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돌아보니 일을 시작한 이후로 3주째 항상 같은 패턴으로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는 것을 알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일하고,
금요일날은 친구들이랑 새벽까지 열심히 놀고 집에 와서 또 이것저것 하다가 늦게야 잠이 들고
토요일날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이것저것 부산을 떤 다음 오후엔 거의 잔다.
저녁 때가 되면 그동안 보고싶었던 것들도 좀 찾아보고 책도 보고 하다가 늦게 잔다.
그리고 일요일날은 오늘은 뭐할까 하다가 하루가 대개 그냥 지나가는 것 같다.

어김없이 어제 저녁때는 집에 들어와서 좀 쉬다가 느지막히 놀러 나갔다.
20구에 있는 Fleche d'Or 라는 클럽 겸 바가 그렇게 괜찮다던데 궁금하기도 했었고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하는 밴드가 공연을 한다길래 :)그것도 구경할 겸 해서 드디어 다녀왔다.
주말엔 입장료 겸 conso 가격이 6유로
밖의 테라스? 같은 천막으로 된 야외공간과 내부의 무대, 바, dj box, 테이블들이 있는 홀로 나눠져 있는데 참 제멋대로 이것저것 다 흩어져 있어서 독특하고 재밌었다.
사실 너무 뒤에 서있어서 공연은 제대로 못봤는데. 나오는 노래들은 다 괜찮았다.

(지금 홈페이지 들어가보니 2006년에 타히티80 공연 있었네.그땐 내가 몰랐겠지)



그러구서 겨우 새벽2시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와서 쿨쿨 자고
늦잠 자고 싶었는데 정말 파리 살고 처음으로 모기 때문에 깼다. 정말 흔치 않은 일인데.

오늘은 FIAC에 다녀왔다.
한국에서도 이미 유명한 프랑스의 컨템퍼러리 아트 페어로 1년에 한번 10월 말 쯤 열린다.
재재작년엔 몰라서, 재작년엔 이사하느라, 작년엔 춥고 지하철 파업이라서 못가서
인연이 정말 없나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올해도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못가겠지 체념하고 있다가 맘 굳게 먹고 얼마전 표를 예매해 버렸다.
다녀오길 잘한 것 같다.
구경하는 내내 예술의 힘에 대해서 생각했다.
눈을 통해 들어오는 어떤 이미지가 날 감동시키고 흥미를 갖게하고 전율하게 하고 나아가 나를 장악할 수 있다는 건 언제나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그동안 참 오래된 그림들만 공부하다가 이렇게 신선한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 그냥 그것만으로도 참 좋았다.
fiac얘기는 다시 한번 정리해서 올려야겠다.
다만 받아온 명함이니 브로셔들을 정리할 일이 걱정이다.
필요해서 일일히 다 챙겨오긴 하는데 둘데도 마땅치 않고 사실 좀 귀찮다.ㅠ
전시나 여행을 한번 다녀오면 종이가 너무 많이 쌓여서 참 문제인데 뭔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지금은 월요일까지 회사에 제출해야 할 레포트를 쓰고있다.
아마 내일까지 꼬박 매달려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또 토요일이 지나간다.



la FLECHE D'OR
102 Rue de Bagnolet
75020 Paris
www.flechedor.fr

FIAC - Foire Internationale d'Art Contemporain
10.23-26 Grand Palais, Louvre Cour Carree
www.fiac.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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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좋은 것들 앞에서는 부쩍 억울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침에 밥 먹으면서 오랜만에 아랑훼즈 협주곡을 듣는데
갑자기 또 억울함이 밀려왔습니다.

아름다운 자연풍경 앞에 서거나, 좋은 음악을 듣거나, 가슴을 치는 시를 읽거나 할 때
가슴 속에서 울화가 치밉니다.
저것은 이제 내 것이 아니다, 내 삶의 바깥에 있다, 저기로 가려면 먼 길을 돌아 가야 한다, 내 발길은 자꾸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하는 생각들이 하염없이 솟아납니다.

억울하지 않은가요.
세상은 아직 아름답고 매일매일 새로운 시와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매일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계속 이렇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

하긴 얼마 남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150년의 석유문명이 이제 곧 종막을 고하고
인간은 곧 자신이 만든 폐허에 직면하게 될 겁니다.
때마침 북극의 얼음이 다 녹아 세계는 물에 잠기고
마야력이 가리키는 대로 어쩌면 2012년은 인류 최후의 해가 될지도 모릅니다.
김수영이 예언한 '미대륙에 석유가 고갈되는 날'이
복사씨 살구씨가 미쳐날뛰는
하지만 인간은 없는, 어쩌면 인간이 없기 때문에 더 자연이 환호작약하는
그런 날이 바로 낼 모레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래서
더 억울합니다.
울화가 치밀어서 못 살겠습니다.




*  * *
10월23일 아빠가 홈페이지에 쓴 글
가끔 아빠는 어쩜 나랑 이렇게 똑같은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꼭 내가 쓴 글 같아서 무섭다.
하긴 20년을 넘게 한 집에서 부대끼고 그렇게 많은 것을 함께 보고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가족이란건 특히 부모자식간이란건 참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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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거

journal gourmand 2008. 10. 19. 00:29
나는 맛있는 걸 정말 좋아한다.
'맛있는 것'자체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수없이 노력하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 입을 즐겁게 하는 것으로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고
덕분에 마주 앉아 있는 사람과 더 기분 좋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도 하고..
그 집착은 좀처럼 떨쳐내기 힘든 것 같다. ㅎㅎ 
매일매일 열심히 일하다가 주말이 되면 스스로에게 상도 주고 싶고
에너지 충전도 좀 필요하고 친구들이랑 그동안 밀린 수다도 떨고 싶고..
이런 행복하고 특별한 시간에 맛있는 음식이 빠질 수는 없다.

파리에서 가끔 아주 가끔,
두툼하고 진한 맛의 "진짜" 스테이크가 생각날 때 찾는 곳
Robert et Louise를 소개해볼까 한다.

(lonley planet말투로) 
이 조그맣고 코지하고 챠밍한 레스토랑은 실제로 부부인 로베르와 루이즈가 운영하고 있다. 
매끈한 와인빛의 나무에 빨간 깅엄 체크 커튼과 테이블보가 무척 잘 어울리는 실내는
내가 살아본 적도, 가본 적도 없는 푸근한 프랑스의 시골 집의 향수를 자아낸다. 
다른 손님들의 의자들을 칠세라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면 구석 맞은편 벽에 큰 화덕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곳에서 직접 고기들을 구워낸다. 
이 화덕이야말로 이 집 깊은 고기 맛의 비밀이다.

robert et louise의 화덕


실제로 론리 플래닛 citiz 파리 편에서 소개된 것을 보고 처음 찾아간 이 곳은 사실은 시간 맞춰 가기가 힘든 곳이다. 일-월요일은 휴무, 그나마 나머지 날에도 점심때 (대략 12-3시)와 저녁때(대략 19시-22시)에만 화덕에 불을 넣기 때문이다.

로베르와 루이즈 부부가 자랑하는 메뉴는 아무래도 아래의 Côte de boeuf가 아닐까 싶다.
내가 추천하고 싶은 메뉴이기도 하고.
두 사람이 정말 무리해서 겨우 다 먹을 만큼 많은 양의 소갈비 구이가 2인분에 40유로.
오븐에 구운 감자와 샐러드는 부탁하면 같이 주고, 빵은 당연히 ^_^공짜로 나온다.
이 날 우리가 골랐던 와인은 나는 Cotes du Rhone, 친구는 Vallee de Loire였던가 아무튼 조금 생소한 이름의 레드와인이었다. 나는 꼬뜨 뒤 론을 제일 좋아한다. 싸고, 특히 아무 고기랑도 무난히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점심 때는 Entrecote, 그러니까 티본? 스테이크를 점심 메뉴로 15유로인가 하는 괜찮은 가격에 애피타이저 혹은 디저트까지 포함해서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점심을 이 곳에서 먹어본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확실히는 잘 모르겠다. 
엉트르코트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메뉴들이 돌아가며 들어가는데 대부분 다 맛있다.
맛도 맛이지만 소박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식탁 차림새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 같다.
토마토 모짜렐라 샐러드를 한번 애피타이저로 먹어본 적이 있는데 꼭 내가 만든 것 처럼 얼렁설렁 썰어 나온 토마토에 웃어버린 기억이 있다. 하지만 어김없이 맛있다.

디저트도 여러가지 종류가 갖추어져 있는데 전부 직접 만드는 것 같다.
(써있지 않지만 적어도 나는 확신한다.)
지난 금요일 먹었던 바나나 애플 크럼블은 정말.....
숟가락까지 먹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서 바로 크럼블 만드는 법을 인터넷에서 잔뜩 찾아두었는데
아직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슬슬 저녁때가 되어가고 있는데 이런 글을 괜히 썼나 싶은 생각이 든다. 배고푸다..
어쨌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 레스토랑의 이름은 Robert et Louise이고
1956년부터 지금까지 파리 3구의 번화가 Marais지구 한가운데서 변함없는 고기맛을 자랑하고 있다.

Robert et Louise
64, rue Vieille-du-Temple
Tel.: 01 42 78 55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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