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Monde editorial
pour le 11 - le 12 oct 2010

Liu XIaobo, Wen Jiabao : deux visages de la Chine
(Two faces of China)





NY Times

Published: October 10, 2010
China continued to react with indignation at the Nobel Peace Price being awarded to an imprisoned diss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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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분께 케르테즈 전시를 보고 와서 메일을 썼는데
블로그에도 감상문 !? 을 쓰려다보니 시간도 엄청 늦었고 귀찮ㅇ ...아서
그냥 발췌합니다. ㅠ 
일단 지금으로서는 메일에 적은 것보다 더 좋은 글이 나올 것 같지 않기도 하고요...
(기분 상하시지 않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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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케르테즈의 전시는 정말 기대 이상으로 좋았어요.
규모가 이렇게 큰 지 몰랐는데... 전 역시 이렇게 한 작가의 작품만을 모아놓은 retrospective류의 전시가 좋은 것 같아요.
물론 아주 치밀하게 구성을 잘 해놓으면 테마전도 좋지만...
정말 차분하게 한 개인으로서의 예술가, 그 한 "사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레트로스펙티브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당.

앙드레 케르테즈는 제가 Elliot Erwit 과 더불어서 제일 좋아하는 사진작가인데요.
겉으로 수다스럽거나 과시적이지 않으면서 정말 세상을 관심있게, 또한 겸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소박하고 애정어린 시선이 팍팍 느껴지는 그런 작가들이지요
특히 사진 작품들을 볼 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인데요..
캔버스 위의 붓 터치 하나하나를 실제로 컨트롤 할 수 있는 화가보다는
그저 "찰나"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사진가에게 훨씬 "현재" 그리고 어쩌면 "운"의 무게가 더 크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요,
많은 것이 이미 주어져 있기 때문에 그만큼 개성이랄까 본인의 철학, 그리고 관점을 드러내기 쉽지 않고요.....
또한 역설적으로 사진가가 그 특정한 순간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더 많이 지게 되는 것 같아요. 왜 하필 그 순간을 선택했느냐 하는.

그런 이유에서 케르테즈의 사진들이 특히 더 감동적인 것은
정말 그냥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물들에 그의 기분들이 상념들이 고스란히 묻어난다는 그런 건데요 (굉장히 진부한 말이긴 합니다만)
예를 들어 그가 찍은 옛 건물들 (1930년대 뉴욕이랄지) 의 비상계단들이나 굴뚝 다발들의 사진들에는 정말
쓸쓸하고 괴롭지만 말 안하고 꾹 참는 사람, 겉도는 사람,
하지만 사실은 모두가 무관심한 보잘것없는 사물들에도 사실은 따뜻한 시선을 보낼 줄 아는 사람의
아우라가 모두 담겨있어요.
흐린 날 집에 혼자 바삐 뛰어가는 아이가 우습고 귀여워도 뭐라고 말은 건네지 못하고 대신 마음속에 깊이 담아두는 사람.
그의 사진에는 아무리 삭막하고 건조해보이는 도시 풍경에도 반드시 어딘가에 사람의 실루엣이 숨어있답니다.
음 그런 점이 참 마음을 움직이더라고요.

ㅎㅎㅎ무슨 말을 하려는건지ㅡ 별 중요한 것도 아닌데 왜이렇게 어렵게 썼나 싶네요
나중에 좀 더 생각이 정리가 되면 글로 한번 다시 써보려고요.



그래서 케르테즈의 사진들을 보니 참...
헝가리 출신으로 내내 프랑스와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힘들게 산 사람인데요
전쟁터에 나갔다가 큰 부상을 입고 그 후유증을 늘 안고 건강상으로도 위태로운 상황이었고요.
늦은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불안정하고 미래도 어두운 시기를 보내면서
마천루 자락에 걸린 구름을 보고 찍은 사진이 참 마음에 와닿았어요.

이번 전시에서 Solitudes 라는 테마 아래 전시되어 있던 사진들이 다 그렇게 좋더라고요.
보면서 역시 사람은 외로워할 줄도 알아야 한다 ㅡ (그래야 작품이 좋다?! ㅎㅎ) 고 생각했지요.





구글해보니
아래 사이트에 작품들이 잘 정리되어 있네요-

http://www.ahmetarifgunes.com/index.php/andrekertesz-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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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머리 속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두 단어다.
conviction 그리고 methode.
어쩌면 이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은 훨씬 오래 전 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맞는 이름을 붙일 수 없었을 뿐이지.

Louis Grodecki 의 글들을 엮어 낸 le moyen âge retrouvé 라는 책에서 다른 어떤 훌륭한 문장들 보다도 나를 잡아 끌었던 문장은 - 루이 그로데키의 conviction (신념 이겠지) 은 이미 일찍 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 라는 것이었다.
학자, 아니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그보다 더 대단한 일이 있을까?
내 신념은 어디에 있는 건지. 대체 어디에서 드러나 줄 생각인 건지.
나는 왜 이 공부를 하고 있나?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무엇을, 어떻게?
신념과 방법론.
어렵다.

Viollet-le-Duc, Hauser 등을 비롯해서 특별히 애착이 가고 조금 더 존경스러운 학자들에게는 늘 그것이 있다. 어떠한 담론도 어떠한 문제 의식도 어떤 연구도 결국은 "인간"자체로 돌아간다는 어쩔 수 없는 회귀본능.
어제 읽은 viollet-le-duc의 글들이 마음에 참 많이 남는다.
그는 건축을 평생 공부한 사람이다. 이 공부를 대체 몇년이나 더 해야되나 꾀 부리고 지겨워하는 나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 그는 비범한 손재주를 가진 (그의 건축 데생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건축가이며 이론가, 역사가이고 무엇보다 고딕시대 건축물들을 "합리적으로", 시대 상황에 맞게 복원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비록 생전에도, 현재까지도 수도 없는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그가 건축에 그렇게 매달린 것은, 그것이 인간의 삶, 전통, 습관, "영혼"의 응집체이기 때문이었다.
"어떠한 정복자도 피정복민의 집 - 외관, 자재, 내부를 포함한 - 을 바꾸려고는 하지 않는다" : 사람들이 토양과 바람과 물과 싸워 얻어낸 모든 삶의 지혜와 역사가 모두 "집"에 담겨있다고 그는 보았다. 프랑스인으로서 그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고대 양식을 모방한 아카데믹한 건축이나 이탈리아 바로크 풍의 건축이 프랑스의 땅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고, 선조들이 그들의 삶에 맞도록 끊임없이 고치고 개발해 온 독자적인 고딕 및 중세의 건축 양식의 중요성을 대신 설파하려 노력했다. (물론 지금와서 중세 양식의 집을 다시 짓고 살자는 뜻은 아니었다. 여기서 다 요약하기는 힘들지만 cf. "Du style gothique au XIXe siècle", Annales archéologiques, 1846.)  그 혼자의 힘으로는 지난 몇백년간 저열한 야만인의 것으로 업신여겨져온 중세 양식이 올바르게 재평가되기를 바라는 것은 시기상조였고. 겨우 에꼴데보자르 건축과 교수로 임명되고나서도 금방 해고되고 만다. (그는 어떤 영향력있는 인물도 사사하지 않고 철저히 독학을 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는다. 멀고 먼 그리스 신전 (게다가 pagan이 아닌가!)의 외형을 그대로 베낀 기독교사원과, 토스카나에나 어울리는 중정과 갤러리를 뽐내는 묘한 17세기 풍 저택들이 19세기 프랑스에 지어진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그는 삶의 연속성을 믿고 전통을 믿는 사람이었다. 땅과 오랜 삶의 방식에 맞도록 지어진 "집" 그 위에 어떠한 우월한 예술도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도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어야 이 공부를 계속 할텐데 말이다.
무언가 믿는 것이 있어야...
한국에서 한국 미술사를 하고 있어야 맞는 것이 아닌가 때로 걱정도 한다.
일단 나는 방법론을 배우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연상능력이 있고 상상력이 있는 한 내가 지금 여기서 힘들게 공부하고 있는 것들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어떠한 방식으로는, 무언가를 "쌓아" 가는 데에 도움이 분명히 될 것을 믿는다.

자 책 읽읍시다.!




Viollet-le-Duc, Vézelay 성당의 arcature aveugle의 데셍.


Viollet-le-Duc, les formes d'arc. 1922.



+ 날 겁먹게 하는 비올레-르-뒥의 "이상적인 성당" .......
으어 정말 볼 때마다 진짜 무섭다 이건. 짓지마. 짓지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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