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얼마만에 글을 쓰는지 모르겠다.

한번 안쓰기 시작하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이 걷잡을 수 없이 낯설어져버렸다.

그저께 논문을 무사히 제출했다. 애초에 마음 졸이고 스트레스 받았던 것에 비해 일할거 다 일하고 놀거 다 놀고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엄청 참았던 거지만) 잘거 다 자면서 너무 편안히 마무리해서, 기분이 좀 이상하다. 잘 있다가도 더럭 겁도 난다. 이거 뭔가 내가 큰 실수를 한 건 아닐까? 이렇게 순조롭게 논문을 내는 게 정상인가?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문득 보면 혼자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다.

하지만 뭐 이런 식으로 논문을 쓰는 것도 몇년째이니 어느정도 손에 익을 법도 하니.

제대로 냈을 것이라 스스로를 다독인다. 더군다나 이미 내버렸고 기한도 지났으니 뭐. 몇번이고 다시 점검했었으니 아마 별 문제 없겠지.

그래서 그제부터는 이른바, 뭔가 이 나이에 ?? 부끄럽지만, 자유의 몸인데.

막상 거창하게 할 일은 없는 상태다. 어제 아침부터 후배가 잠시 와있다가 방금 바래다주고 돌아왔기 때문에 어제는 딱히 따로 한 일이 없었고

(아! 6월부터 우리 것이 될 차 시승식을 했다 퍼붓는 빗속에서)

오늘도 보리랑 셋이 몽마르트르 다녀온 것 외에는...

기상 조건이라도 받쳐준다면 당장 기차라도 타고 보리랑 숲에 갔겠지만 날씨가 워낙 오락가락하고 아직도 쌀쌀해서 그럴만한 흥도 나지 않는다. 물론 보리가 뛰어놀기엔 지금 날씨가 낫겠지만.

내일부턴 뭘하지.

일과 논문에 밀려 미처 읽지 못한 에드워드 사이드 책도 좀 읽고 싶고

논문 심사 준비도 틈틈히 착실히 하고.

그동안 못 만난 사람들도 좀 만나고. 다빈치보러 루브르도 가야할테고.

뭣보다 혼자 조용히 생각하며 많이 보내고 싶다. 느긋하게, 하지만 헛되지 않게 보내야지.

일단 내일 시장에 가서 식량을 마련하는 것으로 스타트를 끊어야겠다.

따뜻하지 않아도 좋으니 좀 맑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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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이 곡을 듣노라면 예수를 정말 사랑하고 싶어지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예수 아닌 무엇이 되었건 드넓은 마음으로 사랑하고 싶어지는...
니콜라예바와 리파티의 연주를 가장 좋아하지만 방금 라디오에서 바이센베르크를 틀어주었기에 유튜브에서 그의 실연 동영상을 찾아 왔다.
그는 약 2주전 세상을 떠났는데 오랫동안 파킨슨병을 앓아 슬프게도 그의 피아노 인생은 이미 훨씬 전에 끝이 났었다. 그의 바흐 평균율과 개성적인 라흐마니노프, 드뷔시 연주를 좋아했었는데 내가 클래식을 좋아하기 전에 그는 이미 은퇴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 죄송스럽지만 이미 돌아가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의 영혼이 음악의 순수한 기쁨과 함께 평안을 찾기를 새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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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8일 오늘은 보리의 생일.
(우연찮게도 내 동생의 생일은 27일 어제였다.)
보리가 지금까지 나와 함께한 5개월 동안 탈없이 건강하고 이쁘게 자라줘서 너무 고맙다.
겨우 한살 먹은 요 쪼그만 짐승 ! 이 내게는 얼마나 큰 기쁨이고 소중한 존재인지. 진부하기 이를데 없는 말이지만 그래도 사실인 걸. 보리가 있어 정말 행복하다. 보리가 있으면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
앞으로도 오래오래 서로 의지하고 아끼며 지금처럼 재밌게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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