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트베르펜에서의 3일은 아니나 다를까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렸다.
좋았지만 사실 정신 못차리도록 추운 날들이었다. 파리에 돌아와 반가움도 잠시, 북역 플랫폼에 발을 내딛으니 이게 웬걸, 북쪽에서보다 훨씬 더 차거운 바람이 모질게도 불더라. 버스도 다 끊긴 시간, 다행히 친구들 스케줄이 변경되어 택시를 같이 나눠타고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여장을 풀고 그동안 못들었던 음악을 맘 편히 들으면서 여행을 정리할 겸 또 몇 자 적어본다.
사실 이번에는 벌써 세번째 방문이라 딱히 여행자다운 일은 한 것이 없고 이미 저번에 자세히 쓴 것에 굳이 더 할말이 있을까 싶다. 사진은 나중에 올려야지.

하지만 꼭 문자로 남기면서까지 바득바득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베자르의 발레 공연인데.
정말 그 공연은 내가 이제껏 알지 못했던 형형색색의 끝이 없고 마르지 않는 감동을 안겨준 특별한 경험이었다. 일단 간단하게만 써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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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앞에 나온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Gil Roman의 작품 외에 베자르의 것으로는 Ce que l'amour me dit, 그리고 Bolero 이렇게 두 가지가 상연되었는데,
알고보니 첫번째 작품에 쓰인 음악은 말러의 것이었다. (교향곡 3번 제6악장)
무용수들을 눈으로 좇는 동안에도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서 내가 지금 행복하다면 이것은 저 몸짓들 때문인지 아니면 음악의 이 강력한 힘 때문인지 수없이 묻게 했던 작품.
베자르는 , 혹은 안무가들은, 혹은 예술가들은, 이렇게 글자 하나, 말 한마디 없이도 말을 할 수 있구나........하는, 어쩌면 매우 당연한 명제에, 그 경이로움에 소름이 다 끼쳤다. 그저 움직임을 보고 음악의 선율을 듣는 것 만으로도 그가 하는 말을 생생히 듣고 이해하는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소통하고자 하는 상대방의 노력이 나에게 와 그 목표를 이루는 것이다. 여기 내게 말을 걸어오는 누군가의 정신이 눈 앞에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눈" 앞에 있는 것이다.
어떤 대답을 하여 어떤 대화를 이끌어나갈지는 나의 몫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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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회에서 음악을 듣다 보면 음이 어떤 형상으로 혹은 빛깔로 눈에 보이는 느낌이 드는데, 무용을 보고 있으니 이 시각적 체험은 다시 촉각으로 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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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레로의 경우 약간 아쉬웠던 점은 독무를 추는 무용수가 그 Elisabeth Ros 가 아니라 다른 사람(Bernice ...성이 기억이 안난다. Coppieters 이런 비슷한) 이었다는 것인데, 사뭇 낯선 부드러움과 유연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갖추었으나 본래 내가 기억 - 기대하고 있던 힘차게 뿜어져나오는 생명력이라던가, 절망마저도 언뜻 비추는 듯한 그 전율과 극적인 감정의 분출같은 것은 거의 없었다. 아쉽다.. 대신 Elisabeth Ros는 Ce que l'amour me dit와 Gil Roman의 Aria에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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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나 소설 같은 것에 너무 빠져 지내다 보니 원래의 전공 분야에 충실치 못하고 너무 다른 것에 관심이 많다는 자책을 요즘 심하게 했으나 결국 예술은 한 길에서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너무 스스로를 나무라지 않기로 했다. 무엇을 찾아내느냐가 문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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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 Classique 들을 때 아침마다 짧게 짧게 나오는 라벨의 볼레로.
멜로디는 익숙한데 반해, 한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새삼 깜짝 놀랐다.
마침 친구가 씨디를 샀길래 (harmonia mundi에서 나온.지휘자 이름은 까먹음.. ㅎㅎ)
같이 들었는데. 역시 좋다.
무엇보다 요새 날씨에 참 잘 어울린다.
따뜻한 봄이 언제나 올런지 두근두근하는 기대로 아침을 여는 요즈음 듣기 딱 좋은 것 같다.
처음의 플루트 등을 비롯한 관악기들 소리를 들으면 정말..
싱그럽고 축축한 풀밭 내음과 온갖 화초들이 떠오른다.
배경의 조근조근 속삭이는 듯한 batterie도 완벽완벽.
Ravel 들을 수록 정말 너무너무 매력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모리스 베자르. 이런.
저 안무를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이란. 너무 아름답다.
정말 이 곡의 정수를 그대로 표현한 것 같다. 힘차고 우아한 움직임.
볼레로는 옛날 프랑스 Les uns et Les autres라는 Téléfilm에서 등장해 특히 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거기에 이 안무가 나온다.

요즘 나에게 신선한 에너지와 무한한 영감을 주는 두 명의 Maurice.감사,쪽쪽.



Version orchestrale  : Barenboim, Berliner Philharmoniker, 1998

Part I


Part II


Charles Munch랑 Cluytens 가 지휘한 것도 좋다던데.
현재까지 찾아본 바에 의하면. 인터넷에선 들어 볼 방법이 없다.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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