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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21 Claudio Abbado + Lucerne Festival Orchestra @ Salle Pleyel, 20 10 2010







음...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다.
두 가지 사실로 오늘의 감동을 최대한 무덤덤하게 요약해보자.
첫째, 일단 오늘 있었던 아바도와 루체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플레이옐 1년 시즌 내에서 가장 비싼 티켓 값을 자랑하는 (싫지만 어쨌든 가격은 관람객에게나 공연장 측에게나 공연의 품질을 이야기하는 가장 일반적이고 중요한 척도 중 하나니까.) 몇 없는 별 다섯개짜리 콘서트이다.
그리고 나는 말러의 음악을 완전히 새로 알게 되었다.
방금 전까지도 심장이 터질 것 같고 긴장으로 뻣뻣했는데 지금은 굉장히 평온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메모해 온 것을 바탕으로 토막 토막.

오늘 상당한 인파가 모일 것이라는 사실은 당연했고 9유로 가격에 28세 미만 티켓을 구입하는 내가 좋은 자리를 얻지 못하리라는 것은 자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자리는 J321, 3은 3층 발코니를 말하고  J는 열, 21은 자리 번호인데 가운데부터 번호가 붙여지니까 내 자리는 3층 꼭대기에서 두번째 줄 오른쪽 완전 끝이었다. 아빠와 방브 벼룩시장에서 구입했던 쇠냄새가 심한 쌍안경을 챙겨야겠다 결심.

공연장에 7시 반쯤 도착하니 거의 아무도 없었으나 혹시나 조금 앞에 빈자리가 나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창피하게도 금방 붐비게 되었다. 내 뒤로는 한 줄밖에 없는데 그 자리에 앉은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이거 안전벨트 매야 되는 거 아니냐고 농담을 하며 조소인지 너털웃음인지 너그러움인지 패자의 의연함인지 모를 기묘한 얼굴들을 한다. 나는 그냥 혼자 조용히 앉아서 멀뚱히 있다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공연 중에 기침 하지 않으려고 드롭스를 하나 입에 넣는다.

오늘 오는 관객들은 어쩐지 평소의 후줄근한 애들이 아니고 좀 신경써서 정장에 머리도 좀 감고 온 것 같다. 16구 파시 스타일 랄프로렌 모델같은 사람들도 군데군데 보인다. 어뜨케 다들 좋은건 알아가지고... 그래도 내 주변은 거의 똑같은 처지라 절약과 청춘과 근성의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젊은이들이 대다수. 프로그램을 10유로에 파는데, 돈이 아까워 사지 못하고 옆사람이 갖고있으면 좀 보겠다고 해볼까 했더니 역시 아무도 안 샀어...
내 왼쪽에는 새침떼기같은 인상의 검은 뿔테를 쓴 금발 여자애, 오른쪽에는 만성비염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이는, 그러나 한편으론 도련님 상인 남자아이가 앉았다. 콧소리를 자꾸 낼까봐 걱정했는데 왠걸 이 친구는 배가 아픈 친구였다. 공연 도중 계속 배에서 구룩구룩 소리를 내서 참 딱했다.
이러다가 오늘 저녁 이야기로 끝없는 서사시를 쓸 것 같아 좀 쓸데없는 말은 줄여야겠다.

장내가 어두워지고 귀염둥이 르노 카퓌송* 을 비롯한 단원들이 들어와 자리에 앉았고, 콘체르트마이스터인 콜야 블라허 (Kolja Blacher)가 입장해 박수 소리는 더 커졌다. 이윽고 호리호리한 체격의 이탈리아인이 가벼운 걸음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박수도 치고 휘파람도 불고 사진도 찍고 바빠졌다. 그러나 마에스트로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관객들의 흥분과 환호를 다독이기보다는 바로 연주를 시작하기를 주문함. 멋진 시작.

말러 9번을 처음 들었던 순간은 내가 소중히 여기는 최근의 몇 장면들 중 하나에 녹아 있는데
나는 처음으로 내 손으로 밤의 파리를 드라이브 하고 있었고, 강변을 따라 달리는 그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9번 1악장의 첫 부분에 대한 충격으로 생생히 기억된다. 조나단 노트와 밤베르그 (정식 명칭을 잘 모름) 심포닉 오케스트라? 의 연주였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그 시간대에 그 방송에서 뭐가 나왔었는지 찾느라 꽤 고생을 했었다. 그 밤을 그토록 우아하게 반주하던 그 음악이 대체 어디서 온 건지 너무 궁금해서.

어쨌든 1악장의 테마를 나는 정말로 아끼고 좋아한다. 하프 소리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울컥. 너무 집중을 했는지 1악장 끝날 때 쯤 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콘서트에서 이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징조이다. 앞으로 남은 1시간 남짓의 시간이 잊기 힘든 중요한 경험이 되리라는 것. 역시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듣는 것과 공연에서 직접 감상하는 것은 비교할 수가 없다. 지금 여기 이 순간밖에 존재하지않는 소리의 움직임과 그 생생한 울림 속에 나를 어떻게든 밀어넣고 기어이 몸을 맡길 때, 공기를 뜨겁게 메우는 엄숙함과 전율이란.

(여기서 유학생은 잠시 부모님께 머리 숙여 감사 드리는 시간 좀 가질께요...)

끝까지 듣고서 봤을 때 각 파트 악장? 수석들의 솔로 부분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독주 부분이 이렇게 마음에 많이 남는 교향곡은 참 오랜만에 들어보기도 했고 또 워낙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내 기억에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이 그랬던 것 같다.)
특히 Kolja Blacher의 솔로는 독보적이었다. 명주, 아마, 비단, 아 아는 옷감 이름이 별로 없다 무엇이든 좋으니 가장 빛깔이 곱고 가장 반짝이는, 탄탄하고 질기면서도 투박하지 않고 품위있는 어떤 최고로 아름다운 옷감의 씨실과 날실을 보고 만지는 느낌을 받았다. 중간 중간 그의 독주가 나올 때마다 나는 발코니 아래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래서 안전벨트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을까. 1악장을 마무리하는 부분에서의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독주 부분이 참 아름다웠다. (바이올린 빼고 다른 악기들이 뭐였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 ㅠ)
선율과 소리들이 맞물리고 풀어지고 다시 엉키고 살아나는 그 모든 과정들이 정말 잘 쓰여졌다고 생각했다.
2악장에서는 비올라 솔로가 기억에 남았고.
3악장에서의 미친 플룻들...... 진짜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 하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자크 존 (Jacques Zoon) 의 플룻 솔로 역시 대단했다. 근데 오늘 에마뉴엘 파위 나온다더니.
첼로도 기가 막혔고. 음 4악장에서도 첼로 정말 좋았다.
어디에선가 오보에와 바이올린, 하프의 독주가 주거니 받거니 이어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으으 정말 행복했다.
팀파니 주자는 오케스트라의 왕 같았음. 적어도 팀파니의 왕
그리고 4악장이 이렇게 좋았다니 정말 몰랐다. 말러의 교향곡은, 별로 제대로 들어본 일도 없는 내가 감히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 내가 공연에서 느낀 바로는, 정말 청각 그 자체에 모든 것을 맡기면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는 생각이다. 그 순수한 소리에 둥둥 타고, 풍덩 빠지고, 푹 가라앉고, 멜로디와 함께 이리 저리 구르고 그 감정을 온 몸에 묻혀야, 아 "이랬던" 거구나, 알게 되고 또 듣다 보면 그렇게 저절로 되는... 특히 공연에서 들으면 좋을 것 같다. 음반으로 들을 때는 감정이고 뭐고 구성 자체가 보이지가 않았는데 이런 보석이었을 줄이야. 역시 아바도의 힘인가. 제발 건강히 오래오래사세요 !!!
지난번 다니엘 가티의 3번 때 보다 훨씬 인텐스한 연주였던 것 같다. 그 때도 훌륭했지만.
참 그리고 공연 도중에 서서히 빛이 사그러드는 연출 - 인지 아니면 뭔가 문제가 있었던걸까? 설마 -  역시 마음에 들었다. 음악이 나직이 잦아듦에 따라 눈을 간지르듯 어스레해지는 조명덕분에 곡에 더 빠져들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아바도의 발 밑에만 유독 빨간 불빛이 강하게 올라오고 있었는데 역시 이건 이해할 수 없었다.


현악기들의 마지막 보잉이 멈추고 그 긴장감이 아직 증발되지 않았던 때, 관객들 모두가 숨소리 하나 새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던 그 몇 분, 미동 하나 없는 지휘자의 뒷모습을 향한 눈동자에 오직 모든 힘을 다 실어 머리가 뻥 터져버리는 것 같았던 그 몇 분이 또한 오늘의 공연과 이 교향곡을 비로소 완성시키지 않았나. 침묵으로 완성되는 음악. 그 포화된 공기와 머리 속에 아직도 울리는 소리의 잔상.
몇 번을 고쳐 살면 알 수 있을까, 왜 그때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는지.






* 르노가 나왔었다면 블라허 옆의 부수석자리가 맞는 것 같고 아니라면 게반트하우스의 수석인 Sebastian Breuninger 인지도 모르겠다. 멀리서 보기엔 왠지 좀 작고 반질반질한 조약돌같이 생긴 것이 카퓌송네 맏아들 같았는데...

+ 어제 같은 공연 후기가 어떤 프랑스 사람의 블로그에도 올라왔길래 읽어보니 또 재밌었다. 난 너무 멀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이 사람은 보았군.
별로 긴 글은 아니었는데 아무튼 그 사람의 감상은 이렇게 요약된다.

"이 콘서트가 내게 불러일으킨 반응은 질문의 형태를 한 단 한가지 뿐이었다 (번역 매끄럽지 못한 것을 이해해주세요 급히 씀). 한시간 이상을 천국에서 보낸 후 우리가 과연 다시 지상으로 돌아올 권리가 있을까? 발할라에서 브륀힐데를 만나고 온 지그문트에게 처럼 - 이 귀환은 과연 가능한 것인가?"

 이것보다 사실 더 재밌는건 그 다음 부분인데

"가장 중요한 순간에 기침을 해대고 핸드폰이 진동하게 놔두는 사람들에 대한 사형제도를 언제 부활시킬 것인지, (사족을 달자면 프랑스는 사형 폐지국가) 혹은 - 저 안경 쓴 콘트라베이시스트는 대체 뭘 마시고 취한 것인지, 또는, 교향곡 마지막 5분 동안 완전히 숨쉬는 것을 멈췄던 나는 대체 왜 아직도 살아있는 것인지? 만약 관객 중 하나가 이 침묵을 멈추기로 작정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계속 그 상태로 숨쉬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 물론, 대단히 멋지게 연출된 어두움 속에서 마에스트로와 연주자들은 그래도 끝을 지혜롭게 마무리지었지만 말이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 오늘 (21일) 햇빛이 좋은 오전 나절 9번 1악장 첫부분을 엄청 큰 볼륨으로 들으며 눈을 감고 길을 걸었다. 따사로운 햇살과 기분좋게 서늘한 공기가 감은 두 눈꺼풀 위로 쏟아지는 것을 느끼면서. 행복이라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은 것 만은 같다고 생각했다.


abbado rocks. on Twit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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