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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20 Kurt Masur, Louis Lortie and the National Orchestra of France (19 nov)


아직도 떨림이 가시질 않는다.
요즘 나는 정신적인 피곤함을 떨치기 위해 저녁나절의 여가생활에 집중적으로 공을 들이고 있는데
수요일인 오늘은 이 "문화주간"의 정점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주 Salle Pleyel에 가서 CNSM(국립고등음악학교) 학생들의 오케스트라를 보고 온 이후로
지금까지 이 도시에 살면서 한번도 클래식 음악회에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날 밤 집에 도착한 즉시 음악회 표를 샀다. 두 장이나.
파리에 쿠르트 마주르와 정명훈이 있다는 것이 이 도시의 오케스트라에 대해서 내가 아는 전부였기 때문에 그 두 명장의 공연은 꼭 보아야겠다는 다짐이 제일 앞섰다.
그렇게해서 보게 된 것이 오늘 11월 19일 국립오케스트라의 리스트와 브루크너 공연이었다.

공연이 있었던 떼아트르 드 샤틀레(Theatre de Chatelet).





쿠르트 마주르는 올해 81세의 노장으로, 한국에도 몇번 온적이 있다.
물론 나는 가보지 못했지만 아마 부모님은 보러 가셨던 것 같다.
그 팜플렛을 보고 그의 지휘하는 모습을 수채화로 그려본 적이 있는데 그래서 괜히 더 각별하게 생각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내가 굳이 각별히 여기지 않아도 그는 이미 명실상부한 초일류 지휘자인데.
1970년부터 96년까지 라이프치히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았고 91년부터 11년간 뉴욕필하모닉의 뮤직 디렉터, 2000-2007년까지는 런던필하모닉의 수석지휘자로 활동해왔으며, 2002년부터는 프랑스국립오케스트라의 뮤직디렉터를 겸해오는 등 지휘자로서의 그의 업적과 영향력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현재 그는 프랑스국립오케스트라의 명예지휘자 직을 맡고있으며 무대에 아직도 자주 오르고 있다.
26일에도 리스트의 Totentanz, 브루크너 교향곡 제3번의 공연이 있고 그 사이 언젠가 오르세미술관에서도 소규모의 공연 일정이 있었는데 리스트의 피아노 콘체르토가 너무너무 듣고싶어서 오늘을 골랐다.

오늘의 레퍼토리는 리스트의 피아노 콘체르토 1번 E플랫장조, 그리고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 2번이었다. 브루크너는 사실 집중해서 들어본 적은 없었지만 아빠가 좋아한다는 건 알고있었기 때문에 아마 내게도 어필할거라고 어느정도 검증이 되었던 셈이다.
첫 곡의 주인공은 루이 로르티(Louis Lortie)라는 몬트리올 출신의 피아니스트였다.
역시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지만 아빠가 괜찮다길래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거장이라고까지 하셨다..
그는, 결론부터 말하면, 내가 본 가장 예술적이고 절제된 손놀림을 가진 피아니스트였다.
절제되었다기 보다는 계산되었다고 할까, 계산된 것이라해도 너무나도 훌륭하고 아름답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정말로 그의 직업에 어울리는 손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하겠다.
한 손으로 연주하거나 잠시 포즈가 있을 때 그의 노는 손은 마치 어떤 발레에서 아주 절절하고 호소력있는 연기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 것은 처음 보았다.
피아노 연주도 아주 매끄럽고 유려했지만, 음악을 직접 어루만지는 듯 한 그의 손은 꽤 특별한 인상을 남겼다.
숨막힐 듯한 리스트가 끝나고 일종의 앵콜곡으로 솔로를 연주했는데, 깨어질 듯 건반 위를 구르는 선율이 아주 아름다운 곡이었다. 프로그램에 없던 것이라서 곡 이름을 알 수가 없어 너무 아쉽다.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아주 다채롭고 풍부한 현악기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려주는, 그러면서도 감미롭고 듣기 좋은 것이었다. 비올라의 음색이 참 좋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사실 나는 그 중요성과 대중성에 비해 바이올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바이올린 중 제1 솔로를 맡은 여자 연주자가 있었는데 그 분의 열정적이고 힘이 넘치는 연주가 기억에 남는다. 브루크너를 연주하던 중 활의 줄이 몇 개나 끊어졌다.

나는 쿠르트 마주르의 지휘를 보아서 무척 기뻤다.
그는 곡이 진행되는 내내 손을 빠르게 떨고 있었다. 때때로 아주 빨리, 오른손을 세차게 떨었다.
나는 그것도 지휘 동작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굉장히 독특하다고 생각했지만 내 친구의 말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연세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노인을 동정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슬픈 일이다.
아니다. 이런 위대한 음악인을, 아직도 내 앞에 살아있는 거장을 겨우 손의 떨림 때문에 나도 모르게 가엾게 바라보게 되는 것은 당치 않다.
몸을 내던지듯 곡을 이끌고, 악기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악보 위로 선율을 끝없이, 조심스럽지만 망설임없이, 덧바르듯 겹겹의 색깔들을 만들어 내던 모습이 뇌리에 그대로 박혀 선하다.
음악은 분명 청각을 통하는 예술이지만 가끔은 눈에도 보인다.
그는 음악을 더 많이 볼 수 있게 한다.
뒷모습만 봐도 알겠다. 등과 어깨, 다리만으로도 지휘를 하더라.
지휘자의 존재야말로 오케스트라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인 것 같다.
이런걸 지금까지 왜 안보고 살았을까.
그동안 안보느라 수고했으니. 앞으로는 마음껏 보고 듣고 살았으면 좋겠다.
점점 이 도시를 떠나기가 두려워진다. 좋은 현상이다 :)




ps
떼아트르 드 샤틀레의 0층 오케스트라 석은 피하기를 권하고 싶다. (처음 가시는 분이 있다면.)
지하철이 워낙 많이 다니는 샤틀레역(서울의 동대문운동장이나 신도림정도) 바로 앞에 있는 관계로 지하철이 통과할 때 바닥이 미세하지만 규칙적으로 떨리는 게 느껴져서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꽤 신경쓰이는 일일 수 있다. 나도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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