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의 코고는 소리 끙끙 잠꼬대 하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솔직히 조금 더 게으름 피우고 싶었는데 어서 빵 사와서 아침 먹고 보리랑 산책을 가야겠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났다. 보리는 눈 뜨고 바로는 식욕이 별로 없는지 아침밥을 줘도 입도 대지 않는다.
내가 아침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도 사료가 그대로여서, 기다리다 못해 결국 아침 산책을 나섰다.
그냥 가볍게 나갔다 오려던 생각이었는데 집 앞 avenue de segur 를 쭉 걸어가 유네스코 후문을 돌아 avenue suffren을 따라 내려오는, 처음 가보는 코스로 걷게 되었다. ㅎㅎ보리가 가고 싶어하지 않는 곳을 피하다보니. 아직은 시끄러운 사람들이 많지 않은, 좀 조용하고 안정된 코스를 걷는 것이 보리에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다가 또 어쩌다보니 avenue suffren을 쭉 따라 내려오지 않고 중간에 boulevard garibaldi로 돌아서 좀 시끄러운 길로 귀가하게 되었는데, 그 길은 꽤 붐비는 대로인데다 길 가운데 6호선 지상 전철이 다녀 소음이 크고, 집에 도착하기 직전에는 커다란 카센터까지 있어 내심 걱정을 했다.
그래도 보리는 의젓하게 걸어주었다. 다만 카센터 앞에서 엄청 시끄러운 마찰음, 정비사들끼리 외치는 말들, 자동차 움직이는 소리들에 홀려 자꾸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해서 제지하느라 혼이 났다. 카센터 아저씨들이 당황하는 나를 보며 웃는 것을 꿋꿋이 참고 보리가 궁금증을 다 해소할 때까지 앞에서 기다렸다가, 보리가 신중하게 다시 발걸음을 옮기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모퉁이를 돌아 집에 왔다. 이번에는 보리를 안아 올리지 않고 제 발로 아파트 현관문을 통과하게 했다.
집에 낮에 둘이만 있으니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데 좋은 점이야 굳이 일일히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나쁜 점이라면 사실 나에게서 오는 문제인 것 같다. 역시 보리에게 너무 신경을 많이 쓰게 되는 것. 보리가 낑낑거리거나 좀 심심해보이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고 쩔쩔매고 만다.
아무 할 일이 없고 보리랑만 놀면 된다 - 는 생각은 이제 하지 말고, 내 할 일들을 우선으로 찾아 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저녁에도 산책을 나갔는데 동네에서 보리 정도 크기의 개들을 산책시키는 주인들을 만나 중간에 이야기도 나누었다. 11개월 된 회색 푸들을 산책시키던 아주머니는 나한테 이것 저것 충고를 해주었는데, 무엇보다 보리가 어리고 도시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산책하기 어렵고 같이 살기 힘든 것은 아직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말해주어서 고맙고 안심이 되었다. 그 푸들도 보리랑 똑같이 시골에 살다가 파리에 온지 1주일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동네에 사니까 또 볼 일이 있겠다며 웃으며 헤어졌는데 각자 다른 길로 가다가 건널목에서 또 마주쳤다.
다른 아줌마는 좀 요란스러운 스타일이었는데 (눈에 초록색 왕 반짝이를 일상에서 그렇게 바르고 다니는 사람은 처음 봄.) 새하얀 말티즈 같은 소형견을 데리고 있었다. 건널목에서 보리가 중간에 딱 멈춰버려 나도 거기에 서서 보리를 기다리고 ^_^있는 상황에 마주쳤는데, 역시 그 분도 이렇게 어린 강아지에게 산책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며 고맙게도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그러나 킁킁대는 보리가 무서워서 말티즈를 냅다 끌어안고 내새끼 빨리 가자, 하기에 실소가 나왔다.
아참 오늘은 여행용 이동가방에 들어가는 훈련도 했다.
역시 너무 말 잘듣고 차분하고 똑똑한 보리다.
월요일엔 보리 건강 상태도 직접 체크하고 필요하다면 주의사항도 좀 들으러 동네 동물병원에 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