고 할 수 있는 쇼팽 리사이틀 중에서 가장 건조하고 강렬한 쇼팽이었다. 예를 들면 지난 3월에 있었던 당타이손의 연주는 꽤나 달콤하고 매끈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연주하는 자세도 굉장히 바르고, 머리를 조금 흔드는 것 말고는 어떤 연기도 오버액션도 없다.


앵콜곡은 마음씨도 좋지 3곡, 불행히도 그 중 하나도 아는 곡이 없었다. 첫번째 것은 아마 쇼팽의 곡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두번째 곡은 특히 인상에 깊게 남았다. 정규 프로그램 곡 보다 훨씬 더. 정말 피아노를 들었다 놨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이렇게 현란할 수가. 그래도 여전히 매서운 피아노. 약간 스페인 작곡가의 느낌이 나는 곡이었는데 정말 뭔지 너무 궁금하다. 무슨 채찍질이라도 하듯, 불꽃이 튀듯, 피아노 소리가 무슨 번개같이 번쩍 번쩍 하는 것 처럼 들리기는 또 처음이다. 세상은 넓고 정말 별 피아니스트가 다 있구나. 세번째 곡은 약간 애교인지 굿나잇인사인지 가벼운 왈츠같은 (3/4박자는 아니었으나) 곡을 들려주었는데 뭔지는 여전히 모르겠군.

루브르의 오디토리엄은 정말 또 새로운 발견...앞으로 여기도 열심히 다녀야지
그래도 역시 플레이옐이 난 진짜 고향같다.
그리고 폴리니 할아부지가 너무보고싶다 또로록 굴러가는 완벽 피아노 듣고싶다.6월 22일 저녁만 오매불망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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