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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09 La conviction et la méthode
  2. 2010.10.06 Georges Pierre Seurat



요즘 내 머리 속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두 단어다.
conviction 그리고 methode.
어쩌면 이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은 훨씬 오래 전 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맞는 이름을 붙일 수 없었을 뿐이지.

Louis Grodecki 의 글들을 엮어 낸 le moyen âge retrouvé 라는 책에서 다른 어떤 훌륭한 문장들 보다도 나를 잡아 끌었던 문장은 - 루이 그로데키의 conviction (신념 이겠지) 은 이미 일찍 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 라는 것이었다.
학자, 아니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그보다 더 대단한 일이 있을까?
내 신념은 어디에 있는 건지. 대체 어디에서 드러나 줄 생각인 건지.
나는 왜 이 공부를 하고 있나?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무엇을, 어떻게?
신념과 방법론.
어렵다.

Viollet-le-Duc, Hauser 등을 비롯해서 특별히 애착이 가고 조금 더 존경스러운 학자들에게는 늘 그것이 있다. 어떠한 담론도 어떠한 문제 의식도 어떤 연구도 결국은 "인간"자체로 돌아간다는 어쩔 수 없는 회귀본능.
어제 읽은 viollet-le-duc의 글들이 마음에 참 많이 남는다.
그는 건축을 평생 공부한 사람이다. 이 공부를 대체 몇년이나 더 해야되나 꾀 부리고 지겨워하는 나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 그는 비범한 손재주를 가진 (그의 건축 데생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건축가이며 이론가, 역사가이고 무엇보다 고딕시대 건축물들을 "합리적으로", 시대 상황에 맞게 복원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비록 생전에도, 현재까지도 수도 없는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그가 건축에 그렇게 매달린 것은, 그것이 인간의 삶, 전통, 습관, "영혼"의 응집체이기 때문이었다.
"어떠한 정복자도 피정복민의 집 - 외관, 자재, 내부를 포함한 - 을 바꾸려고는 하지 않는다" : 사람들이 토양과 바람과 물과 싸워 얻어낸 모든 삶의 지혜와 역사가 모두 "집"에 담겨있다고 그는 보았다. 프랑스인으로서 그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고대 양식을 모방한 아카데믹한 건축이나 이탈리아 바로크 풍의 건축이 프랑스의 땅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고, 선조들이 그들의 삶에 맞도록 끊임없이 고치고 개발해 온 독자적인 고딕 및 중세의 건축 양식의 중요성을 대신 설파하려 노력했다. (물론 지금와서 중세 양식의 집을 다시 짓고 살자는 뜻은 아니었다. 여기서 다 요약하기는 힘들지만 cf. "Du style gothique au XIXe siècle", Annales archéologiques, 1846.)  그 혼자의 힘으로는 지난 몇백년간 저열한 야만인의 것으로 업신여겨져온 중세 양식이 올바르게 재평가되기를 바라는 것은 시기상조였고. 겨우 에꼴데보자르 건축과 교수로 임명되고나서도 금방 해고되고 만다. (그는 어떤 영향력있는 인물도 사사하지 않고 철저히 독학을 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는다. 멀고 먼 그리스 신전 (게다가 pagan이 아닌가!)의 외형을 그대로 베낀 기독교사원과, 토스카나에나 어울리는 중정과 갤러리를 뽐내는 묘한 17세기 풍 저택들이 19세기 프랑스에 지어진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그는 삶의 연속성을 믿고 전통을 믿는 사람이었다. 땅과 오랜 삶의 방식에 맞도록 지어진 "집" 그 위에 어떠한 우월한 예술도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도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어야 이 공부를 계속 할텐데 말이다.
무언가 믿는 것이 있어야...
한국에서 한국 미술사를 하고 있어야 맞는 것이 아닌가 때로 걱정도 한다.
일단 나는 방법론을 배우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연상능력이 있고 상상력이 있는 한 내가 지금 여기서 힘들게 공부하고 있는 것들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어떠한 방식으로는, 무언가를 "쌓아" 가는 데에 도움이 분명히 될 것을 믿는다.

자 책 읽읍시다.!




Viollet-le-Duc, Vézelay 성당의 arcature aveugle의 데셍.


Viollet-le-Duc, les formes d'arc. 1922.



+ 날 겁먹게 하는 비올레-르-뒥의 "이상적인 성당" .......
으어 정말 볼 때마다 진짜 무섭다 이건. 짓지마. 짓지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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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s Pierre Seurat

on arts/19c 2010. 10. 6. 06:14

그림을 본 지 참 오래 되었다.
내가 좋아서, 보고싶어서 본 지가 정말 참 오래 되었다
지난 쾰른 여행 때가 마지막인가? 여름에 한국에서는 전시회를 보러 가지 않았다. (아마도)

아르모니아 문디에서 나온 라벨과 쇼송 삼중주 음반 겉면을 살펴보다가
표지 그림이 누구의 것인지 문득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조르주 쇠라의 아니에르에서의 음..물놀이라고 해야하나, 어쨌든 잘 알려진 그림 중 하나인
Une baignade à Asnières 라는 유화를 위한 습작 중 한 편이다.
구글에 Étude pour une baignade 라고 치면 제일 많이, 먼저 뜨는 작품은 다른 것인데.
아무튼 문득 이 그림이 참 좋게 느껴져서 잠깐 쇠라의 그림들을 찾아보았다.
Georges Seurat - the Complete Works 라는 이름의 사이트 (http://www.georgesseurat.org/)에서 그야말로 거의 모든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따스한 햇살을 가득 머금은 둥글둥글한 사람들의 피부와 옷감이 기분 좋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알고보니 쇠라의 목탄화들도 참 좋구나.
부드럽게 그림자와 엉키어 사람과 나무, 꽃들을 비추는 그 빛의 촉감은 재료가 무엇이든 그것이 쇠라의 손에서 났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아. 미술관에 가고싶다.......
파리에 살면서 무슨 소리냐. 당장 가라.
그러나 아무리 orsay에 orangerie에 pinacothèque에 가고싶어도
그 인파 속에서 그림을 보는 것은 보고싶은 그림을 못 보고 참는 것 만큼이나 힘들다.
으 으
한번 가야지 그래도
오르세 인상파 후기인상파 관 수리는 다 끝났으려나.





이거다! 싶었던 오늘의 그림
아 보기만 해도 좋구나
그냥 앞에서 눈을 뜬 채로 있는 것 만으로도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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