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도 없이 월요일 아침 궂은 비와 출근인파와 교통혼잡을 뚫고 전쟁같은 아침을 보내고 파김치가 되어 파리의 집에 돌아와, 아침에 세인판크라스역 네로에서 급히 집어온 블루베리 머핀을 테스코에서 75p주고 산 카모마일 차와 함께 먹으면서 . 이것은 참. 다른 맛이다.
정말 이상하단 말이다 딱 2시간 기차타고 왔을 뿐인데 영국과 프랑스는 너무 다르다.
비까지 내려 냄새 고약한 메트로 한 쪽 구석에 몸을 싣고 주위를 둘러보면 그래도 5년이나 살았다고 이 우스운 친근함은 무엇이란 말인가. 저돌적으로 여행가방을 끌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나를 향해 짓궃게 니하오를 외치는 이 중생들마저도 반갑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반가움은 그때 뿐 1초도 안갔다. 아마도 그건 착각이었을거다 ㅋ)
3일 동안 런던은 정말 죽도록 추웠고 대도시답게 튜브나 길거리에 가득한 인파에 진절머리가 났지만 그래도 파리에 있어서 좋은 것 중 하나는 런던에 쉽게 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 것 같다. (물론 파리는 런던과 비교가 안되게 좋다.나한테는!) 런던 사람들은 너무 말이 많고 슈퍼에 가도 카페에 가도 미술관에 가도 이런저런 캠페인도 선전도 이벤트도 너무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는 통에 그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조금 지워져버리는데 그 당혹스러운 느낌이 재미있다. 파리에서는 내 자신이, 내 발걸음이 너무 중요하고 내 혼잣말의 소리가 그 메아리가 너무 큰데 말이다. 런던의 소음은 내 목소리를 잡아먹는다. 뭐랄까. 아귀같은 도시. 좀 무섭네 말이............
아무튼 덕분에 알찬 주말을 보냈군.


아쿠타가와의 단편집을 몇년만에 다시 다 읽고 그 찜찜하고 우울한 기운을 벗어버리고 싶어 Jean d'Ormesson의 Et toi mon coeur pourquoi bats-tu? 를 집어 들었다. 아쿠타가와를 좋아하고 읽을 때는 늘 무섭게 집중하게 되지만 읽고 나서의 그 상상의 상실감 (뭐라고 해야하나 실제로 잃은 것은 없는데 뭔가 쑥 빠져나간 것 같은 그런 기분) 과 인간에 대한 미움은 감당하기가 두렵고 어렵다. 그러나 두자춘(杜子春)을 읽고는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눈물을 참느라 고생을 했다.
Jean d'Ormesson은 최근에야 읽기 시작했는데 글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가 다 너무 좋다. 향기가 나는 글이란 과연 이런 것일까 싶다...


bond street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사진이 너무 밝아서 잘 안나왔는데 조명이 커피잔을 뒤집어 놓은 모양이었다. 귀여움 ㅋ 스타벅스에 제발로 들어가보기는 거의 1년만인 것 같다. 런던만 가면 이상하게 스타벅스가 땡기더라. 무지 단 차이티라떼에.


아, 제이미 올리버가 최근 오픈했다는 Jamie's Italian에 다녀왔는데
antipasti (프로슈또 살라미 등등 on plank)와 내가 주문한 오늘의 요리 -  Seafood Risotto는 평균 이상은 했으나 친구들 중 몇몇이 시킨 Bucatini Carbonara는 정말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맛이 없었다. 뭐 이런 음식을 만들었는지. 이 충격적이고 실험정신 넘치는 카르보나라 때문에 모두가 경악했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에 대해 농담하느라 역설적으로 저녁이 더욱 시끄럽고 화기애애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것 참 고맙다고 해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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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일찍 일어나야 되는데... 10분 안에 글을 쓰고 침대로 뛰어가는 것을 목표로.조금 안타깝지만.

오늘 첫 곡으로는 Arvo Pärt의 "Silhouette"라는 곡의 초연이 있었다.
아빠가 얼마전 정명훈의 지휘로 페르트(라고 읽나)의 곡을 듣고 굉장히 좋았다고 하셔서 작곡가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늘 보러가길 참 잘한 거 같다.
프낙에 달려가 더 베리 베스트 오브 아르보 페르트 따위의 음반을 살지도.
왈츠 박자에 (뭐 춤곡이라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지만) 현이 굉장히 아름다운 가볍고 세련된 곡이었다. 이 곳에서 현대 곡들을 상당수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늘 왜 현대음악은 꼭...선율이 없어야 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특히 루이지 논노 ㅠ으악) 페르트의 곡은 정말 좋았다.
잘 모르지만 뭐 고전 음악의 맥을 이어나가면서도 신선하고 시대 감각에 충실한 곡이 아닌가 싶다
귀스타브 에펠과 에펠탑의 이미지로 쓴 곡이라는데, 이번 시즌부터 파리 오케스트라에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파보 예르비와 그의 오케스트라에 헌정되었다.
곡이 끝나자 1935년생의 훤칠하면서도 소탈한 인상을 한 작곡가 본인이 무대로 뛰어 올라와 박수 갈채를 받았다. 저 오늘부터 팬이예요..

레온스카야 아주머니의 피아노는 공연에서는 두번째 듣는다. 라디오에서는 많이 들었지만
son allure d'une "grande dame" contrastée par un visage avenant et tout souriant,
커다란 꽃무늬가 있는 풍성한 스커트를 좋아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피아노는 leonskaja같이...그녀의 피아노에는 사자같은 위엄이 있다.
다채로운 터치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지만 기본적으로 묵직한 톤을 낸다.
저번 실내악 공연에서도 그렇고, 다만, 뭔가 아직 특별한 무언가는 느껴지지 않는다.
리히터와 음악적으로도 실제 친구로서도 가까운 사이였다던데 리히터와는 많이 다르다.
그리그의 콘체르토는 썩 잘 어울렸지만... 역시 뭔가 음 참 잘 연주되었다! 마침표. 라는 느낌
그리그의 곡은 정말 멋지다. 정말 정말 매력적인 음악이다.

그리고 마지막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아 어서 자야하는데
시벨리우스의 곡들을 제대로 들어본 일이 한번도 없는 나는 사실 이 마지막 곡에 굉장히 기대를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들어온 교향곡들과는 짜임새부터가 사뭇 달라 처음부터 집중해서 듣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지루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주로 듣는 베토벤이나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등의 교향곡들, 내면의 어떤 감정의 호소, 분출, 독백의 음악과는 아주 출발부터가 다르다고 나는 생각했는데, 굉장히 외향적이고 선이 굵어, 엄숙하면서도 소박한 독특한 정감이 있었다. 듣는 사람이 쪼그매지는 기분
마지막 악장의 피날레에서는 와 역시 이 맛에 산다 는 느낌 하하
전율 그 자체. 이래야지. 으. 멋지다.
알고보니 아버지 예르비가 시벨리우스 교향곡에 아주 강하시다고.
아드님 예르비는 아무리 봐도 타인의 삶에 나오는 비즐러와 인상이 자꾸 겹친다. 눈썹이 좀더 연한가? 나는 평생 음악따위는 몰라도 사는데 불편함은 없었네 하고 딱잘라 말할 것 같은 뻣뻣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오늘 공연에서 각기춤 같은 우스꽝스러운 동작도 개의치않는 열정적인 지휘와 또 기분 좋아 웃으시는 걸 보니 음 역시 피끓는 음악인이군 싶었다.




+ 아르떼 라이브웹에 올라온 실황 영상. 좋다
아이고 기침들 좀 그만하시라고요 ..



+ 레온스카야가 연주한 앵콜곡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F Major 중 아다지오 악장이었음.
옆자리 사람들이랑 대체 무슨 곡이었는가 궁금해했는데 어떤 아저씨는 슈만이라고 하고 나는 모차르트일거라고 했었다. 왼손이 계속 모차르트 반주여서......프랑스사람들을 이런걸로 이기는게 제일 기분 좋다. ㅋㅋ유치하지만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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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별로 생각 없었는데 (왜였을까.) 티켓이 많이 남았는지 젊은이?! 회원들에게는 반짝세일로 9유로에 표를 판다고 며칠 전 메일이 와서, 뭐 나쁠 거 없겠다는 생각에 (왜일까...) 바로 전화를 걸어 자리를 구했다.
아마도 나의 망설임과 "그닥"...이라는 생각은 앨런 길버트가 올해 초인가 파리 데뷔무대를 가졌을 때 르몽드에서 "그닥" ...이라는 평이 실렸기 때문일 것이다. "지휘자도 꽤 잘하지만 그게 다"라던가 "확실히 뉴욕필은 근육질의 빵빵한 합주부대이긴 하다"던가 하는.

오늘 가서 들어보니 초반에는 정말 별로였고 끝으로 갈 수록 제 실력이 나오는 건지.
엄청 잘하더라.
1부에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Don Juan, 그리고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prelude와 la mort d'Isolde 가 편성되어 있었는데.
나는 아직 슈트라우스와 바그너의 음악에 친숙하지 못해서인지 별로 감흥이 없었다.
합주도 엉성하게 들렸고 지휘자의 열정적인 (정말로) 몸짓에 비해 - 지휘자가 아니라 오페라 가수같았다해도 될 정도 - 오케스트라는 미지근하고 싱거운 음만을 반복해서 냈다. 그 묘한 간극에서 오는 인상이 "그닥"......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왜 이렇게들 흩어지는지. 원래 그런 곡인가? 역시, 잘 모르겠다.

나는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을 들을 때마다 왠지 이건 정말 마스터피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단순히 좋다- 가 아니라 "걸작"의 느낌이 강하다.
예전에 뭐가 뭔지 잘 몰랐을 때 이걸 안 듣고 인터미션 때 집에 간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참 후에야 줄리니와 빈 필하모닉의 연주를 음반으로 접하고 나서는 그때 정말 왜 그랬는지 베개에 머리를 부싯돌로 불 피우듯 비비며 후회했고 그래서 오늘 연주도 기대가 컸는데.
1악장의 도입부에서는 참 이상하게 박자가 안 맞아서 - 특히 첼로 파트하고 제1바이올린... 아니 대체 왜이러세요 하고 벌떡 일어나 버럭 화낼 뻔 했다. 그래도 그 다음 refrain부터는 제 박자를 되찾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2악장, 3악장, 특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3악장 역시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4악장도 잘 마무리.
이건 그냥 쓰고 싶어서... 1악장 마지막에 팀파니 둥 - 둥 - 둥 - 둥-------그 부분이 진짜 너무 좋다.

뉴욕 필하모닉은 음 일단 굉장히 큰 볼륨을 자랑하는 악단인 것 같다. 정말 뭘 해도 소리가 크다.
콘서트마스터의 독주에서는 대단한 인상은 받지 못했다. 대신 현악 파트가 골고루 다 좋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브람스 포함) 이건 지휘자의 문제인 것 같은데, (꼭 나쁜 뜻으로 문제가 아니라) 프레이징이 좀 이상하다. 꼭 끝이 아닌 부분에서 갑자기 흐지부지 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 어마어마한 음량을 갖추고도 절도있다, 박력있다는 느낌은 덜했다.
그리고 역시 단원 중에 한국인과 일본인, 중국인이 정말 많더라. 거의 과반수는 되는 것 같다.

슈트라우스와 바그너를 들으면서 앞으로 앨런 길버트 공연은 공짜 아니면 안 봐도 되겠다고까지 생각했는데 그래도 브람스 4번을 듣고 나서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그닥"...보다는 좀 더 칭찬해 줄 말이 생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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