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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14 돌아옴. 아직 베자르에게서는 못 돌아옴


안트베르펜에서의 3일은 아니나 다를까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렸다.
좋았지만 사실 정신 못차리도록 추운 날들이었다. 파리에 돌아와 반가움도 잠시, 북역 플랫폼에 발을 내딛으니 이게 웬걸, 북쪽에서보다 훨씬 더 차거운 바람이 모질게도 불더라. 버스도 다 끊긴 시간, 다행히 친구들 스케줄이 변경되어 택시를 같이 나눠타고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여장을 풀고 그동안 못들었던 음악을 맘 편히 들으면서 여행을 정리할 겸 또 몇 자 적어본다.
사실 이번에는 벌써 세번째 방문이라 딱히 여행자다운 일은 한 것이 없고 이미 저번에 자세히 쓴 것에 굳이 더 할말이 있을까 싶다. 사진은 나중에 올려야지.

하지만 꼭 문자로 남기면서까지 바득바득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베자르의 발레 공연인데.
정말 그 공연은 내가 이제껏 알지 못했던 형형색색의 끝이 없고 마르지 않는 감동을 안겨준 특별한 경험이었다. 일단 간단하게만 써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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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앞에 나온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Gil Roman의 작품 외에 베자르의 것으로는 Ce que l'amour me dit, 그리고 Bolero 이렇게 두 가지가 상연되었는데,
알고보니 첫번째 작품에 쓰인 음악은 말러의 것이었다. (교향곡 3번 제6악장)
무용수들을 눈으로 좇는 동안에도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서 내가 지금 행복하다면 이것은 저 몸짓들 때문인지 아니면 음악의 이 강력한 힘 때문인지 수없이 묻게 했던 작품.
베자르는 , 혹은 안무가들은, 혹은 예술가들은, 이렇게 글자 하나, 말 한마디 없이도 말을 할 수 있구나........하는, 어쩌면 매우 당연한 명제에, 그 경이로움에 소름이 다 끼쳤다. 그저 움직임을 보고 음악의 선율을 듣는 것 만으로도 그가 하는 말을 생생히 듣고 이해하는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소통하고자 하는 상대방의 노력이 나에게 와 그 목표를 이루는 것이다. 여기 내게 말을 걸어오는 누군가의 정신이 눈 앞에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눈" 앞에 있는 것이다.
어떤 대답을 하여 어떤 대화를 이끌어나갈지는 나의 몫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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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회에서 음악을 듣다 보면 음이 어떤 형상으로 혹은 빛깔로 눈에 보이는 느낌이 드는데, 무용을 보고 있으니 이 시각적 체험은 다시 촉각으로 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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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레로의 경우 약간 아쉬웠던 점은 독무를 추는 무용수가 그 Elisabeth Ros 가 아니라 다른 사람(Bernice ...성이 기억이 안난다. Coppieters 이런 비슷한) 이었다는 것인데, 사뭇 낯선 부드러움과 유연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갖추었으나 본래 내가 기억 - 기대하고 있던 힘차게 뿜어져나오는 생명력이라던가, 절망마저도 언뜻 비추는 듯한 그 전율과 극적인 감정의 분출같은 것은 거의 없었다. 아쉽다.. 대신 Elisabeth Ros는 Ce que l'amour me dit와 Gil Roman의 Aria에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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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나 소설 같은 것에 너무 빠져 지내다 보니 원래의 전공 분야에 충실치 못하고 너무 다른 것에 관심이 많다는 자책을 요즘 심하게 했으나 결국 예술은 한 길에서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너무 스스로를 나무라지 않기로 했다. 무엇을 찾아내느냐가 문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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