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 이것 때문에 고민하느라 잠을 못잤다.
나한테 이런 일을 시키신게 잘못이지.
2009년 볼만한 전시,공연 디렉토리를 만드는 일을 했는데,
사심을 감추지 못해 일에 진전은 없고 자꾸 옆길로 새는 나였다.

Théâtre de Châtelet의 연간 클래식 콘서트 플래닝에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거장들을 초청하는 Piano 4 étoiles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이 있는데. 글자만 봐도 눈이 번쩍 뜨이는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월에는 Nelson Freire가 이미 공연을 했고 5월 18일에는 Radu Lupu, 그리고 5월 27일에는 Murray Perahia의 공연이 예정되어있다.
이날 페라이아 아저씨는 바흐, 슈베르트, 베토벤을 연주한다.
곡목은 나와있지 않지만 그가 좋아하는 레퍼토리인 파르티타와 아파시오나타가 아닐까 싶다.
슈베르트는 어떤 것일지 잘 모르겠다. impromptus일 것 같다.
베토벤은 사실 발트슈타인 해줬으면 좋겠다. 잉..

사실 브뤼셀이나 런던으로 갈 생각도 몇번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파리에는 안오시는 게 아닌가.
홈페이지에 출석도장을 찍어가며 투어 일정을 계속 확인해도, 근처 동네에는 자주 오면서...파리는 안오고........그래서 정말 기차 티켓도 예약했다가 취소했었다.. ㅠ ㅠ
그런데 문득 보니까 공식 홈페이지엔 업데이트가 되어있지 않은 파리 일정이 있었던 것이다.
정말 보물을 찾은 기분에 잠시동안 얼떨떨했다.
꾸준한 정보탐색과 수집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 자리 선택과 가격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고민의 시간이 찾아왔다.

사실 나는 아직 피아노 솔로 공연에서 가격대비 괜찮은 자리가 어디인지, 오케스트라에서 좋은 자리는 어디인지, 카테고리마다 장단점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아직 내가 표를 끊고 직접 자리를 골라 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냥 비싼데가 좋은거겠지, 하는 막연한 일차적인 생각은 있지만 그야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것이고,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도 자리의 타입이 천차만별이라 구미에 딱 맞는 자리를 찾으려면 왠만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는 택도 없을 것 같다.
게다가 극장마다 다 특성이 다를텐데, 그나마 샤틀레는 한번 가봤기에 망정이지.
저번에 잠시 언급 했던 대로 떼아트르 샤틀레에선 1층 오케스트라 석이 지하철 진동때문에 별로 좋지 않다는 기억만 있을 뿐이고, 그 외에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는 걸 느낀다.ㅎ_ㅎ

전체적 좌석 구성은 다음 이미지와 같다.



분홍색 부분이 categorie 1, 파랑색이 categorie 2, 빨강색이 categorie 3, 하늘색이 4, 노랑색이 5, 이렇게 된다. 4번과 5번 카테고리에서는 시야가 보장이 되지 않는다.
저번에 쿠르트 마주르 프랑스 국립오케스트라 공연때는 categorie 3 의 W4번 좌석을 받았었다.
극장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아 뒷쪽이라고 해도 무대와 그리 멀지는 않지만,
직접 가보니 왜 저 자리가 3등석인줄 알겠더라.
2층의 발코니 천장이 상당히 낮아서 시야가 가리지는 않더라도 굉장히 답답했고, 지금 생각해보니 소리의 전달도 그닥 좋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ategorie 1을 선택했을 때의 화면.
같은 등급에도 정말 많은 종류가 있다. 0_0 고르기 너무 어렵다..
대충 검색을 해본 결과 (클래식 콘서트 좋은 자리, choisir placement concert classique 모 이런식으로 검색해 봄) 피아노 리사이틀에서는 윗 그림에서 오른쪽 약간 앞(아래)자리가 좋다는 의견이 전반적이던데. 이는 피아니스트의 모습과 손을 비교적 잘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다 청명하고 풍부한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그 반대로 왼쪽 자리가 좋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일단 소리의 아주 미묘한 차이까지는 구분할 실력이 아직 되지 않을 뿐 더러
페라이아 아저씨를 가까이서 보는 것이 스스로에게 더 큰 기쁨일 거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오른쪽 앞을 선택했다. 화면에서 보이는 좌석 중 빨강색 (Orchestre Jardin) 구역이다.

아래 그림에서는 내가 예매를 이미 한 다음에 다시 선택해본거라서 내 옆자리인 k21번 자리에 빨강표가 되어있다. 나는 k19번 자리를 얻었다.




제대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여러 군데서 모의^_^ 좌석 선택을 몇 번 해보고 한두번 가본 결과 불어로 Orchestre석이란 오케스트라 석, 그러니까 1층의 좌석을 의미하는 것 같다.
무대에서 관객석을 바라볼 때 기준으로 오른쪽은 jardin, 왼쪽은 cour, 정면은 face라고 부른다.

직역하면 바구니를 의미하는 Corbeille석은 orchestre석 양 옆으로 계단 한 칸 정도 높이에 위치한 사이드 좌석이다.
저번에 오케스트라를 보러 갔을 때 우리는 결국 entracte(중간 쉬는 시간)때 오케스트라 맨 뒷자리를 탈출해서, 마침 비어있던 좀 더 무대와 가까운 쪽 Corbeille cour 자리를 차지했었는데.
아주 측면이기 때문에 오히려 시야가 더 넓어져 오케스트라 전체의 움직임이 한눈에 다 보인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 때 앉았던 자리는 1등석도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 2-3등석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앞으로 오케스트라를 보러 갈 때는 코르베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외 발코니 자리는 2층, 3층으로 되어있고 찾아보니 4등석 이하에는 Amphi자리도 있다.
Amphi는 Amphitheatre의 줄임말인데, 즉 우리식의 대강당이라는 뜻으로. 정확히 공연장 안에서는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발코니라고 하긴 뭐하고 좀 더 뒷 쪽 구석자리를 위한 명칭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3층의 amphi 자리도 48.5유로나 한다. 너무 비싸다.
나는 그냥 밥 두끼 굶고 1등석 자리를 택하기로 결심했다.
개학 시즌 당시 정신이 없었던 바람에 학생 연간회원 가입 시기는 이미 놓쳐버렸고,
어떻게 안될까 해서 굉장한 고학생이자 음악 애호가ㅎㅎ 인양 public relation 담당자에게 구구절절 이메일을 써 보냈지만, 이런 큰 공연에는 학생 할인은 따로 없고, 막이 오르기 20분 전 부터 남은 티켓을 70%이상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니 그 때 기회를 노려보라는 답장만 되돌아 왔다.
하지만 나는 간이 작아서..... 초를 다투는 경쟁이라던가.. 하늘의 뜻에 이런 중요한 공연의 운명을 맡길 배짱이 없었다. 그리고 성격도 급하다. 표를 직접 내 손에 안전하게 쥐기 전 까지는 불안해서 잠을 잘 못잤을 것이다. 일 능률도 떨어질거고... 그리고 5월 말까지 내내 우울했을꺼야...... ..
그래도 나름 인내심을 발휘하여 이메일 답장도 기다렸고, 브뤼셀이나 런던 가는 표도 아꼈고, 심지어 표를 사는 꿈까지 꿨으니 할만큼 했어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칭찬하며 (칭찬은 왜...?)
거금의 표를 결제하고야 말았다.

페이스북에서 머레이 퍼레이아 아저씨 페이지를 들어가보니까 어떤 사람이 자기 죽을 때 천국의 문간에서 페라이아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를 귓가에 들으며 눈을 감고 싶다고 적어놓았더라.
그런 행복한 죽음이 있을까?
그건 아마도
아주 착한 아주 훌륭한 아주 좋은 사람에게만 약속된 최고의 선물일 거다.
페라이아 콘서트 시작 5분 전에 터덜터덜 가서 마지막 남은 95유로짜리 표를 20유로에 구하는 것만큼이나 멋진 선물이고 완고한 하늘의 뜻일 것 같다.
아. 나는 늘 플란더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가 부러웠다.
AND


아직도 떨림이 가시질 않는다.
요즘 나는 정신적인 피곤함을 떨치기 위해 저녁나절의 여가생활에 집중적으로 공을 들이고 있는데
수요일인 오늘은 이 "문화주간"의 정점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주 Salle Pleyel에 가서 CNSM(국립고등음악학교) 학생들의 오케스트라를 보고 온 이후로
지금까지 이 도시에 살면서 한번도 클래식 음악회에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날 밤 집에 도착한 즉시 음악회 표를 샀다. 두 장이나.
파리에 쿠르트 마주르와 정명훈이 있다는 것이 이 도시의 오케스트라에 대해서 내가 아는 전부였기 때문에 그 두 명장의 공연은 꼭 보아야겠다는 다짐이 제일 앞섰다.
그렇게해서 보게 된 것이 오늘 11월 19일 국립오케스트라의 리스트와 브루크너 공연이었다.

공연이 있었던 떼아트르 드 샤틀레(Theatre de Chatelet).





쿠르트 마주르는 올해 81세의 노장으로, 한국에도 몇번 온적이 있다.
물론 나는 가보지 못했지만 아마 부모님은 보러 가셨던 것 같다.
그 팜플렛을 보고 그의 지휘하는 모습을 수채화로 그려본 적이 있는데 그래서 괜히 더 각별하게 생각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내가 굳이 각별히 여기지 않아도 그는 이미 명실상부한 초일류 지휘자인데.
1970년부터 96년까지 라이프치히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았고 91년부터 11년간 뉴욕필하모닉의 뮤직 디렉터, 2000-2007년까지는 런던필하모닉의 수석지휘자로 활동해왔으며, 2002년부터는 프랑스국립오케스트라의 뮤직디렉터를 겸해오는 등 지휘자로서의 그의 업적과 영향력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현재 그는 프랑스국립오케스트라의 명예지휘자 직을 맡고있으며 무대에 아직도 자주 오르고 있다.
26일에도 리스트의 Totentanz, 브루크너 교향곡 제3번의 공연이 있고 그 사이 언젠가 오르세미술관에서도 소규모의 공연 일정이 있었는데 리스트의 피아노 콘체르토가 너무너무 듣고싶어서 오늘을 골랐다.

오늘의 레퍼토리는 리스트의 피아노 콘체르토 1번 E플랫장조, 그리고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 2번이었다. 브루크너는 사실 집중해서 들어본 적은 없었지만 아빠가 좋아한다는 건 알고있었기 때문에 아마 내게도 어필할거라고 어느정도 검증이 되었던 셈이다.
첫 곡의 주인공은 루이 로르티(Louis Lortie)라는 몬트리올 출신의 피아니스트였다.
역시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지만 아빠가 괜찮다길래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거장이라고까지 하셨다..
그는, 결론부터 말하면, 내가 본 가장 예술적이고 절제된 손놀림을 가진 피아니스트였다.
절제되었다기 보다는 계산되었다고 할까, 계산된 것이라해도 너무나도 훌륭하고 아름답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정말로 그의 직업에 어울리는 손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하겠다.
한 손으로 연주하거나 잠시 포즈가 있을 때 그의 노는 손은 마치 어떤 발레에서 아주 절절하고 호소력있는 연기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 것은 처음 보았다.
피아노 연주도 아주 매끄럽고 유려했지만, 음악을 직접 어루만지는 듯 한 그의 손은 꽤 특별한 인상을 남겼다.
숨막힐 듯한 리스트가 끝나고 일종의 앵콜곡으로 솔로를 연주했는데, 깨어질 듯 건반 위를 구르는 선율이 아주 아름다운 곡이었다. 프로그램에 없던 것이라서 곡 이름을 알 수가 없어 너무 아쉽다.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아주 다채롭고 풍부한 현악기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려주는, 그러면서도 감미롭고 듣기 좋은 것이었다. 비올라의 음색이 참 좋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사실 나는 그 중요성과 대중성에 비해 바이올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바이올린 중 제1 솔로를 맡은 여자 연주자가 있었는데 그 분의 열정적이고 힘이 넘치는 연주가 기억에 남는다. 브루크너를 연주하던 중 활의 줄이 몇 개나 끊어졌다.

나는 쿠르트 마주르의 지휘를 보아서 무척 기뻤다.
그는 곡이 진행되는 내내 손을 빠르게 떨고 있었다. 때때로 아주 빨리, 오른손을 세차게 떨었다.
나는 그것도 지휘 동작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굉장히 독특하다고 생각했지만 내 친구의 말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연세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노인을 동정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슬픈 일이다.
아니다. 이런 위대한 음악인을, 아직도 내 앞에 살아있는 거장을 겨우 손의 떨림 때문에 나도 모르게 가엾게 바라보게 되는 것은 당치 않다.
몸을 내던지듯 곡을 이끌고, 악기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악보 위로 선율을 끝없이, 조심스럽지만 망설임없이, 덧바르듯 겹겹의 색깔들을 만들어 내던 모습이 뇌리에 그대로 박혀 선하다.
음악은 분명 청각을 통하는 예술이지만 가끔은 눈에도 보인다.
그는 음악을 더 많이 볼 수 있게 한다.
뒷모습만 봐도 알겠다. 등과 어깨, 다리만으로도 지휘를 하더라.
지휘자의 존재야말로 오케스트라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인 것 같다.
이런걸 지금까지 왜 안보고 살았을까.
그동안 안보느라 수고했으니. 앞으로는 마음껏 보고 듣고 살았으면 좋겠다.
점점 이 도시를 떠나기가 두려워진다. 좋은 현상이다 :)




ps
떼아트르 드 샤틀레의 0층 오케스트라 석은 피하기를 권하고 싶다. (처음 가시는 분이 있다면.)
지하철이 워낙 많이 다니는 샤틀레역(서울의 동대문운동장이나 신도림정도) 바로 앞에 있는 관계로 지하철이 통과할 때 바닥이 미세하지만 규칙적으로 떨리는 게 느껴져서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꽤 신경쓰이는 일일 수 있다. 나도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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