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중세 예술 재평가를 위한 움직임은 대략 19세기 초중반을 기점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같은 시기 영국과 독일에서 고딕 양식이 누리던 위상을 비교하면 시기적으로도 한참 지체되었으며 또한 그 파장 역시 미약하다. Quatremère de Quincy를 주축으로 한 프랑스 아카데미는 고전고대 양식의 재창조를 유일한 기치로 내걸고 중세 미술을 저열한 것으로 평가했는데, 중세 말기 프랑스 땅에서 정점에 달했던 고딕 종교미술과 건축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무척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830년대 들어, Eugène Viollet-le-Duc, Jean-Baptiste Lassus 등의 건축가 및 이론가들은 아카데미의 이상에 반기를 들고 이 역설적 상황을 개탄했다. 그들은 "중세", "고딕"이라는 딱지가 붙은 모든 예술 양식에 대한 프랑스 예술계의 무관심과 멸시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자성을 촉구하였으며 400년간 잊혀져왔던 프랑스 고유 예술 양식의 아름다움을 뒤늦게나마 전파하려 힘썼다.

와. 겨우 요거 쓰는데도 되게 어렵네.
반성 반성. 한국어로 쓰는게 어째 더 신경쓰이고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밑에는

19세기 중반 Leon de Laborde와 벨기에의 James Weale. 동시대를 살았을 뿐 기본 관점이나 활동 분야 등은 서로 달라 단순비교는 불가능하지만. 또한 1886년 Chrétien Dehaisnes 주교의 고문서 사료 (archives) 연구 및 편찬.
École du Louvre의 Louis Courajod. 중세 조각과 플랑드르 회화의 양식 비교 연구.
Georges Lafenestre.
뒤따르는 Primitifs frança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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