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땐가 2학년 땐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어떤 건지 
좋은 음악이, 멋진 목소리가 세상에 많은지 처음 알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Tahiti 80의 heartbeat라는 곡을 그 때 처음 알았다.
그때부터 한번도 질려본 적이 없는 곡.
사실 굉장히 경쾌하고 가볍고 달콤한 노래다.
보컬 목소리가 너무 예쁘고 가사가 너무 귀여워서 좋아했다.
그런데 그냥 그 이유만으로도 계속 좋아했다.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질 때마다 하루 종일 이 노래가 날 따라다녔던 것 같다.
물론 사랑하지 않을 때도 딱히 들을 노래가 없을 때도 다른 노래가 다 식상해졌을 때도 
이 노래는 그냥 조금씩 꾸준히 들었다.
그리고 아마 얼마 지나지않아 당시 한국에 잘 있지도 않았던 앨범을 어떻게 구했고
다른 노래들도 좋아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 그룹을 아는 모두가 좋아할테지만 open book, in my arms, 1000 times는 정말 최고다.

타히티 80는 분명 프랑스 밴드인데 노래는 영어로만! 부른다.
근데 발음도 썩 좋아서 뭔가 수상하다.... 
(아, 불어로는 따이띠꺄트르방 이라고 한다 귀엽다)
영국에서는 공연을 많이 하는 것 같던데 치사하게
파리에서는 내가 여기 살고나서 한번도 소식을 못들었다.
그렇게 애타게 찾았는데도. 
(찾아보니까 한국에는 2007년 10월 6일날 왔었다고 한다.뭐야....)

어쨌든
지난 10월 7일이, 그래서 나의 첫 타히티80 콘서트였다.

분명 7시 반이라고 해놓고서 공연은 9시가 넘어서 느지막히 시작했다.
남는 시간은 음..뭐더라 ㅇㅇ피츠제럴드 라는 노르망디 출신의 쫌 귀여운 3인조 밴드가 공연했다.
보컬이 진짜 귀엽게 생겼었는데 노래는 별 재미없었다.
너무 오래 기다려서 다리도 아프고 덥고 힘들었는데 역시 공연 시작하니까 그런 맘이 싹가시고
그저 방긋 방긋 함박 웃음만 나왔다. 진짜. 이런. 기대 이상이었다.
새 앨범 예습을 소홀히해서 새 노래들 할 때는 좀 기가 죽었었는데 
아는 노래들 나올 땐 진짜 너무 좋아서 옆에 사람이 좀 피할 정도로 잘 놀았다.
아주 자알 놀았다. 















그리고 이 날의 마지막 노래는 heartbeat였다.
콘서트 장을 나서면서도, 집에 가면서도, 집에 와서도
빨리 자야하는데 맘만 급해서 서둘러 침대에는 누웠지만,
귓 속에 계속 이 멜로디만 울려서 빼내느라 힘들었다.
잠이 해도 해도 안와서 좀 찡그리다가도 
근데 또 히히 웃었다.

*  *  *

heartbeat
tahiti 80

Enough for me is not much for you
Won't you forgive me that's all I can do
Can you feel my heartbeat
When I'm close to you

I'll never find another way to say
I love you more each day
It's quite romantic I know
That's how I wanna feel today, 
I wanna feel this way

Can you feel my heartbeat
When I'm close to you

I'll never find another way to say
I love you more each day
It's quite romantic I know
That's how I wanna feel today
I wanna feel this way, today

Can you feel my heartbeat
Can you feel my heartbeat
Can you feel my heartbeat
When I'm close to you

I'll never find, no I'll never find
Another way to say
I love you more each day 


*  *  *




그리고 계속 내 시야를 가린 산티아고.........(져지 뒤에 대문짝만하게 santiago써있었음)
잊지않겠어......
늦게 들어와가지고 콘서트 노래는 듣지도 않고 계속 뒤 쳐다봐서.
막 신나서 웃으면서 놀다가 눈 마주치니까 민망해서 정색하기를 몇번이나 반복했는지....
콘서트 갈 때마다 진짜 꼭 거슬리는 사람 한두명씩은 있는 것 같다.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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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너무 많은데
그중에도 몇개를 꼽자면 ..
자전거, 빵, 콘서트, 박물관, 도서관, 옷가게, (강 위의) 다리 같은 것들이다.
그냥 나는 이 곳의 공기가 좋다. 이 곳에서 쉬는 숨이 좋다.
좋아하는 건축물들도 많은데 아마도 에펠탑은 그 중에서도 최고가 아닐까 싶다.
에펠탑은 거의 파리, 프랑스의 상징(좋게말하면 상징, 사실은 거의 cliche)처럼 되어버려서
파리 이야기를 하는데 구태여 에펠탑을 제일 먼저 생각하는게 조금은 우습기도 하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파리에서 내가 제일 처음으로 만난 생물은 
에펠탑이었다.
왠만큼 철이 들어 다시 프랑스를 찾았을 때 
에펠탑은 나에게 마치 산 짐승과도 같이 보였다.
저렇게 큰게 저기서 뭐하는거지? 하는 바보같은 생각 마저 들었다.

요즈음은 출퇴근하려면 에펠탑을 매일 두번씩 지나쳐야 하기 때문에
그냥 쟤가 저기 있구나 하는, 적어도 에펠탑의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만은,
조금의 무덤덤함을 배우게 되긴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경외의 대상이다. 

여름 혁명기념일 밤 불꽃놀이를 했을 때 그 느낌은 배가 되어 다가왔는데
아마도 불꽃 때문에 그 시커먼 철골 뼈대의 윤곽이 멋대로 흐트러져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허연 대낮 에펠탑 발 밑의 바삭이는 잔디에 누워서 
그냥 눈에 보이는 걸 그대로 보고있을 때도 그렇다.
무지막지한 밑둥 하며, 조금의 주저도 없이 힘차게 감아올라가는 쇳덩어리를 보고 있자면
에펠탑은 마치 세상에는 또 없을, 강하고 외로운 동물 같다는 느낌을 나는 받는다.

귀스타브 에펠이라는 프랑스 사람이 100여년전에 만든 건축물일 뿐이다.
아는데 그런데도 자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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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에는 유난히도 소설을 많이 읽었다.
지금까지는 왠지 공부에 대한 불안한 마음에 전공 서적 외에는 쉽게 손을 대지 못했는데,
결국 완전히 끝낸 전공 서적도 별로 없거니와 무엇이든 일단 읽어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선 짧고 너무 어렵지 않은 소설책을 기웃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모스 오즈라는 이스라엘 작가의 책이었다. 
늘상 그렇듯 대형 서점의 서가 사이를 산책삼아 구경하던 중, 친구가 날 불러 세우고 권해준 책.
나와 워낙 취향이 비슷하고 그런 면에서 신뢰할 수 있는 친구였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꼭 읽어보려고 책 제목을 몇번이나 되새겼다. 표지는 그냥 그랬지만.
그리고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던 울적한 어느 날 아침 훌쩍 집을 나와 그 책을 샀다.

책은 위안이다.
그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글 몇줄을 이해하려면 그에 집중하고 감정을 이입할 수 밖에 없으니까
지금까지 내가 빠져있던 현실에서 조금은 멀어지도록 해주는 것 같다.
약간 거리를 두면 마음이 편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날 나의 미카엘이 내게 가져다준 위안은 조금 특별한 것이었다고 기억한다.

"나는 죽고싶지 않다."
첫 장을 열자마자 이 구절이 나를 강력하게 휘어잡았다. 이 책을 손에 넣은지 이미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 한마디는 나를 처음 그날처럼 긴장하게 한다.
"기억하고 싶다, 잊는 것은 죽는 것이다. 나는 죽고싶지 않다."

주인공 한나는 아주 예민한 기억력의 소유자이고 그녀의 시점에서 '기록'된 그녀의 삶의 조각들은 더없이 치밀하고 완벽하게, 살아있다. 
과거의 사소한 찰나들이 녹도 하나 슬지 않고 날카롭게 살아있어서 오히려 기억의 주체인 그녀 자신을 아프게 한다. 
죽고싶지 않아서 기억하는 것인데. 죽지 않으려니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아픈 것이다. 

'사실'은 모두에게 객관적이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일은 각자의 몫이고 따라서 기억이라는 것은 때로 감정적이고 상대적이다.
그녀의 미카엘은 그녀의 눈으로 기록되었고 그녀의 머리 속에서 살아있었다.
미카엘은 그녀를 사랑에 빠지게 하고 아프게하고, 경멸하게 하고, 살게 하였다.
그녀의 건조하고 날카로운 애정을 무덤덤한 뒷통수로 느끼며 
그녀의 인생의 순간 속에, 그리고 기억 속에 살았다.
미카엘은 과연 한나의 것이었을까. 
미카엘에게 안녕을 고하는 순간 한나는 기억의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았을까.
그리고 죽었을까?

한나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내내 나도 모르게 숨죽였던 것은 기억에 집착하는 내 모습이 그녀 위에 재차 겹쳐져왔기 때문이다. 
애매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기억이라는 것으로 어떤 순간을, 누군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어쩌면 철없는 오만이고 생떼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내겐 그 순간을 잃는 것과 같았다.
완벽했던 또는 엉망이었던 어떤 순간,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그 순간을 전부 기억하고 내 머리속에서 수없이 되감고 재생시켜 보면서 그 순간에 대한 완전한 소유를 주장했다. 
그 순간을 내가 가졌고 그 순간을 내가 살았다고. 그래서 나는 시간에 지지 않았다고.
안녕이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버려야하는 걸까

비록 한시적이고 위태로운 것일지라도. 위안은 위안이다. 
이 책이 내게 준 위안은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죽지 않으려면 아파야 한다. 기억들이 새파랗게 살아 날뛰는 한 아마도 나는 아플 것이다.
그러니 지금 아픈 것이 당연하다. 
적어도 나는 죽지 않았다.


아프지 않고도 현재를 사는 법을 언젠가는 배워야 하겠지만.
아마도 한나가 그랬듯이

나의 미카엘(세계문학전집 15)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아모스 오즈 (민음사,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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