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 매진이 너무나도 당연한 날이었다.
드뷔시의 바다, 라벨의 피아노 콘체르토, 그리고 베토벤 7번.
거기다 에사-페카 살로넨, 다비드 프레, 파리 오케스트라.
어떤 프랑스 인이 이 공연을 기대하지 않았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당일 표 판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여섯시 반부터 이미 셀 수 없는데
한시간이 지나도록 취소표는 커녕 암표(?) 하나 나오지 않아 거의 대부분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파리 오케스트라 회원 프로그램을 통해 작년에 표를 구입해두었는데
학생 표라서 역시 자리는 아주 좋지 않았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이 자리에 만족하자고 계속 주문을 외웠으나
결국 공연 시작 직전에 뒤로 달려가서 훨씬 나은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라벨 피아노 손을 꼭 보고싶었기 때문이다 ㅠ ㅠ
어쩄든 무대를 보고 조금 오른쪽 자리라서 손은 못 보았고 가끔 피아노 뚜껑에 비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그런데 살로넨 정말 멋있었다. 약간 홍명보 선수와 이목구비가 비슷했다 (눈썹은 다르지만).
나중에 엄청 아프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팔과 어깨를 무척 힘차게 휘두르더라.
그리고 확실히 파리 오케스트라도 이 날은 정말 온 힘을 다해서 연주하는 듯 소리도 힘차고 굉장히 듣기 좋았다.
드뷔시의 바다 1악장 마지막 부분에선 정말 과장 하나 보태지 않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지막까지 훌륭했지만 1악장의 움트는 새벽, 해돋이, 강력하고 힘찬, 때론 간질이듯 부드러운 파도소리는 정말 최고였다.

라벨 콘체르토도 정말 좋은 반주였다. 그냥 나는 라벨은... 그저 라벨이 나보다 먼저 태어나 살아주었던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피아노도 굉장했다. 내가 피아노에 가까이 있어서 그랬는지 유독 모든 소리가 청명하고 곱고 정확하게 들려서 기분이 좋았다. 물론 피아니스트도 터치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이 느껴졌다. 아주 명료하고 귀에 잘 들어왔다. 다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히 1악장에서, 약간의 광기가 느껴질 정도로 피아니스트의 감각적인 해석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이상하게 무뚝뚝하더라. 그러나 기술적으로 나무랄 곳은 하나도 없었고 정말 모범적 - 라벨 피아노에 모범이라는 말을 붙이기는 이상하지만 - 인 연주였다. 1악장 첫부분을 들으며 직감적으로 아... 2악장 진짜 느끼하겠다... 겁을 먹었는데 또 의외로 2악장에서는 무척 또박또박 예쁜 소리를 들려주었고 2악장 후반부에서는 심지어 눈물이 왈칵 날 뻔했다. 정말로. 인생이 너무나 아름답고 가치있다는 생각을 들게하는 곡이다. 앞에서 말했지만 라벨 이후에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다. 내가 피아노 스타인웨이앤썬즈 글자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울먹울먹 하는 모습을 제1바이올린의 부수석 아저씨가 보고 당황하는 것을 보았다.
사족으로 나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라벨의 이 피아노 협주곡 처럼 2악장에서 3악장이 쉼 없이 넘어가는 곡들이 참 재밌는데 왜냐하면 자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다 깨기 때문이다. 내 대각선 앞에 앉은 아주머니는 거의 용수철 처럼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피아노의 다비드 프레는. 진짜 무슨 ... 웃기지만 캔디캔디에 나오는 테리우스 ㅋㅋㅋㅋ같았다.
옛날에 라디오 클래식 Passion Classique 에 나와서 너무 자신감 넘치는 발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기에 참 ...음 사람이 참 어리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기 때문에 사실 어제 공연의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과연 이 젊은 음악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 ! 였다. 근데 그가 무대에 등장을 딱! 하는데. 연주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참. 어이가 없었다. 리카르도 무티의 사위인데다가. 키도 엄청 크고. 잘생기고. 젊고. 무슨 완전 엄친아... 그의 굉장한 자신감이 어쩐지 조금 납득이 갔다. 왠지 자존심이 상한다. ... 앵콜로 들려준 바흐와 슈만 어린이정경 1번도 참...괜찮았다......

베토벤 7번도 좋았고 난 특히 4악장의 템포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더없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2악장 역시 나쁘지 않았다. 관악 파트에서 조금 더 소리가 곱게 나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전체적으로 모든 악장이 잘 어우러졌다. 도입부가 좋았다. 그리고 비올라 훌륭했다. 

같은 프로그램으로 오늘도 연주가 있는데 또 가고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있다.
표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대략 2-3일 후부터 citedelamusique.tv 와 liveweb.arte.tv (맞나) 에서 실황을 다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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