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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31 나흘의 고민 끝에. 5


저렇게 제목을 적어놓고 보니 겨우 나흘인가, 싶기도 한데
나흘 내내 매일 서점에 들러 책을 꺼냈다 다시 꽂았다가를 반복하기를 한시간 씩
그 큰 서점 문학 코너 점원들과 한명씩 다 상담 (내지는 잡담)을 해보고 나서 비로소 오늘에야 행동에 옮길 수 있었으니 사실은 꽤나 인텐스한 .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 넘치는 나흘이었다.
그리하여 총 10권의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모두가 보석같은 책들이다.
이 중 6권은 어릴 적에 거의 달달 외듯이 읽어댔던 추억의 명작들이고
나머지 4권은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제목만 익숙한 것들이다.

먼저 빅토르 위고의 2권짜리 레미제라블.
표지가 더 예쁜 Hachette 출판사의 책(le livre de poche)들은 아쉽게도 전부 조금씩 구겨져있어서 Gallimard사에서 나온 문고판으로 구입했다. 게다가 hachette가 조금 더 저렴했는데 약간 아쉽지만.
더 깨끗한 책을 가지고 싶어서. 중고여서 낡은 것은 상관 없는데 새 책을 살 거라면 이왕이면 아무 흠없이 반짝반짝 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에 선택했다.
정말 좋아했던 책인데... 안타깝게도 철들고나서는 손에 다시 쥐어 본 적이 없다.
작가가 직접 고르고 뽑아낸 단어들로 이 책을 또 한번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떨림을 감출 수 없다
(아래 이미지에서 보듯이 표지가 약간 무섭다 ㅋㅋ)



헤르만 헤세의 책을 자그마치 네 권이나 샀다.
문득 드는 생각에 아마도 나는 헤세를 참 좋아하는가보다. 약간 갸우뚱하게 된다.
사실 읽어본 책은 데미안과 환상동화집이 전부인데.
(앗. 정정. 그러고보니 유리알유희랑 수레바퀴밑에서도 읽었구나)
데미안의 인상이 너무 강했던 탓인지.
그리고 그의 환상동화집은 내가 지금까지도 제일 좋아하는 문학작품 중 하나다.
얼마나 열심히 읽었던지. 그래서 꼭 문고판으로 가지고 있고 싶었다. 가지고다니면서 맨날 읽으려고
사실 한국에서 가지고 있던 환상동화집은 누군가에게 빌려줬다가 영영 안녕했기 때문에.
그리고 저 데미안 표지를 보라. 상아색 바탕에 쉴레의 그림.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크눌프도 샀다. 역시 표지가 정말 예쁘다. 정말 책 표지는 내게 너무 중요하다.
하긴 누구에게나 다 그런가?



무엇보다도 가장 기대되는 것은!
헤세가 음악에 대해서 쓴 수필, 시, 편지 등을 엮어 놓은 책, Musique이다.
책 뒷면에 써있는 혹자(아마도 편집자)의 평을 보면 -

헤세에게는 그림보다도 음악이 갖는 의미가 훨씬 컸으며 (여기서 뜨끔하면서도 묘한 안도감을 느끼는 미술사 전공자) 그는 음악을 인류 문화의 가장 순수한 상징이자 가장 고고한 형이상학적 현실성, 세계를 움직이는 진정한 축으로 여겼다. 어린 시절의 친구, 유년기의 열정, 황혼기의 충직한 동반자로 그에게 대변되는 이 "음악"이야말로, 이 책에서 열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자료를 제시하고자 하는 헤세의 또다른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인 것이다.

이어서 헤세 왈,

"음악 없이 우리의 삶이 무엇일 수 있겠는가. 만약 누군가가 나 또는 어떤 다른 음악 애호가에게, 예를 들어 바흐의 합창곡이나 마술피리나 피가로의 아리아들을 듣지 못하게 한다면, 혹은 누군가 우리 기억에서 애써 그 것들을 뽑아내 지워버린다면, 이는 우리에게 있어 한 신체기관, 어떤 감각의 반쪽, 아니 그 전부의 상실이나 다를 바가 없다."


아마도 헤세는 나랑 잘 통할 것 같다.

그리고 바로 어제도 밑에 얘기했던... 스탕달의 적과 흑.
프랑스어 교본에서 발췌되어있는 부분 빼고는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다. 주인공 줄리앙이 우디앨런 영화 주인공처럼 여러가지 방법으로 신분상승을 꾀하는 몇몇 장면들이 내가 아는 전부다.
그런데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라고 했다.
아빠가 좋아하는 책이라면 내가 싫어할 이유가 없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미루어보면 아마 아빠가 좋아한 것보다 더 열광적으로 좋아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뭐든 가능성의 문제가 아닌가. 미칠듯이 좋아할 확률이 더 높은 책은 일단 사고 보는 것이다.
적과 흑은 조금 특별한 포맷인데, 지금까지 책들의 헤세의 musique을 제외하고 전부 문고판인데 비해, 하드커버에 크기도 큼직하다. 사실 다른 문고판 표지들이 너무너무 안 예뻤기도 하고, 아마도 오래 두고 보고 싶을 것 같아서 작년 일간지 피가로에서 특별기획으로 내놓은 프랑스 문학 걸작선에서 골랐다.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Jean d'Ormesson이 선정한 "이상적인 책장(Bibliothèque Idéale)" 컬렉션인데. 겉 커버에 엄청 크게 9.90euros 라고 시퍼런 스티커가! 그것도 잘 안떨어지는 스티커가..! 붙어있어서 몹시 충격적이긴 하지만 일단 별 선택의 여지가 없어, 다른 책방에 가서라도 찾아볼까 하다가 당분간 책방 순례는 쉬고 싶은 마음에, 그냥 집어오고 말았다. 작년 특별기획이라 더이상 새로 주문도 할 수 없다고 하고.



그 밖에, 올해 사망(이 단어 말고는 없을까 아무리 고민해도 잘 모르겠다.) 50주년을 맞아 전국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도 샀다.
이것도 역시 불어 공부하는 친구에게 빌려주었는데 뭐...그 땐 엄청 싼 가격에 중고로 샀었고 하니 굳이 돌려받기보단 선물한 셈 치고 그냥 새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무엇보다 올해 까뮈 책을 한 권이라도 사는 것이 아무래도 뜻깊은 일인 것 같았다.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은 결국 ...결국 ...........문고판으로 결정했다.
어제 밤에 잠들기 전에 얼마나 뒤척이며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비싼 (예쁜) 책 한 권보다 경제적인 문고판 여러 권을 사보는게 이리보나 저리보나 현명한 것 같다. 사실은 귤이라도 한 알 더 사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꽤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마지막 프로스페르 메리메! 이를 바득바득 갈며 횡격막 복식호흡으로 외치고 싶은 이름이다.
19-20세기 고고학사(엄밀히 말하면 중세고고학의 19-20세기 역사) 수업 때 날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던지... 이젠 그 단계를 훌쩍 (사실은 야밤에 몰래 담 기어오르듯 불안불안하게) 넘었으니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유유히, 그래 어디 소설은 어떻게 쓰셨나 한번 보실까, 하는 마음으로 구입했다.

나는 단편집을 굉장히 좋아한다. 11편의 소설이 한 권에 들어있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든다.
단편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글쎄 일단 호흡이 짧아 부담이 덜하다는 점이 솔직히 가장 큰 것 같다. 더욱이 여러가지 책을 동시에 조금씩 읽어나가는 습관이 있는 나로서는 아주 긴 책들은 어째 점점 뒤로 미루게 되기 마련이므로 굳건한 의지와 펄펄 끓는 흥미 없이는 1년이 걸려도 끝까지 다 읽기 쉽지 않다. (물론 대부분은 시간을 들이더라도 끝까지 다 읽지만)
또 한가지, 작가의 스타일에 아주 빨리, 그리고 깊이, 확실히 동화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한 작가의 글 - 특히 도입부와 결말을 여러가지 접하게 되면 그 세계를 더 금방 파악할 수 있으니까. 메리메 너의 세계도 고로 순식간에 파악해 주겠어 프랑스 최초의 문화유산 제네럴 인스펙터같으니..

내일은 일요일!
도서관이 안 여는 이 날을 100% 내 마음대로 즐기기 위해서 주중에 얼마나 놀고 싶은 걸 참았는지
아마도 오늘은 헤세 음악책을 들고 이불 속에 기어 들어가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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